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전통시장 변신은 무죄 | 시장 사람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지하철 제기동역 2번 출구로 나서자마자 풍겨오는 더덕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도로와 인접한 보도를 따라 걷다보면 상인과 손님 사이에 흥정하는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봄기운을 알리는 나물도 푸릇푸릇한 모습을 뽐내며 기운을 돋운다.

“아, 어머니, 정말 말 안 듣네! 여기보다 더 싼 데 없다니까~” 발길은 멈추어 섰지만 지갑은 쉽게 열려 하지 않는 아주머니를 향해 상인은 큰 소리로 외친다. 바구니 안에 고구마 등을 가득 쌓아놓고 손님들을 불러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횡단보도 앞이어서 그런지 빨간불 앞에 멈춰 선 사람들로 제법 북적인다.

“요즘 다들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풀 죽어 있을 순 없죠. 이럴 때일수록 목소리도 더 우렁차게 냅니다. 제 목소리를 듣고 힘 좀 얻으라고요.”


“풀 죽어 있을 순 없죠” 우렁찬 소리
한 중년 상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둘러 봤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은 길이지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덕분에 천천히 걸으면서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풍경은 음악과 닮아 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지고,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고, 싸우는 소리인가 하면 웃음이 터지는 것이 불협화음으로 다가오지 않고 조화롭다. 하지만 시장 골목골목마다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정말 사람 모습 보기 힘들고, 쥐 죽은 듯 고요한 곳도 있다. 마치 이곳이 시장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리어카에 개미약·바퀴벌레약을 비롯해 고무장갑·수세미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박종팔(59)씨의 한숨이 깊어 보였다. “오늘 하루 종일 개미약 1000원짜리 한 개 팔았어요. 이걸로 어디 밥 먹고 살 수 있겠어요?” 옆에서 그 말을 듣던 한복자(65)씨도 “생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채소 한 박스를 1만2000원에 떼어 와서 팔아봤자 얼마나 남겠어요. 그나마 다 팔리면 다행이고…”라며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곳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조기를 앞에 두고 흥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자~, 조기 한 두름에 1만5000원 하던 게 1만원. 빨리 오세요, 빨리.” 부부가 함께 장을 보러 온 손님은 “국산 맞아요?”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인다. “우리 어부들이 원양어선을 타고 잡아온 것이에요.” “너무 작아 보이는데….”  “여기 큰 것은 중국산. 그래도 맛은 국산이 좋죠.”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며 고민을 하던 부부는 마침내 1만원짜리 조기를 골라잡는다.

“제가 여기서 16년째 장사를 하고 있어요. 15년간 임대해서 꾸려오다가 작년부터 자리를 옮겨 제 가게를 갖게 됐죠. 그런데 올해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주변에 최신식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고객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어요. 경기도 침체되어 있는데 경쟁에서 밀리고...”(최영주·54)

최씨는 경기침체도 큰 고민이지만 무엇보다 시설현대화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비교해 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부 한명숙(57)씨는 “가격 흥정 등 우리 정서가 남아 있어 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한씨는 “대형마트 정도의 편의시설은 아니어도 고객이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반대편 골목으로 향하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장을 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을 외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일이었다.

“야, 이 냉이 좀 봐라. 오늘은 이걸로 밥상을 차리자”는 시어머니의 말에 “더 둘러보다 돌아올 때 사요”라고 발길을 재촉하는 며느리. 점차 발길이 뜸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시장이 서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경험의 대물림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시장을 취재하고 있던 중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자~, 1000원 하던 거, 500원이요 500원!” 다시마와 톳, 브로콜리 등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싼 것도 싼 것이지만 상인의 인심이 후하다.










“주차공간 등 편의시설 개선됐으면…”
“떨이입니다. 탈탈 털어서 다 드려요.” 그래도 그냥 지나치려는 손님에게 “엣따, 이것도 더 준다”라며 한 움큼 나물을 얹어준다. 손님은 그제서야 1000원짜리 1장을 건넨다.

“아, 이렇게 손해 보면서 팔아야 팔린다니까.” 기자에게 하소연하듯 말을 건넨다. 그래도 돈을 모아둔 플라스틱 그릇에는 제법 1000원짜리가 수북하다. “다시마는 벌써 다 팔렸네요. 장사가 꽤 잘되나 봐요?”라고 묻자 “그나마 오늘은 날씨가 풀려서 조금 팔리네”라며 싱글  벙글이다. 그래도 전통시장의 정취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한쪽에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박순자(62)씨도 갈수록 장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5년 전엔 먹고살 만했는데 작년부터 사는 게 훨씬 힘들어졌어요.”

옆에 나물을 팔던 아주머니도 한몫 거든다. “요즘 사람들 다 대형마트로 가잖아요. 그러니 손님이 없지.”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전통시장이 어렵다는 말이 쏟아진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그런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에요. 500원, 1000원짜리 사려고 누가 주차료 물고 여기까지 오겠어요?” “주차공간도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요즘은 식구가 적잖아요. 1000원어치만 사도 며칠을 먹는데 자주 올 리가 없죠.”
상인들은 모두 걱정이 태산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