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하루 이용객 45만여 명. 외국인들이 서울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른다는 남대문시장. 도·소매를 겸해 전국에서 중간도매상과 소매상이 모여들 뿐 아니라 일반 이용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6월 16일 밤 11시. 대한화재 빌딩 옆길로 들어선 남대문시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몇 해 전 비슷한 시각에 찾았을 때 새벽 장사 준비에 부산하던 상인들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이었다.
남대문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문 닫은 가게가 더 많다. 신세계백화점 쪽으로 한 블럭 내려가 보니 길모퉁이에서 냉커피와 냉미숫가루를 파는 아주머니가 손수레를 세워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냉미숫가루를 한 그릇 시켜 놓고 말을 건넸다.
“문 닫은 가게가 많네요.”
“요즘 시장 분위기가 별로야. 지금쯤이면 새벽 장사할 사람들 가게 문 열고 그래야 하는데, 올 들어 더 심해.”
“아주머니 장사는 좀 어떠세요?”
“지금쯤 커피 달라는 주문이 와야 하는데, 한 곳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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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산다는 이 아주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남대문시장에서 커피 장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17년째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장통 네거리마다 커피 손수레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너 군데만 장사를 하고 나머지는 없어졌어. 예전만큼 장사가 안되니까. 외환위기 이후로 계속 내리막이야, 시장은.”
“그래서 정부에서 여러 지원을 하고 있지 않나요. 무점포 상인에게 대출도 해주고….”
“그 돈 쓰면 이자 안 무나? 외환위기 때 신용불량자 된 상인이 많아서 아예 신청조차 못하는 사람이 많아. 또 그 돈 신청하려면 절차도 복잡하잖아. 은행에다 뭘 신청하라고 하고, 이것 저것 증명서 떼오라고 하고….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가진 게 있나 배운 게 있나?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서민이야.”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은행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니 문 닫은 가게들 사이에 문 연 가게가 하나 둘씩 눈에 띈다. 가게 앞에 간이의자를 놓고 나란히 앉아 있는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요즘 장사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에요. 문 연 곳보다 닫은 곳이 많은 걸 보면….”
“문 열면 더 손해야. 전기세나 나가고….”
“그래도 장사를 안 하실 수는 없을 것 아녜요?”
“그러니까 이렇게 문 열어놓고 마냥 기다리는 거지.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요즘 장사가 어려운 모양이죠.”
기자의 신분을 밝히자, 상인들의 긴 탄식이 이어졌다.
“장사도 장사지만, 좀 벌어도 애들 교육비 때문에 못 살아. 큰애가 20만원 드는데, 작은애는 40만원 들어. 교육비가 워낙 올라서 살기가 더 힘들어졌지. 아예 학교를 없애든가, 학원을 없애든가 해야지 이건 뭐….”
교육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소매가 좀 돼야 도매가 살고, 도매가 잘돼야 공장이 잘 돌아가는 건데, 무작정 기업들에게 돈 줘봐야 물건이 팔리나? 소매가 살아나게 해야 돼. 소매가 안되니까, 자꾸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는 거야.”
일견 타당한 이야기 같긴 한데, 어떻게 하면 소매가 살아날 수 있을까. 결국 소비주체인 가정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데 고용 환경은 나빠져만 가니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다.
지하철 회현역 인근 대로변으로 나와 보니 시장 쪽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해 있었다. 물건을 구매하러 단체로 올라온 지방 상인들을 태우고 온 차들이었다. 예전에는 버스가 너무 많아 차량 통행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는데, 이날은 버스가 많지 않아서인지 차량 흐름이 원활했다.

전북에서 올라온 한 차량을 보니 승객과 버스운전기사 모두 자리를 비운 터였다. 관광버스 바로 옆에서 액세서리 노점을 하는 한 상인이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다들 장보러 가신 모양이죠?”
“운전기사는 자러 갔고, 상인들은 물건 하러 갔죠.”
“많이들 오셨나요?”
“글쎄, 한 절반 조금 넘게 왔던걸. 요즘은 지방에서도 뜸하게 올라와. 1주일에 세 번씩은 왔었는데, 요즘은 두 번이나 올라오나? 버스에 상인들이 꽉 차는 법이 없어.”
남대문시장이 예전과 같은 활기를 잃은 데에는 지방 상권이 살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남대문시장 내 쇼핑센터 입구에서 만난 한 충청도지역 상인은 “장사가 좀 될 때는 물건을 져서 날라주는 사람을 써야 할 정도였시유. 그런데 지금은 한 손으로도 충분히 들 정도만 물건을 해가유. 그래도 이게 다 팔릴지 몰라유”라며 지역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설명했다.
재래시장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차장이 잘 구비된 대형 할인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편리하게 쇼핑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컴퓨터 자판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재래시장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 서민시장의 대명사로 명성을 떨쳤던 남대문시장 역시 이젠 명맥만 유지한 채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현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요즘 손님이 좀 있나요?”
“말도 마쇼. 요금 오르고는 더 없어요(서울지역 택시요금은 6월 1일부터 기본요금이 1천9백원에서 2천4백원으로 5백원 올랐다). 내가 오후 5시에 나왔는데, 지금 새벽 1시까지 겨우 몇 만원밖에 못 벌었다니까요. 이러면 안되는데….”
“그래도 퇴근시간이나 지하철, 버스 끊기는 시간대에는 손님이 좀 있지 않아요?”
“옛말이에요. 술이나 한잔 먹어야 택시 타는데, 어려우니까 다들 일찍 들어가는가 봐요.”
기본요금이 오른 뒤 아직 법인택시들은 사납금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손님도 없는데 사납금까지 올리면 정말 우리 같은 사람은 죽어나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역 앞.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노숙인 몇 사람과 어묵 국물에 소주 몇 병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소주잔을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며 노숙인 삶의 애환을 들려주던 한 ‘왕초’ 노숙인이 대뜸 “술 사먹게 5만원만 내놓고 가라”고 했다.
취재에 응한 대가를 달라는 얘기였다. ‘노숙인 생활을 인터뷰해주고 돈 받기’가 하나의 ‘사업 아이템’쯤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쓴웃음이 나왔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경매가 한창 진행될 시간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남대문시장이나 휑한 서울역에 비해 수산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에이 웨이 하이”라는 추임새를 적절히 넣어가며 진행하는 경매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이 났다.
경매 받은 물건을 자신의 차에 싣던 한 중간도매상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취재 나왔다”는 기자의 말에 대뜸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남 탓”이라고 했다.
“잘나도 못나도 다 제 탓하며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 손 벌리면 그때뿐, 그게 해결책이 되냐”고 했다.
“정부가 어려운 서민을 위해 금융 지원 등 여러 지원책을 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세금 걷어다 백성 위해 쓰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며 “생색내지 말고 차분하게 꼭 필요한 일이 뭔지 따져서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 상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집값 좀 낮추고, 교육비 좀 덜 들게 해주면 제일 좋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청년도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했던 ‘신혼부부 반값 아파트 공약’까지 거론하며 “결혼을 하고 싶어도 집 살 능력이 안 돼 못 하고 있다”며 “싼 집을 많이 공급해줬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서민들에겐 주거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는 듯했다. 또 자녀를 둔 서민 부모에게는 주거 못지않게 교육비 부담 역시 큰 골칫거리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먼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새벽 5시 20분. 인력시장이 열리는 남구로역으로 향했다. 이른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남구로역 주변에는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수백명의 인부와 수많은 봉고차가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동행한 구로구청 류시일 지역경제과 팀장은 “새벽 4시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5시를 전후해 절정을 이룬다”고 했다.
분주하게 봉고차가 오가더니 6시가 넘어서자 일터로 향하는 인부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조금씩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가로수에 가방을 매달아두고 느긋하게 서 있는 한 인부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 나오셨어요?”
“4시요.”
“그럼 2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일자리를 못 잡으신 건가요?”
“10시까지 기다려 보려고요”
일반 잡부 일당은 7만원, 기술이 있으면 12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족 인부가 대거 유입되면서 잡부 일당이 5만원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올해 45세라는 이 인부는 정부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을 이수해도 정작 중소기업 등에서 나이를 문제 삼아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력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경기침체 여파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인력회사를 이용해보시지 그래요.”
“7만원 일당 받는데, 7천원 수수료 떼고, 봉고차 이용료(1만원 수준) 주고, 밥 사먹고 차비 하면 남는 게 없어요.”
오전 7시가 가까워졌다. 아침도 못 먹고 마냥 일감을 기다리던 노인 인부 몇몇이 자리를 잡고 막걸리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 일 나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며칠은 물론 한달 가까이 일을 못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인력시장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곧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 일감이 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상황에도 새벽잠을 포기하고 일감을 기다리는 인부들. 고달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지금 심정이 우울한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기자만의 착각일까. 그래도 구름 뒤에는 어김없이 태양이 떠 있을 것이다.
글·구자홍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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