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090607호

“양꼬치, 탄두리치킨… 오호! 원곡동”


경기 안산시 원곡동으로 가려면 안산역을 찾는 것이 빠르다. 안산역 앞 지하도를 건너 2번 출구로 나가면 곧바로 원곡동에서도 이국문화의 중심지인 ‘신흥길 시장’이 나타난다. 공식 명칭이 ‘걷고 싶은 길’인 이 시장길은 3백50미터가량 직선으로 뻗어 원곡본동주민센터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이 시장길을 접하는 순간 “오호! 원곡동” 하고 느낄 수 있다. 대로변까지 즐비한 영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으로 된 외국어 간판들, 3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수염에 길고 흰 상의, 터번 차림으로 활보하는 서남아시아 남성, 스키니진을 입은 동남아 여성 등 다양한 인종과 행색의 이국적인 행인들의 모습은 마치 외국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원곡동에는 올해 4월 말 현재 56개국 외국인 3만4천명이 살고 있다. 유엔 가입국의 4분의 1 정도 되는 많은 나라 사람들을 원곡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시장길 양쪽으로는 외국 식품점과 식당이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간식인 해바라기씨와 옥수수국수, 산둥(山東)성 특산 채소절임 등을 파는 중국 식품점과 카레로 대표되는 동남아산 향신료 등을 파는 가게들이 우리말 간판의 가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시장길을 비롯해 원곡동 내 외국인 식품점은 30여 곳. 여느 곳보다 본토 맛에 가까운 양고기꼬치와 춘권, 쌀국수, 탄두리치킨, 말고기요리 등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식당이 80여 곳에 이른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파키스탄, 태국, 네팔, 우즈베키스탄 식당 등 다양하다. 안산시 전체의 외국인 식당 1백50여 개 중 절반가량이 원곡동에 밀집돼 있다.

이곳의 길거리 음식은 떡볶이, 어묵이 아니라 기름에 튀긴 중국식 꽈배기와 과자, 양고기꼬치, 닭발 등이다. 속에 설탕이나 콩가루를 넣은 튀김과자를 팔고 있는 중국 옌볜 출신 50대 아주머니는 얼마냐는 말에 손가락을 내보이며 말한다. “천원, 세 개!” 그리 비싸지 않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의 지구촌문화담당 이종훈 씨는 “이곳 식당들은 고향 맛이 그리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며 “최근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해 맛과 인테리어를 개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특이한 점은 휴대전화를 개설하거나 전화카드를 파는 통신회사 대리점이 서너 가게 건너 한 집일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가게마다 휴대전화를 개설하려는 외국인이 한두 명씩은 눈에 띈다. 이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휴대전화 가게 앞에 매직팬으로 써 붙인 직원 모집 공고도 여느 동네랑 다르다. ‘직원 구함. 한국어, 영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가능한 사람.’

이곳 시장을 중심으로 원곡동 795번지 일대 36만7천5백 제곱미터는 5월 1일 지식경제부로부터 다문화특구로 지정받았다. 안산시는 이에 따라 2013년까지 모두 1백86억원을 들여 특구지역에 다문화원 건립, 특화거리 조성, 외국계 음식점 관광식당화, 세계 전통 민속축제 개최 등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지난해 3월 전국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전담 부서인 외국인주민센터를 개관한 안산시는 외국인을 위한 조례 개정을 하는 등 다문화 정책을 실현하는 대표도시로 꼽히고 있다. 외국인주민센터는 통역 지원, 무료 진료, 상담실과 도서관 운영 등 이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산시에 외국인촌이 들어선 데는 인근에 있는 시화·반월공단과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3D업종을 기피하기 시작한 1990년대, 모자란 일손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워주기 시작했고, 이 외국인 근로자들은 비교적 전월세가 싼 원곡동에 모여들었다. 특히 2000년대 산업연수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원곡동은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주노동자들의 동네로 알려진 원곡동 내부에 최근 조금씩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2의 고향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원곡동에 거주하는 3만4천명의 외국인 중 근로자가 약 2만7천명, 결혼이민자가 약 4천1백명이다. 결혼이민자뿐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녀도 있다 보니 원곡동 거리에서는 이주노동자 가정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안산이주민센터 부설 어린이집인 ‘코시안의 집’에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 원아모집 공고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붙어 있다.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에게 현재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각각 몇 명씩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잘라 말했다. “외국에서 온 부모를 둔 아이들은 모두 다문화가정 아이들이에요.”

시장길에서 ‘목단중국식품’ 가게를 운영하는 중국 뤄양(洛陽) 출신의 황은화 씨는 4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있다. 외국인주민센터 상담실에서 근무하는 하나(32) 씨의 경우 1994년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같은 미얀마 출신 남편과 결혼해 지금은 부부 모두 한국 국적이다. 이 부부의 아이들은 다문화가정 출신 한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2007년부터 시장길에서 네팔 식당 ‘칸티푸르’를 운영하는 네팔 출신 가네시 리잘(30) 씨의 꿈은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네팔에 아내와 아들이 있어요. 열심히 일해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이곳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이방인으로 한국에 건너와 이젠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곳, 원곡동의 낮이 저물고 밤이 되자 낮 동안의 일을 마친 이주민들이 시장길을 중심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피로에 지쳤던 이들의 얼굴도 거리도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다양한 문화의 결합이 가져다주는 활기와 가능성, 원곡동의 얼굴은 바로 그것이다.

글·박경아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