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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FTA 게임을 여유롭게 감상할 상황 아니다




한·미FTA가 3월 15일 드디어 공식 발효된다. 이로써 한·미 FTA는 2006년 6월 양국 정부가 공식 협상을 개시한 지 5년9개월만에 법적 효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야당에서는 ‘FTA 재협상 촉구와 함께 재협상이 안 될 경우 폐기를 추진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공식 발효가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한·미FTA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고 있다. 과연 한·미 FTA는 우리에게 약인가, 독인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전후 다자무역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며, 한국의 경제발전은 대외교역의 증진을 통해 성장을 이룩한 모범적인 사례로 인용되어 왔다. 이러한 다자주의 믿음에 근거하여 과거 우리는 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1992년 EU의 출범과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를 계기로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국은 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각국의 FTA 네트워크에서의 낙오는 상대적인 시장접근의 제약에 따른 기회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주요 경쟁국들이 FTA 체결을 통해 주요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반면, 우리나라 상품은 상대적인 고관세 부담에 따른 가격경쟁력의 저하로 해당 시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의 상실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로 작용한다. 더 이상 뒷짐을 진 채 세계 각국이 벌이고 있는 FTA 게임을 여유롭게 감상만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현실 곳곳에서 개방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목도해 왔다. 번영을 구가하였던 중세 유럽의 도시들은 예외 없이 세계를 향해 열린 도시(free port)였으며, 세계무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동아시아 경제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고성장을 이루는 동안 수입 대체 정책을 추구하며 문을 닫아걸었던 중남미 경제는 저성장과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개방도가 가장 높았던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제 발전이 상대적으로 개방도가 낮았던 인도나 필리핀보다 더욱 눈부셨던 것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득의 양극화 현상 또한 싱가포르나 홍콩보다는 중남미나 인도 등에서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미FTA 폐기론자들이 주장하듯 멕시코가 NAFTA에 편입된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주장 또한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로자 간 소득격차는 NAFTA 때문이 아니라 숙련공 수요증가와 기존 무역장벽의 보호를 받던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임금수준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지역 간 임금격차는 외국시장 및 자본에 대한 접근용이성 정도에 기인한 것이다. 즉 수출과 외국인직접투자 등 해외시장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지역일수록 근로자의 임금인상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남으로써 일어난 결과인 것이다.


폐기론자들은 또한 우리나라와 미국이 FTA를 체결하면 미국의 서비스산업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우리의 서비스산업이 모두 망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비스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는 상이한 문화적 특성이 서비스의 질에 반영된다.

따라서 비록 미국이 세계에서 경제발전단계가 가장 고도화된 국가이며, 서비스산업의 생산성도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할지라도 서비스산업의 특성상 당장 한국시장으로 진출하여 우리의 시장을 장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1996년 유통서비스시장 전면개방 당시 국내 유통업체들의 고사를 우려하는 견해가 많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유통업체들은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 우수 유통업체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는 동시에 독창적이며 전략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외국계 대형할인점보다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9년 수입선다변화제도 철폐 당시에도 대일(對日)무역적자 확대와 국내산업 기반 붕괴를 우려하여 엄청난 저항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철폐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투자와 R&D 등 개방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통해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개방이란 결국 시장 확대와 경쟁요소의 지속적 유입을 통해 성장동력인 기업에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장 확대가 필요하고, 또 기업이 계속적인 혁신을 통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경쟁에 노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성장동력을 잃은 경제가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양극화를 개선할 수 있는가. 닫히고 좁은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혁신선도 업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적인 경쟁이 없는 곳에서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할 것인가. 세계 곳곳에서 개발되는 새로운 기술과 경영기법을 도입하지 않고 우리가 얼마만큼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손해를 보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원리가 수반된 차선의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미FTA도 마찬가지이다. 한·미FTA를 통해 모든 사람이 이익을 누릴 수는 없다. 분명 손해를 입는 산업과 노동자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일부에서 주장하는 한·미FTA 폐기는 일부에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보다 많은 사람의 행복을 희생시키자는 것과 다름없다.

글·이홍식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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