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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자원외교 힘찬 출발 | 에너지 확보 시급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자원개발”을 외쳤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 다음날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정상과 회담을 하고 임기 첫 번째 행사를 자원외교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3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 후속 조치로서 제5차 에너지산업 해외진출 협의회에서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세부 추진 방안도 발표했다.

신규 생산 유전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생산 광구 인수 등에 필요한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투자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여 본격적인 자원 확보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를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한승수 총리도 취임 초기부터 “세계를 누비면서 자원외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기존의 한국 외교가 남북 관계와 주변 4강 외교에 치중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실리적인 자원외교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해외자원개발을 국가적 아젠더로 지속 추진하기 위해 직접적인 자금 지원에서 인프라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고, 해외자원개발 공기업(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광업진흥공사)을 국제 수준의 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 육성하고 시스템화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해 자주개발률을 높이겠다는 전략도 추진되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에너지 자주개발률 증대 시급
한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와 수입비중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 국가의 자원 자립도를 나타내는 자주개발률을 볼 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이유는 과거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해외석유개발 시작은 1981년 코데코에너지㈜가 인도네시아 마두라유전에 진출한 일이다. 1·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 차원에서 자원개발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1978년에 해외자원개발촉진법을 제정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지원이 처음으로 제도화된 데 이어 1983년에는 탐사사업에 실패할 경우 정부융자금의 상환의무를 면제하는 ‘성공불융자제도’가 도입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석유개발 전문가의 절대적인 부족, 석유개발에 대한 경험 부족, 지질·탐사·개발·생산 등 분야별 전문가 부족 등이 원인이 돼 ‘고수익·고위험’ 사업인 탐사사업에만 편중되면서 성공한 경우도 많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1984년 석유공사, SK㈜ 등이 함께 지분 참여한 ‘예멘 마리브유전’의 탐사사업이 유일할 정도였다.

실패로 점철되던 10여 년간의 해외자원개발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많은 실패 경험, 기술력 증진, 전문인력 보강 등을 토대로 투자비가 적게 드는 탐사사업, 광구매입비로 인해 많은 초기 투자비가 소요되는 개발·생산사업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1996년 처음으로 개발광구인 북해의 캡틴유전을 매입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해외자원개발 속도가 경쟁국에 비해 한참 뒤처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로 생존이 위태로워진 기업들이 해외광구를 매각하고 해외자원개발 담당부서를 없애면서 자원개발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투자회수기간이 길어 투자만 하고 수익이 전혀 없던 석유개발 사업 부문은 구조조정 ‘0순위’ 대상이 됐고 1998년 이후 2002년까지 팔아치운 개발사업만도 26개에 달한다. 그 결과 외환위기를 벗어난 뒤에도 해외유전개발사업은 사실상 뇌사상태였다.
길게 보면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뒤 매각한 유전만도 20개 광구가 넘는다. 1997년의 연간 투자규모는 7억6000만 달러였는데 2002년 투자규모는 5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한번 뒤처진 속도는 10년이 지났음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유전개발사업은 석유공사와 SK㈜만을 통해 추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만큼 외환위기가 한국 해외자원개발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이 컸던 것.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일관성이 부족했던 게 한국의 자원정책이었다”면서 “유가 하락기에는 개발은 도외시한 채 자원의 안정적 도입만을 강조하고 유가가 급등하면 자원개발을 강조하는 등 그때그때 상황에만 대처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해외자원 개발사업 31억9천만 달러 투자
그런 해외자원개발정책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05년 해외자원 개발사업 투자액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선 이후 투자 규모는 매년 약 10억 달러씩 증가해 2007년에는 31억9천만 달러로 2002년 대비 6.4배로 증가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해외자원개발은 국가적 사업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외교통상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익을 위한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와 자원외교를 강조했다. 에너지·자원외교의 중심역할을 외교부가 수행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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