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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여러 노선이 만나는 지하철 환승역은 출퇴근 시간마다 ‘전쟁’을 치른다. 개표구는 물론 통로 곳곳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어깨를 부딪히기 일쑤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곳을 빠져나오면 좌측통행을 지키는 사람들과 몸이 편한 대로 우측통행을 하는 사람들이 뒤엉키기 십상이다. 서로 엇갈려 걷는 통에 마음은 바쁜데 발걸음은 자꾸 더뎌진다.


정부는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고 보행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88년간 뿌리내려온 좌측보행 문화를 우측보행으로 바꾸기로 했다. 국민들도 이를 환영하고 있다.


지난 5월 경향닷컴이 KTF 휴대전화 사용자 중 20대 이상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7퍼센트가 우측보행에 찬성했다. 그 이유로 이들 중 74.9퍼센트가 안전을 고려한 보행 편의를 들었으며, 14.2퍼센트는 국민 대다수가 오른손잡이라는 현실적 측면에서 우측보행에 힘을 실어줬다. 좌측보행이 일제시대 잔재라는 이유를 꼽은 사람도 9퍼센트나 됐다.


15년 동안 우측보행으로의 전환을 주장해온 우측보행국민운동본부 황덕수 본부장(유한대학 겸임교수)도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우측보행이 시행된다니 참으로 다행스럽다”며 우측보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육상 등 모든 경기는 시계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돕니다. 이는 인간의 신체적 발달특성이 좌측을 중심축으로 우측 팔다리에 유연성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좌측통행을 유도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 특성과 반대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우며 글로벌사회에 맞지 않습니다.


또한 외국인들은 우측으로 통행하는데 우리는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치게 되어 충돌(Conflict)이 생깁니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데 좌우 구분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현대사회는 많은 사고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기에 쾌적한 보행환경이 절실합니다.”


황 본부장은 이어 “통행 방향이 바뀌면 약간의 혼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신체 특성과 일치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쉽게 바뀔 수 있다. 게다가 횡단보도 통행 방향과도 일치해 교육하고 지도하기도 쉽다”고 덧붙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행 보행자 통행방식인 좌측통행은 ‘신체 특성, 교통 안전, 국제 관례 등에 맞지 않는다’는 일부 지적과 사회적 논란이 계속돼왔다. 우리나라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 한해 도로의 좌측 또는 길 가장자리로 통행하도록 도로교통법 제8조 2항에 명시하고 있지만 일반보도와 지하철역 보행통로, 심지어는 학교와 유치원 복도에서까지 좌측통행을 관습적으로 지켜왔다.


이 때문에 우측보행 기준으로 설치된 회전문이나 공항 출입구, 무빙워크, 에스컬레이터 등에서 좌측으로 다닐 경우에는 보행자 간 충돌과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지난 4월 29일 제1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행 좌측통행 보행문화를 우측통행으로 바꾸는 보행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5월 27일 열린 제13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내놓았다.


보행문화 개선방안에 따르면 보행 안전과 편의, 심리적 안정성, 국제관행을 고려해 지하철역이나 공항 같은 시설물 내 환승통로, 산책로, 보도는 모두 우측보행으로 전환된다. 예외적으로 보도가 없는 좁은 도로에 한해서는 보행자가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차량을 마주보고 걷도록 하고 있다. 또한 횡단보도는 진입하는 차량과 원거리 확보를 위해 우측통행을 권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통행 유도시설도 개선된다.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지하철 개표구 등의 기존 시설 중 좌측통행을 유도하는 시설은 우측통행에 맞게 바뀌고, 새로 설치하는 시설물은 우측통행에 편리하게 만들어진다. 아울러 지하철역(6백16개소), 기차역(3백27개소), 공항(18개소), 터미널(30개소), 산책로, 등산로 등 교통시설물과 공공시설에 우측통행을 유도하는 안내판 및 안내표지가 부착된다.



보행문화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의 연구는 2007년 9월 착수한 바 있다. 시민단체와 교통운영기관을 비롯해 도시계획·교통공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보행문화개선위원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이를 담당한 한국교통문화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좌측통행은 교통사고 노출 우려가 크고, 보행자의 심리적 부담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공항과 지하철역 출입구, 건물 회전문, 횡단보도를 지날 때 보행자 간 충돌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행문화 개선에 따라 우측통행 문화가 정착되면 교통 안전, 심리적 안정감, 보행 편의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유정복 박사는 “왼손잡이보다 오른손잡이가 6배 많다. 오른손잡이는 신체 특성상 우측으로 회피하거나 행동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측보행이 인체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신체반응특성실험과 모의실험을 통해 우측통행이 좌측통행보다 심리적 부담감을 덜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우선 지금처럼 차를 등지지 않고 마주보며 걷는 대면통행으로 전환하면 교통사고가 20퍼센트 감소하고, 우측통행을 하면 심리적 부담도 13~18퍼센트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눈동자의 움직임은 15퍼센트, 정신부하는 13퍼센트, 심장박동수는 18퍼센트가 각각 감소했다. 아울러 우측통행으로 전환했을 경우를 가정한 모의실험을 분석한 결과 보행 속도가 1.2~1.7배 빨라짐과 동시에 충돌 횟수는 7~24퍼센트, 보행 밀도는 19~58퍼센트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정부는 보행문화 개선에 따른 국민의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공청회, 정책토론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낸 데 이어 단계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보행문화 개선의 필요성과 효과를 적극 알리기 위한 계획도 세워놓았다.


홍보는 이해하기 쉽고 가독성이 높은 방법을 다각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보행에 어려움이 많은 어린이,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홍보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세부 실천계획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우측보행에 대한 홍보영상물과 광고쪽지를 배포하고 TV와 라디오를 통해 안내방송과 토론회를 하는 등 국민의식 제고에 힘쓸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우측보행에 맞게 교과서 수정안을 마련해 내년 3월부터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국토해양부 교통안전복지과 조성태 사무관은 “오는 10월 공공시설물 및 지하철역, 공항, 항만 등의 에스컬레이터와 안내표지 등 시설 개선이 완료된 다중이용시설부터 우측보행을 시범 시행하고, 주요 보행유도시설 개선을 모두 마친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행자 통행방식 개선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도 올 연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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