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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인터뷰 | 기록했더니, 인생이 기적이었더라

| 반년간 자서전 집필 강두석 씨 |

인생 마무리하려 쓴 책, 힘찬 여생 살 자신감 줬어요

‘침묵 속에 영원히 사장돼버릴지도 모를 내 인생의 족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세월의 길섶에 머물렀던 나의 발자취가 만경창파의 노도를 헤쳐가는 후손들의 앞길에 귀감이 될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필연코 후손들의 의지와 신념 앞에 굴복되고 정의와 불타는 열정으로 찬란한 빛이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

책 속에서 가장 공들여 쓴 문장이 무어냐 하니 이같이 읊는다. 강두석(80) 씨는 지난 80년의 인생을 한권의 책에 담아 이달 초 자서전 <내 인생의 곡선>을펴냈다. 지난 11월 11일엔 간이 인쇄한 책을 가지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며칠 뒤 본인쇄가 마무리되면 20권의 책을 가족들과 나눠 읽을 계획이다.

 

출간 기념식

▶강두석 씨가 11월 11일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자서전 출간 기념식을 갖고 있다. ⓒ광진정보도서관


강 씨가 자서전을 쓴 것은 자녀들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며느리는 도서관에서 시니어를 위한 자서전 쓰기 교육을 한다며 소개했다. 올 4월부터 서울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시니어를위한 자서전 쓰기 교육을 받았다. 80년 인생을 200여 장의 종이에 담아내는 데는 반년이 걸렸다.

"필력이 부족한 건 물론이고 남 앞에 내보이기부끄러운 인생이라 생각했죠.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자서전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게아니라 진솔하게 쓰면 된다는 것, 그리고 짧은 문장으로쓰면 쉽다는 걸 배웠죠. 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살아오는 동안 찍은 귀중한 사진, 편지, 일기를 모조리 모았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게있으면 전부 메모했죠."

책에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1남 3녀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를 안게 된 지금까지 그야말로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담겼다.

"어린 시절 집 앞에 솟은 양쪽 산을 간짓대로이을 수 있을 만큼 깊은 산골에서 흙집을 짓고 살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군대도 카투사로 가고 한국전력에도 들어갔죠.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난하기로 세계에서 맨 앞에 섰어요.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별로 없던 시절에 공기업에 들어간 거예요. 1980년대에는 1년간 미국 23개 주를 돌면서 현지 인력을 가르쳤어요. 교육 자료가 담긴 라면 박스 43개를 배에 실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는 "기자님은 들어도 잘 모르시죠?"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자서전을 쓴 이유는 자녀와 손주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에겐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되리란 뜻에서다.

자서전은 강 씨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80년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쓴 책에는 유언장까지 담았지만 외려 남은 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내 책은 저명한 사람들의 자서전과는 달라요. 내가 잘못한 것들까지도 아주 세세하고 진솔하게 적어놨으니까요. 불효한 것, 자식들에게 못해준 것, 이 밖에 잘챙기지 못한 인간관계, 게을러서 이루지 못한 꿈들. 앞으로는 못다 이룬 것들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자서전을 쓰게 된 건 제 인생에서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 여행 드로잉 책 출간 신은정 씨 |

책 홍보하려 전국 여행… 취미가 더 많아졌어요

인생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기게 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여행할 때가 아닐까. 그 수단은 렌즈와 셔터. 신은정(33) 씨는 동유럽 여행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러나 책에는 사진 대신 그림이 빼곡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신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여행 드로잉 북 <패키지 밖의 동유럽>은 올 4월 세상의 빛을 봤다.

"몇 년 전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여행했어요. 생애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은 꿈만 같았어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 돌아오니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여행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내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남겨놔야겠다 싶었죠.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려면 책으로 엮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신은정씨

그림

그림2 

▶신은정 씨는 생애 처음 홀로 떠난 동유럽의 모습을 직접 그려 책으로 엮었다. ⓒ신은정


책 속에는 패키지 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동유럽의 숨은 명소들이 수채화로 담겼다. 관광객들은 잘가지 않는 체코의 시골 마을 체스키크롬로프의 작은 공연장, 오스트리아의 호수도시 할슈타트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헝가리 마을에 밤기차가 지나가는 풍경 등.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은 그림 옆에 간단히 새겨 넣었다. 신 씨는 이왕 책을 내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서점에 실제로 납품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신청해 진짜 책의 모습을 갖췄다. 취미로 다니고 있는 여행 드로잉 수업에서 지난해 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신 씨는 일부 마음이 맞는 수강생들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을 엮어 연말 책자로 만들었다. 그때 책의 원고를 편집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배웠다. 덕분에 자신만의 책을 만들며 내용물을 채우는 건 물론 그 형태까지 직접 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기 전 종이 재질, 책의 크기, 가격 등을 결정했다. 문제는 몇 부를 찍을 것인가. 가족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책 출간에 힘을 보태준 사람들에게도 돌리려면 200부가 적당하다싶었다. 신 씨는 책 제작을 시작하며 창작자를 위한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시안을 올리고 모금을 했다. 목표액이 모이면 그 돈으로 책을 인쇄하고, 기부자들에게는 직접 그린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줄 것을 약속했다. 올 2월부터 한 달간 진행된 모금에는 목표액 50만 원을 크게 웃도는 92만 원이 모였다.

신 씨는 인쇄를 하고도 남은 모금액은 책을 홍보하는 데 사용했다. 스쿠터로 전국 동네 책방을 돌며 책을 납품한 것. 동네 책방에는 1년에도 100여 종의 독립잡지를 포함해 개인 출판물이쏟아진다. 신 씨의 책은 그 가운데서도 주목을 받아 올해만 벌써 2쇄를 더 찍어냈다. 신 씨는 자신의 책을 만드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삶의 외연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취미라고 말했다.

"직접 해보면 자가 출판이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책을 냈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다들 대단하게 생각해주니 으쓱하고 뿌듯하죠. 저처럼 정식 출판물로 등록하지 않고도 책을 홍보할 수있는 독립서점이나 플리마켓도 많아졌어요. 저는 책을 만들면서 펀딩도 해보고, 또 다른 여행도 하고, 독자들에게 줄 엽서도 만들고, 취미가 다양해졌어요.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하고 책을 낼 생각입니다."

 

글·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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