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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04호

품앗이 교육·엄마표 과외로 똑소리


주부 김은숙(46·서울 하계동) 씨는 가계부 들여다보기가 무섭다. 사교육비 부담 탓이다. 고1, 중2 두 아들에게 들어가는 학원비, 과외비가 월 1백50만원이나 된다. 생활은 늘 빠듯하지만 교육비를 줄일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웃집 따라가기도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교육 광풍에 온 국민이 허덕이고 있다. 욕심껏 시키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사교육.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 최고다. 오죽하면 ‘한국식 사교육’을 해외에 수출하자는 말까지 나올까.


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 2008년 초중고생의 전체 사교육비는 20조9천95억원으로 전년도의 20조4백억원보다 4.3퍼센트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물가가 오른 것과 비례해 가계의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이야기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3만3천원으로 전년 대비 5퍼센트나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사교육비는 월소득의 2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다. 또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지출액이 증가하고 특히 고등학생 5명 중 1명은 월평균 1백만원이 넘는다.


숨 막히는 사교육은 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창 자라야 할 아이들을 초주검이 되게 한다. 고등학교 1학년 김해찬(17) 군은 고교 진학 후 아침 6시쯤 일어나 7시 이전에 집을 나선다. 방과 후에는 학원으로 직행한다. 학원을 마치고 나면 자정이 넘는다. 새벽 별 보고 나가 달밤에 귀가하는 강행군에 지쳐가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 세계 1위, 학생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이라는 웃지 못할 현실에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우등생을 만드는 비결은 없는 걸까? 교육의 질은 두 배로 높이고 교육비 부담은 절반으로 줄이려는 학부모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고액 과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엄마들이 나섰다.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엄마표 교육이 그것. 미술 등 예능에서부터 한글, 독서지도, 유아 영어, 수와 셈 등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가장 큰 장점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점이다. 엄마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인터넷 등을 통해 얼마든지 좋은 학습재료를 구할 수 있다. 전문가 솜씨는 아니어도 아이의 성향과 기호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맞춤형 교육도 가능하다.


‘우리집 학교 엄마 선생님(cafe.naver.com/teachermom my)’의 운영자 박자연(31) 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활용해 한글 교재를 만들고 퍼즐도 제작했다. 박 씨는 “소극적이던 아이가 금세 학습에 흥미를 붙이게 됐다. 아이만을 위한 맞춤형 교재와 학습법이 큰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박 씨가 운영하는 카페의 엄마 회원 1만2천명은 매일 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교재 만드는 법을 카페에 올리며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상위 1% 만드는 통합공부법>의 저자 김유강 씨는 직접 두 아이의 교육 컨설턴트가 되어 학습 전략을 세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11년간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아이들 육아문제로 전업주부가 됐다. 그의 인터넷 카페 ‘사교육비를 절약하는 학습법(cafe.daum.net/eduhow)’에는 한 수 배우려는 엄마들로 북적댄다. 차분하고 꼼꼼한 딸과 덜렁대는 아들의 특성에 맞는 학습법과 함께 최소한의 사교육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노하우를 공개해 관심을 끈다.






‘품앗이 교육’ 열풍이 경기 불황을 타고 불고 있다. 사교육비에 힘겨워하던 엄마들이 의기투합, 이웃과 힘을 합해 극복해보겠다는 전략에서다.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이 통하는 또래 자녀들의 엄마들이 영어, 수학, 피아노 등 각자 전공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엄마들끼리의 친목 도모는 보너스다.


기간을 정해 과목별로 교과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수업마다 교육 후기를 나누는 것이 탄탄한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품앗이 교육은 피아노, 미술 같은 예능교육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야외체험을 함께 하는 품앗이 모임에다 어린이 문화생활을 돕기 위해 연극, 마당극을 미리 관람하는 학부모 온·오프라인 모임까지 종류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보라매 모여라 북클럽(cafe.daum.net/dongwha book)’도 뜻을 같이하는 동네 엄마 7명이 앞장서 만들었다. 수줍음이 많은 초등학교 1학년 외동아들을 둔 신현주(44·서울 관악구 보라매동) 씨가 아파트 단지 안에 전단지를 돌렸고 이를 보고 모인 학부모들이 뭉쳤다. 이들은 직접 자녀의 책읽기를 돕고 교육 커리큘럼, 독후 활동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챙긴다. 2006년부터 시작해 지난 4월 1백회째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콘텐츠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몰려 평택, 대전, 제주는 물론 미국, 중국에서도 북클럽이 결성됐다. 신 씨는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충분한 인성교육이 된다”면서 “누구보다 자녀의 미래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교육개혁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지도하다가 아예 교육전문가가 된 엄마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품앗이 파워(www.pumpa.co.kr)’의 운영자 강선영(36) 씨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계발과 자기 성취감으로 이어진다”고 귀띔했다.






입시학원 하나 없는 산골짜기에 위치한 ‘야마구치’라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가 몇 해 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게야마 히데오 선생이 ‘100칸 학습’이라는 독특한 수학 교수법을 도입해 일본 초등학생 대상 학력 테스트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학생들 대부분이 일본 최고의 명문대에 진학하자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됐고 일본 교육계가 발칵 뒤집히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사교육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우리나라에도 공교육 살리기의 모델로 급부상한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실험을 벌이고 있는 서울 덕성여자중학교 김영숙(57) 교장이다. 그는 2001년 덕성여고 재직 당시 서울지역 학생이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공동학군 내에 있는 학교의 지원율이 55퍼센트로 곤두박질치자 “교사들이 모든 교육을 책임지는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선 성적 부진 학생을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강화했고 우수학생 수준별 수업, 통합 논술·심층 면접팀 운영을 통한 맞춤형 지도에 나섰다. 교사들은 밤 10시까지 근무를 자청했다.


이 학교 8백여 명의 학생이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해결해도 실력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고 기피 대상이던 학교의 지원율은 올해 1백30퍼센트로 뛰었다. 7년간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다 지난해에는 3명이나 합격시켰다. 상위권대 진학률도 급상승했다.


이밖에 서울 관악구 인헌중학교가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인 ‘강감찬 학교’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초중고교를 아우르는 거점학교로 2005년 문을 연 ‘강감찬 학교’는 인근 지역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 현재 68개 강의가 진행 중이다. 거점학교란 예체능 위주였던 기존의 교육과 달리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주요 과목을 가르친다.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전국 방과후 학교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매년 수강생 수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문부성 교육 담당자가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영어. 수준별 무학년제로 학력 수준에 맞춘 눈높이 수업이 특징이다. 영어 말하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원어민과 내국인 강사가 번갈아 수업을 진행하고 iBT 토플, 텝스 등 영어인증 모의테스트도 치른다. 수업료는 일반 학원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자연히 지원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이 실시 중인 ‘대학생 멘터링’ 프로그램도 큰 비용 없이 중고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효과를 입증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생 멘터’로부터 방과후 수업을 받은 부산 북구 금사중학교 재학생 전원의 성적이 급등하면서 타 지역 교육청과 대학들의 벤치마킹 움직임이 분주하다.


글·허윤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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