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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122호

미디어 융합시대 디지털방송 세계 최강 꿈꾼다


세계는 지금 방송과 인터넷이 결합한 IPTV 등 뉴미디어 발전이 날로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능동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방송과 통신, 신문을 아우르는 글로벌 미디어그룹이 미디어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한국의 방송은 여전히 1980년대식 낡은 규제와 매체 간 장벽의 칸막이에 갇혀 있다. 이런 상태로는 방송산업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하고 산업이 융합하는 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며 “융합환경에 맞게 법제 개편과 방송의 공익성 강화정책을 추진, 이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통신강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아플러스’ 이번 호는 급변하는 세계 미디어산업의 현황과 우리의 현실을 점검했다. 또한 정부가 추진 중인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디어산업발전 7대 법안’ 주요 내용을 점검하고 사회경제적 효과 등을 따져봤다.

 


2015년 서울. 맞벌이 주부 김미래(35) 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몸을 소파에 맡기며 TV 리모컨을 켰다. 경기가 좋아 주문이 밀려 매일 야근하는 바람에 요즘 MBC에서 즐겨보는 시트콤 프로그램을 놓친 것. 해당 방송국으로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선택하자 이날 저녁 놓친 방송 편이 화면에 떴다. 몇 년 전만 해도 ‘본방’을 못 보면 주말 재방송을 보면 됐지만 그마저 놓치면 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리모컨 하나면 언제든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 생중계나 TV 뉴스 같은 생방송도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김 씨는 쉬는 날 더 행복해진다. 10년 전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야근과 육아 때문에 보지 못한 옛 드라마 시리즈를 다시 보며 향수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직장에서도 옛 드라마 내용이 새삼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날은 드라마 5회 분량을 한꺼번에 보기로 했다. 드라마뿐 아니다. 인기 토크쇼나 음악프로그램, 개그 등 방송사 서버가 보유한 거의 모든 방송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보는 것은 기본 기능이다. 전날 깜빡 잠이 들어 미처 다 보지 못한 시트콤까지 알뜰하게 챙겨봤다. 화면을 정지했다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아기가 잠에서 깨어 울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느덧 식사시간. 주말 식사는 맞벌이 부부의 큰 고민거리다. 남편과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주문 역시 TV 리모컨 하나면 끝이다. 검색창에서 피자를 고르자 잠시 후 메뉴표가 화면에 나타났다. 김 씨와 남편은 소파에 편히 앉아 피자 두께와 크기, 토핑을 차례차례 골라 나간다. 음료수를 끝으로 주문을 마치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주문 완료’라는 화면이 뜬다. 물론 주문을 하면서도 작은 화면을 통해 시청 중인 드라마를 계속해서 볼 수 있다.

IPTV로 식사 배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 홈쇼핑, 쇼핑몰, 백화점 사이트에 접속해 옷이나 가전제품을 직접 고르거나 주문하기도 한다. 김 씨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입는 옷이나 핸드백, 소품 가격 정보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요즘 들어 애용한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운용하는 가격 비교 검색 서비스도 리모컨 하나로 PC와 똑같은 환경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물론 식당 및 호텔 예약은 기본이다.

식사를 끝낸 뒤 소화도 시킬 겸 영화를 보기로 했다. 최근 극장에서 상영 중인 ‘배트맨 시리즈 7편’을 선택했다. 2009년 IPTV 도입 초창기부터 영화 채널에서는 최신 개봉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 마니아인 김 씨는 최근 몇 년간의 최신 개봉작을 집에서 봤다. 내친 김에 5편과 6편도 보기로 했다. 최근 영화 시리즈물을 전편을 묶어 보여주는 묶음형 서비스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아예 DVD로 만들어지지 않고 IPTV로만 상영되는 영화가 늘어났다. 이래저래 대여점에 가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에 갈 일도 없어졌다. 

김 씨는 IPTV 전용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머릿속에서 극중 줄거리 전개를 이리저리 바꿔보는 것. 요즘 들어 이혼 위기의 부부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시리즈가 최고 인기를 끌고 있다. 외도하는 남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바뀌는 양방향 형식이다. 김 씨가 상황을 선택하면 그에 맞는 줄거리로 드라마가 진행된다.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드라마 마니아 사이에선 인기다.

저녁을 먹은 뒤 김 씨는 다시 TV 앞에 앉았다. 오늘 온 e메일 확인을 위해서다.  미리 입력해둔 단축 버튼을 누르자 평소 사용하는 메일창이 화면에 나타났다. 휴대전화나 리모컨만으로도 e메일을 쓸 수 있지만 김 씨는 키보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TV와 연결된 무선 키보드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답장을 썼다.




독도경비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동생과도 IPTV로 화상 면회를 했다. 동해 끝자락에서 세찬 바닷바람과 마주하고 있는 동생과 이렇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고선명(HD) 방송을 보는 것처럼 너무나 생생해서 바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 같이 착각할 정도다.    

아이와 남편이 잠든 늦은 밤. 올해 초 등록한 방송통신대학 수업을 듣기로 했다. 야근 핑계로 벌써 몇 주째 방송을 놓쳤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방송통신대학과 사이버대학들이 IPTV 방송 체계를 갖추면서 방송시간을 놓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복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도도 내 생활패턴에 맞추면 되고 수업 외에 간단한 시험도 TV로 본다. 몇 년 전만 해도 방송 스케줄에 맞춰야 했지만 이제는 언제든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과목도 다양해져 선택 폭이 훨씬 넓어졌다.

“정말 이렇게 TV만 옆에 끼고 살아도 되는 걸까?” 늦은 밤 수업을 마친 김 씨는 잠자리에 누우며 이렇게 생각했다.


올해 1월 초부터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IPTV는 외형상으로는 케이블 방송과 비슷하다. IPTV는 초고속 인터넷망과 연결된 셋톱박스를 디지털TV에 연결해서 본다. 그러나 케이블망이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망에 연결된다는 점이 케이블과는 다르다. 셋톱박스에는 TV 외에 전화나 PC도 함께 연결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통신과 방송이 융합된 형태다.

IPTV의 매력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방송을 보면서도 인터넷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 등 방송 시청은 물론 영화감상, 홈쇼핑, 교육, 인터넷뱅킹, 행정서비스, 정보검색 등을 TV와 리모컨 하나로 이용할 수 있다. 콘텐츠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채널도 무한대로 늘릴 수 있어 시청자의 선택 폭이 높다. 드라마를 보면서 물건을 사거나 여행 상품을 예약하는 등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IPTV 도입이 가져올 또 다른 효과는 방송주권이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넘어온다는 점이다. 지상파, 케이블 등 기존 TV 서비스는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그대로 수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양방향 TV시대 시청자들은 ‘언제든,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누구나 방송 소비자인 동시에 제공자가 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것이다. 국민 누구든 개인 채널을 확보해 자신만의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낼 수도 있다.




특히 IPTV가 본궤도에 오르면 방송 콘텐츠의 제작 방식과 환경도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PD와 작가 등 제작진이 이끌어가는 대로 줄거리를 받아들여야 했던 시청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게 되면 드라마 한 편으로 더 다양한 재미를 얻게 된다. 지난해 말 메가TV가 제작발표회를 가진 드라마 ‘미스터리 형사’는 2개의 결말과 배경음악을 가진 최초의 IPTV 전용 드라마다. 극의 내용뿐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상, 물건 등 소품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고 상품 구매까지 이뤄지는 서비스가 등장하면 미디어 분야에서 새 수익모델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IPTV는 조만간 걸어다니면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해 IPTV의 유·무선 기술 확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IPTV 2.0’기술 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등장한 유선IPTV에 이어 2010년에는 유·무선 IPTV, 2012년에는 모바일 IPTV가 등장할 전망이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PDA, 휴대형 멀티미디어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든 양방향 TV를 시청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IPTV가 시장에서 조기에 안정화되려면 몇 가지 선결 조건이 있다. 한국은 첨단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인 IPTV 기술에서 경쟁국에 크게 뒤져 있다.

‘인터넷 강국’ 한국은 일찌감치 IPTV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기술 개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정부 부처 간 IPTV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영역 다툼을 하다 후발국들이 먼저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추월당했다. 방송 송출 장치와 셋톱박스를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차세대 원천기술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부족한 IPTV 전용 콘텐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케이블TV보다 채널이 다양하지 않다면 IPTV로 전환할 이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정된 전파와 주파수에 의존하는 기존 방송 및 케이블과 달리 IPTV는 채널을 거의 무한정 늘릴 수 있지만 이를 채울 콘텐츠가 빈약하다면 결국 차별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콘텐츠의 질마저 떨어진다면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 시청자를 사로잡긴 어렵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인프라만 있고 콘텐츠는 없는 ‘속빈 강정’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훨씬 많은 기업과 개인들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금까지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방송에서 배제돼온 기업뿐 아니라 독립 언론,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참여자를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콘텐츠의 다원성을 높이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통신방송 융합이 향후 양측의 물리적 결합 이상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방송통신 융합의 상징인 IPTV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글·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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