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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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고 욕심내는 일이 벌어진다. 보고 떠나는 수학여행 같은 여행, 6박 7일에 동남아 4개 나라를 돌아보는 여행, 명소를 얼마나 많이 보고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느냐를 자랑하는 여행은 잊어라. 초보여행일수록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어진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와 동영상까지 동원되어, 내가 보지 않고, 카메라의 눈을 통해 한번 보고 돌아오는 여행도 많다. 이런 현란한 백화점식 여행은 피하고 한 곳에 머물며 의미를 음미하는 여행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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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업인 필자는 소백산 남쪽을 여행하면서 예전에는 풍기→소수서원→선비촌→금성단→부석사→봉화 닭실마을→청량산 코스를 1박 2일에 주파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양반인 셈이다. 2박 3일 일정을 짜면서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여정을 짜는 경우가 있다. 길에 버리는 시간과 기름값이 아깝다. 요즘은 이렇게 동선을 짠다. 소수서원→선비촌(1박)→금성단→순흥 읍내→묵밥집→죽계구곡으로 마무리한다. 소수서원 옆에 붙은 선비촌에서 하루 묵고 그 주변을 여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성단과 순흥 읍내까지는 걸어 다닌다. 좀 더 걷기를 원하면 죽계구곡까지 가는데, 그곳은 그늘이 적고 시멘트 포장길이어서 여름에는 걸어가라고 권하기가 곤란하다. 죽계구곡 안쪽의 초암사에서 달밭골계곡을 걸으면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초암사는 퇴계 이황 선생이 소백산 국망봉을 오르는 길에 하룻밤 묵었다는 곳이다. 이렇게 옛이야기 속 위인을 만나는 것도 두 발로 걷는 녹색여행이 주는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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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생활체험이 한옥체험이다. 한옥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다. 보통의 한옥은 안채에는 주인이 살고, 바깥채나 사랑채를 내주어 한옥체험을 하게 한다. 그런데 사실 안채가 궁금하다. 손님이 아니라 ‘한옥의 주인’이 되고 싶다. 그런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곳이 순흥 소수서원 옆 선비촌이다. 선비촌은 세트장이 아니다. 경북 북부 지방의 한옥들을 그 모양 그대로, 돌부리 하나까지 복원해놓았다. 선비촌 집 한 채를 빌리면 그날 하루는 그 집의 주인이 된다. 그래도 사람 사는 한옥을 가고 싶다면 이렇게 해라. 그 집의 ‘진짜 손님’인 것처럼 행동하라. 지난달 안동의 한옥에 가서 실수를 했다. 밤이 적적하여 마루에 앉아 양념통닭에 맥주를 시켜먹고, 노래까지 한 곡 뽑았다. 다음 날 아침 안채에 머물던 주인 할아버지가 집안 다 망가졌다고 언짢은 얼굴로 마당을 배회했다. 우리도 불편했지만, 한옥체험을 한다면서 마치 강가 유원지로 놀러온 것처럼 했으니 결례를 한 것이다. 여행은 때로 불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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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드라마 세트장은 자칫 공해가 될 수 있다. 세트장을 위해서 6개월, 아니 3개월만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놓고, 드라마 찍고는 빠져나간다. 시청자들은 그곳을 주인공처럼 배회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모든 가짜를 진짜처럼 만든다. 사진과 어깨를 겯고 사진을 찍으면 모든 게 사진이 된다. 그 옆에는 불타기 쉬운 소재로 건물이 지어졌으니 불조심하라는 표시가 적혀 있다. 담벼락은 무너질지 모르니 기대지 말라는 말도 있다.
영주 선비촌을 높이 치는 것은 이렇게 서너 해 지나면 쓰레기가 될 세트장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을 갈고 건물을 지을 거라면 후손에게 물려줄 집을 지어야 한다. 고로 환경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수명 짧은 세트장 여행은 이제 그만하라. 이것은 녹색관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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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유행이다. 차를 타고 가던 여행에서 걷는 여행으로 돌아서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삶의 속도도 느려지는 것 같다. 그동안 무시해왔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숲을 걷는 것은 더욱 싱그럽다. 그런데 자연에 가까이 가더라도 자연을 알아야 한다. 벌꿀 농사를 짓는 이가 6년째 벌꿀 흉년이라면서 한마디 충고를 한다. 숲 속 나무에 옷을 걸어두지 말란다. 숲 속에 벌렁 눕지 말란다. 풀밭에 함부로 앉지도 말란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예전에는 휴전선 근처에나 있었던 유행성출혈열이 이제는 전국에 다 있단다. 유행성출혈열은 급성으로 발열, 요통과 출혈이 발생하는 질병으로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감염되는 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숲을 즐기되, 숲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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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주 선비촌으로 들어가 보자. 그곳에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가족여행을 갔다. 그런데 마당에서 친구 부인이 딸들을 데리고 화단에서 꽃을 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꺾었다. 꽃 이름을 가르쳐주더니, 그 꽃을 딸아이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예뻤냐고? 예쁘지 않았다. 지천으로 나 있는 들풀이라면 모르겠다. 누군가가 가꿔놓은 화단에서 꽃을 꺾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더욱이 아이를 앞세우고 예절을 어기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요즘 부모들이 그렇다. 자식을 한둘 두다 보니 자식만큼 귀한 게 없다. 예전에는 식물을 꺾어다가 책갈피에 넣어 식물표본을 만들었다. 이제는 발상을 달리해야 한다. 여행을 가면 식물을 꺾지 않더라도, 꽃을 따지 않더라도 식물표본을 만들 수 있다. 사진을 찍어라. 그리고 그것을 식물도감과 비교해 보고, 표본을 만들어라.
글·허시명(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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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