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입니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올 초 신년연설에서 밝힌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원칙이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정착은 참여정부 4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외교안보 목표였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한미동맹의 성공적 조정과 전략적 협의 강화 △국방개혁 가속화로 자주국방 기반 확대 △능동적 경제외교와 국제적 위상 제고 △국가 위기관리체계 본격 가동 등에 주력해왔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정상들과 수시로 만나 머리를 맞댔다. 이른바 정상 안보외교. 외교의 지평도 넓혔다. 노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비롯 남미, 오세아니아, 중앙아시아 등 지구촌 방방곡곡을 누비며 안보외교와 자원외교를 펼쳤다. 경제와 안보의 현실을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추가한 것이다.







전방위 외교노력 통한 대화해결 강조
북한의 핵동결 해제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태에서 출범해 지난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사태까지 발생… 2003년 2월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를 안고 출범했다. 그렇지만 동북아의 평화번영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병행 전략으로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는 평가다. 처음에는 성과 도출은 쉽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 문제이면서 국제적 성격을 지닌 이중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문제를 북·미간의 사안으로 여기며 남북대화의 의제화를 반대했다. 미국도 북핵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키면서 북한의 ‘고립화와 체제변화’에 몰입하는 듯했다. 북한과 미국은 상호불신에 의해 북핵 대두의 원인 공방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원인보다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의 창의적인 역할이 돋보였다. 참여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관련국과의 정상회담 때마다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북핵 해결 과정의 큰 원칙이 세워진 셈이다.

참여정부는 지난 4년 동안 북핵 해결 과정의 곡예에서 나름대로 창의적 역할을 해왔다. ‘북핵 해결의 평화적 원칙’ ‘중대제안’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북핵 불능화와 균등분담원칙’ 등 수많은 아젠다 선점이 창의적 역할을 잘 보여 준다. 이는 통일·외교·안보 분야 모든 관계자들이 밤잠 설친 노력의 결실이다. 참여정부의 외교성과는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을 한국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으로 만들며 더욱 빛을 발했다.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한 남북경협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개성공단의 경우 “잠재적 수익성이 높다”는 평가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동북아경제연구실 이영훈 과장은 “남북경협의 확대는 북한리스크를 완화하고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북경협 남한 경제에도 큰 이득
남북경협은 1999년 이후 크게 증가해 1998년 북한 전체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에서 2005년에는 26%로 확대됐다. 그 중 대북지원과 투자가 무역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은 “3대 남북경협사업인 개성공단·금강산관광·철도도로연결 사업이 본궤도로 진입한 것도 주요 성과”라고 자평했다.

참여정부는 역대정부가 추진해온 자주국방을 더욱 가속화했다. 한·미동맹과 관련해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받는 호혜적 관계’에 입각, 전시작통권 전환, 용산기지 등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한·미간 주요 현안을 대부분 해결한 것도 참여정부의 실적이다.

특히 국내외 논란  속에서도 결실을 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국방개혁은 백미다. 국방개혁 2020은 다양한 개혁방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핵심은 병력은 줄이고 첨단전력을 확보, 21세기 선진한국을 지켜낼 미래형 첨단정보과학군을 건설하는 것이다.










봄이 예년보다 한 달 정도 일찍 찾아온 3월의 첫 주, 미국 뉴욕에서 남북한과 미국이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반세기 동안 숙적이었던 북한과 미국은 관계개선과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최근 국제정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자회담 2·13 합의 이후 한반도의 외교안보 정세는 6·25 전쟁이후 가장 큰 변혁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국제사회는 경악했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정부는 장고와 장고 끝에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계속한다는 포용정책을 선택했다. 대북 강경정책도 중요하지만 더 큰 목적은 한반도 평화다. 따라서 제재 일변도는 곤란하다는 게 정부 시각이었다. 북한에 대해 압박과 설득의 두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확고한 핵우산 공약으로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한편 강력한 북핵 억제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또한 공조체제 구축으로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북한에는 포용정책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국익에 손상되는 외교는 없었다. 실제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소외되면서도 경수로제공 비용의 70%를 부담해야했던 한국이 2·13 합의에서는 미국·중국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또 비용균등분담 원칙도 이끌어 냈다. 자칫 국내에서 ‘덤터기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한국은 협상결렬까지 무릅쓰고 대북지원의 균등분담원칙을 관철시킨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외국 지원군대에 작전지휘권을 넘긴 첫 번째 사례는? 
1. 나당연합 2. 몽고지배 3. 임진왜란 4. 한국전쟁

정답. 2번 임진왜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에 다급했던 선조가 작전권을 명나라에 양도한 바 있다. 군사지휘권을 쥔 명군은 조선군을 지휘했고, 당사국인 조선을 제외하고 왜군과 직접 전쟁중단의 교섭을 벌였다. 그로부터 350여 년 뒤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정부는 유엔연합군에 작전지휘권을 넘겼다. 이후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은 미군의 주도로 이뤄졌다.

참여정부 들어 우리 국방의 역사는 다시  쓰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8·15 경축사에서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우리 군은) 아직 독자적인 작전 수행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다”고 밝히면서 전시 작전통제권권(이하 전작권) 전환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작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전환 가닥이 잡혔다. 한미 양국은 이어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2009년 10월 15일∼2012년 3월 15일’ 사이에 전작권을 이양한다는 데 합의했다. 드디어 올해 2월 24일(한국시각) 김장수 국방장관은 로버트 게이츠(Robert M. Gates) 미국 국방장관과 워싱턴 DC에서 한·미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2012년 4월 17일 한미연합군 사령부를 해체하고, 동시에 미군과 한국군 간 새로운 지원·주도 지휘관계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군 꾸준한 성장… 62년 만에 숙원 풀어
이 같은 합의에 따라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14일 유엔군 사령관에 이양된 뒤, 1978년 한·미 연합사 창설과 함께 다시 연합군 사령관에게 넘어갔던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62년 만에 다시 우리 군으로 넘어오게 됐다. 일부에서는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한국군의 전력강화와 평시 작통권 전환, 그리고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중인 이라크 자이툰부대 활약상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중론이다. 버웰 벨 주한 미군 사령관은 3월 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 증언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군은 전작권을 완벽하게 유지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작권 전환만으로 자주국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1세기 선진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20’에 근거해 수립한 ‘2007~2011 국방증기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경우 2012년경에는 전군 작전지휘 능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올해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정식으로 통과한 ‘국방개혁기본법안’에 따른 ‘국방개혁 2020’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첫 해가 된다. 국방부는 올해 미래형 첨단정보과학군 건설에 성큼 다가설 수 있는 결정적 무기들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3월 2일 평양엔 봄비가 내렸다.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의 성과인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것을 축하하는 것일까.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씨 뿌리는 봄’에 들어갔다.

지난 2월 27일부터 4일간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북핵과 경제협력, 인도주의 사업재개 등 남북관계 발전과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평가다. 이번 회담은 특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2·13 합의’ 이후 처음 열린 남북 간 고위급회담이란 점에서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선순환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후속조치들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의 정치 지형 변화는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내부에서도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이 성공을 거둔 데에는 그동안 북의 미사일발사와 핵실험 등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대북정책에 있어 꾸준히 일관성과 진정성을 유지해온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기여한 바가 크다. 참여정부는 북핵문제라는 위기상황 속에서 출범했으나 지난 4년간 민간부문 위주로 남북교류협력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연간 남북 왕래인원 10만 명을 돌파하고 2005년에는 남북교역 10억 달러 시대를 연 것이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가 1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 1월 개성공단 제품생산액이 1억 달러(누계)를 넘어섰다. 금강산 관광객은 지난 2005년 6월을 기준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지난 4년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인원만 1만 명에 달한다.


경제협력 크게 발전… 지난해 교역 13억5000만 달러
남북교역은 지난해에만 13억5000만 달러를 기록, 문민정부 5년간의 총 교역액 12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6년 말 현재 참여정부 이후의 남북교역은 모두 38억5000만 달러를 기록해 국민의 정부가 5년간 기록한 20억 달러도 훌쩍 돌파한 상태다. 남북교역이 큰 폭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개성공단이 큰 역할을 했다. 개성공단 관련 교역규모는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해 2004년 4200만 달러에 불과하던 교역액이 지난해 2억9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21개 공장이 가동 중인 개성공단은 이미 우리 측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된 상생 협력 사업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1단계(330만㎡) 개발이 완료되고 완전 가동되면 모두 200~3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연간 20억 달러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1월 말 현재 1만1342명인 북측 근로자도 7만~1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미국의 대북정책을 총괄한 ‘페리 보고서’를 만들었던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겸 대북정책조정관은 최근 개성공단을 방문해 “개성공단 사업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에 윈-윈이 되는 사업이다.









남북 왕래인원 급증… 2006년 10만 명 시대 개막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 부문도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금강산관광객을 제외한 남북 왕래인원은 10만1708명. 참여정부 4년간의 남북 왕래인원은 23만2886명으로 국민의 정부 인적왕래 규모(3만9583명)의 6배에 달했다. 남북 왕래인원은 특히 개성공단 개발이 본격화된 2005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연도별 총 왕래인원 중 개성공단 방문인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32.8%에서 지난해 60%로 높아졌다. 남북 간의 선박왕래와 물동량도 2005년 8월 1일 남북해운합의서 발효 이후 급증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남북 간 선박왕래 횟수는 1만7044회. 국민의 정부 7902회의 2.2배다. 이 같은 배경에는 지난 2005년부터 북한산 모래 반입 증가로 선박왕래와 해운 물동량이 크게 증가한 대목도 빠트릴 수 없다. 지난해 북측으로부터의 모래 반입량은 1437만 톤으로 수도권 모래 수요량의 25%를 차지했다. 또 남북해운합의서 발효로 북한 민간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가능해지면서 지난해 말까지 우리 해역을 운항한 북측 선박은 173(제주해협 통과는 164회)회에 달했다.


참여정부 4년간 이산가족 상봉 1만 명 돌파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도 지난 4년간의 남북관계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현황을 살펴보면 국민의 정부 때 5360명이던 것이 참여정부 들어 1만987명으로 늘어났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1년과 2004년을 제외하곤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특히 화상상봉 도입 등 상봉방식의 다양화와 매회당 상봉자 수의 증가로 이산가족 교류가 확대·발전하고 있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돕기 위한 식량과 비료 등의 지원규모도 크게 늘어나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 완화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식량차관을 포함한 대북지원은 국민의 정부 5년간 8557억 원에서 참여정부 4년간 1조4246억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은 유보상태이나 민간차원의 지원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