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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선진국은 왜 박물관에 기부할까?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 1백70억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5월 11일 해외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으로는 사상 최고 기부금을 받은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은 이 기금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때 세계 컴퓨터업계의 황제로 불렸던 빌 게이츠. 그는 이제 ‘자선사업의 황제’라고 불릴 만하다. 지난해 6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직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는 1억 달러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멜린다는 빌 게이츠의 아내 이름)의 대표로 취임해 컴퓨터 사업가에서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세계 최대 규모 자선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 재단)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5대 비정부기구(NGO)’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은퇴 전부터 “내가 가진 재산의 99퍼센트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는 이미 2000년에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가로서의 변신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현재 게이츠 재단은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난치병 치료약 연구와 아프리카 기아 돕기, 제3세계 백신 구호사업, 미국 공립도서관 지원사업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빌 게이츠의 행보는 석유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뒤 말년에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시카고대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자선사업을 벌였던 20세기 초의 거부 존 록펠러를 연상시킨다.

서구사회에서 기업가들의 거액 기부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게이츠 재단에 무려 3백10억 달러를 기부해 개인의 기부 금액으로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나이를 초월한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또 히피 사업가로 유명한 영국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재산 80억 달러의 절반을 지구 온난화 방지사업에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이 같은 기부 행렬은 주로 제3세계의 기아 돕기나 의료시설, 공공서비스 확충 등에 집중되고 있지만, 이외의 분야에도 기부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거액을 기부해서 새로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기부’도 일반적인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예술 분야에 기부하는 금액에 대해 세금이 감면되기 때문에 더더욱 문화기부가 활발하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 내셔널갤러리 등을 관람하다 보면 작품 밑에 ‘○○기업이 기증한 작품입니다 ’ 같은 설명이 달려 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예를 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런던 테이트 모던에 소장되어 있는 독일 사진가들의 사진작품에는 대부분 ‘도이치은행 기부’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도이치은행으로서는 작품 기부로 세금을 감면받고, ‘미술에 기여하는 세련된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을 뿐 아니라, 자국의 유망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1석3조인 셈이다. 미국 대형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중80퍼센트 정도는 기부금으로 사들인 것이거나 기증 작품이라는 통계도 있다.





아예 자신의 컬렉션 전체를 국가에 기부하는 예도 있다. 올해 개관 2백50주년을 맞은 영국 대영박물관은 왕실 주치의였던 한스 슬론 경의 수집품 7만여 점을 기부받아 문을 열었으며,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영국 전역에 4개의 미술관이 있는 테이트갤러리도 헨리 테이트 경이 자신의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설립된 것이다.

현재 연 5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총 운영비의 60퍼센트를 기업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문화기부 풍토가 자리 잡은 영국은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 등 대부분의 미술관이 무료입장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 영국 프리미어리그 애스턴 빌라의 구단주 랜디 러너는 그 자신이 미국인임에도 런던의 국립초상화미술관에 5백만 파운드(약 1백억원)를 선뜻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영국 역대 위인 1천여 명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있는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전시실 1층에 러너의 이름을 붙여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미술관 측은 이 기부금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는 한편, 작품 구매 예산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초상화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일본 국민기업으로 일컬어지는 산토리는 일찍이 문화기부를 실천해 1961년 도쿄에 일본 전통미술 전문 박물관인 산토리미술관을 열었으며, 1986년에는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산토리홀을 개관했다. 산토리홀은 일본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공연장으로 손꼽힌다.

문화기부의 의미는 사회 전체,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와 젊은층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기업으로선 문화기부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적지 않다. 물론 개인의 소액 기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료입장인 영국의 박물관, 미술관 입구에는 ‘미술관 운영에 당신의 힘을 보태주십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기부금 박스가 놓여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10파운드(2만원) 지폐들이 적잖게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부 덕에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또 무료입장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개인의 소액 기부가 잇따르는 것이다. 이처럼 기부는 또 다른 기부를 낳는다.

우리나라에도 박물관에 문화재를 기증한 사람이 있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68) 씨가 그 주인공이다. 송 씨는 2003년 국보 제246호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국보 4점과 보물 20여 점 등 1백1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유물들은 송 씨가 베스트셀러 참고서로 번 돈으로 구입한 수준 높은 컬렉션이다. 박물관 측은 감사의 뜻으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송 씨는 기증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나서기를 꺼렸다는 후문이다.

지난 3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그동안 유물, 후원금, 도서 등을 쾌척한 기증자들을 기리기 위한 ‘명예의 전당’ 개관식이 열렸다. 송 씨는 명예의 전당에 소개된 기증자 2백42명 중 두 번째로 많은 유물을 기증한 것으로 기록됐다.한국 현대사박물관 격인 ‘국립대한민국관’이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들어선다. 2013년 개관을 목표로 한 국립대한민국관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줄 공간이 될 전망이다.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긍지를 안겨줄 박물관이기에, 이 공간에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전시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단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네거리에 이 박물관이 들어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경복궁 앞이라는 상징성도 있거니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광화문 네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의 경우처럼, 기업이나 재단의 기부를 받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입장료를 무료로 해서 모든 국민에게 이 공간을 개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글·전원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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