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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한참 올라간 언덕배기의 작은 공터. 고층 아파트촌을 마주한 이곳에는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놓인 집 앞에서 긴 생머리 소녀와 아주머니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행여 길을 못 찾을까 싶어 현지와 같이 나와 있었어요. 제가 몸이 불편해서 멀리는 못 나가고….”

초등학생 현지(11)와 어머니 안민자 씨는 낯선 취재진을 한눈에 알아봤다. 안 씨가 “20년을 여기서 살아 동네사람과 이방인을 쉽게 구별한다”며 정겹게 웃자 엄마 뒤에 숨어 있던 현지도 고개를 내밀며 해맑게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다는 표정이다.

언뜻 보기엔 불편함과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안 씨는 중풍 후유증을, 현지는 심장장애를 오래 전부터 앓고 있다. 안 씨는 현지와 언니 현영(18)을 낳고 얼마 후 중풍에 퇴행성관절염까지 겹쳐 한동안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현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날이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어 두 딸을 불편한 몸으로 혼자 키워야 했던 안 씨는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고 병원비도 지원받았지만 살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 현지네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희 집으로 기아대책에서 몇 분이 찾아오셨어요. 그때까지는 그런 단체가 있는지도 몰라 처음에는 경계했어요. 현지처럼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후원자와 1 대 1로 결연해 지속적인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들은 주민센터를 통해 현지네 사정을 듣고 도움을 주러 온 거였다. 아이들에게 아빠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안 씨는 기아대책의 제안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기아대책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9만원 상당의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것 외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겨울엔 연탄과 김장김치를 가져다주고, 여름방학엔 아이들이 급식을 못하니까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보내주시더라고요. 또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엔 아이들 선물도 보내주고 그래요.”

안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라 정부 지원을 받긴 하지만 너무 쪼들리고 힘들어서 가만 있어도 눈물이 났다”며 “기본 생활과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는 정부에도 감사하지만 기아대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웃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네 가족은 어려운 살림임에도 다들 구김살이 없었다. 비결이 뭔가 했더니 어머니 안 씨의 가르침인 듯했다. 원래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인 안 씨는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어디서든 당당하게 행동하고 자신감을 가져라. 현실을 비관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고 이른단다. 그래서인지 큰딸 현영이나 작은딸 현지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고’를 친 적이 없다고 한다.    

“둘 다 제 말을 잘 들어요. 한 번도 제 뜻을 거역하거나 대든 적이 없어요. 특히 큰딸은 사춘기일 텐데도 집이랑 학교밖에 몰라요. 건전하게 남자친구 사귀어도 괜찮다고 해도 관심 없대요. 방세 15만원 내고 매일 아침 학교 갈 차비 주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서 사실 참고서도 제대로 사준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불평 한 번 안 하고 밝고 반듯하게 자라주는 두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할 뿐이에요.”

다행히 안 씨는 이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현지는 전보다는 병세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뜀박질을 하기엔 무리다.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는 현지는 심장박동기를 달아야 하지만 지금은 어려서 위험하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어머니 옆에서 맑은 눈망울을 굴리는 현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가수요” 한다. 그 말을 들은 안 씨도 “우리 애가 노래를 잘해요” 하고 거든다. 큰딸 현영은 “우리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안 씨의 말을 듣고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현지네는 머잖아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 지역이 곧 개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에 금호동 언저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데, 지금처럼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방을 구하긴 힘든 처지다. 그래도 “두 딸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는 안 씨와 “멋진 가수가 돼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현지를 보니 앞으로 닥칠 시련도 사랑과 웃음으로 잘 이겨낼 것만 같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자식 아픈 것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아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이렇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딸을 둔 오전숙 씨도 같은 심정이다. 오 씨의 딸 최현정(16) 양은 경기 화성시 동탄에 있는 예당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현정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병한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완치했으나 지난 3월 초 6년 만에 병이 재발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사흘째였다.

“현정이에게 처음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 발병했을 때 완치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어요. 이후 4년 동안은 병원을 오가며 외래진료를 받았어요. 4개월에 한 번씩 몸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했죠. 재발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지금껏 잘 지내왔는데 지난 3월 초에 병원에 갔더니 재발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어릴 땐 항암치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했지만 재발하면 무조건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거든요.”

병 재발 확인 후 서울대병원 소아암 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현정 양은 5월 초부터 백혈구 수치가 골수이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돼 통원을 하면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재발 초기에는 백혈구 수치가 제로에 가까워 골수이식이 불가능했는데 현정 양이 정신력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낸 것이다. 

“처음 제가 재발 사실을 알려줬더니 현정이가 저한테 ‘나 죽는 거야?’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다, 네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했더니 ‘나, 잘할 수 있어. 걱정 마’ 하고 도리어 저를 위로하더라고요. 몸도 약한 애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부모가 아파할까봐 힘들다고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정말 백혈구 수치가 다시 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죠.”

하지만 골수이식은 수술비도 만만찮을 뿐더러 딱 맞는 골수를 찾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현정 양의 부모와 오빠는 최근 골수이식 적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받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됐다.

“현정이의 병은 재발한 거라서 골수를 빨리 찾아 이식해줘야 해요. 외국에도 알려보려고 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데다 오래 걸려서 국내에서 알아보는 중이에요. 기증 의사가 있는 사람이 3명 정도로 추려졌는데 그중 한 명은 이미 맞지 않는 걸로 결론 나고, 다른 두 명도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가 봐요. 일단 병원에서는 골수를 못 찾으면 급한 대로 제대혈로 치료해보자고 했어요.”

오 씨는 현정 양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 마련한 집을 내놨다. 그 집을 사면서 융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팔더라도 남는 돈이 거의 없지만 우선 은행 대출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골수이식을 상담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드는 비용에 눈앞이 캄캄했다”는 오 씨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남편이 오랜 군 생활을 접고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LG에 취직했어요. 회사가 수원이고, 아들도 수원대에 붙어서 정말 잘됐다 싶었어요. 그래서 올해 2월에 동탄으로 이사 오면서 이제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현정이 수술비를 주민센터를 통해 지원받고 싶어도 남편 연봉이 걸림돌이네요. 가진 건 빚밖에 없는데 이제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는 남편의 연봉이 수술비 지원 대상 기준을 넘어서 안 된다니 저희같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막막해하던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것은 뜻밖에도 현정 양의 친구들이었다. 이제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현정 양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모금운동을 벌인 것이다. 현정 양 돕기에는 예당고 학생회와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도 함께했다. 학생회는 아침 등교시간에 피켓을 들고 현정 양 돕기에 참여를 호소했으며, RCY 단원들은 대한적십자사에 연락해 헌혈운동과 헌혈증 기증운동을 펼치는 우정을 발휘했다.




예당고 전교생과 교직원들은 성금 3백60만9천원과 52장의 헌혈증을 모아 현정 양의 백혈병 치료에 써달라며 오 씨에게 전달했다. 헌혈증 덕분에 현정 양은 수혈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걸 받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현정이의 백혈구 수치가 지나치게 낮아서 수혈을 많이 받아야 했거든요. 현정이가 입원했을 땐 같은 반 친구들이 병문안을 온 적이 있는데 다들 엉엉 울더군요. 저도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학교와 친구들은 저희에게 경제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줬어요.”

현정 양은 커서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두었다. 오 씨도 현정 양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건강해지길 고대하고 있다.



남을 돕는 일은 이처럼 크고 작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메주와 첼리스트’로 잘 알려진 도완녀 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후원하는 일에 앞장섰던 경험 덕분에 가장 힘든 시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강원 정선군에 있던 자신의 공장이 화재로 몽땅 타버렸을 때 전국 각지에서 성금과 식료품, 의류, 이불 등을 보내준 것.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도 씨의 말이 유독 여운을 남긴다. “베푸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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