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수잔나 샘스텍 오(51) 대성그룹 고문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한국인 남편의 성을 따 ‘오 수잔나’라고 쓴 명함을 가지고 다닐 정도다. 오 고문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해외 매니저, 남이섬 문화원장을 거쳐 코리아닷컴과 대성그룹 고문으로 일하며 27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다.
1980년대 사물놀이 팬이었다면, 무대마다 쫓아다니며 공연자들 못지않은 열정을 보여주던 금발머리 푸른 눈의 그를 기억하리라. 1980년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오 고문은 사물놀이와의 첫 만남을 “영혼이 얼어붙는 체험”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연주자들이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원년 멤버였어요. 게다가 다들 젊었죠. 무대 위에서 네 가지 타악기가 불을 뿜듯 경쟁하는데, 정말 장관이었어요. 어떻게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하나 없이 저런 예술성을 뽑아낼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죠.”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어서 단원들 소맷자락을 붙들어 봤지만, 엄격한 도제 수업이 일반적이던 전통예술 전승의 영역에 젊은 미국 여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매정하게 거절당하면서도 공연장마다 쫓아다니며 영문 편지를 번역해주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부대낀 세월이 길어지면서 그는 자연스레 사물놀이패의 해외공연 담당 매니저가 됐다. 1984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첫 해외공연도 그렇게 오 고문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매니저 자리를 넘겼지만, 한국문화에 대한 애착은 그로 하여금 낯선 땅에 정착하도록 만들었다. 그 뒤로도 영어 잡지의 기자로, 남이섬 문화원장으로 일하며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왔다. 왜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열성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문화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자기 것을 비하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나라에서 온 제 눈에는 장점이 훨씬 많이 보이는데 말이죠.”
어떤 모임에 가든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홍보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그를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이 눈여겨봤고, 그의 제안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인터넷 포털 코리아닷컴(www.korea.com)의 운영과 기획을 맡게 됐다. 본래 2000년 두루넷이 인수했던 코리아닷컴이 2005년 9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2006년 1월 대성그룹이 인수해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현재 코리아닷컴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언어로 한국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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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슬하에 지윤, 상혁 두 아이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영어 광풍’에 휘말린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너나없이 해외로 아이들을 유학 보낼 때, 그는 오히려 한국 유치원과 공립 초등학교를 고집했다.
“한국 교육 시스템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겠죠. 한국 엄마들 생각보다 한국 교육은 훨씬 경쟁력이 있어요. 입사 면접에 참여해서 중학교 때부터 호주에 살다왔다는 지원자들도 만나봤지만 문법 교육 제대로 받은 토종들보다 영어를 못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엄마 따라 국립극장, 국악원 등 온갖 공연장을 쏘다니며 판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라난 아이들은 영어 점수만큼 국어 점수도 1백점이다. 판소리의 풍요로운 입말로 ‘국어’를 배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윤이는 국립전통예술중학교로 진학해 판소리를 전공할 계획이고, 5학년 상혁이는 서울시 중부교육청 영재로 선발될 만큼 공부를 잘한다.
잘 자라준 아이들을 대견해하면서도 그 역시 학부모로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런 저런 구상을 해보곤 한다고.
“초등학교들이 들어선 도심의 땅, 얼마나 비쌉니까? 그 땅을 놀릴 이유가 없어요. 모든 학교를 녹색빌딩으로 바꿔 1년 3백65일 24시간 문을 열게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애들을 봐주면 학원으로 돌릴 필요 없으니 워킹맘들 고충이 해결되지요. 밤 시간엔 평생교육센터로 바꿔 지역민들에게 재교육의 장(場)을 제공하면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사물놀이 때문에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게 됐던 그의 최근 관심사는 에너지와 환경이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그가 몸담고 있는 대성그룹이 에너지 전문기업인 점도 한몫했다.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은 세계에너지협회 부회장으로, 오 고문은 김 회장을 도와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를 대구에 유치하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봐요.”
최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독일 출신 귀화인인 이참 씨가 임명됐다는 소식도 오 고문을 기쁘게 했다. 그는 더 많은 주한 외국인들이 자격을 갖춰 정부 정책 입안과 실행에 참여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귀화 한국인 기관장이 이제야 나오다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어요. 정책이 다 만들어진 후에야 자문을 구하는데, 실효성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있거든요.”
오 고문은 기왕이면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반문한다. 어차피 세계를 무대로 경쟁할 바에야 처음부터 글로벌한 시각과 의견을 참조하며 정책의 틀을 만들어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애가 전통예술중학교에 합격하면 우리 것을 외국에 알리는 데 저보다 더 효과적인 가교가 되어주겠지요? 한국이 이방의 뿌리를 가진 이들에게 문을 열어줄수록 나가는 것보다는 들어오는 것이 훨씬 많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글·손정숙 객원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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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