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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소설가 권지예가 쓴 가족 에세이



나는 소설가다. 나는 ‘여성’ 소설가다. 나는 ‘아줌마’소설가다. 나는 ‘엄마’소설가다.

내 직업은 소설가지만, 나는 한시도 내 앞에 붙은 이러한 수식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소설가 이전에 자연인이자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쓸 때는 내 정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 몸은 나를 필요로 하는 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인간들의 관계, 즉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자식을 기르는 어미로서 느끼는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은 소설보다 더 긴장감이 있다. 나는 가족이란 늘 지겹도록 함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수저통 속의 수저처럼. 게다가 아이들은 베란다의 화분처럼 물만 잘 주면 클 줄 알았다. 딸인 첫애가 제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나 칭찬하는 모범생으로 자랐듯이 아들 또한 그대로 자라나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가 아무 조짐도 없이 처음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학원에 갔다가 돌아와야 할 아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니 버스를 타고 지금 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오지 않아서 게임방에 들렀다 오나보다 했다. 언제부턴가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다. 말이 프로게이머지 사실 공부하기 싫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아들이 어릴 땐 과학영재인 줄 알았다. 기계나 컴퓨터에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또 잘 다뤘다. 하지만 아이는 조직이나 권위에는 생래적인 거부감이 있어 학교생활을 싫어했다. 혼자서 뭔가를 조립하거나 게임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성적은 더욱 떨어지고 말수도 줄고 비밀이 많아졌다. 나는 결국 아이의 꿈을 받아들이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밀어주기로 약속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겠다는 아이의 휴대전화는 자정 넘어서부터는 아예 꺼져 있었다. 세상이 흉흉한 탓에 끔찍한 상상이 연달아 펼쳐졌다. 작가인 나의 상상력 과잉은 가히 병적이었다. 고통스런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내 머리를 계속 맴도는 것은,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하던 말이었다. “난 엄마가 보통 엄마였음 좋겠어.” 한때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두고 지방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아이를 남에게 맡긴 적도 있었으며, 바쁘게 소설 쓰느라 며칠씩 작업실에 틀어박혀 지내기도 했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전화해서 부랴부랴 가보면, 아이는 하루 종일 나가지도 않고 홀로 소파에 누워 만화방송을 보거나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밤, 생각해보니 아이는 내게 외롭다는 말을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걸 난 미처 못 알아들었던 것이거나 외면해온 것이다. 내가 이 밤, 이렇게 아이를 기다리듯 내 아이도 이렇게 간절하게 엄마를 기다려왔겠구나…. 아이는 엄마가 늘 넉넉하게 품을 벌리고 자기를 기다려주는 집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보통 엄마처럼…. 난 소설가로 이름을 얻고 살아왔지만, 보통도 안 되는 엄마였던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SET_IMAGE]1,original,right[/SET_IMAGE]아침이 되자 아이에게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가끔 연락할게요….” 냉정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버텼는데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이가 집을 나갔는데, 소설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인가, 참담한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를 찾기 위해 학교와 친구들, 아이의 미니홈피를 추적하면서 나는 아이가 내가 알던 내 아들과 너무 낯설다는 충격으로 또 한 번 무너졌다. 저녁때부터 아이의 사진을 확대 복사해서 인근 PC방과 찜질방을 뒤지기로 했다. ‘누가 이 소년을 모르시나요’ 사진을 들이밀며 눈물을 꾹 삼켰다.

아이를 발견한 것은 다섯 번째 PC방에서였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아이를 보자 멍해진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마음을 연 대화를 시도했다. 마음 한구석이 뚫렸던 아이를 이해하고 뜨겁게 안아주자 아이 또한 여린 제 속을 어쩌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아이는 집을 나가 친구 집에서 잤다고 했다. 친구는 혼자 산다고 했다. 가난한 친구의 어머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숙식 제공을 받는 식당에서 일을 하느라 집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들른다고 했다. 그 친구아이의 외로움과 고단함도 가슴 아팠다. 그 애도 밤마다 엄마를 기다리며 잠들겠구나.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몸을 쉴 따뜻한 집이 있고, 이 세상에서 내 몸만큼 너를 사랑하는 엄마와 가족이 있어. 우리는 너를 끝까지 지켜줄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우린 가족이고 운명공동체거든.”

그러나 체질적으로 조직을 싫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틀에 박힌 학교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세상과 소통하며 저를 실험해보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학교생활과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도 나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믿고 기다리며 지켜주려고 한다. 아이도 이제는 그것을 안다. 어차피 겪어야 할 방황이라면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대범하게 생각해본다. 아무리 세상을 방황해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한, 아이는 비록 방황은 하더라도 방탕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자식을 가진 모든 가정이, 가족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지지 않을까. 어려운 경제 탓에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아이들을 포기하면 사춘기 아이들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잃는다. 그리고 사회는 꿈나무들을 잃는다. 우리는 결국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바람과 햇볕의 동화가 생각난다. 바람이 억지로 옷을 벗기려면 더욱 꽁꽁 여미게 되지만 햇볕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다. 스스로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은 따스한 집이다. 아니, 그 안에 깃든 햇볕 같은 사랑이다. 집이란 가족들의 온기가 흐르는 곳이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피를 나눈 가족이란 혈연의 뜨거움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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