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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실용주의 리더십의 대표적 인물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Change(변화)’라는 선거 캠페인 구호처럼 올해 1월 취임 이후 미국과 세계질서에 많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여러 현안을 통해 다양한 이념적 색채를 보여줬다. 인권유린과 고문행위가 저질러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밝히면서도 알 카에다 등 테러세력에 대한 보수층의 불안감을 달래려 애썼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미군 병력을 증파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노조가 주요 지지기반임에도 보호무역 장벽에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건강보험 개혁과 기후변화 대응,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등에서는 진보 성향이 뚜렷하다는 평가다.
 

인사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임명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고, 레이 라후드(교통장관) 등 공화당 의원을 장관에 기용하는 등 중도 성향을 보여줬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전 미국 국민을 상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성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퍼센트는 진보주의자로, 34퍼센트는 온건주의자로, 그리고 13퍼센트는 보수주의자로 각각 답했다. 이념적 구분이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이념주의자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라며 “성과를 중시할 뿐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스마트 외교’로 대표된다. 군사력, 경제 제재 등 ‘하드파워’를 바탕으로 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는 달리 상호협력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대적인 국가라도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적극적 관여정책과 실용주의는 스마트 외교의 특징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외교정책은 경직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원칙과 실용주의의 결합에 바탕을 둬야 하며, 감정과 편견이 아닌 사실과 증거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사용해왔던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국토안보 보좌관은 최근 언론에 “대테러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미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어 군사적 방법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교력과 대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불평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우리의 힘을 사용하겠다”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도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테러단체 알 카에다에 대한 경계와 압박은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껄끄러웠던 러시아와는 양국관계의 재설정을 의미하는 리셋 외교(적대관계 재정립)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데 러시아가 적극 협조할 경우 미국은 러시아가 반대하는 동유럽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의 후속 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또 양국 핵탄두 수를 1천5백∼1천6백75개로 감축하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주요 2개국(G2)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지난 7월 워싱턴에서 열렸다. 양국은 경제위기를 비롯해 기후변화 대응, 북한 핵문제 등 각종 현안에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국은 미 달러 기축통화 유지 문제, 위안화 평가절상, 중국의 무역 개방 등의 민감한 주제를 피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가시적 성과에 집중했다. 미국은 이번 대화에서 중국이 간절히 바라던 첨단제품의 대중국 수출통제 정책을 완화해주기로 약속했다. 반(半)관영 통신사인 〈중궈신원스(中國新聞社)〉는 금융·경제 분야 합의를 비롯해 오바마 대통령의 연내 방중, 군사관계 개선, 중국인의 미국 방문수속 간소화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4월 쿠바계 미국인에 대한 여행과 송금 제한을 철폐해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맹비난해온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는 지난 4월 미주기구(OAS) 회원국 5차 정상회의에서 만나 화해의 악수를 하고 이후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이슬람과의 화해를 위한 역사적인 이집트 방문과 아프리카 대륙의 가나 방문 등은 세계인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 설정에 치중한 나머지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의 훼손을 지켜만 보는 것은 스마트 외교의 한계로 지적된다. 이란 대통령선거 이후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지만 미국은 개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이후 강경 무력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발언 수위를 낮췄다. 7월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찰이 야당 인사와 언론인에 대해 테러를 저지른 데 대해서도 미국은 키르기스스탄 내 미군기지를 의식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핵 개발을 추진 중인 북한과 이란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차기 공화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북한과 이란의 위협에 굴복하는 유화적인 모습은 미국인들이 매우 견디기 힘든 장면”이라며 스마트 외교의 한계를 비판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흥미로운 분석 기사를 소개했다. 미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에 노력해온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분야 성적이 얼마나 되는지를 인물별로 평가한 것이다.
 

‘미국호’의 선장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높은 A학점을 받았다. 일방주의로 각인됐던 미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의 카이로 연설에서는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며 “미국인은 무슬림의 적이 아니다”고 화해를 선언했다.
 

대통령급 국무장관이라는 기대를 낳았던 클린턴 장관은 A-학점을 받았다. 가끔씩 말 실수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이든 부통령은 가장 낮은 B학점을 받았다. “러시아는 별로 힘이 없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해 미·러시아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방예산 절감에 앞장선 게이츠 국방장관은 A학점을 받았다.
 

야당, 때로는 여당의 반대를 설득해야 하는 대의회 관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난투극보다는 실용주의를 선택해왔다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한다. 큰 것을 얻어내는 데 집중하고 작은 것에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에너지 법안을 ‘입법 실용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에서 에너지 법안이 통과되자 “미래가 과거에게 승리했다” “대담하고 필요한 조치”라며 이를 반겼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각 기업들이 에너지 절감을 통해 확보한 탄소배출권 경매를 약속했다. 의회를 통과한 최종안에는 탄소배출권으로 얻는 이익의 85퍼센트가 개별 기업이 아닌 업계에 돌아가도록 돼 있다. 미국의 전체 전력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율도 당초 오바마 대통령의 목표는 2025년까지 25퍼센트였으나 2020년까지 15퍼센트로 대폭 낮췄다. 석탄산업의 반발을 고려한 양보였다.
 

앞서 경기부양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선 양보-후 환영’의 모습이 반복됐다. 당시 경기침체를 고려하면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이 필요함에도 예산 규모와 형태 등 주요 사항을 의회의 결정에 맡겼다. <타임>은 “미국 국민들이 논의 과정에서 희생된 세부적인 원칙과 제안을 걱정하기보다는 큰 성과를 보고 성공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닌 중도실용 노선을 걷고 있다. 게다가 지지율이 8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요즘 브라질은 경제력과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두 차례나 외채상환 유예 선언을 했고 1990년대에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룰라 후보가 당선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당시 노동자 출신 좌파 정치인인 룰라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시장은 걱정에 휩싸였다. 좌파 대통령이 반시장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우려로 주가가 폭락하고 화폐가치가 급락했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은 시장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자리를 시장주의자로 채우고 노동자를 위한 복지 혜택을 줄였다. 반발하는 지지층에게 지금은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워야 할 때라고 설득했다.
 

성장우선 정책을 통해 브라질 경제는 빠르게 정상화됐다. 5퍼센트대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안정, 일자리 창출 등을 이뤄냈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고 노동자 임금도 올랐다. 또한 긴축예산 덕분에 적자재정 문제가 해소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부채를 예정보다 2년 빨리 상환할 수 있었다. 중산층 살리기와 빈민층 구제로 사회적 안정을 꾀했다.
 

경제적 안정을 달성한 룰라 대통령은 중남미 맹주로서 외교 분야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미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대륙”이라며 “미국은 남미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미국에 태도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분야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를 앞두고는 “남미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대륙”이라며 “미국은 남미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당당하게 미국에 태도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은 반미냐 친미냐의 특정 노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남미 좌파 3인방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와 동시에 미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도 룰라 대통령이 꿈꾸는 브라질의 미래상 중 하나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좌파와 우파 간의 벽을 허물고 실용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거론된다. 대통령 자신은 우파지만 그의 내각에는 좌파와 중도파 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는 일하지 않는 ‘프랑스병’을 고쳐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고 국제문제에서도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공공부문 감축, 사법개혁, 미디어개혁, 규제완화 등 3백여 건의 개혁안을 제시하고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세금 납부 총액이 수입의 50퍼센트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도입했고, 중소기업 투자나 공공단체 기부에 대해 세금을 공제해줬다. 또 역대 정권이 손대지 못했던 난제인 공기업 특별연금 체제를 개혁했고, 좌파정책의 상징인 주 35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주 35시간 근무제의 근간은 유지했지만 각 기업에 근무시간과 관련해 노동자와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아울러 일요일 영업 금지라는 1백년 전통을 깨고 일요일에도 영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사회적 논란 끝에 통과시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또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공무원 2명이 퇴직하면 1명은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무원 감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민간 재원을 유치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벌이는 내용의 대학개혁안은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하반기 6개월간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을 맡으면서 역동적인 외교 역량을 과시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이 발발했을 때 평화중재안으로 전쟁을 중지시켰으며,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정상들을 초청해 지중해연합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심화, 개혁에 대한 반발, 낮은 지지율 등은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에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건 정치인들이 속속 집권에 성공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과거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해온 아시아 국가의 유권자들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제발전에 제동이 걸리자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을 내건 후보를 국가지도자로 선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특히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한국이 실용주의 바람의 진원지라고 지적했다.
 

대만 국민은 지난해 3월 총통선거에서 민족주의자를 거부하고 경제우선주의를 내건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를 선택했다.
 

마 총통은 대선 승리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한국의 경제 성과와 경험을 참고해 대만을 이끌고 가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실용 외교’는 내가 주장하는 ‘활로(活路) 외교’와 서로 맥이 닿아 있다”며 한국 모델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반면 지난해 3월 실시된 말레이시아 총선에서는 경제 및 민생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50년간 집권해온 말레이시아 정당연합 국민전선(BN)이 의회 3분의 2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글·성동기(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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