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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BigBang - ‘五人五色’ 저마다 소설 같은 인생


사람들이 연예인에 대해 흔히 갖는 선입견이 몇 가지 있다. 학식은 부족하지만 얼굴이 조금 잘난 덕에 연예인이 됐고, 힘 있는 기획사를 만나 금방 스타가 되며, 높은 지명도로 쉽게 돈을 벌고, 그 덕분에 사회적 지위도 얻는다는 것 등이다. 특히 그 연예인이 아이돌 그룹이라면 이런 선입견은 더욱 강해진다.

빅뱅(BigBang) 역시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의 경제적 파급력은 메가톤급이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빅뱅이 유발한 매출은 4백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보다 많아 그야말로 움직이는 기업이다. 하지만 10대 팬들의 뜨거운 열광 속에 아무런 걱정 없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스물 안팎의 젊은이들이 큰돈을 번다고 생각한다면, 빅뱅과 비슷한 또래 청년들은 괴리감과 상실감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빅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질투를 느낄 ‘스타’라기보다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 ‘친구’들이다. 이들은 외형만 봐도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멋있게 보이지만, 2006년 데뷔 당시에는 전혀 아이돌 그룹 같지 않은 수더분한 외모에 수줍음까지 많았다. 흔히 아이돌 그룹이라면 1백80센티미터 정도의 큰 키에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꽃미남을 연상하기 쉽지만, 빅뱅 멤버들은 너무도 ‘평범하게’ 생겼다. 키도 래퍼인 탑(T.O.P)을 제외하면 1백70센티미터 안팎이다. 빅뱅은 이렇게 기존 아이돌 그룹의 기본 공식을 깨뜨렸지만, 연매출 4백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제효과를 일으키는 ‘가장 성공한 아이돌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다.

빅뱅의 성공요인으로는 친근함이 첫손에 꼽힌다. 빅뱅은 30대 이상 기성세대들도 열광하는 ‘국민 아이돌’이다. 2006년 초여름, 빅뱅의 데뷔를 앞두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그룹을 만들겠다”고 말했던 빅뱅 기획자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의 말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전까지 아이돌 그룹은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에게만 환호를 받는 ‘딴 세상 그룹’ ‘그들만의 그룹’이었지만, 빅뱅은 친근한 외모에 부모세대들도 좋아하는 노래로 어필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빅뱅의 다섯 멤버는 ‘노력 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준 친구들이다. 도심을 배회하다 캐스팅된 멤버는 아무도 없고, 직접 기획사 문을 두드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쳐 멤버가 됐다. 어린 나이부터 꿈이 있었고 목적의식도 뚜렷했으며, 어느 멤버 하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뒤지지 않았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학업과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며 여느 학생들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멤버 스스로가 곡을 만들고 창의적인 춤과 랩을 한다는 것도 기존 아이돌 그룹과 가장 큰 차별화를 보였던 ‘프리미엄’이다. 빅뱅은 이렇게, 일반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갖는 선입견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빅뱅의 노래를 만드는 지드래곤이나 태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무려 6년의 연습생 기간을 견뎌냈다. 고독한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지망생들도 많지만, 두 사람은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어린 나이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외로움을 견뎠다.

지드래곤은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에 ‘꼬마 룰라’로 이미 데뷔했지만, 연습생 신분에 실망하지 않았다. 가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악으로 6년을 견뎌냈다. 빅뱅 멤버가 돼서도 그는 노래를 만들고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태양도 어려서부터 뚜렷한 목표와 도전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정을 더 일찍 불사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오디션을 통해 지누션의 뮤직비디오에 발탁됐던 태양은 그 어린 나이에도 마치 자신의 솔로무대를 준비하듯 오디션을 준비했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션의 아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칭찬 몇 마디에 양현석에게 “가수 시켜 달라”고 당돌하게 말했고,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양현석의 말에 한 달을 기다리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 “왜 연락을 주지 않느냐”고 따져 결국 연습생이 됐다. 태양은 당시를 회상하며 “열정과 집념만 가진다면, 못할 게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드래곤과 태양은 또래 친구들보다 더 이른 나이에 인생 목표를 정했고,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 이들은 랩과 안무를 익혔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릴 때 이들은 습기 가득한 지하 연습실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더위와 싸우며 춤을 배웠다. 친구들이 시험을 마치고 기분 좋은 환호를 외칠 때 이들은 또 다른 시험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연습실로 향했고, 친구들이 방학이라고 늦잠을 자는 순간에도 방학이기에 더 일찍 나오고 더 오래 연습해야 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또래 친구들이 엄마의 “밥 먹으라”는 말조차 잔소리라고 지겨워할 때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보는 엄마가 걱정할까 애써 밝은 웃음을 지어 보여야 했고,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남들과 출발선이 다르고 가는 길도 달랐기에, 여기서 물러서면 돌아갈 곳조차 없는 우리였기에 그렇게 우리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어요.”

지드래곤과 태양은 그렇게 기나긴 연습생 기간을 인내했고, 또 ‘할 수 있다’는 집념, ‘꼭 이뤄내겠다’는 도전의식으로 빅뱅이 됐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승리의 이야기는 가장 드라마틱하다. 춤을 못 추는 ‘몸치’였고, ‘가능성 1퍼센트’의 일도 그 1퍼센트를 파고들어 성공을 이뤄냈다.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 ‘도전은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열다섯 살 때부터 가졌고, 빅뱅 멤버로는 두 번째 솔로활동을 벌이는 기회도 얻었다.

이제 겨우 만 18세를 갓 넘긴 나이지만 광주지역 댄스팀에서부터 올해 초 솔로 활동을 하기까지 승리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로 설명된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벼락같이 기회가 왔다가 허무하게 좌절을 맛본 경험을 몇 차례 반복해 겪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목표가 생기면 도전했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 이뤄냈다.

광주가 고향인 승리는 중학교 1학년 때 지역 댄스팀의 공연을 보고 춤에 매료됐다. 몸치였지만 댄스팀에 들어가 춤을 췄다. 하지만 댄스경연대회를 앞두고 팀이 해체됐고 팀 선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좌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선배들을 설득했다. ‘몸치’ 주제에 그는 “내가 안무를 구성해보겠다”고 호언했고, 며칠을 궁리한 끝에 춤을 완성했다. 어렵게 출전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중학생 신분에 한 달 수입이 1백20만원에 이를 정도로 지역에선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 2005년 6월 ‘제2의 신화’ 멤버를 선발하는 엠넷(Mnet)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배틀 신화’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승리는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최종 결선에서 탈락했다. 크게 상심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보아와 동방신기, 소녀시대가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 가수 이승환이 설립한 드림팩토리 등 여러 기획사를 돌며 오디션을 봤다. 번번이 탈락했다. 거듭된 실패에 중3 어린 가슴은 찢어졌다.

그러나 승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YG엔터테인먼트에서는 단 한 번에 오디션을 통과됐다. 1년 반가량 연습생 생활을 하다 빅뱅의 후보 멤버가 돼 데뷔기를 담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하지만 승리는 다른 멤버들과의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빅뱅에서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승리는 자신의 실력을 냉정히 돌아보고 모자란 실력을 인정했다.(장난기 많은 그는 데뷔과정을 돌아보면서는 사뭇 진지했다.)

“다른 멤버들은 6년씩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전 연습량이 너무 부족했죠. 실력 차이가 너무 났어요. 춤, 노래…. 너무 모자랐죠. 그래서 힘들었어요.”

양현석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양현석은 “기회는 주지만 다시 발탁될 가능성은 눈곱만큼밖에 안 돼”라고 말했다. 승리는 ‘눈곱만큼이지만’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가치를 뒀다. 독기를 품었다. 힘들 때면 “승리야, 난 네가 참 좋다. 힘내”라는 말로 스스로 격려하면서 연습을 했다. 실력은 모자랐으나 그런 자세를 높이 평가받아 승리는 빅뱅에 발탁됐다. 빅뱅은 승리 없이 4인조로 탄생할 뻔했지만, 승리의 끈질김에 5인조가 됐다. 승리는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솔로활동을 했다. 그의 솔로곡 ‘스트롱 베이비’는 소녀시대의 신곡 ‘Gee’와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였고, ‘스트롱 베이비’가 수록된 빅뱅의 미니앨범은 판매량이 하향곡선을 그리다 갑자기 하루 주문량 3천5백장을 기록할 만큼 판매량에 다시 불이 붙기도 했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 ‘미소천사’ 대성은 ‘긍정의 힘’으로 대성(大成)한 경우다. 엄격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가출소동까지 벌이는 등 어렵게 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됐지만, 그는 “아버지의 반대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만약 아버지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면, 어쩌면 금방 음악에 흥미를 잃고 대강대강 하다 끝났을 확률도 높아요. 오히려 차갑고 냉정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있었어요.”

대성은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서 들은 “가수 해도 되겠네”라는 말 한 마디에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교생이 돼서야 가수 준비를 시작한 탓에, 오디션을 보기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환한 미소는 양현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성은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습관처럼 “긍정 하면 강대성인데, 이런 일로 기죽으면 안 되지”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실제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 에너지의 법칙’을 그는 지금도 믿고 있다.

“내게 ‘긍정’이라는 습관이 없었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그냥 꿈으로만 묻어뒀을지 몰라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동안의 실패와 좌절에 빠졌을 때, 긍정이라는 페달을 힘껏 밟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전 오늘도 웃어요. 소망을 놓는 순간 절망이 남지만, 희망을 품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의 노크를 하고 있어요.”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랩에 심취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평범한 학생이 아닌 이른바 ‘탈선 학생’으로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큰 키에 유난히 튀는 힙합패션으로 선배들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됐고, 자연스럽게 ‘질이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두 명의 친구를 잇따라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후 ‘평범한’ 생활로 돌아왔다.

래퍼가 돼야겠다는 일념으로 고교 때부터 언더 무대에서 공연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던 그는 YG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 기회를 얻게 됐다. 하지만 애초 음유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컸던 탑은 춤을 배워야만 빅뱅 후보 멤버 선발을 위한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춤이 싫어 오디션을 포기하려 했지만 춤을 넘지 못해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춤을 췄다.

“만일 내가 오디션을 포기했더라면, 아마 지금 같은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힙합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양한 문화와 음악에 귀를 닫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에요. 실력 있는 래퍼라면 힙합뿐 아니라 가요, 발라드, 보사노바, 댄스까지 모든 장르에서 랩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탑은 시련이 성공을 만든다는 가치관이 뚜렷하다. 그리고 생각이 많고, 오랜 생각 끝에 어떤 결론이 내려지면 그것을 향해 과감히 뛰어들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밤새 공부할 때 그는 음악을 위해 과감히 학업을 포기했고, 남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할 때 그는 연습실에서 고된 훈련을 즐겼다. 그가 바라던 세상이 전부였기에, 그는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산다는 자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기회는 그냥 흘려보내면 실패가 되지만, 움켜쥐면 행운이 됩니다.”




인생이 짧은 앞날도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이듯, 빅뱅 멤버들에게 좌절은 큰 기회가 됐고, 아픔은 인내와 성숙함을 기르게 했다. 승리는 “내가 고통을 느끼고 힘이 들어야 사람들이 기분 좋게 보실 무대가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내 수고의 결과를 좋아해주시는 걸 알았으니, 전 앞으로도 계속 고생하고 힘들어도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그 고생과 수고를 즐길 겁니다.”



승리는 솔로활동을 하면서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혼자 활동하다 보니 언론 인터뷰나 라디오 방송 출연 기회가 많아져 말 주변도 늘려야겠고, 특히 올해엔 대학입시도 준비해야 돼 교양서적은 물론 영어와 일본어 책도 보면서 자기발전 시간을 갖고 있다.

지드래곤도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한다면 젊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매일을 살고 있다. 이렇게 초심과 겸손함, 부단한 노력이 있기에 이들에겐 롱런이 보장돼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필요에 의해 밴도 타게 되고, 매니저 형 누나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남들보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뿐이에요. 겸손과 노력이라는 우리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1등이라는 타이틀이나 음반 판매량 기록 같은 것은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 쏟아낸 것’에 내려지는 하나의 보너스라는 것도. 우리는 평생 연습생의 마음으로 살아갈 겁니다.”(지드래곤)

 글·김원겸 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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