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6월 22일 오전 11시, 경기 이천으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주말 내내 비가 내려 먹구름이 걷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천 부래미마을에서 1박2일을 보내야 하는데 또 한바탕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2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날씨가 개기 시작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목적지인 부래미마을에 도착하자 그곳 하늘은 낯선 방문자를 반기듯 활짝 개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커다란 문패가 낯선 방문객이 찾기 쉽도록 길을 친절히 안내해줬다. 문패에는 ‘정보화마을, 부래미’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부래미(富來美)라는 지명은 예부터 전해오는 마을 이름으로 ‘부자가 되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앞에 정보화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이유는 행정안전부의 전신인 행정자치부가 2004년 이 마을을 정보화 시범마을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어귀에서부터 트럭 한 대쯤은 너끈히 다닐 수 있도록 잘 닦인 길을 따라 3, 4분쯤 올라가니 최신식으로 지은 다목적 체험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넓은 식당과 음식체험관, 세미나실, 대강당 등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9개의 호실로 된 숙박시설은 저마다 화장실과 테라스, 취사시설, 세면도구 등을 구비하고 있어 내부는 편리한 콘도 같고 외양은 아담한 펜션 같다.
그곳에 짐을 푼 뒤 다목적 체험관 내 사무실에서 마을 행정을 관리하는 최형두 사무장을 만났다. 최 사무장은 “전남 화순군에서 40여 명이 우리 마을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오고 있다”며 “그분들이 도착하면 함께 움직이기로 하고 우선 미꾸라지 잡기 체험을 해보라”고 권했다. 마침 그곳에 미꾸라지 잡기 체험장을 운영하는 이상철 씨가 왔다. 미꾸라지 잡기 체험장은 다목적 체험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논두렁 옆에 도랑을 만들어 미꾸라지와 붕어 등을 기르는 이 씨는 “체험객이 없을 땐 흰 그물을 쳐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황새가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다”면서 “미꾸라지 잡기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예전에는 우렁이 잡기를 진행했는데 요즘은 이것으로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청바지를 척척 걷어붙이고 맨발로 도랑에 들어갔다. 비 온 뒤라 물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이 씨에게 배운 대로 고기 모는 시늉을 하며 양손에 든 족대를 들어올리자 뭔가 팔딱거렸다. 기대했던 미꾸라지가 아니라 올챙이들이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같은 동작을 서너 차례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미꾸라지가 잡혔다. 손바닥만 한 붕어도 함께 낚는 행운이 따랐다.
![]()
자리를 옮겨 고추밭으로 갔다.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바구니에 하나씩 따 담았다. 고추를 딸 땐 대롱 끝을 잡고 아래에서 위로 따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따면 줄기가 같이 벗겨진다. 옆에 있는 상추밭에서 상추 따는 재미도 맛봤다. 상추는 줄기와 연결된 밑동을 잡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따야 모양도 예쁘고 잘 따진다. 바구니에 수북한 상추와 풋고추를 보니 매콤달콤한 고추장과 김이 솔솔 나는 흰밥이 떠올랐다. 더위 먹은 한여름에 식욕을 돋우는 웰빙 식단이 아닌가.
상추를 따는 동안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서 견학 온 어르신들이 도착했다. 어르신들은 대강당에서 한 시간가량 부래미마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강의가 끝난 뒤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다목적 체험관에서 어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생태습지는 아이들 키만큼 자란 갈대와 이름 모를 풀들이 수북했다. 체험객이 구경하기 좋도록 나무다리도 놓여 있었다. 습지로 변해가는 휴경지를 ‘재활용’해 아름다운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책로 인근에 있는 도예체험장을 찾았다. 도예체험은 도자기의 고장인 이천의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이다. 체험객들은 도예가인 우당 김영국 선생의 지도하에 ‘나만의 도예작품’을 만드는 시간을 갖는다. 도예체험장이 새 단장을 하고 있어 도자기 만들기 체험은 불가능했지만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인절미 만들기 체험 장소에 있는 농기구 전시장에서도 새롭게 선보이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농기구 전시장은 또 다른 ‘재활용’ 사례. 각 농가에서 버리려고 하던 농기구들을 모아 정리함으로써 체험객들이 과거 농기구의 모습과 쓰임새를 알 수 있게 했다. 새롭게 꾸민 도예체험장과 농기구 전시장은 6월 26일 다시 문을 열었다.
![]()
다목적 체험관 인근에 자리한 슬로푸드체험관에는 16대의 컴퓨터가 설치된 정보화교육실과 80~1백명을 수용하는 식당, 족구장 등이 있었다. 정보화마을로 지정되면서 마련된 정보화교육실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한 컴퓨터 교육을 통해 마을 주민 대부분을 ‘컴도사’로 만들었다. 교육실 한 귀퉁이는 풍물놀이에 사용하는 장구, 북, 징 같은 농악기가 차지했다. 단체 관람객이 방문할 때마다 선보이는 풍물놀이는 이 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다.
오후 5시경, 슬로푸드체험관에서는 황토염색이 진행됐다. 황토염색체험은 염색 전문가인 우당심 선생이 이끌었다. 두건은 물론 상하의 모두 황토로 물들인 천연염색 의상을 입은 우 선생은 60, 70대 어르신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유머와 퀴즈를 섞어가며 황토염색 재료와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황토는 광물 염료예요. 산기슭에서 퍼다가 여러 차례 불순물을 걸러내 끈적끈적하고 부드러운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염색이 잘 빠지지 않도록 소금을 잘 풀어뒀습니다.”

우 선생은 염색 강의를 끝내고 손수건 한 장과 노끈 한 개씩을 나눠줬다. 하트 모양이나 별 모양이 나오도록 손수건을 노끈으로 묶는 방법도 일러줬다. 저마다 멋진 모양을 기대하며 족구장이 있는 앞마당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소금을 섞은 짙은 갈색의 황톳물이 여러 개의 대야에 담겨 있었다. 서너 명씩 조를 나눠 염색을 시작했다. 손수건을 황톳물에 푹 담갔다가 골고루 물이 들도록 빨래하듯 구석구석을 비볐다.
5분쯤 지나서 우 선생의 지시에 따라 손수건을 깨끗한 물에 헹군 뒤 노끈을 풀었다. 연한 갈색으로 변한 손수건에는 어느새 별과 원, 하트 모양이 새겨졌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손수건을 펄럭이며 염색된 색깔과 모양이 흡족한 듯 아이처럼 좋아했다.
황토염색은 원래 손수건을 햇볕에 말린 뒤 한 번 더 물에 헹궈 다림질을 해야 끝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마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젖은 손수건을 비닐봉지에 넣고 나머지 절차는 집에서 하기로 했다. 우 선생은 “황토 손수건은 아이들 베갯잇이나 두건, 여성용 생리대로 사용하면 좋다”며 “손수건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토염색체험이 끝나자 저녁식사 시간이 됐다. 어르신들과 함께 다목적 체험관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마을 부녀회원들이 솜씨를 발휘한 시골 밥상이 뷔페식으로 제공됐다. 이천 쌀로 지은 밥도, 마을에서 재배한 채소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한다는 백 퍼센트 국내산 재료로 만든 반찬들도 하나같이 꿀맛이었다.
저녁 8시경엔 숙박시설 앞마당에서 삼겹살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전남 화순군에서 온 어르신들은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할 점과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털어놓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정겨웠다.
![]()
별들이 수놓은 시골의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모자도 없이 땡볕을 쬐어 얼굴은 많이 탔지만 맑은 시골 공기를 마시며 온종일 돌아다녔더니 자리에 눕자마자 단잠이 쏟아졌다.
6월 23일, 둘째 날은 짚풀공예체험으로 아침을 열었다. 슬로푸드체험장을 끼고 50미터쯤 올라가자 검은 그물천막이 쳐진 짚풀공예체험장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달걀 꾸러미 만들기, 새끼 꼬기 체험이 진행된다. 이날 짚풀공예 강의를 맡은 이기열 이장은 “우리 마을의 짚풀공예는 수준급”이라며 “전국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한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이장 어르신은 미리 삶아온 달걀 5개와 체험장에서 말려둔 짚풀을 한 움큼 내밀었다. 달걀 꾸러미 만드는 재료들이다. 달걀 꾸러미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일러주던 그는 “원래는 날달걀로 만들어야 하지만 깨지기 십상이라 늘 삶아서 준비한다. 다 만든 뒤 짚풀 끝을 다듬어야 상품가치가 있다”며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모양이 엉성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하자 제법 맵시 있는 달걀 꾸러미가 완성됐다.

다시 자리를 옮겨 이장 어르신네 배밭에서 배를 봉지로 씌우는 일을 도왔다. 봉지는 과일을 병충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봉지 안을 크게 벌리고 배에 씌워 끝을 오므려 묶으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복숭아에도 봉지를 씌웠다. 전날 염색한 황토 손수건을 두건처럼 머리에 두르니 땀이 흘러내리지 않고 햇볕이 덜 따가워 좋았다.
이장 어르신은 감자도 직접 캐보라며 호미를 건네줬다. 마침 배밭 옆에는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 캐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왼손으로 감자 줄기를 잡은 상태에서 오른손에 든 호미로 흙을 퍼내면서 왼손을 잡아당기면 주렁주렁 감자가 딸려 나왔다. 하지만 호미를 잘못 찍으면 감자까지 상했다. 적당한 요령과 힘이 필요한 체험이었다.
서툰 솜씨로 캔 감자가 플라스틱 대야에 그득했다. 대야를 들어보니 꽤 무거웠다. 이장 내외는 직접 캔 감자는 가져갈 수 있도록 봉지에 담아줬다.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아쉽지만 부래미마을에서의 농촌체험은 이것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넉넉하고 따뜻한 정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8월부터 이곳에서는 복숭아 수확, 포도 따기, 고구마 캐기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쪽 어깨에 달걀 꾸러미를 메고 한 손엔 감자 봉지를 들고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그때는 가족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
부래미마을은 35가구, 7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작다고 깔보면 안 된다. 이곳은 농촌체험 프로그램으로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도 연간 5만여 명에 이른다. 딸기 따기(3~5월), 포도 따기(8, 9월), 배 따기(10월) 등 인기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달에는 월 5천여 명이 다녀가고, 비수기인 6, 7월과 11~2월에도 월 1천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방문객 중에는 농촌체험을 위한 관광객뿐 아니라 이곳의 노하우와 체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다른 마을에서 견학 오는 단체손님도 상당수다. 그래서 부래미마을은 비수기에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2002년 12월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부래미마을은 이듬해 홈페이지 개설을 시작으로 다각적인 사업을 진행했다. 2004년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의 전신)의 ‘정보화마을’, 농협 ‘팜스테이마을’, 경기도 ‘슬로푸드마을’, 농림수산식품부 ‘농촌마을종합개발’ 등의 사업에 참여한 것. 원활한 사업진행을 위해 사무장도 따로 두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적극 도왔다. 덕분에 농촌체험을 시작한 2003년에는 체험객 3천명에 매출 5천만원에 그쳤지만 불과 5년 만에 규모가 10배 이상 급성장했다. 한편 체험비용은 세 가지 프로그램을 묶어 1인당 1만5천~2만원 정도다. 숙박시설은 다목적 체험관 외에도 기존의 민박용 객실 7실이 있으며 숙박비는 4인 기준 4만원이다. 문의 및 홈페이지 031-643-0817, 011-3454-5486(최형두 사무장), www.buraemi.com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일죽나들목→38번 국도 장호원, 원주 방향으로 8킬로미터→율면 행죽 방향(우회도로)→333번 지방도 장호원, 행죽 방향으로 1.5킬로미터→율면 방향 우회전→석산1리 좌회전→부래미마을 |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다양한 농촌체험 개발 똘똘 뭉친 마을 주민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