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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기자를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지만, 편의상 고정 출입처가 있는 기자와 출입처가 없는 기자로 나눌 수 있다.

신문사의 편집국이나 방송사의 보도국에서 딱히 출입처가 없는 부서는 국제부, 독자부 등 그다지 많지 않다. 해외 특파원이 아닌 국제부 기자의 경우 해외 통신사와 인터넷 사이트가 전하는 외신을 접한 뒤 기사의 경중(輕重)을 판단해 기사화를 결정한다. 문화부의 경우도 문화관광부 등 일부 부처를 제외하면 기자회견 등이 있을 때만 취재원을 만날 뿐 고정 출입처는 없는 편이다.

고정 출입처가 있는 기자는 매일 아침 출입처에 나가 그날의 기사송고 계획을 보고하고 실제 기사를 작성한다. 정치부 기자는 국회와 주요 정당 사무실을 출입한다. 또 총리실,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등도 보통 정치부에 속해 있다. 경제부의 경우 정책담당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출입하며 업계담당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에 있는 기자실에 머물며 취재하고 관련기사를 쓴다.

사회부 기자는 경찰출입기자와 행정부처 기자로 나뉜다. 경찰출입기자는 흔히 일본식 용어로 ‘사쓰마와리(察廻)’로 불린다. 경찰서를 돌아나니며 사건·사고를 취재한다는 얘기다. 사쓰마와리를 생활을 거쳐야 진정한 기자로 인정받을 정도여서 대부분의 수습기자들은 그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사회부에는 경찰기자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 노동부, 복지부, 교육부, 환경부 등 행정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외교부, 통일부, 재경부, 경찰청 등 정부 행정부처를 출입처로 삼고 있는 곳들이다. 신문방송사의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등이 이런 부처에 대한 취재를 담당한다.

정부 행정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는 1차적으로는 각 부처가 발표하는 정책내용을 기사화한다. 정책자료는 정기적으로 발표되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사안에 대한 보도자료로도 나온다. 독자들은 이런 종류의 기사들이 신문마다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보도자료가 나오면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대개는 더 강한 쪽으로, 더 자극적으로 기사의 방향이 잡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종부세 도입, 양도세 강화 등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을 때 한 신문이 ‘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화하면 다른 신문사도 이를 따라가는 게 보통이다. 만약 정부정책을 차분히 보도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기사가 밋밋해져 자극적인 경쟁지에 뒤처지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 언론사마다 보도하는 정부 발표기사가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왜곡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이보다 더 심한 것도 있다. 검찰청을 출입했던 한 전직 언론인의 이야기다.
“검찰이 대형 비리사건과 관련해 정치인을 불러 조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은 누가 소환됐는지, 몇 명이나 소환됐는지 통 알 수가 없어요. 매일매일 관련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죽을 맛이죠. 그러면 아침에 목소리 큰 한 기자가 기자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은 정치인 3~4명이 소환된 걸로 합시다.’ 이런 제안에 아무런 반론이 없다면 모든 기자들이 그렇게 기사를 작성합니다. 1~2명의 정치인이 소환됐다고 어림짐작해 기사를 작성해놓았다가 고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담합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 비리사건으로 몇 명이나 불려오는가와 같은 근시안적 사실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런 비리사건이 일어나게 된 구조적 모순 같은 것을 심층 분석보도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어느 정직한 기자가 정치인이 실제로 소환됐는지, 소환됐다면 몇 명 소환됐는지 등을 알 수 없다며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다음날 데스크로부터 엄청 깨지게 된다. “다른 신문에는 다 나온 기사를 왜 당신은 쓰지 않았냐”는 질책과 함께. 이런 일이 한두차례 일어나면 그 기자는 ‘무능’이라는 딱지가 붙고 만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초’를 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언론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초를 치다’는 말은 기사작성때 어떤 사실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실을 부풀리거나 과장·왜곡하는 결과도 동시에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발표한 특정 정책이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고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지만 일부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치자. 어떤 식의 변화이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바람직한 보도는 정책으로 인한 이득과 일부 부작용 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부작용을 부각시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보다 큰 자극성을 주기 때문이다. 일단 이렇게 방향이 잡히면 이어 ‘초’를 치게 된다.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한껏 부풀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극성은 더욱 증폭된다.

이렇듯 기자실에서는 비슷비슷한 기사가 양산되고, 심지어 사실보다는 추정에 근거한 기사가 작성되며, 심각한 과장·왜곡도 일어난다.

행정부처 출입기자들은 정부부처가 발표하는 자료만 기사화하지는 않는다. 데스크는 기자들에게 특종기사와 기획기사를 발굴하도록 다그친다. 특종이란 타사 기자들이 모르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하는 것이며, 기획기사는 타사 기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심층취재를 통해 사안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특종·기획기사에 대한 압박감을 늘 갖고 있다. 결국 취재원인 공무원을 수시로 만나야 한다. 공무원이 일하는 사무실에 기자들이 사전약속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주요한 이유이다. 공무원은 하던 일을 접고 기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갑작스런 방문으로 일이 중단되고 기분이 언짢더라도 기자를 홀대할 수는 없다. 기자에게 얼굴을 붉혀서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해당 공무원이 하는 일과 관련해 꼬치꼬치 캐묻는다. 공무원은 아직 발표단계에 이르지 못한 정책에 대해서는 함구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지불식중에 튀어나오기도 한다. 기자는 그로부터 몇 마디 말만 들어도 관련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공무원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기자는 기사작성에 큰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결국 기자는 고심 끝에 ‘초’를 치게 되는 것이다.

확정되지 않거나 아이디어 수준의 정책이 기사화돼 독자들의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기자가 어떤 공무원을 만날 때 그 공무원이 담당하지 않는 업무에 대해서도 물어보게 된다. 이때 그 공무원이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사견을 말하면 기자는 이렇게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러저러하게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00일 정부 관계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
다음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게 되면 정작 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님을 허겁지겁 해명하기에 바쁘게 된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주변인’에 불과한 인물이 기사에서는 ‘관계자’로 둔갑해 독자들의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사실 신문에 나타난 ‘관계자’들은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전직 언론인의 말이다.
“서울시청에 출입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기사를 송고했더니 데스크에서 호출했어요. 기사에 서울시 관계자의 코멘트가 없다는 지적이었어요. 제가 ‘담당 공무원과 통화가 잘 안됐다’고 설명했더니 데스크는 ‘당신이 서울시청에 출입하니 당신도 서울시 관계자 아니냐. 당신의 말이라도 서울시 관계자의 코멘트로 만들어 기사를 다시 보내라’고 하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자들은 자신이 미리 설정한 기사 ‘방향’에 들어맞는 말을 해 줄 사람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무의미한 특종경쟁도 오보와 왜곡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한 현직 언론인의 말이다.
“지금은 심하지 않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울대학교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서울대 관련기사라면 데스크들이 무조건 키우는 추세여서 서울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학보사 기자냐’는 자조섞인 푸념을 하곤 했어요. 하여튼 기자들은 서울대 교수와 교직원, 학생을 만나고 다니면서 많은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특종에 대한 욕심이 앞서다보니 기사감이 되지 않는 것도 마구 부풀려 쓰게 되더군요. 하루는 회사에 들어갔더니 데스크가 경쟁 신문에 난 서울대 관련 기사를 들이밀더군요. ‘타사 기자는 이런 것을 단독보도했는데 이 기사가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 기사를 꼼꼼히 읽어봤더니 한두 달 전에 난 기사를 잔뜩 초를 쳐서 새로운 것인 양 작성한 거였어요.
데스크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데스크는 ‘타사 기자가 초를 친다면 당신은 왜 초를 못 치는거냐’고 저를 몰아세우더군요.”
이런 왜곡·과장보도 부작용의 대부분이 폐쇄적인 기자실 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기자실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가 도입되면서 폐쇄적인 기자실제도가 없어지고 기사송고실이 이를 대신했다.
기사송고실에는 그동안 기자실에 출입하지 못했던 전문지와 인터넷매체 등에도 개방됐다. 기자들의 사무실 무단출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방형인 기사송고실이 과거 폐쇄적인 기자실처럼 운영됐으며, 무단출입도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가 올해 5월 내놓은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4년여전 도입한 개방형 브리핑제를 공식화하고 보다 내실화하자는 데 취지가 있다.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취재봉쇄’ ‘언론탄압’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등과는 거리가 멀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거부한 채 과거 기자실제도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취재를 스스로 제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보다 다양한 매체에 공정한 정보접근 기회를 주기 위한 정책이다. 정부 기관마다 있던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인 기자실(기사송고실) 대신 브리핑실과 송고실을 갖춘 합동브리핑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언론들이 이 같은 변화를 ‘기자실 폐쇄’라는 부정적인 용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본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새 제도는 취재편의 시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중앙청사와 과천·대전 청사에 넓은 합동브리핑 센터를 설치해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브리핑실이나 기사송고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기관 브리핑실은 종전 21개에서 15개로 개편된다. 여기저기 퍼져 있던 것을  모아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목적이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좌석은 모두 750여 석에서 600여 석으로 조금 줄어든다. 이에 따라 기사송고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기자들의 접근이 용이한 시내중심부에 100석 규모의 공동송고시설을 마련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폐쇄적인 기자실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2003년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실과 송고실을 설치했지만, 송고실이 점차 종전의 기자실처럼 운영된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군소 언론매체에도 공정한 정보접근 보장
과거 기자실은 기존 언론사들 중심의 기자단이 독점하면서 신생 또는 군소 언론사의 정보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각 사별로 좌석을 제공받아 자기 사무실처럼 사용하면서 새로운 언론사의 기자가 브리핑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도 했다. 기자들이 부처 기자실에 상주하면서 브리핑과 약간의 배경설명, 기자실 내부에서 오가는 정보 등을 가지고 너도나도 비슷한 기사를 생산하는 현상은 언론계에서도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왔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중요한 언론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해외언론사도 출입기자단의 장벽에 부딪쳐 취재에 제한을 받는 일이 흔했다. 또 부처별로 기자실을 두다보니 상주하는 기자는 별로 없는데 각 사별로 좌석을 배치하는 공간의 낭비도 상당했다.

합동브리핑센터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언론사 기자라면 지역 언론, 인터넷 언론 할 것 없이 누구나 방문해 브리핑을 들을 수 있다. 또 각 언론사별로 최대 5석까지 제공된 브리핑실 옆 기사송고실에서 기사를 송고할 수 있다.

넓은 송고실은 부처별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로 돌아가지 않도록 모든 매체에 개방되고 지정송고석이 배정되지 않은 매체에도 별도로 공동송고석이 제공된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면 기자들은 출입처에 제한하던 취재영역을 넓히고 언론사간  경쟁관계가 되살아날 것이다. 정보접근에 제한받던 신생 매체나 군소 미디어도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아 공정한 언론환경에서 심층적이고 다양한 보도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부처에 대한 취재시 정책홍보관리실을 경유토록 하려고 하자 언론이 크게 반발했다. 또 사전약속없이 정부 부처 사무실을 무단출입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정부방침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취재를 ‘원천봉쇄’한다는 근거 없는 논리가 제기되고 있다.


사무실 무단출입 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관행
그러나 이는 새로운 원칙이 아니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하면서 미리 약속을 잡지 않은 채 정부부처 사무실을 출입하는 것을 제한해왔다. 또 정책홍보 담당부서를 경유해야 하는 원칙도 수없이 강조했다.

이 원칙은 공무원 접촉을 막는 게 아니라 일정한 절차에 따라 취재하자는 것이다. 정확하고 책임 있는 정보가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선진국에서도 지켜지는 보편적인 원칙이고 이미 국내 기업들에서도 취재 요청과 약속을 통한 만남이 일반화한지 오래다.
처음에는 이런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으나 기사송고실이 사무실과 가까운 일부 부처에서는 사전 약속 없는 사무실 방문이 일어났다.

정부는 올해 5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만들면서 이같은 원칙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언론이 근거도 없이 ‘취재제한조치’라고 반발하는 등 불필요한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정책홍보 부서와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과 면담장소 지정에 관한 조항을 삭제했다. 따라서 언론시민단체나 정치권의 요구처럼 사전약속을 전제로 사무실 방문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정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 관련된 정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정부의 목소리가 정확하고 책임있는 공식 채널을 통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원칙의 문제다. 따라서 정부부처에 대한 취재시에는 정책홍보부서를 거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절차이다. 정부는 오랜 취재관행에서 새로운 제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겪을 수 있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관련조항을 삭제했지만, 되도록이면 정책홍보관실을 활용하는 것이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고, 취재에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공무원에 대한 취재는 미리 약속만 잡으면 전화로 하든, 직접 만나든 언제든지 가능하다.

정부는 브리핑이 부실하고 공직자가 정보공개를 꺼린다는 언론계의 주장을 감안, 적극적 취재지원이 가능하도록 구속력 있는 취재지원 지침을 마련했다. 아울러 정보공개 범위와 수준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보공개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의 하나로 e-브리핑 시스템이 새로이 도입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강국에 걸맞은 첨단시스템이 언론의 취재활동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e-브리핑은 오프라인 브리핑을 보완하면서 더욱 충실한 정책 정보를 언론에 서비스하게 된다.
인력이나 시간 등 제한으로 브리핑 현장을 일일이 찾기 힘든 지역 언론사나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이 온라인으로 브리핑을 시청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질문의 양과 시간 등 제약도 없어져 궁금한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질문이 가능하다.

정보 수요가 많은 주요 부처나 정부기관의 경우 취재를 원하는 등록 기자 수가 300명을 넘어가는 다매체 시대를 맞고 있다. 기존의 출입기자 제도와 제한된 브리핑 등 오프라인으로 폭발하는 정보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리적 제약이 없는 온라인을 통한 정보 제공이 필수적인 시대인 것이다.  


실시간 VOD서비스 … 질의 응답도
현재의 관행대로라면 정부 부처는 신문과 방송 등 주요 언론사만 상대하는 데에도 인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전화로 동시에 비슷한 질문을 쏟아 내거나 각자 사무실을 방문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부 주요 언론사를 제외하고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고 주요 언론사들에 의해 정보가 독점되면서 정보 소통이 왜곡될 것이다.

e-브리핑이 활성화되면 지역 언론 기자가 합동브리핑센터에 직접 오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에게 정책을 질문하고 책임 있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취재 문호가 넓어지고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어 언론 보도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다양화, 전문화가 가능하다. 부처의 보도자료를 요약하는 비슷비슷한 형태의 보도가 줄어 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브리핑에만 의존하기 어려워 ‘발로 뛰는 보도’ ‘심층보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e-브리핑 제도가 정착되면 대다수 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은 ‘자주 묻는 질문(FAQ)’의 형태로 답변을 공개해 중복을 피하고 다른 언론사에 공개할 수 없는 질문은 ‘비공개’ 처리를 통해 해당 질문자에게만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프랑스는 전자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언론 간에 원활한 정보 소통을 달성하고 있다. 전국을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한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e-브리핑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브리핑과 온라인 질의·응답은 기존 오프라인 취재환경에 새로운 취재방식을 추가한 것이다. 이는 ‘플러스 α’ 개념이며 ‘취재접근권 제한’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 언론은 취재지원 선진화가 알권리를 침해하는 ‘언론탄압’이며 언론의 취재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5공식’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마치 우리 사회가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출입기자단, 폐쇄적 기자실, 사무실 무단방문 취재가 바로 5공 등 군사독재시절 확고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구시대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과거 관행을 없애려는 게 5공식 언론탄압이라니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아니면 5공시절 언론자유가 꽃 피웠는데 참여정부가 언론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인지….

5공시절 정부는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보도를 완벽히 통제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가능 여부와 신문의 경우 제목 크기까지 일일이 지시했다. 대부분 언론사는 이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군사독재 정권은 자신의 요구를 잘 따르는 언론사와 종사자들에게 반대급부로 상당한 특혜를 부여했다. 정부가 발행한 기자신분증인 프레스카드는 일종의 특권을 표시하는 증명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한된 수의 특정 매체 기자들이 기자단을 형성하고, 부처별 기자실에 상주하면서 자유롭게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공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설익은 정책을 보도하는 것이 ‘취재 자유’ ‘언론 자유’는 아니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은 5공과 같은 군사독재 시절 뿌리를 내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과거와 같은 정부의 권력독점은 사라지고 다양한 집단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활동이 일상화하면서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의 영향력이 증가했고 시민·사회단체 등의 발언권도 크게 강화됐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게는 그 특성상 수용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신문과 방송’ 6월호에 실린 전국의 기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는 정부와 언론과의 역학관계 변화를 잘 보여준다.
기자들은 ‘최근 1년 동안 취재·기사 작성 관련 누구로부터 압력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편집·보도국 간부 52.5%, 광고주 39.6%, 사주 및 사장 25.7%, 이익단체 20.8%, 시민단체 17.8%, 독자와 시청자 17.8%라고 대답했다. 정부와 정치권력은 불과 12.9%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는 주장을 무색케 하는 결과다. 오히려 광고주 등 자본권력이나 언론사주가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핵심 권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인 2003년 개방형 브리핑을 시행하며 언론 관행의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4년 후 다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내놓는 등 언론과의 대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공식 언론탄압’이 과연 사실일까.




개방형 취재지원을 위한 기자등록 절차를 일부 언론이 마치 과거 군부독재 정권의 탄압방식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등 여러 정부기관에서 취재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 실시중인 제도이고 사실 억지 주장을 펴는 해당 언론사들도 국회 등에 기자를 등록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정부가 당초 기자등록 절차를 명시한 것은 순전히 합동브리핑센터와 e-브리핑을 이용하는 기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등록은 강제사항이 아니다. 자주 출입하는 기자들에 대해 매번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자유롭게 출입하게 하기 위한 선의의 취지였다.

언론으로 인정되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언론사 소속 기자라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등록대상 기관을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일정한 언론단체 회원사에 소속된 기자와 국정홍보처장이 이에 준한다고 인정하는 단체·언론사 및 정부기관 등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국정홍보처가 일괄적으로 등록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또 군사정권 시절 프레스카드와 비교하며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해왔다. 정부는 이같은 논란이 제기됨에 따라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총리 훈령)에서 기자등록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출입증 발급규정을 만들었다. 강제하거나 통제한다는 언론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활동의 편의에 따라 출입증을 신청하거나, e-브리핑시스템에 가입하면 된다. 모든 것은 기자들의 선택사항이다.

출입증은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 출입을 위한 것이다. 출입증이 있으면 별도의 확인절차없이 방문증으로 바꿔서 사전 약속된 방문취재 등을 할 수 있다.

기자출입증을 국정홍보처에서 통합관리하지는 않는다. 관리 주체는 브리핑실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중앙청사와 과천청사의 합동브리핑센터의 경우 홍보처가 출입증을 발급하지만, 개별청사는 해당기관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 또한 기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일부 언론은 합동브리핑센터보다 개별 부처의 기자실 체제가 더 취재접근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심지어 공무원 비리 감시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의 의견은 어떨까.

마이클 브린 전 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정부 39개 부처 모두에 기자실이 있는 ‘희한한’ 나라 한국의 특유한 기자실 문화가 언론통제의 한 형태라고 말한다.

“과거의 경우 이러한 시스템은 언론통제의 한 형태였다. 권위주의 정부는 기자들을 감시하며 기자들에게 정보를 숟가락으로 떠먹일 수 있었다. 민주화된 한국에서 이 같은 시스템은 편향된 보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취재지원 선진화는 그동안 각 부처별로 운영되던 폐쇄적인 기자단의 특권적 편의 대신 개방된 브리핑과 합리적 절차를 통한 취재지원을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의 뒤틀린 관행을 이제야 사회 발전에 맞춰 ‘정상화’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에는 정부 발표를 전하는 기사의 수가 너무 많고 실제로 보통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적다는 것이 외국 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경쟁을 제한’하고 ‘유착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다.

기자들이 기자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정부가 적절히 정보를 공급하면 다른 언론사와 경쟁하는 노력 없이도 기자 역할을 무난히 할 수 있다. 기자실이 없어지고 모든 매체에 공평하게 정보가 공급되면 언론사간 경쟁은 불가피해진다. 기자들은 괴롭겠지만 독자들은 보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의 기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내용을 심층보도, 커다란 특종을 기록한 PD들은 기자들처럼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취재활동을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처마다 기자실을 두고 출입기자가 상주하는 ‘출입처’ 시스템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기자단과 부처 간에 유착의 가능성이 있고 출입처 중심의 보도만을 양산해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언론계에서도 출입처 위주의 취재관행과 출입기자 제도가 부처가 제공하는 자료에만 의존하는 ‘앵무새 기자’를 만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자들의 정부 부처 사무실 무단출입을 제한하는 정부 방침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취재봉쇄’ ‘취재접근권 제한’이라고 주장하지만 외신의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정부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각 부처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같은 부처 내의 관리들조차도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한다. 대기업들이 오래전에 배웠듯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자들을 상대해 얘기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고 동시에 그들(정부관리)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마이클 브린 전 외신기자클럽 회장이 6월 18일자 영자지 ‘중앙데일리’에 기고한 글의 일부 내용이다.

정책기관의 정보가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 없는 ‘입’을 통해 유통되면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 수 없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한다. 과거 무책임한 정책 보도가 혼란을 부른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 피해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정부의 목소리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 부처 사무실을 마구잡이로 드나들지 말고 취재가 필요한 담당자와 사전 약속을 통해 면담하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도 공무원에 대한 취재에 제한은 없다. 정부의 취재지원 기준안은 언론의 취재요청에 대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선진국의 경우 언론이 취재를 위해 사무실을 무단출입하는 예가 없다. 해당 기관이 정하는 절차와 체계에 따라 사전에 방문 목적과 취재내용을 알리고 방문을 요청해야 한다.
또 대부분의 국가는 기자의 사무실 방문도 불허하고 있다. 사전 약속이 있을 경우에 한해 접견실 등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다.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둘러싼 언론보도 가운데는 기자들이 일선 경찰서의 사무실을 자유롭게 출입해야 인권침해를 감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많았다. 마치 언론의 주요 업무가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인 것처럼 ‘인권보호자’를 자임하고 나선 듯하다.

인권은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민주화 수준의 향상을 통해 성장해왔다. 인권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높아졌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27조 4항에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 모든 피의자는 무죄인 것이다. 그러나 매일 언론에 등장하는 기사는 경찰이 어떤 혐의로 어떤 이를 구속(혹은 검거)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단 언론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면 설사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유무형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언론이 과연 인권보호를 위해 얼마나 신중한 보도를 해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한편 보도의 근거가 믿을 만하고 책임 있는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인가는 언론사에도 중요하다. 오보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근거가 된 정보의 신뢰도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명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에서 검찰 발표 보도에 대한 통조림 회사들과 언론사의 분쟁에서 2003년 대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사적으로 얻은 정보가 아니라… 부장검사가 출입기자 전부를 불러 모아 놓고… 검찰의 최종적인 수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그 신뢰도가 높고…’

최종 무죄판결이 난 사건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언론사에 대해 보도내용이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통해 나온 만큼 “그 보도내용이 진실하다고 믿는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혼소송 주부 A씨의 청부폭력 오보사건에 대한 1998년 대법원 판결은 정반대 사례다.

‘공보관으로서의 직무 또는 권한이 부여된 여부가 불명한 담당 경찰관이 아무런 내부적 결재절차를 거침이 없이 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요청하였다는 것이니 이를 가리켜 공식발표라 할 수는 없다.’

사건을 실명 보도해 피해자로부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한 언론사들은 경찰 발표를 인용했으니 정당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공보관의 임무를 부여받지 않은 사람의 결재절차 없는 취재응대는 공식발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 신문 방송들이 ‘언론탄압’이라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어떨까. 정작 알 권리의 주체인 일반 국민들은 일방적인 보도 탓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언론의 억지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하고 취재지원 선진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안하기도 한다.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포털이나 언론사 홈페이지의 네티즌 댓글에서는 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언론탄압을 한다고 해서 탄압 당할 언론도 없으며 어느 시대보다 자유가 보장되는 이 때에 그런 언론이 있다면 존재가치도 없다.’ (네이버 아이디 ‘ys7***') 
‘기사를 읽고 진실을 아는 게 아니라 기사 때문에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네이버 아이디 ‘ksn**’)
‘취재의 자유를 보호해 달라며 국민을 팔고 있다.’(다음 아고라 토론방 아이디 ‘현봉’)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지난 5월 22일부터 실시 중인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8월 31일 현재 2만8929명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이 60%, 반대가 38%로 나타났다. 엠파스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취재지원 선진화에 대한 찬성이 84%나 됐다. 취재선진화방안이 논란이 됐던 지난 6월 포털이나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 여론조사에서도 정부안에 대한 찬성응답자가 더 많았다.

네티즌들의 이러한 의견은 크게 변화한 미디어와 정보 유통 환경을 반영한다. 언론 소비자들이 신문과 방송의 주장을 무작정 수용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건전 비판은 수용하고 잘못된 정책정보는 바로 잡는다.’
정부는 그동안 언론이 진실과 다른 보도를 해도 유야무야 넘어가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잘못된 보도가 나올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언론사에 직접 정정·반론 보도를 요청하거나 필요하면 법원이나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반론 보도를 요청하는 등 정정당당한 대응방식을 지켜왔다.

정부의 의도는 정책을 있는 그대로 바로 알리고, 잘못된 보도는 정정과 반론으로 대응하며, 타당한 지적과 비판은 적극 수용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보도를 방치하면 혼란을 야기하는 등 부작용이 불가피해 정부의 당연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법적 대응 남발하면 오히려 평가 나빠져
최근 일부 언론은 정부의 이 같은 정책기사 점검시스템을 통한 부처 업무평가를 두고 ‘법적 대응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정부 부처는 정정 또는 반론 보도를 별도로 받아내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언론의 오보에 대응하는 정부의 기준에 따르면 이는 완전히 사실과 다른 보도내용이다. 정부는 2007년 정책홍보평가에서 부처의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적절성을 평가할 때 ‘법적 대응(언론중재위 신청이나 소송제기)에 대한 정정·반론 보도 등 피해구제 건수’에 가중치를 두도록 수정했다.

언론사에 오보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 정정이 된 경우와 언론중재위나 법원을 오가며 어렵게 정부 입장을 밝힌 사례를 같이 평가한다면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정정·반론보도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대응하지 않은 경우보다 낮은 평가를 받도록 되어있어 법적 대응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보완하고 있다. 즉 정정·반론 보도에 따라 얻은 수치를 대응에 나선 건수로 나누어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정당성 없는 대응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점수가 낮아지는 것이다.

또 정부 부처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에서 정책홍보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며, 언론에 대한 대응은 정책홍보 평가의 10%에 그치는 수준이다. 결국 전체 평가에서 언론 대응의 비중은 1.5%만을 차지하며 여기에 부처별 편차의 크기를 감안하면 미미한 정도다. 지난해 법적 대응을 가장 열심히 한 부서는 10점 만점에 8.29점을 받았다. 이 점수 때문에 법적 대응을 남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언론사에 오보 사실을 직접 알리는 방법을 통하든 법적 대응을 거치든 정정·반론 보도가 나오는 것은 결국 언론의 오보 탓이다. 언론이 잘못된 내용의 기사를 종종 내놓기 때문이다.


건전 비판 적극 수용 … 1856건 개선
정부는 200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언론의 잘못된 기사에 대해 모두 572건의 법적 대응을 했다. 이 중 정정·반론 보도나 기고, 기사 반영 등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은 피해구제율이 82.9%에 이른다. 결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한 보도 10건 중 8건 이상이 잘못된 보도였다는 말이다. 정부 대응이 언론 ‘발목잡기’ 가 아니라 합리적임을 보여준다.

정부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비판은 언제나 수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정책홍보평가에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여 정책 및 제도개선에 반영하는 노력을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점수도 오보 대응과 동일하다.

실제로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정부가 수용한 경우는 언론에 대한 직접·법적 대응사례보다 많다. 200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체 수용건수는 1856건으로 전체 대응건수 1352건의 1.37배에 이른다.

실제 사례를 보자. 올해 2월 한 신문이 “신용카드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이지만 국민이 내는 30여종의 세금 중 신용카드로 납부가 가능한 세금은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지방세 10여종뿐”이라며 “정부가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해 납세자의 선택권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8월 22일 발표한 ‘2007년 세제개편안’에서 200만원 이하 금액이라면 소득세, 부가가치세, 종합부동산세 등 국세를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이처럼 건전한 비판 보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책에 반영했다. 정부가 법률 제·개정, 시행령 등 제·개정, 기타 제도개선, 행정조치 등을 통해 수용한 언론 기사는 2004년  251건, 2005년 560건, 2006년 613건 등으로 계속 늘었다. 올해 만해도 8월까지 432건을 수용했다. 수용과 대응의 비율도 1.03에서 1.29, 1.42, 1,79로 꾸준히 높아졌다.
수용이 대응을 크게 앞지른 것만 보아도 정부의 정책기사 점검시스템이 합리적인 평가 체계임을 알 수 있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자기 반성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공자가 군자의 도를 그렇듯 강조했건만 중국이나 조선의 사대부가 스스로 자기개선을 해 왔는가. 오히려 오만하게 군림, 민중을 수탈하며 수천년의 세월을 보냈다.
타율(他律), 즉 개선은 역풍을 받고야 시작된다. 이것은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처음 팸플릿형식의 종이조각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투쟁의 수단으로 쓰였다. 그 뒤 전제군주제에 항쟁하면서 신문과 잡지 등은 자유를 위한 시민의 깃발이자 횃불로 등장했다.
T.제퍼슨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이 낫다’고 한 것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언론의 1차적 기능은 정부에 대한 감시·견제기능이다. 권력을 무서워하고 정부의 입노릇이나 한다면 신문·방송의 존재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사회에서 공룡화한 언론을 누가 통제할 것이냐이다. 고전적 이론은 시장의 논리에 의해 허위와 진실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이다. 갖가지 정보나 논평이 뒤섞인 가운데 옥석이 가려질 수가 있다.
그러나 완벽을 기대할 수는 없다. 독자의 수준과 질에 따라 크게 달라질 테니까….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취재 선진화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측은 현재의 취재관행이 보다 세련돼 마구잡이 취재나 기자들의 담합 등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일부에서는 과거의 5공식 언론탄압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마구잡이 취재·담합은 사라져야
필자는 이 문제가 처음 거론돼 문제가 됐을 때 씩 웃고 말았다. ‘정부가 또 힘든 싸움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정부측을 공격하고 나섰다. 일선 기자들은 매우 분개하면서 투사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현행의 취재방식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자기 성찰을 하는 언론 매체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말한 대로 자기 반성이란 이렇듯 어려운 것이다.

얘기를 좁혀보자. 현재 일부 언론매체의 과도한 기득권 옹호태도 같은 것은 논외로 치고 취재 관행의 적절성 여부와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필자의 결론부터 말하면 출입처에서 마구 휘젓고 다니는 취재관행은 제한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알권리와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공무원은 공무수행이라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일단 공보관의 설명을 듣고 모자란 것은 담당자가 나오도록 요구하며 그래도 진실에의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기자는 수완껏 근무시간 이외에 담당자와의 접촉을 시도해야 마땅하다.

경제기획원에 출입하던 때가 생각난다. 어느날 오전 아웅산에서 순직한 김재익 기획관 사무실에 동료 서너명과 함께 들어갔다. 김재익 기획관은 커다란 종이 위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얼핏 보니 5개년 계획에 관한 청사진이었다. 

학자풍의 조용한 김씨는 기자들을 맞아 웃으며 청사진을 옆으로 치우고 비서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때 필자는 미안하기도 하고 취재를 이런 식으로 해서 되는지 의문이 생겼다. 더구나 서너명되는 기자들은 필요한 취재 이외에 제멋대로 떠들며 잡담을 해댔다. 그래도 김씨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고위 공무원과는 달리 기자들과 술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닌다는 얘기도 못들었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오면 웃으며 맞이했다. 언론에 밉보이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언론 기피·정보 숨기기 부작용 줄여야
사실 기자들에 잘못보이면 건방지다거나 무능·태만하다는 뒷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란 언론계 잠언이 공무원 사회에서도 유효하게 된다.
진실을 밝히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 전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계는 이 사실을 잊고 있다. 아무 때나 가고 아무 때나 전화해서 취재하면 되는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쉽게 취재에 응하지 않으면 협박조의 언사가 나오기도 일쑤인데 이것 역시 착각에서 연유한 나쁜 습벽이다.

우리는 외국 신문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unidentifie d)’ 고위 관리라는 표현을 자주 보게 된다. 그것은 기자가 브리핑을 통한 정보에 부족감을 느끼고 힘들게 취재해서 기사를 쓸 때 나오는 표현이다.

해당 공무원은 공식 채널을 통하지 않고 자기 의견이나 정보를 외부에 발설했으므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제 언론 자유가 법적으로나 관행으로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에서도 기자들이 출입처의 여러 사무실을 선약 없이 마구 드나드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구와 인터뷰할 때에는 공보관에 사전에 의뢰하는 게 관행이다.

이런 취재 방식은 언론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정부나 회사에서 공식채널을 무시하고 이사람 저사람 제멋대로 언론과 접촉해 말을 한다면 그 조직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 우리도 한가지 문제로 정부부처마다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고 있다. 이럴 때 국민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번의 언론대책을 보면서 필자는 정부 역시도 일하는 방식이 성급하다고 느꼈다. 우선 ‘선진화 방안’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
취재·홍보방식의 개선이나 합리화라고 했다면 언론과 정부가 함께 불합리한 것을 고친다는 의미로 들려 불필요한 마찰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행의 취재방식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통용됐던 것이다. 따라서 언론계는 자연스럽고 자명한 취재방식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현행 취재방식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튼 필자의 견해로는 정치권은 아니라해도 일반 행정부처에서의 취재 방식은 고쳐져야 한다. 공보관제도가 확충되는 것도 좋고 실무자와의 접촉에 공보관을 경유케 하는 것도 취재의 본질을 훼손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부작용 예방도 심각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당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로 흔히 말하는 ‘Government says’식의 후진적 양태가 생겨날 수 있다. 또한 일선 행정부서가 언론을 기피하고 과도하게 정보를 숨기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지적은 한번쯤 새겨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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