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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72명의 직원 중 한국인은 2007년 말 기준으로 23명에 불과하다. 프랑스 819명, 영국 307명, 미국 213명, 독일 89명 등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매년 3만여명이 지원하는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한국인의 비율도 1%에 못 미친다.

이런 현상이 혹시 한국이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낮기 때문은 아닐까.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각종 국제기구에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한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기구를 ‘오르지 못할 나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단 언어장벽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말 한마디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부를 수 있는 국제기구의 특성상 원어민에 버금가는 영어실력이 필수다. 또 리더십이 뛰어난 한국인이 드물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조직에 적응하는 능력이 강한 대신 ‘이끄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한 후부터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며 국제기구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OECD 직원 중 한국인은 1% 미만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전문직(G7급)인 ‘법률·경제 담당관’으로 근무 중인 이준영 씨는 지난해 전 세계 8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유일하게 합격한 인물이다.
그는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뒤 2003년 스위스 베른대로 유학을 갔다. 스위스 제네바에는 WTO를 비롯해 유엔 유럽본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기구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친 뒤 그는 전 세계 국제기구 100여 곳의 인턴 또는 직원 채용에 지원했다. 국제기구는 공석이 생기는 대로 수시 채용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이 지원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유엔 산하 국제무역센터(ITC)와 유엔개발계획(UNDP) 등 4곳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경쟁이 치열해 수없이 고배를 마셨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자심감도 동시에 생겼다.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토종’인 그는 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외국어 구사 능력을 합격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국제기구는 오로지 전문지식과 경험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해당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게 필수”라며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와 중국어를 복수 전공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신문도 꼭 국제면부터 봤다고 한다.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국제법을 전공하면서 교내 통상법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새벽에는 학원에서 중국어 강의를 듣고, 학교 멀티미디어 학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영어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WTO 사무국 G7급 전문직 연봉 9,200만원
이씨가 합격한 G7급은 대학원 이상 학력에 관련 분야 경력이 5년 이상 되어야 지원할 수 있다. 연봉도 11만8000스위스프랑(약 9,200만원)이 넘는 전문직이다. 700여명의 WTO 사무국 직원 중 한국인은 이씨를 포함해 모두 3명이다. 그중 공무원 출신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WTO에 지원해 채용된 한국인은 이씨가 처음이다. 이씨는 “한국의 경제규모와 분담금에 비해 한국인이 적은 게 아쉽다”며 “WTO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아 한국의 통상 업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엔본부 군축실에서 근무하는 정담 씨는 한국에서 외국 금융회사에 다니다 1993년 유엔에 입성했다. 정씨는 우리나라가 1991년 유엔에 가입한 후 유엔의 국가별 채용 계획에 따라 선발된 ‘유엔 1세대’다. 정씨는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무기 감축, 지역별 안보현안 등을 담당하고 있다. 유엔 총회와 관련된 위원회, 전문가회의 등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고 각종 자료를 평가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다.

정씨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유엔 외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가입 초기에는 정보와 인력이 모자랐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됐고, 한국 외교관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특히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진데다가 반기문 사무총장의 당선으로 유엔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많이 향상됐지만,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고 해서 한국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30여명 수준인 유엔본부의 한국인 숫자에 관해 “현재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지만 40명 가량이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유엔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서는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종교 등에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무엇보다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본부에는 인턴으로 일하며 미래의 국제외교관을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도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협력학을 전공하다가 여성부 후원으로 유엔 인턴 채용시험에 합격한 강민아 씨는 2006년 9월부터 사무총장 연설 및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 워릭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강씨는 앞으로 영어 연설문 전문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강씨는 “현재 우리 정부에는 영어 연설문을 작성할 수 있는 인력이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강씨는 유엔에 인턴으로 오기 전에 외교부 산하기관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면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시각과 업무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유엔에서 반 총장의 선출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엔본부 직원들의 변화도 감지했다고 한다. 반 총장의 당선이 확실해지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직원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유엔본부 인턴 일하며 국제외교관 꿈
유엔에서는 외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들도 찾아볼 수 있다. 서천경 씨는 독일 이민 1.5세대로, 독일 뮌스터대학과 뮌헨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변호사 시험을 치른 뒤 독일 정부의 후원으로 유엔에서 일하고 있다. 서씨는 독일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어, 불어에 라틴어까지 구사하는 다언어 구사자이다. 이 덕분에 그는 유엔본부 내에서도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에 와보니 5개 상임이사국만이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로 돌아간 뒤 유엔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국제법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는 “대단히 도전적인 업무환경”이라는 것이다. 또 직급이 낮아도 전문분야에서 최고수준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고, 명성 있는 전문가들과 같이 일할 수 있어 경력관리에 매우 유리하다.

물론 보수도 적지 않은 편이다. 유엔 사무국의 전문직(P직급) 이상 직원은 회원국 정부 중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국가공무원에 상당하는 보수를 받는다. 현재 보수는 미국 연방공무원에 비해 20∼30% 더 높다. 또 국제공무원으로 정년(62세)까지 신분 보장을 받고 5년 이상 근무하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기구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선발할까. 우선 호기심이 강하고 분석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환영한다. 국제기구의 특성상 정책 이슈와 그 안의 정치적·사회적 요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을 원한다. 리더십, 전략적 비전, 발표능력 등도 중요한 부분이다.

유연한 사고방식도 필수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근무환경이기 때문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적응력이 뛰어나야 한다. 또 ‘관용’을 갖추고 있어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부정적 반응에 대처할 수 있다.

꼭 국제기구를 통해야만 세계로 진출하는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성숙한 세계국가’를 5대 국정지표 중 하나로 내건 이명박 정부는 향후 5년간 해외 봉사자와 해외 취업자 등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명을 양성하기 위한 종합추진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최근 “향후 5년간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명(해외취업 5만명, 해외인턴 3만명, 해외자원봉사 2만명) 양성을 위한 종합추진 계획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4월 중 확정할 예정이며, 우선 올해 1만명의 해외취업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들의 해외인턴 기회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외취업, 인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등과 연계해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발굴할 것이며, 글로벌 인재 양성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청년고용 촉진을 위한 법·제도 정비와 해외수요처 개발, 해외진출 기회 제공 등 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제도 손질에 나섰다. 현행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을 가칭 ‘청년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개편해 제도적 지원체제를 구축하고, 해외봉사 경험자를 정부, 공공기관 지역전문가로 채용하는 한편, 해외봉사활동의 경력인정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종합추진 계획에는 △해외진출기업, 코트라, 재외공관 등을 활용한 다양한 해외수요처 발굴과 해외인턴 정보 및 진출기회 제공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계한 평화봉사단(졸업생), 청년봉사단(재학생) 프로그램 발굴 △국제기구·대학·국내외 알선업체와 업무연계를 통한 해외취업 확대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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