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부패가 만연한 국가에서는 시장원리가 왜곡되고 기업들은 경쟁력을 가지기 힘들며 결국에는 경제전반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부패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방해해 정치안정과 경제성장, 사회발전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핵심적인 정책(UN반부패협약, OECD뇌물방지협약, APEC반부패회의 등)이 되고 있다.
우리는 특권구조가 부정과 부패를 불러온다는 것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았다.
외환위기 이전 한보그룹의 대규모 대출비리, 기아자동차의 3조 원 가량의 분식회계, 대우그룹의 10조 원대의 불법대출, SK글로벌의 5조 원대 분식회계 등은 재벌과 정부, 정치권의 그릇된 정경유착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갔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은 이 같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특권과 부패를 근절하고 정치, 공공, 기업, 시민사회 등 사회 각 부문을 반부패 활동의 주체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제2건국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부패방지법, 자금세탁방지법 제정 등을 통해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제반장치를 마련했다.
참여정부는 2004년 3월 여·야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1년여간 끌어왔던 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3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금권·관권 선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거대 부패들이 점차 사라지고 투명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한 역사적 진전이었다.
또 ‘관치 경제’로 상징되는 개입과 간섭의 경제모델이 사라지고, 시장 자율과 공정한 경쟁을 통한 혁신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행정 권한의 독점적 행사에 따른 폐해와 정경유착과 같은 부정부패·특혜의 고리가 다시 살아나기 어렵게 됐다.
김덕만 국가청렴위원회 공보담당관은 “핀란드와 아일랜드처럼 잘 사는 경제 선진국은 사회 건전화 수준이 높은 청렴 선진국이 먼저 실현돼야 가능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며 “국가청렴도는 곧 경쟁력이며 21세기 경제부국들 대부분은 공직사회가 투명하고 청렴하며 대외신인도도 높다”고 강조했다.
권태욱 기자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우리는 압축·고속성장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근면, 성실의 건전한 가치관은 외환위기를 맞으며 퇴색됐으며 물질과 쾌락 추구가 삶의 목표가 되고 있다. 함께 잘 산다는 의미는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의미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선악을 가리고 우리 행동을 제어하던 ‘도덕 나침반(Moral Compass)’은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기 작동 불능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오는 실정이다. 권력 남용과 이권 개입, 뇌물수수와 청탁, 분식회계 등의 각종 불법 형태가 판을 쳤다.
페루의 후지모리 정권이나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권에서 보듯 부패한 정권엔 미래가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짓과 사기, 부정과 부패, 나태한 국가는 사회적 비용이 높고 국가 신용도도 낮아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높은 싱가포르의 경쟁력 원천은 바로 반부패와 투명성에 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자서전에서 부패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외환위기를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쾌락만능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고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대통령 자신부터 몸을 낮추었고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던 권력기관들은 특권과 구태를 처절한 반성과 개혁의 몸부림으로 이겨내고 법과 국민의 통제를 받는 민주적인 기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정치권력이 기업에 각종 특혜와 이권을 베풀고 그 대가로 정치자금을 조달해 왔던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었던 정경유착 관행의 고리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끊어졌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돈 선거와 관권 선거를 방지하고 공정한 선거제도를 이뤄냈다.
10년 전 기능 상실의 위기에 빠졌던 ‘도덕 나침반’이 외환위기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정상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은 치열한 자성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국민 위에 군림하던 조직에서 국민들의 실생활을 돕는 ‘맞춤형 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권위주의가 횡행할 당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때는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이들을 동원해 정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갖은 정보와 수사권을 쥔 권력기관들은 정권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앞세웠다. 대통령은 이들 기관들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탄압하거나, 기업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국세청을 동원해 세무조사를 벌이는 등 권력기관의 힘을 사적으로 활용하려는 ‘외풍’도 거셌다.
정권 교체 때마다 권력기관 개혁의 시도가 있었지만, 기관명이나 인적 구성을 바꾸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병을 앓는 환자에게 외과용 메스만을 들이댄 셈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 기관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인권침해’, ‘권력의 시녀’, ‘정치개입’이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는 ‘탈정치·탈권력화’의 개혁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탈바꿈했다.

● 세계 5대 정보기관 꿈꾸는 국가정보원 외환위기 이후 국정원은 ‘탈정치·탈권력화’를 향해 부단히 달려왔다.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준수하고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는 사찰성 정보수집 업무의 폐지 등을 통해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왔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국정원장의 대통령 직보(直報) 체제를 대폭 개선해 모든 정보를 대통령이 독점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주요한 정보의 흐름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사무총장으로 있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등으로 통합하는 등 과거의 수직적인 보고 구조를 횡적인 연결 및 토론 체제로 바꿨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의 정보 독점은 권력기관의 충성 경쟁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국내 정치에 대한 과도한 정보 공급이 우선시됐으며, 이런 구조가 국내 정치에 대한 권력기관 개입의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 2004년 11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원장 직속으로 출범시켜 ‘과거 정권하 불법감청 고백’과 ‘과거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중앙정보부·안기부 시절 정보활동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낱낱이 고백, 국민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환골탈태하는 데 성공했다.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 정보를 대변하는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초일류 글로벌 정보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기 위해 10년 이내에 세계 5대 정보기관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김만복 원장은 “국정원이 21세기 선진정보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신뢰가 필요하다”며 “지금까지의 혁신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발전된 미래개척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 국민의 지팡이 경찰 10년 전 인권탄압의 최일선에서 때로는 비인간적인 수사까지도 마다하지 않던 경찰. 권위주의 정권의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하며 생활치안보다 시국치안에만 열 올리던 ‘정권의 경찰’은 이제 사라졌다.
경찰의 가장 큰 변화는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참여정부는 경찰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2년 임기제를 도입해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민 봉사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토대를 만들었다. 1991년 경찰청 출범 이후 역대 청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13.8개월에 불과했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전에 추진됐던 경찰인권위원회나 시민감사위원회, 고객만족센터 등 구상만 있었던 제도의 틀을 갖추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효율성을 높인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권력기관에서 봉사기관으로 이양’이라는 참여정부 철학에 맞춰 경찰은 큰 변화를 일궈냈다. 한 예로 경찰은 인권탄압의 상징이었던 서울 남영동 대공 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바꿔 안보문제를 더 이상 정권 보위에 이용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 정치적 중립성 확립한 검찰 검찰은 외환위기 이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검찰 스스로 검찰 내의 권위주의적 요소를 줄이고 검찰문화를 자율적으로 혁신시키는 등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냈다.
2004년 현직 대통령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 독립의 상징이다.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세간의 의혹을 물리치고,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마무리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선진적인 정치풍토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외에도 검찰은 2003년 5월 검찰개혁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켜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 강화, 엄정한 자체 감찰시스템 확립, 국민에게 다가가는 검찰 등 3대 개혁목표를 설정하고 2003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특히 검찰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 참여를 늘리고, 직위공모제를 도입하는 등 검사 인사시스템을 개편했으며, 검사들이 소신껏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검찰동일체의 원칙도 수정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선거 때만 되면 금권선거가 횡행했다. ‘30억 원이면 당선이고 20억 원이면 낙선한다’는 ‘30당 20락’ 국회의원 선거 풍문은 그 당시 회자됐던 유명한 일화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과거와 같은 돈 선거 문화는 물론 청중동원, 조직선거는 힘을 잃었다.
선거 이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직접 대선자금 공개를 제안하고 공정한 수사로 이어진 것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 같은 아픔을 겪은 우리 선거문화는 이제 정경유착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기형적 정치풍토, 정치권과 기업이 서로 기대어 기생과 공생을 거듭하는 왜곡된 구조는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됐다.
2004년 3월 여야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1년여간 끌어왔던 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 3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전격 합의처리됐다. 개정 정치자금법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후원금 기부를 금지했고, 개인후원한도도 연간 1억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낮추고 연간 120만 원 이상의 고액기부자는 신상을 공개하도록 했다. 또 1회 20만 원 이상의 지출은 계좌입금이나 신용카드 또는 수표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정치자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개정 정당법은 지구당과 정당연설회 폐지 등 조직동원 방식의 선거운동을 근본적으로 허용치 않았다.
‘30당 20락’은 이제 과거사가 됐다.
투명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에 정착된 깨끗한 선거문화가 사회 여타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성과다. 농·축·수협 등의 선관위 선거 위탁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발전 수준에 걸맞지 않은 취약한 복지수준을 보였다. 경제개발 시대에 ‘저복지 선성장’ 정책 기조 때문에 복지 재정투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는 서둘러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고 실업급여 대상을 늘렸다. 국민연금 가입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도 이때였다.

특히 참여정부는 사회안전망을 보다 튼튼하고 촘촘하고 유기적으로 만들어왔다. 복지를 소모적인 지출이 아닌 인적자원을 육성하는 사회정책이자 성장동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투자전략으로 보고 사회투자를 늘려왔다.
외환위기 이전에 생각하기 힘들었던 저소득층 보호장치가 10년 동안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 주변의 취약계층을 지탱하는 사회안전망의 그물이 보다 넓고 촘촘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근간으로 여러가지 사회안전망과 복지 제도가 도입되고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또 빈곤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큰 줄기가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00년에 도입돼 기존의 생활보호법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복지를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것으로 당시 한국 복지 역사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그러나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07년 6월 ‘기초보장체계 개편 기획단’을 구성해 소득·주거·교육·의료 등 욕구별로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소득보장을, 퇴직자에게 연금을, 병든 사람에게 치료를’이라는 전통적 복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사회투자를 통한 복지로 정책을 바꿔나갔다.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자활급여법’을 만들어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 무상교육비 지원도 대폭 늘렸다. 2002년 239억2900만 원에 불과했던 지원금은 2005년 1261억 4100만 원으로 늘었다. 또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을 만들어 대상자를 2006년 22만9000여 명에서 올해 50만7000여 명으로 늘렸다.
수당지급액도 월 7만 원에서 13만 원으로 늘리고 장애아동부양수당도 매월 20만 원으로 확대해 지급하고 있다. 장애인 예산은 2002년 3200억 원에서 2007년 6700억 원으로 증액했다.
또 내년 1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인 중 하위 60%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월액의 5%인 8만4000원가량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실시돼 노령층을 위한 안전망이 더욱 확대된다. 또 내년 7월부터는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수발급여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다.
외환위기 이후의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체감 복지수준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 뒷받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선진국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지난 7월 20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이름) 건설이 온 국민의 기대속에 기공식을 갖고 첫 삽을 떴다. 지난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중단됐다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다시 추진된 지 4년 만이다.
또 지난 9월 12일 제주 혁신도시와 10월 24일 태안 기업도시가 잇따라 착공되면서 국토 재구축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역균형 발전을 이루려는 정부의 노력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었다. 외환위기 이전 권위주의 정권의 균형발전 정책은 주로 수도권을 규제하는 데만 집중됐다. 또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지역균형개발기획단, 과밀부담금제 등 다양한 지역균형 발전정책을 폈지만 규제와 완화를 거듭하면서 수도권은 더욱 비대화됐고 지방의 경쟁력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는 수도권 과밀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균형발전에 대한 접근방식을 중앙 의존형에서 자립형 지방화로 전면 수정했다.
국가불균형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사회적 양극화’에 더해 ‘지리적 양극화’라는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은 통합적 균형과 역동적 균형의 동시 추진이다. 낙후지역에 투자를 확대해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지역간 경쟁을 통해 나타난 결과의 차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불균등 발전으로 왜곡됐던 국토이용을 바로잡고, 도시공간구조를 수도권 중심의 일핵 중심에서 다핵·다극화한다는 뜻이다.
10개의 혁신도시, 6개의 기업도시, 각 지방의 혁신 클러스터가 건설되면 우리 국민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새로운 생활공간이 제공될 것이다. 생활공간의 수준을 바꾸는 것이며 대한민국에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특히 세종시 건설은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극심한 쏠림현상을 해소하고 국가불균등 발전으로 왜곡됐던 국토이용을 바로잡기 위해 추진되는 국토재구축 사업의 일환이다. 단순한 의미에서의 ‘지방 살리기’가 아니라 서울·수도권 사람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균형발전 정책이다.
50년간 계속된 남북의 냉전적 대결구조가 외환위기 이후 평화와 경제공동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평화·번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 북핵 문제가 평화적 해결 단계로 접어들고 남북 경제협력도 한층 발전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을 시작으로 9·19공동선언, 2·13 합의, 2007남북정상선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평화를 위한 안보’ ‘안보는 경제’라는 명제를 입증했다.
냉전과 대결의 반세기를 종식하는 평화공존의 10년이 열린 것이다.
남북한은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회담을 통해 금강산 육로관광과 개성공단 건설을 성사시켰다. 이런 가운데 양측은 서로의 인성과 문화를 이해하게 됐고, 매우 초보 단계에 불과하지만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는 북한 근로자가 남한 근로자와 함께 생산에 참여하고 있고, 금강산을 비롯해 내년에는 백두산도 관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어 가는 주춧돌을 놓았다. 남북경협과 교류협력 관계를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진전시켜 동북아의 주도적인 한반도 경제권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ET_IMAGE]6,original,left[/SET_IMAGE]지난 11월 23일 오전 미국 워싱턴.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여덟 번째 연사로 나섰다.
이날 연설에서 권 부총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대한 적절한 관리, 국제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지나친 엔캐리 트레이드의 규제 필요성을 선진국들에 주문하고, G7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국부펀드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하나같이 선진국들 입장에서는 ‘귀에 가시’처럼 들릴 만한 거북한 발언들이었다. ‘IMF 관리체제 하에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하고 있다. 한국에 많이 투자해 달라’는 고정된 레퍼토리를 늘어놓던 과거 경제부총리의 총회 연설이 외환위기 10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 위상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특히 권 부총리가 거리낌 없이 주요 선진국들에 완곡한 조언을 한 데 대해 로드리고 드 라토 IMF 총재는 우수한 연설 중 하나로 꼽으면서 “회원국들이 권 부총리의 주장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소개하기도 해 우리 대표단을 한껏 고무시켰다.

국가신용등급 상승, IMF 지분(Quota) 확대 등 국제적 위상이 강화된 것이다.
실제 지난 2006년 IMF/WB 연차총회에서는 한국, 중국, 터키, 멕시코 4개국의 IMF 쿼터 특별증액이 가결됐다. 우리나라의 쿼터는 0.764%(세계 28위)에서 1.346%(세계 19위)로 증액됐다.
전체 184개 IMF 회원국 중 4개국만의 쿼터가 증액됐고 이중에서도 한국은 75%로 중국(25%), 터키(22%), 멕시코(18%) 등에 비해 가장 높은 쿼터비율 증대를 이뤘다.
IMF는 이를 “IMF 설립 61년 만에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개혁”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IMF 쿼터 증액은 곧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국제 발언권이 제고됐음을 의미한다. 높은 쿼터 비중을 기반으로 앞으로 우리의 IMF 이사직수임도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사직 수임 국가(24개국)는 IMF의 중요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멤버일 뿐만 아니라 IMFC(국제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참석을 통해 주요 국제금융 이슈에 대한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 아울러 국제금융센터의 설립, 외환전산망 및 대외부문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 구축 등 위기예방 시스템의 강화와 아세안(ASEAN)+3 상호자금지원 체계 수립 등 역내 위기대응 체제도 확립됐다는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온 국민이 똘똘 뭉쳐 고통을 분담하면서 위기를 이겨 낸 것이 현재 우리의 위상을 이렇게 바꿔 놓았다.
또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나 회의를 개최해 세계인들의 뇌리에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2000년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서울 개최, 2002년 월드컵축구 한·일 공동개최와 부산아시아게임 개최, 2005 부산 APEC 개최, 2012 세계엑스포 여수개최 등을 통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또한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IT강국, 한류열풍을 주도한 나라,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가 한 단계 격상된 자긍심을 갖게 했다.
지금은 우리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간 체납돼 왔던 1억3000만 달러의 국제기구 분담금의 체납 분을 완전히 해소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국제기구 분담금은 유엔의 각종 구호 활동은 물론이고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도 적극 나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의무를 다하며 국제분쟁 방지에 힘쓰고 있다.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안도 선진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외환위기 이전 권위주의 체제에서 막혔던 사회갈등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국민의 참여의지가 높아지면서 사회갈등이 폭발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갈등은 사회 안전을 저해하는 혼란으로 여겨졌고 표출된 갈등은 주로 공권력에 의해 좌절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는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억압했던 제도를 개선하고 시민참여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면서 대화 타협이라는 방법을 통해 대결과 반목의 갈등을 풀고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경주 월성원자력 환경관리센터,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공사, 항만인력 공급체계 개선, 평택미군기지 이전은 권위주의식 갈등해결이 아닌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뤄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권태욱 기자

[SET_IMAGE]7,original,left[/SET_IMAGE]인생을 살다보면 몇 번의 고비를 겪게 된다. 이 역경을 이겨내면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되고, 거기서 주저앉으면 실패자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안다. 사람만이 아니다. 국가도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선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남느냐 향방이 갈린다. 우리사회 역시 여러 고비를 넘겨왔지만 그 중 IMF 외환위기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니, 되찾은 10년이니 평가도 분분하다.
막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외환위기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인생을 새롭게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삼은 이들도 있다. 프로축구팀 제주유나이티드 골키퍼인 조준호(35)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신석초등학교, 대신중·고등학교, 홍익대학교를 나온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프로행을 택하지 않고 실업팀인 주택은행을 택했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팀보다는 안정적인 실업팀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은퇴 후 은행원으로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주택은행 축구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첫 직장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에게 가족과 다름없었다. 또 팀의 주축 멤버로 98년도 한국 춘계 실업 축구연맹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기쁨도 얻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안정적으로만 보였던 은행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택은행이 팀을 해체해버린 것이다.
팀 해체 쓰라림 … 5년 고생 끝에 당당한 주전
“당시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고 시중 은행들이 직격탄을 맞았었죠. 그래서 은행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정리대상 1순위가 운동팀이었어요. 제가 있던 주택은행도 해체의 수순을 밟았어요. 그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축구팀이 해체됐어도 조씨는 주택은행 직원이었기 때문에 은행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평생 해온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프로 드래프트에 참가해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로 했다. 99년도 프로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3순위로 포항에 입단했다. 그 당시 나이가 27세였다.
프로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포항에는 김이섭이라는 터줏대감이 자리잡고 있어서 벤치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김이섭 선수의 군 입대로 빈자리를 꿰차면서 팀의 주축선수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했어도 팀의 성적이 부진했다. 2000년 시즌 포항의 성적은 10개팀 중 9위. 포항은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를 영입해 회생을 꾀한다. 이 말은 조준호는 다시 벤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선수들은 자기가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다른 팀으로 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끝이에요. 그래서 금세 그 생각을 접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훈련을 했습니다.”
벤치에서 3년 동안 기약 없는 준비만 하던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제주유나이티드에 32살의 나이로 입단하게 됐다. 마지막 기회인 그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지금은 당당하게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2006년 잠깐이나마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포기 않고 준비하면 기회가 온다
“만약 제가 외환위기 때 포기했다면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면서 항상 아쉬워했을 거예요. 물론 태극마크는 상상도 못했겠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제가 사랑하는 축구를 평생 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조준호 씨는 먼 미래보다 항상 당장의 계획을 세운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반드시 팀 우승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좀 더 멀게 보자면 친구 같은, 친형 같은 지도자가 될 꿈을 꾸고 있다.
“누구든 실수는 하게 되고, 그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실수하면 코치한테 심하게 혼나기 때문에 실수 자체를 두려워해요. 그렇게 위축되니까 더 나은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요. 제 역량을 발휘하고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선수를 양성하려면 억압하는 분위기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친형 같은 지도자가 꿈인 조씨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상한 선배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면 기회가 온다고 말이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다 아는 말이지만 지키기가 힘든 말이기도 하지요.”
그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IMF 때도 이겨냈는데 이번에도 버텨보자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오기가 바탕이 된 것 같다며 웃는다.
이선민 기자


[SET_IMAGE]8,original,right[/SET_IMAGE]‘한류’는 1990년대 후반 중국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다. 젊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 패션, 게임, 음식 등 대중문화와 한국의 인기 연예인을 동경하고 배우려는 문화현상을 말한다.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CC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중국에서 외국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한국가요가 본격 소개되기 시작했다.
2000년 H.O.T.의 베이징 공연에 이어 안재욱, NRG, SES, 베이비복스, 신화가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별은 내 가슴에’ ‘해바라기’ ‘안녕 내 사랑’ 등 드라마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한류는 커다란 흐름이 된다.
대만,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 대륙을 점령한 한류는 다시 일본에 상륙하더니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최근에는 몽골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까지 아우르고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멕시코 청소년들이 ‘대통령님 장동건, 안재욱 오빠를 멕시코로 보내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광경이 벌여져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아톰’ ‘타이거마스크’ ‘코난’ 등 일본 만화영화를 보며 자랐고 이소룡, 성룡, 주윤발이 나오는 홍콩영화를 보느라 극장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이제는 배용준, 이영애, 장동건, 보아, 장나라, 동방신기에 중국과 일본, 동남아의 청소년들이 열광하고 ‘대장금’이 한국문화 최고의 히트상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재미있고 한국의 스타들이 멋있어서 생겨난 현상이다. 결국 그동안 축적해온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류는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이 됐다. 일부 대기업만이 한국의 전부인줄 알던 세계인에게 음식과 한복, 한글 등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SET_IMAGE]9,original,right[/SET_IMAGE]2000년대 들어 ‘웰빙’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서양의 개념이 미국의 언어로 수입된 것으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해온 서구 문명에 대한 반성이 담겨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1960년대 명상, 요가, 불교 등 동양의 문화가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그룹 비틀스가 인도로 가서 명상을 즐기고 마약에 탐닉했다는 이야기에는 이런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다.
서양의 사고는 ‘나’라는 주체와 그 밖의 ‘대상’을 객체로 분명히 구분하는데 동양적 사고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나’를 파악한다. 이런 동양적 사고가 때때로 서양에 전해지면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환경파괴가 가속화하고 아토피, 고혈압, 비만, 스트레스 등 질병이 만연하면서 ‘육체적·정신적 조화’라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웰빙은 몸에 병이 없는 건강한 상태뿐 아니라,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느끼는 소속감이나 성취감, 여가생활이나 가족의 유대,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다.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웰빙이다.
웰빙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양의 고민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정신적인 공허감도 높아졌다. 모든 상품에서 천연재료가 강조되고 유기농 식품의 인기가 높아졌으며 수치로 말할 수 없는 주거환경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명상, 요가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런데 웰빙이라는 말에서는 어쩐지 이기적이고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나 홀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의지와 비싼 대가를 지불하라는 돈의 냄새다. 본래 정신적 조화의 개념인데 그저 제 몸만 튼튼하고 저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왜곡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참살이 운동 등 자연, 사회와 조화를 모색하는 공동체 운동이 확산되고 우리 농산물이나 토종 등에 대한 관심에서 새로운 생활문화가 태동할 가능성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SET_IMAGE]10,original,left[/SET_IMAGE]사람들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집이나 길거리 등 어디서나 뭐든 보이기만 하면 디카와 폰카를 내민다.
셀카도 많이 찍는다. 수시로 자기를 찍어서 자기가 보고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주고 친구에게도 전송한다. 아예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온 국민이 보도록 한다. 의상을 갖춰 입고 분장하고, 시나리오를 짜서 춤을 추거나 연기를 하는 등 자신을 드러내는 온갖 동영상을 만들어 공개한다. 동영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 전국에 알려지는 일도 흔하다. 사생활도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자기표현의 욕구를 유감없이 발산한다.
디카·폰카의 유행은 사람들 사이 소통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던 매체(미디어)의 역할이 사라지고 직접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등장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에게 정성스레 빵을 먹여주던 알바 여학생의 모습은 폰카 동영상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사건, 사고 언론 보도에 디카로 찍은 영상이 소개되는 일도 잦다. 전국에서 수백만이 넘는 카메라가 찍어대니 신문과 방송이 따라갈 도리가 없다.
셀카, 디카, 생얼, 웹캠 등 단 두 글자로 줄인 말들은 ‘즉석’으로 표현되는 인스턴트 문화를 함축한다. 번거로운 절차는 사라졌다. 간단하게 찍고, 결과가 마음에 안들면 삭제하고 잊어버린다. 천천히 생각하고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은 제쳐버리면 그만이다.
가볍게 움직이는 젊은이를 보고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일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러나 본래 문명은 사람이 편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과거기준으로 현재의 변화를 재단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더욱이 디카의 광범위한 보급은 어두운 곳에도 카메라를 들이대 고발을 활성화하는 등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SET_IMAGE]11,original,right[/SET_IMAGE]2003년 7월 2일 서울 도곡동 한 오피스텔에서 ‘기러기 아빠’(36)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는 두 자녀를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내고 아내마저 출국한 뒤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회사가 운영난을 겪으면서 가족에게 보낼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고민했다고 한다. 더구나 우연히 만난 한 여성과 불륜에 빠졌고, 급기야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자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자녀를 유학 보내고 홀로 이곳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기러기 아빠’는 1969년 이미자 씨가 불러 히트한 노래이기도 한데 ‘아빠는 어디 갔나 … 우리는 외로운 형제’라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아빠와 떨어져 사는 자녀들의 외로움을 표현했다면 그럴 듯하게 들어맞는다.
또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새로운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새끼를 키운다고 알려져 사랑을 상징한다. 전통혼례에서는 백년해로의 서약을 할 때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전달한다.
기러기 아빠의 탄생은 IMF가 몰고 온 국제화 바람과 맥을 같이 한다. 영어가 유창한 해외파가 득세하면서 자식을 ‘영어 깨나 하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희망과 지나치게 상승한 사교육비, 황폐한 교육현실에 대한 반작용 등이 조기유학 바람을 몰고 왔다.
강한 신분상승의 욕구와 유별난 교육열, 그리고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국적인 특성이 만들어낸 특이한 현상이다.
홀로 남겨진 아빠들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높은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면서 외로움을 견뎌야 했고 사업에 실패하거나 하면 이혼을 당하는 등 가족해체 현상까지 나타났다. 자살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속출해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마땅한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조기유학생은 2006년 한 해만 2만9511명에 이르는 등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기러기아빠도 2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씁쓸함을 더한다.

[SET_IMAGE]12,original,left[/SET_IMAGE]2002년 6월. 세계 축구의 최대 잔치인 월드컵이 열린 한국은 온통 빨간 색 천지가 됐다. 사람들은 모두 빨간 옷을 입고 거리로 뛰어나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외국인은 한참 가르쳐도 잘 따라하지 못하는 엇박자 리듬을 어린 아이들도 쉽게 하는 걸 보면 한국인은 신명이 넘치는 민족이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첫 경기가 열린 4일 50만 명의 붉은악마가 거리에 나섰고 10일 77만 명, 14일 279만 명으로 늘더니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 아예 폭발했다. 18일 8강전 거리응원 420만 명, 22일 4강전 500만 명에 이어 독일과의 준결승전이 열린 25일에는 무려 700만여 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전국의 주요 거리를 물들였다. 유럽, 중국, 미국, 남미에서 해외동포들도 붉은악마로 변신했다. 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랐다.
월드컵이 끝나자 분분한 분석이 등장했다. 크게 민족주의의 고양, 참여하는 광장문화의 확산 등이 꼽혔다.
IMF로 위축됐던 민족적 자존심이 월드컵 4강을 통해 회복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붉은악마의 상징 ‘치우천왕’의 깃발 아래 남과 북, 해외동포까지 ‘모두 한민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광장문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정의를 외치는 시위 말고는 광장에서 함께 놀아본 일이 없었다. 거리응원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서울과 지방에 속속 광장이 만들어지고 축제가 등장했으며 스스럼없이 참여해 즐기는 문화가 태동했다. 집회나 시위에서도 노래와 율동을 즐기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참여문화는 붉은악마와 거리응원이 낳은 산물로 평가된다.
김병훈 기자

[SET_IMAGE]13,original,right[/SET_IMAGE]올해로 외환위기 10년을 맞았다. 1997년 11월 21일, 한국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과 정부의 과시정책으로 말미암아 급격한 외환부족에 직면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관리를 받게 됐다. 이로써 국제통화기금의 자금지원을 받아 국가부도사태를 막는 대신에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하는 경제개혁조치를 실시하게 됐다. 그것은 한편으로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고, 다른 한편으론 강력한 경쟁정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IMF의 경제개혁조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강력히 실시하는 것이었다. 대처 전 영국 수상과 고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이익률 향상을 최상의 가치이자 목표로 설정한다. 신자유주의에 사람이나 자연은 간과되기 쉬우며, 오직 기업과 이익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로 인해 IMF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고성장 속의 양극화와 생태위기 심화’라는 무서운 결과를 불러왔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노숙자의 행렬이나 이미 위기적 상태에 이른 지구온난화의 악화는 그 좋은 예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2005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7913억 달러로 세계 184개 국가 가운데 12위를, 그리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5840달러로 208개국 중 49위를 차지했다. GDP 기준으로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대륙국가’를 빼면, 2006년 한국의 GDP 순위는 무려 세계 8위이다.
이에 비해 GNI는 많이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사실 유럽의 소국들과 산유국들이 앞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인구와 국토와 자원을 가진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GNI는 결코 낮지 않다. 절대액수로 보더라도 한국의 GNI는 굉장한 것이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다.
고성장의 부작용도 함께 해결해야
각종 경제지표로 쉽게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문제는 경제성장의 정체에 있지 않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은 저열한 복지상태야말로 한국의 문제이자 수치이다.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양극화와 생태위기라는 후진적 문제가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어 한국은 비정상적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의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다. 경제성장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문제의 본질을 가리거나 이런 주장에 넘어가서 경제성장이라는 주문을 따라하는 것이나, 모두 망국적 위험을 키우는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양극화를 보자. 이것은 사실 하향화와 고착화라는 두 가지 변화로 나누어 봐야 한다. 하향화는 상당수 중산층이 서민층이나 빈민층으로, 상당수 서민층이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뜻한다. 고착화는 계층의 이동이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양극화 사회는 계층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사회 해체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은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는 반면에, 8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고,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용불량자로서 괴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생태위기의 문제도 너무나 심각하다. 한국의 삶의 질 순위는 세계 40위권이며, 그 기반인 환경 질 순위는 고작 130위권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산, 들, 갯벌, 강, 바다, 계곡 등이 모두 끝없이 파괴적 개발의 먹이가 되고 있다. 대기오염 때문에 서울시민의 평균수명은 도쿄시민보다 3년 짧으며, 전국에서 매년 16만 명이 조기사망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의 연구에서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듯이, 양극화와 생태위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양극화로 말미암아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파괴적 개발을 통해서라도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변화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성장주의와 복지주의의 대립은 ‘사이비대립’이다. 양극화와 생태위기의 심화를 전제로 하는 성장주의는 비인간적인 것이다. 그것은 온갖 부패와 범죄를 통해 부의 탑을 쌓는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한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정의이며 투자
특권층과 부유층에게 중산층, 서민층, 빈민층은 종종 이용의 대상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후진적인 성장주의에서 선진적인 복지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양극화와 생태위기는 후진적 망국의 길일 뿐이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정의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투자이다.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사회는 만인의 투쟁으로 얼룩진 비정상적 난민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지국가를 수립해서 비정상적 난민사회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사회복지국가를 넘어서 생태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복지의 기반인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이루어야 하며, 파괴적 개발에 탕진되는 혈세를 복지의 증진에 써야 한다. 토건국가 한국에서 사회복지는 반드시 생태복지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소수계층에 지난 10년은 못마땅한 세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것은 ‘발전의 10년’이었다. 후진적 세력에 맞서서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지난 10년은 ‘희망과 개혁의 10년’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주도한 ‘제도정치 민주세력’이 과연 ‘희망과 개혁’의 염원에 제대로 부응했는가에 대해서는 큰 논란이 있다. 지난 10년 복지정책의 강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신자유주의와 토건국가가 더욱 더 강화되기도 했다. 민주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회의의 물결이 크게 일어난 것은 일부 후진세력의 지속적 발호보다도 이러한 신자유주의와 토건국가의 강화라는 잘못된 결과 때문일 것이다. 다수 시민의 대대적 지지를 받았던 ‘제도정치 민주세력’의 오류 문제는 앞으로 깊이 탐구해야 할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영속적 관점에 입각해서 지난 10년 정부를 올바로 평가하고 새롭게 민주화의 심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 핵심은 개발주의 정부조직과 재정구조를 근본적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투기사회, 학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를 실질화해야 한다. ‘제도정치 민주세력’의 오류를 넘어서 생태복지국가라는 ‘진정한 선진화’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연구와 실천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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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