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낯설고 물설다."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낯설고 물선 데다 의사소통까지 익숙지 않은 타향살이라면 얼마나 고달플까. 하고 싶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기 싫은 것조차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불통’의 불편함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갑갑함을 미뤄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손짓 발짓 해가며 낯선 외국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무용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돈 써가며 며칠 아니 몇 달 여행하는 것과 매일같이 얼굴 맞닥뜨리며 밥해 먹고, 심부름하고, 일하고, 애 키우며 사는 일상생활에 비할 수 있을까.
한국으로 시집와서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사는 결혼이민자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온몸으로, 아니 마음속 깊이 느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 이웃으로 다가온 수많은 다문화가정, 특히 결혼이민자들에게 더 따뜻한 배려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고, 한국말이 서툴다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눈길과 행동 하나에도 그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지난 한 해 상담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정이 얼마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가 펴낸 책자 <다가갈수록 따뜻한 다문화가족과 활동가의 생생스토리>와 <따뜻한 말, 마음, 몸짓이 빚어내는 사랑의 고리 하나 되는 세계>에 담긴 결혼이민자들의 수기에는 그들이 낯선 한국 땅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겪는 어려운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담겨 있다.

결혼이민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언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는 하나둘이 아니다. 우리가 해당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당황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결혼이민자들은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면 대답할 수 없듯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의사 표현의 부재로 이어진다. 결국 말을 하지 못하니 뭘 원하는지 알 수 없고,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오해가 싹틀 여지가 많다.
필리핀에서 2004년에 한국으로 시집온 리사 코퍼즈 씨는 결혼이민 초기의 생활상을 수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얘기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너무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종일 TV를 보거나 잠을 잤습니다. 제가 아는 곳은 시장과 교회와 우리 집뿐이었습니다. 길을 잃을까봐 혼자 외출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대화 단절과 부족, 서로에 대한 욕구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증폭되면 부부관계마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또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온 탓에 문화적, 경제적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도 부부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밖에 가치관이나 성격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베트남 신부(짠티튀안·24)와 함께 경기 포천시 영북면에 사는 김진욱(53) 씨는 아내에 대해 “나이가 어려 겉으로는 온순해보일지 모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도 보통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말이 통하는 부부 사이에도 아 다르고 어 달라 오해하기 십상인데, 말이 안 통하는 다문화부부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오해가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부부들은 대체로 신랑이든 신부든 경제적 이유로 국제결혼을 한 경우가 많다. 농촌 총각들이 국제결혼에 몰리는 이유도 대부분 넉넉지 않은 시골 살림에 한국인 아내를 맞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동남아시아계 신부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문화부부가 위기를 맞는 가장 큰 요인 역시 경제적 어려움에서 촉발된 부부갈등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업결과 보고서의 상담 주제별 호소 내용에도 가정경제에 대한 상담이 적지 않다. 가정의 경제권이 남편이나 시부모에게 집중돼 있고 결혼이민자 여성에게 생활권을 주지 않는 가정이 많아 경제적 소외로 인한 불만 상담이 높다는 것. 또한 혼인 전에 알고 있던 한국인 배우자의 경제 상황과 실제 상황의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혼란도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포천시 영북면의 김진욱 씨는 “국제결혼은 남자도 속고 여자도 속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씨에 따르면 국제결혼 중매업소에서 소개해준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 남자 측은 결혼비용에 신부 측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한 ‘지참금’조의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이민자 여성 역시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액수의 결혼비용을 지불한 뒤여서 결혼한 뒤 한국에 들어가면 조금씩 가족에게 송금해 갚아나갈 생각을 하고 온다는 것. 이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결혼이민자들은 돈벌이를 위한 취직에 목을 맨다고 한다. 하루빨리 돈 벌어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금리의 사채를 빌려 돈을 낸 뒤 한국에 오는 사람도 있어 본국에 송금을 해주지 못하면 가족들 생각에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한다.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 공부보다 취직에 더 매달리는 이유가 이 같은 속사정 때문이라고 김 씨는 귀띔했다. 간혹 경제적 여유가 있고 마음씨 좋은 시부모와 남편을 만난 결혼이민자는 본국에 있는 가족을 넉넉히 도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상담 내용 가운데 취업 관련 상담이 많은 것 역시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한국인 배우자들은 아내의 취업을 원치 않지만 결혼이민자 아내는 취업에 대한 욕구가 아주 높게 나타나 부부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결혼이민자 중에는 학력과 능력이 월등한 여성이 많고 전문직에 대한 열의도 높아 실제 취업이 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국제결혼과 동시에 원만한 부부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국제결혼 초기에는 최소한의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이상의 기대는 금물이라고 국제결혼 4년차인 김진욱 씨는 조언한다.
“말도 안 통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겁니다. 어디 하루아침에 입맛이 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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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아내 짠티튀안 씨는 한국에 처음 시집와서 된장찌개를 먹고 이내 토해버렸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된장 특유의 냄새가 너무 역겹게 느껴졌기 때문. 지금은 곧잘 된장찌개를 끓여내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생활방식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고부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더 큰 문제는 부모자녀 관계와 자녀양육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대화단절 등으로 자녀와의 관계형성이 원활하지 않은 가정도 있고, 한국인 배우자가 재혼일 경우 전처의 자녀문제나 자녀 차별로 인한 갈등도 적지 않다. 더욱이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아 한국 자녀들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결혼이민 여성도 많고, 기존 자녀들이 결혼이민자를 무시하는 태도 등도 부모와 자녀관계 형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자녀가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친구의 엄마와 다른 외모, 언어 사용으로 인해 자녀가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녀의 언어발달과 학습지도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또래와 어울리지 못해 아이들이 이른바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 부적응을 보이는 다문화가정도 적지 않다.
전남 나주시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는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자 엘레니타와이 페르난데스 씨는 수기를 통해 “한국인 친구도 없고 주위의 누구도 한국어를 가르쳐주지 않고 아이 키우며 바쁜 농사일까지 하다 보니 이민자센터나 도서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에도 자주 못 갔다”며 “그래서 지금도 모르는 말이 많고 아이들 교육하는 데 무척이나 힘이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다행히 페르난데스 씨는 정부의 아동양육 지원사업에 대상자로 선정돼 매주 3회 선생님이 방문해 이야기도 나누고 한국어나 한국문화, 그리고 애로사항과 수다까지 들어줘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부산 남구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는 일본 출신 오구치 유미 씨도 “한국에서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공부를 가르쳐주는 엄마가 많지만 우리 같은 처지에선 한국어를 완전하게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공부를 가르치기가 매우 어렵다”며 “‘국어’는 모든 공부의 기초로 중요한 과목인데도 결혼이민자 가정 아이들은 국어를 제일 어려워한다”고 현실적 고충을 털어놓았다.
유미 씨 역시 정부의 아동양육 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어를 전공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녀에게 국어를 더 잘 가르쳐주게 된 것을 고맙게 여겼다.
정부가 다문화가정 지원을 위해 생애주기별로 마련한 정책효과가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유미 씨는 “서비스를 좀 더 많이 이용하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수기를 맺었다.
“우리가 친척이 아닌 일반 한국 사람한테 상담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친척한테 할 수 없는 상담도 있으니까요. 우리 집에 오시는 선생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것을 많이 도와주시고 특히 자녀 공부에 도움이 되어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 친구한테도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다들 부럽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구자홍 기자
문의·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 02-3141-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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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