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나라 행정은 전반적으로 규제를 맹신합니다. 규제에 의존해 행정을 펼쳐나가려 하고, 규제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거라고 착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규제란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규제를 받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습니다.”
지난 6월 27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위원회·관계장관 합동회의에서는 규제개혁 대상 과제 2백80건이 확정됐다. 이들 중 1백45건은 한시적으로 유예되고, 나머지 1백35건은 완전 폐지 되거나 완화가 결정됐다. 이러한 규제 완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최병선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이기도 한 최 위원장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규제개혁의 전도사’로 불린다. <정부규제론> <규제의 역설> 등 규제 관련 저서만도 여러 권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다시 규제개혁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현장에서 느껴온 법과 규제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법과 규제를 현실에서 놓고 보면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문제입니다. 그 결과 국민은 현실과 따로 노는 법을 어기게 되고, 잠재적 범법자가 됩니다. 우리 공무원들은 대체로 책임의식은 매우 강하지만 그 책임의식이 ‘문서상 완벽한 제도’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성과 효율성이 없는 규제로 생기는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국민들의 규제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입니다. 국민이 법을 존중하고 승복하며 따라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 권위가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선별해서 규제하고, 그것을 어겼을 땐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 원칙을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규제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작은 정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근본 원인이라고 봅니다. 흔히 공무원 수를 줄이고 정부 조직과 씀씀이를 축소하는 게 작은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론 맞지만 우리나라 실정에는 맞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번 쌍용차 노사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정부는 각종 사회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별의별 일이 다 정부 책임이죠. 정부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시늉’에 그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국의 음식점 60만~70만 곳을 제대로 단속하려면 어마어마한 행정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일손은 달리는데 정작 작은 정부를 지향하다 보니 나날이 정부조직은 작아집니다. 어쩔 수 없이 공무원들은 규제로 현실에 대응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죠. 따라서 무조건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보다 정부의 업무를 핵심 영역으로 축소하고 민간 부문은 민간 스스로 해결하도록 시장성과 자율성이 작동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규제 완화와 경제는 어떤 관계인지요.
규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늘어납니다.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비리가 만들어지고, 규제에 따르기 위한 불필요한 비용(규제순응비용)이 들어갑니다. 규제를 하는 쪽에선 재발을 막겠다는 생각에 규제를 남발하지만 이 때문에 시간이 낭비되고 금전적 손실이 발생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 조직들은 규제만능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흔히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규제가 약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규제가 경제의 원활한 흐름에 얼마나 방해가 되고 비효율적인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올해 상반기 규제 완화 중 어떤 부분이 경제 살리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한시적 규제 유예’ 조치가 영향이 가장 클 것입니다. 이러한 한시적 규제 유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서 한승수 총리가 우리의 한시적 규제 유예를 홍보하자 ‘아주 강력한 경제 회생책’이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가 논의만 하면 잘할 수 있는 나라”란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책입안에서 실행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역동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역동성을 바탕으로 개혁이 먹혀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대 정부마다 ‘개혁’이란 말을 사용해 매너리즘에 빠진 부분도 있고, 개혁 피로감도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공무원 스스로 개혁하겠다는 자세와 노력이 절실합니다. 우리 위원회가 수문장 역할을 할 테니 모든 정부 부처가 함께 불필요한 규제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요.
올 하반기에는 규제 등록제를 내실화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앨 계획입니다. 1998년부터 각 부처가 우리 위원회에 규제 내용을 등록하도록 법제화됐으나 실제로는 등록이 안 된 규제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부 정책 가운데 ‘지원’이란 명목 속에 들어 있는 규제들을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지원을 위해 갖가지 조건을 붙이다 보면 그것이 사실상 규제가 되고 엉뚱한 사람에게 지원이 되거나 편법과 불법이 동원되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인천 ‘봉고차 모녀’의 경우처럼 비현실적인 규제 때문에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람들이 없어야 합니다. 정부 지원금은 꼭 필요하고 절실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각 부처의 지원사업을 들여다보면 수백수천 가지 유형이어서 방대한 업무가 되겠지만 제가 위원장을 맡는 동안 꼭 해결해보고 싶습니다.
글·박경아 기자/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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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