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화려한 조명 대신 은은한 촛불이 켜져 있어 결혼식장 분위기가 한결 엄숙하고 아늑하다. 또한 대형 화환이나 꽃 장식 대신 아담한 화분이 예쁘게 늘어서 있다. 이 화분들은 하객들이 기념품처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부 부케는 뿌리가 살아 있는 꽃으로 만들어 결혼식 후에 다시 심을 수 있다. 신랑 턱시도와 신부 드레스는 옥수수 전분 섬유와 유기농 면으로 만든 것이다. 청첩장 역시 재생종이와 콩기름을 사용했는데, 사진을 넣는 액자로 재활용할 수 있다.
그린 디자이너 이경재(30) 씨의 손길을 거친 새로운 결혼식 풍경이다. 예식 장소부터 신혼여행까지 결혼 본래의 의미를 살리면서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이 묻어 있다. ‘에코 웨딩’을 통해 녹색가정을 이루려는 예비부부들이 알음알음 그를 찾아와 2006년부터 지금까지 15쌍이 이렇게 친환경 결혼식을 올렸다.
“돈도 많이 들고, 이것저것 낭비만 되는 결혼식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세대 예비부부들이 많이 찾아와요. 모두를 위한 친환경 결혼식을 하는 게 특별한 날을 더욱 뜻깊게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이 씨에게는 친환경 웨딩드레스만 맞춰도 되고, 결혼식 전 과정을 상의해도 된다. 고객이 원하는 게 있으면 수용하되 전체적으로 허황하지 않은 결혼식을 지향한다.
“예비부부들에게 결혼식에서 불필요한 절차는 없애자고 제안해요. 하나라도 절차를 줄이면 환경오염도 막고, 돈도 절약할 수 있거든요. 제 손을 거친 부부들은 대부분 웨딩촬영도 하지 않아요. 대신 웨딩드레스를 조금 일찍 찾아가 친구끼리 모여 재미있게 기념촬영하는 경우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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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인 이 씨가 처음부터 이런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5년 한 연예인이 결혼식에서 입은 수천만원대 웨딩드레스가 한 주 내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는 한두 시간 입고 마는 웨딩드레스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보며 옳은 결혼식이 무엇이고 거기에는 어떤 드레스가 어울릴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우선 생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들고, 결혼식 후에도 일상복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끔 새로운 실험을 했다.
“기존 웨딩드레스는 석유계 폴리원단을 사용하는데 표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증가시켜요. 그에 반해 친환경 드레스와 수트, 넥타이는 옥수수 전분, 쐐기풀, 유기농 면, 한지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환경오염을 막죠. 드레스의 경우 예식이 끝난 후 조금만 수선을 하면 원피스나 바지 등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어 경제적이에요.”
2005년 11월 우리나라 최초로 친환경 드레스를 전시한 후 그에게 드레스를 맞추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결혼식 자체를 친환경식으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는 이들의 청첩장, 부케와 꽃 장식 등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다 아예 친환경 웨딩사업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처음엔 친환경 결혼식 한 건을 준비하는데 두 달이 걸렸어요.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기간이 좀 줄었죠. 친환경 드레스를 위한 원단을 제작하거나 뿌리가 살아 있는 부케를 만드는 일 등은 예전엔 생소한 일이라 쉽지 않았는데 이젠 직원들이 각자 맡은 파트에서 척척 준비해요.”
친환경 야외 식장을 잡아주고, 신혼여행 코스도 추천해준다. 이 씨는 지난 6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난 한 부부를 떠올렸다. 그들이 원하는 신혼여행 콘셉트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여행이었다. 이들 부부는 4박5일간의 신혼여행 내내 제주도에 사는 예술인과 올레길을 걸으며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 씨는 결혼식의 가장 큰 환경오염 주범은 음식물 쓰레기라고 했다. 신랑 신부가 아는 손님보다 부모 쪽으로 온 하객들로 넘쳐나는 혼주문화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여기저기 뿌린 축의금을 자녀 결혼을 통해 거둬들이려는 결혼문화가 바뀌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하객 수를 줄일 수 없는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유기농 야채로 만든 비빔밥 뷔페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재 사회적 기업 ‘오르그닷’ 이사를 맡아 친환경 결혼식과 친환경 병원복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친환경 결혼식을 맡아 기획하면서 녹색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생활패션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 생활패션과 관련한 전시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10월 4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패션의 윤리학-착하게 입자’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해 친환경 결혼식을 치렀다는 데서 더 나아가 녹색가정을 꾸리는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그린 디자이너로서 최선을 다해 환경오염을 막고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에코패션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글·김희연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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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