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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516호

카이스트에 5백억 기부한 류근철 한의학박사


“좋은 날 오셨네요.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어제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께서 생일 파티를 미리 열어주셨어요. 총장께서는 제 나이를 38세로 만들어주셨지요. 실제론 83세지만 열정은 젊은이 못잖으니 38세로 살라고요. 하하.”

5월 7일 대전 유성구의 카이스트(KAIST)를 찾았을 때 한의학자 류근철 박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류 박사를 만난 곳은 카이스트 교내 인문사회과학부동 2층에 자리한 ‘닥터 류’s 헬스클리닉’. 카이스트 특훈(特勳) 초빙교수이자 명예박사인 그는 카이스트 학생과 교직원들의 건강을 직접 보살피기 위해 지난 4월 13일 이 클리닉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공부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는 학생들이 언제든 들러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죠. 지금은 하루에 50명 가량 오는데 최대 1백50명까지 무료 진료가 가능할 것 같아요.”




자비를 들여 꾸민 헬스클리닉에는 한방 진료시설은 물론 류 박사가 개발한 의료기기인 ‘헬스부스터’ 8대가 설치돼 있다. 류 박사는 헬스부스터에 대해 “러시아 모스크바대에 있는 2대를 포함해 세계에 10대뿐인 기기로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관절염 치료효과가 탁월하다”며 “세계시장에 내놓기 위해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성능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산업디자인과에서는 상품성 있는 디자인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류 박사는 헬스클리닉 내 모든 설비와 기기 소유권, 그리고 헬스 부스터 상표권까지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류 박사의 카이스트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류 박사는 지난해 8월 평생 모은 부동산과 골동품 등 5백78억원 상당의 사재를 카이스트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이는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다액이다. 지금도 시장에서 파는 1만원짜리 바지를 고집할 만큼 평생을 ‘자린고비’처럼 아끼며 살아온 그가 선뜻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은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부모님이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러 나갔다가 아버지는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분열증을 앓으셨어요. 그 때문에 형편이 많이 어려웠는데 어머니는 거지가 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당신 끼니를 내주셨어요. 정신분열로 고생하는 이웃들에게도 당신이 드실 끼니를 일주일에 한 번씩 갖다 주셨고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제 삶에 자극이 됐죠.”

류 박사는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후 10년 동안 대상기관을 물색하는 데 공을 들였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도 보람되지만 좀 더 뜻깊은 일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과학입국에 일조하는 것을 평생 신조로 여겨온 그는 카이스트를 만나 꿈을 이뤘다.





“모교인 경희대에는 죄송하지만 저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일반 대학과 달리 카이스트는 국가가 운영하는데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과학도를 키워내는 곳이잖아요. 저는 기부를 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위해 ‘투자’한 거예요. 훌륭한 과학자 1명이 1백만명, 아니 1천만명도 먹여 살릴 수 있어요. 바로 그런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류 박사의 기부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고맙게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연세대 교수인 큰아들은 “아버지는 10대(代)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분”이라며 그의 결정을 적극 지지했단다. 2남 3녀를 둔 류 박사는 “내심 서운하게 생각하는 자식도 있겠지만,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헬스클리닉 바로 옆방에는 류 박사가 평생 수집한 탱화와 옥새, 불상, 벼루, 향로 등 골동품  5백여 점이 전시돼 있다. 카이스트에 기증한 이 골동품들은 그가 “연구가 잘 되지 않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모아둔 것들”이라고 한다. 평상시엔 닫혀 있지만 학생들이나 카이스트를 찾은 손님이 구경을 원할 때면 언제든 열리는 골동품 전시실은 가히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또한 헬스클리닉과 같은 날 문을 연 ‘카이스트 인재·우주인 건강센터’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 받는 충격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류 박사는 “오는 10월 이곳으로 세계 각국의 우주인 수백 명이 찾아와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이미 협의가 끝난 상태예요. 당초 방문 일정은 10월 12일부터 16일까지지만 치료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일주일 이상 체류할 수 있게 조치할 계획이에요. 우주인들은 틀림없이 우리 한의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곳 건강센터가 세계적인 우주인 전문치료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류 박사의 기부금을 향후 행정중심복합도시에 건립할 예정인 세종캠퍼스 부지 매입과 캠퍼스 조성사업에 활용키로 했다. 아울러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 대학으로 만들고자 하는 류 박사의 뜻을 감안해 세종캠퍼스를 ‘카이스트 류근철캠퍼스’라 이름 붙이고 동상과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류 박사의 활약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류 박사는 앞으로 ‘카이스트 사랑 세계화 추진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카이스트발전재단 명예이사장을 맡아 카이스트 발전기금 조성과 세계화 사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그는 “현금으로 하는 제2의 도네이션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영양군에 카이스트 파크가 조성되는데 그곳엔 카이스트 수련원과 유공자 동산이 들어섭니다. 유공자 동산엔 카이스트에 25억원 이상 기부한 공로자만이 묻힐 수 있죠. 제2의 기부액을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많을 겁니다.”

류 박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나라 기부문화가 더욱 발전하고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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