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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11호

‘나불법 씨의 불법투성이 하루’


정보통신회사 영업사원 나불법 대리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불법 다운로드가 취미인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부터 켠다. 최신 영화와 음원을 무상으로 내려받아 ‘감상’하느라 날 새는 줄도 모른다.
 

불법 다운로드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으며 징역과 벌금형을 병과(倂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대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불법 다운로드를 무사히 끝낼 때마다 큰일을 해낸 듯 우쭐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허구한 날 새벽녘까지 불법 다운로드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아내 온정신 씨가 “그렇게 일하면 벌써 부장 됐을 거예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아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하고 연신 바가지를 긁어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동이 터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나온 아내 온 씨. 다운받은 영화를 보다 지쳐 컴퓨터를 켜놓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잠든 남편을 보니 기가 막힌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급기야 그녀,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당신은 내가 아니라 컴퓨터와 결혼한 사람 같아요.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온 씨가 짐을 싸자 정신이 번쩍 든 나 대리는 “이번만 용서해주면 다시는 다운받지 않을게.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라고 이래?”하고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저자세로 나오는 남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온 씨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하며 짐을 풀고 다시 아침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미 불법 다운로드가 삶의 일부가 돼버린 나 대리의 버릇이 그렇게 쉽게 고쳐질까.
 

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겠다며 나선 나 대리는 시속 30킬로미터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어린이보호구역 ‘스쿨존’에서의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그 이상으로 쌩쌩 달린다. 그러다 건널목을 건너는 한 학생을 보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자동차는 횡단보도를 침범한 뒤다. 다행히 길을 건너던 학생도, 차에 타고 있던 아들도 다치지 않았지만 나 대리는 이마에 가벼운 상처가 났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 급제동을 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운 나 대리는 근처 약국에서 반창고와 약을 사서 응급처치를 하고 회사로 향한다. 순간 ‘지각하면 벌금 1만원’이라던 상사의 말이 떠오른다. 지각만은 면하기 위해 교통신호 위반, 불법 U턴, 차선 끼어들기, 과속 등을 총동원하지만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출근시각보다 10분이나 지난 상황. 온갖 핑계거리를 찾던 나 대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아, 부장님. 출근길에 그만 접촉사고가 나서 이렇게 다쳤지 뭡니까? 지각을 안 하려고 잠도 일찍 잤는데….”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군. 그런데 나 대리, 자네 요즘 실적이 너무 안 좋아. 좀 더 열심히 뛰게.”
 

상사의 다그침에 나 대리는 “거래처에 나가보겠다”며 회사를 빠져나와 담배를 피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가려니 어느 거래처부터 가야 할지 막막하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다들 이미 선약이 있단다. 하는 수 없이 나 대리는 평소 하던 대로 사우나로 달려간다. 그 사이 나 대리가 연달아 피운 담배꽁초들은 길바닥에 나뒹군다.
 

사우나에서 부족한 잠도 보충하고, 몸도 말끔히 씻은 나 대리의 다음 행선지는 PC방. 아내의 눈치가 보여 당분간은 집에서 즐길 수 없게 된 취미생활을 이곳에서 만회할 요량이다.
 

오후 5시쯤 PC방을 나와 열심히 일하고 온 듯 헐레벌떡 회사로 들어간 나 대리. 자신이 한 일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거늘 휴대전화도 꺼놓고 종일 어딜 갔다 오느냐. 급히 부를 일이 있어 이미 여기저기 다 연락해봤다”는 부장의 ‘선제공격’을 받은 나 대리는 숨이 턱 막힌다.






 


 

그날 저녁 ‘또다시 근무를 소홀히 하다 들통 나면 자진 퇴사한다’는 내용의 시말서를 쓴 나 대리는 홧김에 단골 포장마차에서 술을 잔뜩 마신다. 만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그 때문에 손님들이 얼굴을 붉히며 나가자 주인은 가까스로 그를 달래 내보낸다.
 

포장마차에서 나와 대리운전기사를 부른 나 대리는 지나가는 행인에게까지 시비를 건다. 휘청거리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그를 아무도 따뜻하게 받아줄 리 없다. 그러던 중 그는 불현듯 신호가 온 신체반응을 해소하기 위해 포장마차 인근 골목에서 ‘노상방뇨’를 한다.
 

그때부터 정신이 몽롱해진 나 대리는 어떻게 대리운전기사를 만났는지, 요금은 얼마나 지불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눈을 떠보니 집 안방이다. 그런데 거실에서 나는 아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아이를 붙잡고 야단치는 소리다.
 

“왜 못된 짓만 골라 하고 그러니? 숙제도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려고 하면 어떡해! 과자를 먹고도 부스러기는 아무 데나 버리고, 학교에서도 만날 떠들고 질서도 안 지킨다고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잖아….”
 

“아빠도 그러잖아요. 근데 왜 저만 나무라세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데 제가 누굴 보고 배웠겠어요?”
 

아이의 말이 매섭다. 거실에 있던 아내 온 씨도, 안방에 누워 있던 나 대리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던 나 대리는 처음으로 지난날을 가슴 깊이 반성해본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깨진 유리창 이론(The Broken Window Theory)’의 표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제자인 조지 켈링이 1982년 공동 발표한 글에 처음 소개된 깨진 유리창 이론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사소한 불법행위를 일삼다 보니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어느새 회사생활도 가정도 엉망이 된 나 대리. 아들의 충격 발언을 계기로 그는 내일부터는 다른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글·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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