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지금의 아이티와 전쟁으로 도탄에 빠졌던 1950년대의 한국이 얼마나 다를까. 지진으로 빚어진 희생은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지만, 전쟁은 사람에 대한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춥고 배곯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는 점에서 1950년대 한국이 훨씬 더 절박했으리라.
이러한 한국이 일찌감치 원자력 개발을 시작했다. 계기는 전쟁이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추축국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발에 항복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1천여 년간 동북아를 지배해온 중국을 반(半)식민 상태로 몰아넣고, 차르가 이끌던 러시아제국을 굴복시킨 일본이었다.
한국인들은 핵의 위력을 실감하며 광복을 맞았고, 6·25전쟁으로 ‘춥고 배곯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시기를 지나자마자 원자력 개발에 착수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급 영어를 구사하고, 유엔군 사령관인 매슈 리지웨이 대장과 후임자인 마크 클라크 대장을 아들 친구처럼 다룰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노(老)대통령은 외교의 귀재였다.
이 대통령에게 ‘원자력 자극’을 준 것은 두 명의 미국인이다. 첫 번째 인물은 미국 에디슨사의 회장을 지낸 워커 리 시슬러 박사다. 시슬러 박사는 일명 ‘에너지 박스’를 들고 우방국을 돌아다니며 원자력을 홍보한 인물로 유명하다.
1956년 이 대통령을 만난 시슬러 박사는 이 박스를 내밀며 “이 안에 있는 3.5파운드짜리 우라늄을 태우면 같은 양의 석탄을 태웠을 때보다 2백50만 배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다. 한국 같은 자원빈국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재부터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슬러 박사의 원자력 홍보는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우방국들에게 원자력발전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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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에게 자극을 준 두 번째 인물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원자력 연설’에는 동서냉전이 배경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소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실험에 성공해 공산권 국가를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핵에 관심이 있던 때라 핵은 ‘세 불리기의 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1954년부터 국제기구 창설이 시작됐고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결성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시슬러 박사가 이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시슬러 박사가 이 대통령을 만나던 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자력발전 기술을 제공받는다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맺고 1백27명의 엘리트를 선발해 미국 아르곤원자력연구소로 유학 보냈다. 1958년부터는 연구용 원자로 도입 계획을 추진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빨리 날았다. 이 대통령은 1959년 1월 21일 장관급 부처인 원자력원을 만든 데 이어 3월 1일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같은 해 7월 14일 이 연구소 안에 미국에서 들여올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마크 Ⅱ’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에 들어갔다.
정치적 격변을 거쳐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의지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원자력연구소는 1962년 3월 30일 1백 킬로와트급 ‘트리가마크 Ⅱ’ 준공식을 열었다. 드디어 한국도 원자로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실상 박 대통령은 이 대통령 이상의 ‘원자력 맨’이었다. 주저 없이 상업용 원자로 도입을 추진했다. ‘트리가마크 Ⅱ’ 준공 이듬해 박정희 정부는 15만 킬로와트급 상업용 원자로를 짓자고 했다가 1971년 3월 19일 경남 고리에서 59만 킬로와트의 발전능력을 가진 상업용 원자로 착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1977년 고리 1호기를 준공시켜 드디어 한국도 원자력발전 국가가 됐다.
고리 1호기 완공을 계기로 한국은 거침없는 원전 건설에 들어갔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도입한 것이다. 중수로는 일반적인 원자로인 경수로와 달리 농축을 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한다. 중수로에서 타고 남은 폐핵연료에는 우라늄에서 변환된 플루토늄이 다량 함유돼 있다. 플루토늄은 다시 핵연료가 되거나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우라늄을 농축해 핵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효율이 좋다. 이 때문에 미국과 소련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중수로는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데, 박정희 정부가 중수로 도입을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돌발사건이 발생했다. 중수로 도입이 성사되기 직전 한 발 앞서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도입한 인도가 이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 무기 실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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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국은 인도에 이어 중수로 도입을 추진하던 한국과 대만까지 ‘핵무기 제조 용의국가’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박정희 정부는 슬기롭게 극복했다. 당시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조약에 가입해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한국은 중수로 도입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만도 한국과 같은 약속을 했으나 끝내 중수로를 도입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실제로 핵무기 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미국으로부터 늘 의심을 받았다. 박정희 정부에 이어 1980년 등장한 전두환 정부는 미국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원자력연구소를 에너지연구소로 개칭해 오로지 ‘원자력발전’에만 몰두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미국 일변도의 원자력 체제를 탈피하고 프랑스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정했다. 울진 1, 2호기를 프랑스에서 도입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한국형 원전 건설’이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동일한 원전을 수차례 중복해 짓다가 마지막엔 돈을 주고 원천 기술 사용권을 획득해 원전 국산화를 이룬 나라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프랑스의 첫번째 원전 수출품이 한국에 건설된 울진 1, 2호기다.
한국은 ‘프랑스 모델’을 따라 동일한 원전을 계속 지어 기술 자립을 이룬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술을 제공할 회사 선정에 나섰다. 그런데 전두환 정부 출범 전인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일어나 미국은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기로 했다. 서유럽 국가들도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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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시장 소멸로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던 미국의 원전 회사들은 마침 한국이 기술 전수를 조건으로 시장을 열자 대거 뛰어들었다. 이 경쟁에서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 승자가 됐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시스템 80 원자로’가 처음에는 ‘한국 표준형 원자로’란 뜻의 KSNP로 불리다 지금은 ‘OPR1000’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OPR1000은 최적의 경수로란 뜻의 ‘Optimum Pressurized Reactor’의 머리글자에 1천 메가와트(1백만 킬로와트)를 뜻하는 ‘1000’을 더한 것이다. 한국은 최근까지 이 원자로를 12기(가동 중 8기, 건설 중 4기) 지어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뤘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한국 진출 초기 ‘시스템 80 플러스’로 명명한 1백40만 킬로와트급 원자로 기술도 한국에 제공했다. 이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 4호기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게 된 것과 같은 모델인 ‘APR1400’이다. APR은 ‘Advanced Pressurized Reactor’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한국 원자력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로 불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발전해오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맞아 국산 원전 첫 수출이란 엄청난 ‘방점(傍點)’을 찍게 됐다.
남은 과제는 2014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다. 한국도 언젠가는 일본처럼 발전 목적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장(戰場)에서 씨앗을 뿌려 평화적 핵 사용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 한국의 원자력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글·이정훈(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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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