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자 한국인을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지난해 9월 유엔본부 군축국(DDA: Department of Disarmament Affairs)에서 6개월간 인턴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초 입국한 손수남(29·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석사과정)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로 인한 한국의 위상변화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손씨는 인턴기간 유엔 군축국 소위원회에서 일했다. 특히 유엔총회와 관련된 각국 대표들이 발표한 연설문 중 군축관련 내용만 요약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이렇게 손씨가 작성한 보고서는 군축국 책임자 결재 후 사무총장에게 직접 보고된다.
손씨는 “평화유지·빈곤퇴치·인권보호 등 유엔이 맡은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며 “우리나라도 국제기구의 수장을 배출한 나라라는 자긍심을 갖고 거기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나라의 책임이 그 만큼 더 커진다는 의미다.
손씨는 “우리의 역할과 국제적 기여에 대한 기대가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규모 세계 11위라는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협력과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평화유지군과 대외원조지원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들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는 “군축국 직원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을 아느냐’고 저에게 물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2008년까지 유엔 재정기여도 높이기로
한국은 세계에서 11번째로 유엔 정규예산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로 성장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IT강국, 한류열풍을 주도한 나라,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 분담금 체납분 1억3000만 달러를 2008년까지 모두 해소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제기구 분담금 체납액 납부예산으로 2965억3500만 원을 책정했다. 정부 원안 2300억3500만 원보다 665억 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올해 387억 원(4100만 달러), 2008년에 713억 원(7500만 달러)을 지원해 체납금을 모두 완납할 계획이다.
또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향상을 위해 지원하는 정부개발원조(ODA) 규모도 지난해 7088억 원에서 올해 7279억 원으로 늘렸다. 이와함께 ‘평화유지’ ‘재건사업’이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당당히 부응하는 한국의 성장한 모습도 보여줄 방침이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저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유엔 평화유지활동입니다. 교육과정이 어느 때보다 치밀한 데다 안전지역에 가는 것이어서 자신감을 갖고 제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6월20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특수전사령부 특전교육단.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의 일원으로 이달 19일쯤 현지에 나가는 동명부대 통신담당관 임준선(28) 중사는 남다른 각오를 되새겼다. 불볕더위 속에 거듭되는 파병교육 열기는 더 뜨거웠다.
평균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동명부대 장병들은 해외파병 부대로는 최초로 합동참모대학 PKO센터와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KCTC) 등을 오가며 현지 언어, 기후, 풍습, 국제법 및 교전규칙 등 레바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능력을 빈틈없이 익히고 있다. 4주일 예정이다.
이날 오후 PKO교육시간에서 장병들은 파견 나온 유엔고등난민위원회 직원으로부터 UNIFIL의 임무교육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지열(地熱)을 내뿜는 연병장에서는 레바논으로 건너가 치안유지활동에 사용할 장갑차 사용법을 배우는 장병들이 보였다. 이 장갑차는 현재 자이툰 부대에서 사용하는 장비로 기동성과 장갑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특전사 장병들은 실전과 같은 상황에서의 효과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KCTC훈련장에서 4박5일 간의 강도 높은 전술 훈련을 받았고 공병·통신 등 지원부대는 장병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찌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둔지 공사, 첨단 장비 설치 등의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군은 이에 앞서 파병 장병들이 현지에서 운영할 장비와 물자(장갑차 등 차량 54대, 컨테이너 32개 동)를 이미 해상으로 수송중에 있다. 2001년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 상록 부대에서 근무한 바 있는 임 중사는 “해외 파병경험이 군 생활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었다”며 “다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기염을 토했다.
●동명부대는 = 지난 6월 21일 굵은 장맛비 속에 열린 동명부대 창설식. 연녹색 바탕(희망.평화)에 녹색 언덕(평화와 안전)과 그 위에 태극문양(인도적 지원과 구호)이 그려진 부대기가 김웅건 부대장에게 전달되자 장병들은 일제히 ‘레바논에 평화를, 조국에 영광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임무수행 의지를 다졌다. 동명부대는 보병, 통신, 의무, 수송 등 350명으로 구성됐으며 간호와 행정 등을 담당하는 여군 장교 12명도 포함됐다.
박흥렬 육군참모총장은 창설식에서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오늘은 우리 5000년 역사상 최장거리로 파병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지금 내리는 비는 이를 축복하는 비”라고 흥분한 어조로 장병들을 격려했다. 부대 명칭은 고구려 건국시조인 동명성왕(주몽)의 이름에서 따왔다. 동명은 ‘동쪽의 밝은 빛, 밝은 미래와 평화를 소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둔지 티르는 어떤 곳 = 동명부대가 주둔하게 될 티르(Tyre)는 레바논 4대 도시 중 하나로 수도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83㎞ 떨어져 있으며 이스라엘로부터는 20km북쪽에 위치한다. 과거 아름다움을 뽐낸 도시로 아랍과 비잔틴 그리스로마 문화 유적이 유명해 지난해 이스라엘 대공습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 관광도시였다.
하지만 198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접전을 벌인 레바논전쟁으로 도시는 황폐화됐다. 티르는 PLO의 기지로 사용됐으며 이스라엘의 포병대에 의해 거의 파괴됐다. 현재 티르에는 난민촌 3개에 5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유엔 관할지역 중 안전한 곳으로 꼽힌다.
●동명부대 임무는 = 레바논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병되는 동명부대는 지난해 8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01호에 규정된 임무를 수행한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 간 적대행위 감시, 이스라엘군 레바논 철수에 따른 레바논 남부지역 배치 지원, 헤즈볼라 세력의 무기반입 감시, 인도적 구호 지원 등이다.
●UNIFIL 현황 =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 감시를 비롯해 인도적 구호 지원, 무기 유입 차단과 관련한 레바논 정부 지원 등의 평화유지 활동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 UNIFIL은 이를 위해 활동지역 안에서 각종 적대 행위를 방지하고, 유엔요원과 시설·장비보호 등 주둔 지역 내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중국 등 30개국에서 파견된 1만3000여 명의 평화유지군이 레바논 남부의 완충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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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부대장 김웅건 대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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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대한민국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부여된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귀국하는 그날까지 단 한 명의 부상자나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병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월 21일 창설식을 가진 레바논 평화유지단 동명부대장 김웅건 대령은 부대장으로서의 각오를 이같이 말했다. 김 부대장은 육사 36기로 7사단 포병연대장과 국방부 정책기획국 대미정책 담당, 주 유엔대표부 군사담당 참사관, 쿠웨이트 국방무관,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평화유지활동을 하는 다른 어느 국가 부대보다 가장 모범적이고 우수한 부대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도록 알찬 활동을 해 나갈 계획”이라며 “장병들은 국가와 군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소명감을 갖고 부여된 임무를 완수해 대한민국 군인의 우수성과 한국의 평화유지 활동 노력을 널리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김 부대장은 특히 “우리 부대는 창군 이후 최대 규모·최장 거리의 군수 보급 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공군의 작전 능력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라며 “파병 장병들은 국민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믿음속에서 국제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국군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레바논에서도 PKO 활동을 훌륭히 수행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특히 의료와 기술 분야에서 많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 창설식이 있은 지 5일 후 서울 용산의 레바논 대사관을 찾았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후세인 라말(Hussein Rammal) 주한레바논 대사는 “레바논 국민은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전을 염려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이라크 사태와 레바논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한국군은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면서 그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군 주둔, 안전에 문제 없다
최근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폭탄이 터져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병사 6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에 따라 7월 중 파병되는 한국군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린 것은 아닌지. 그는 그러나 “이번 폭탄테러는 북부 레바논에서의 테러조직의 문제였으며,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통제했던 무장조직은 레바논군에 의해 제압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PKO의 레바논 파병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해 라말 대사는 “한국군은 중동지역, 특히 레바논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고향이 한국군 주둔예정지 근처라며 더욱 관심을 보였다.
“레바논 정부의 목표는 레바논 남부 지역의 평화유지입니다. 레바논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군이 도와주길 바랍니다.”
라말 대사는 “한국과 레바논의 우호관계는 갈수록 더 향상돼 가고 있다”며 한국군의 파병을 기회로 그 관계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공식 방문과 문화교류가 늘어나고 한국군이 레바논 국민에게 한국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 더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국민은 한국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은 매우 활동적이며 레바논과 유사한 문화와 사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제품, 자동차와 같은 한국 제품들과 한국의 우수한 기술 등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레바논은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나 오스만투르크제국과 같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지만 매번 성공적으로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현재도 독립 국가로서 레바논을 지키고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라말 대사는 끝으로 그동안 레바논을 도와주신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레바논 대사관 홈페이지에 “레바논을 도와달라”는 구호 메시지를 한국 국민에게 띄운 적이 있었다. 이 메시지를 보고 600여 명이 레바논 국민을 돕겠다고 구호계좌로 적게는 5000원, 많게는 100만 원에 이르는 성원을 보내줬다. 또한 기업체에서 700여 개의 학생용 가방과 5040개의 화상치료용 연고를 기부했다. 이는 모두 레바논 정부에 전달됐다.
“이 기회를 빌려 한국 국민의 그 따뜻한 마음과 정서에 감사드립니다.”
라말 대사는 한국에 부임 후 지난 3년 반 동안 아주 행복했으며, 한국 국민들과 한국 문화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이 지니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한국 음식이 레바논 음식과 비슷해 입에 잘 맞는데, 특히 비빔밥과 갈비를 좋아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마치 레바논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으며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라말 대사는 한국 사람들은 매우 활동적이고, 한국은 치안이 잘 유지된 안전한 곳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글 권영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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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정식 이름은 레바논 공화국(Lebanese Republic)이다.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과 접하며 서쪽은 지중해에 닿아 있다. 1922년 시리아의 일부로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가 1926년 시리아에서 분리되어 프랑스로부터 자치권을 얻었고 1944년 1월 독립했다. 친유럽·보수적 기독교와 아랍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슬람교도 두 세력의 균형 위에 정부가 세워져 초기부터 정치안정을 이루지 못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친서방과 인접국 시리아 중심의 아랍진영 대립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끊임없는 분쟁의 무대가 됐다. 1958년부터 시작된 정부군과 반군과의 길고긴 내전과 1970년 이후 30년이 넘도록 계속된 팔레스타인과 이슬람교 게릴라들과 이스라엘과의 무장투쟁 등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면적은 1만400㎢로 경기도(1만191㎢)와 크기가 비슷하며, 종족 구성, 언어, 종교가 다양하다. 주민의 주체는 북방 셈족의 아랍인이지만 이집트,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등 여러 민족이 혼혈되어 있으며 쿠르드 인을 비롯해 아르메니아 인, 유대 인, 터키 인, 그리스 인 등도 정착하고 있다. 1990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약화되고 총리의 권한이 강화되는 등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부각됐다.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교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교 시아파, 국방장관은 이슬람교 드루즈파, 군사령관은 마론파 등 주요직책을 종파별로 안배한다. 국회의원 128명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동수 배분한다.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 페니키아시대부터 고대의 사적이 풍부해 관광지로서도 볼 만한 것이 많다. 지중해안의 여러 곳에는 피한지, 휴양지가 발달하여 있으며, 레바논산맥에는 스키장 설비도 갖추어져 있다. 한국은 1969년 베이루트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했으며, 1981년 2월 남·북한이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양국관계는 실질협력관계 증진에 따라 우호관계로 발전해 1993년 양국 정부는 서울과 베이루트에 대사관을 각각 설치했다. |

“유일한 친구가 산(山)이었던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군이 오면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로 꿈과 희망을 심어준 자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2005년 8월 이라크 파병이후 6개월 동안 평화재건의 임무를 완수하고 지난해 3월 15일 귀환한 윤창희(42) 소령은 파병성과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현재 합동참모본부에서 작전계획을 담당한 윤 소령은 해병대 제 1사단의 자이툰 파병 3진 해병경비 중대장으로 다국적 평화유지군에 참가했다.
자이툰의 해병 경비중대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이뤄졌지만, 바그다드 한국 대사관과 주둔지 아르빌의 자이툰 병원 경비 등 부대의 핵심시설 경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중령 진급을 앞둔 윤 소령은 “파병 경험은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며 “가족의 소중함과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몸소 체험한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또 “부대는 30여 개 동맹국 사이에서도 ‘진짜사나이’ 라는 애칭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렸다”며 “현지인과 동맹군들로부터 ‘꾸리(한국) 넘버원’ ‘한국군은 신이 준 선물’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신뢰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91년 유엔 회원국 가입 후 PKO 적극 참여
우리나라는 1992년 이전에는 유엔 평화유지 활동(PKO)에 참여할 수 없었다. 유엔 회원국에 가입되지 않아서다. 그러나 1991년 9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 신장된 국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차원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1993년 7월 내전과 가뭄, 기아의 고통에서 시달리던 아프리카 소말리아(UNOSOM-II)에 공병대대를 파병한 것이 우리나라의 첫 유엔 평화유지 활동이다.
91년 걸프전 당시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의료지원단과 아랍에미리트여합(UAE)에 공군수송단을 먼저 파병한 적이 있으나 이는 특정국 주도의 평화유지활동(다국적 평화유지군)으로, 정확히 말하면 유엔이 주도하는 평화유지활동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94년 10월부터 인도·파키스탄(UNMOGIP), 그루지야(UNOMIG)에 유엔 정전감시 활동으로 우리 군 역사상 처음으로 군 옵서버를 파견, 현재까지 4개국에 31명의 요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1999년 한국군의 해외파병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월남전 파병이후 처음으로 전투부대가 파병됐다. 인종 학살과 내전, 기아로 시달리고 있던 동티모르(UNMISET)에 특전사 장병을 중심으로 전투병력을 보내 지역재건과 의료지원 등 인도적 활동은 물론 치안유지와 평화정착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현재 한국군이 유엔 및 다국적군 PKO 일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UNIFIL) △유엔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UNMOGIP) △유엔 그루지야 정전감시단(UNOMIG) △유엔 수단 임무단(ONUB) △유엔 네팔 임무단(UNMIN) △유엔 라이베리아 임무단(UNMIL)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단(UNAMA) 등 13개 국가 14개 지역에 1500여 명이 세계 평화와 국위선양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자이툰’
2004년 9월 파병을 시작한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자이툰 부대는 처음 3400여 명이 파병됐고 현재 1100여 명이 남아 활동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는 3년여 동안 255개 평화·재건사업을 추진해 203개 사업을 완료했으며 52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3년 4월 의료지원단 제마부대 100명, 건설공병지원단 서희부대 578명이 남부 나시리아 지역에 파견되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 2004년 9월 20일 2800여 명의 자이툰 부대가 다시 이라크 땅을 밟았다. 6월 말 현재까지 연인원 1만7074명의 장병들이 이라크를 다녀왔다. 이라크에 주둔한 우리 군은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작전을 수행해 왔다.
파병기간 동안 자이툰 부대의 명성을 높인 것은 이라크 주민의 안정과 재건을 돕는 민사작전이었다. 자이툰 부대는 지난해말까지 상당한 민사작전 성과를 거뒀다. 인도적 지원 활동으로 △ 자이툰 병원 운영을 통해 수술 700여 명, 진료 6만 여 명, 의사·간호사 인턴십 91명 교육 △ 취약계층 지원 활동으로 고아원, 양로원, 유치원 등 공공시설 20곳을 개보수 했다. 재건지원 사업의 성과도 눈부시다. 학교 36곳, 보건소 11곳 신축과 함께 치안시설 13곳, 우물 공사 82곳, 공공시설 28곳, 전기시설 33곳의 재건지원을 도왔다.
이 중 자이툰 부대의 기술교육센터에 대한 주민호응은 대단했다. 14억 원을 들여 설립한 이 센터는 현대자동차가 지원하는 자동차 정비 과정을 비롯해 가전제품 수리, 중장비 운전, 컴퓨터, 제과·제빵 등 모두 7개의 과정이 개설돼 있다. 6월 말까지 센터를 거쳐 간 이라크인은 1500여 명에 이른다. 8주 과정의 교육을 마치면 정부기관이나 외국계 기업 등에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미군 지휘관들과의 회의에서 “자이툰 부대같은 작전을 펼쳐라”(Zaytun-like Operation)라며 벤치마킹을 주문할 정도였다. 한국군을 통해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져다주는 군대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정부는 9·11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 테러 이후 배후세력 색출을 위해 미군이 공격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에 2002년 2월27일 의료지원단(동의부대) 200여 명을 보냈다. 바그람 기지에 파병해 현지 주민 의료지원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2월 300여 명의 공병단(다산부대)을 추가로 파병해 각종 재건사업을 펼치고 있다.
동의부대는 오랜 기간 전쟁으로 지치고 병든 주민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펼치고 있다. 매일 평균 200여 명의 현지인을 진료하는 등 2002년 2월 개원한 이래 6월 말 현재까지 24만여 명의 진료기록을 세웠다.
다산부대는 그동안 기지 내 비행장 활주로 보수공사와 부대 방호시설공사, 주변 도로 보수·확장 공사 등 370여건의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우수한 건설기술과 신속하고 완벽한 공사시행으로 40여개 동맹군들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공보과 김태원 소령은 “우리 군이 해외에서 흘린 땀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이라크 파병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세계 안정과 평화에 기여했다”며 “이들 지역에 심은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는 향후 우리나라와의 경제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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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유엔 정전감시단을 다녀온 / 조상현 소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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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7,original,left[/SET_IMAGE]한국은 유엔이 지원해 성공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한국의 이같은 발전상을 부러워하는 동맹국들이 많았죠. 짧은 기간에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지난 2005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유엔 그루지야 정전감시단(UNOMIG) 옵서버 자격으로 파견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돌아온 수도방위사령부 조상현(40·육사47기) 소령은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조 소령의 임무는 그루지야 정부군과 분리 독립을 선언한 압하지아 자치주 민병대간의 정전위반 행위가 일어나면 즉시 안보리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조 소령은 “노트북에 저장한 한국의 역사를 담은 사진을 동맹국 동료들과 현지 주민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다들 놀라워했다”며 “그곳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특히 IT강국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휴가 나올 때마다 디지털 카메라, MP3, 노트북 등을 사다 달라고 부탁할 정도라고 귀띔해준다. 그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한국군은 ‘군복을 입은 외교관’이라는 생각으로 근무했을 정도로 장병들의 사명감은 대단했고 값진 경험이었다”며 “앞으로 유엔 평화유지 활동 기회가 또 온다면 참가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지난 1998년 12월. 한국정부는 외환위기로 나라살림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중남미의 파나마에 2000만 달러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제공했다. 파나마의 의료보건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파나마는 현대화 사업이후 우리나라의 초음파진단기,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 등을 구입한 후 성능에 반해서 한국산 의료기자재를 추가 구입했다.
EDCF 지원을 계기로 국내 의료기기 업계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수혜국에 단순히 허기를 모면할 ‘빵’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기술과 설비’를 지원함으로써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주고 우리도 이를 통해 시장 개척과 해외자원 확보 등의 효과를 거둬 양국의 경제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대외원조를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되는 해다. 6·25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처참했던 우리 국가경제가 미국의 쌀, 밀가루 등 무상원조에 힘입어 딛고 일어선 지 30여년 만에 원조 지원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후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지원대상국 확대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원조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의 대외원조 규모가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의 개발 원조를 받은 경험과 효율적인 정책추진체제 수립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역사를 토대로 개발경험의 전수를 개도국에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국제개발원조 정책은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을 올해 0.084%에서 2015년까지 0.25%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유엔 권고기준이 0.7%, OECD 회원국 평균이 0.25%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저조한 수준이지만 점차 비율을 높여 2008년 8636억 원(0.097%), 2009년 9628억 원(0.100%), 2010년 1조935억 원(0.105%), 2030년에는 0.7%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UN, 세계은행, OECD 등 국제개발기구와 공여국 및 수원국과의 협력을 통한 원조전달체제의 효율화, 우리의 개발경험을 전수해 국제사회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대외원조는 단순히 잘사는 나라가 빈곤국을 도와주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는 물론 자국의 경제적 미래도 보장받기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국제협력단 최성호 홍보실장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의 대외원조 공여 행태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대부분 전략적 이해관계나 자국의 수출 진흥 등을 추구하고 있다”며 “ 해외에서 원조를 가장 많이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 있는 중국은 대외원조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국은 원조를 받는 처지이면서도 석유, 천연가스 등 필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 자원부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지난해 무역수지가 개도국에 대해서는 30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반면 선진국에는 73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개도국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원조 확대는 우리의 지속적인 발전도 담보하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 이해가 안돼요
한국에서 10개월째 생활한 에바 라티파(31·여·인도네시아)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머리에 쓴 히잡을 가리키며 “한국인들은 생김새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외계인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어요”라며 서툰 말씨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문화를 꼬집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 교사로 근무하다가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 온 허훼정(29·여)씨도 “한국말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인 사회에서 여전히 힘들어요”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허훼정씨는 “말레이시아는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문화 차이가 없어요. 세계화는 다른 문화를 얼마나 잘 수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10개월째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크레아 안드레아스(25)씨는 얼마전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사건과 관련해 “한국 사람들은 모두 왜 마음에 큰 짐을 지는 걸까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사건에 이렇게까지 과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라며 한국민들의 낮은 국제의식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이때 안드레아스씨가 이 말을 얘기하자 갑자기 “맞아! 맞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어머니가 한국계인 그는 한국인의 나라 사랑은 정말 놀라울 정도지만 때론 지나친 민족주의가 한국의 국제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도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인은 겉으로는 세계화됐다고 하지만 내면은 아직 대원군 시대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후진적 정치의식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도 나왔다. 최근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승리한 것을 두고 아전인수식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카미노 나오미(29·여)씨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유럽에 우파가 대세이니까 우파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정당의 정책이 마음에 들면 투표하는 것이지 주변 정세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되네요”라고 말했다.
● 한국 국제사회 활동 좋아요
한국의 국제분쟁 방지와 빈곤퇴치에 대한 노력에도 찬사를 보냈다.
나오미씨는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이후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지금은 그 때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되돌려 주고 있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 앞으로 국제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겠죠”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 한국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나오미씨는 한국 예찬론자다. 이번 방문이 세 번째란다.
4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 전통축제를 보기 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는 나오미씨. 하지만 지금은 아니란다. 그는 “한국이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요. 또 한국인들의 인정은 어느 나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따뜻해요. 교육과정이 끝나면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문화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특파원이 꿈인 안드레아스씨는 “어머니 고향인 한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고 싶어요.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알릴 거예요”라며 기염을 토했다. 에바씨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조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거예요”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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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본부의 한국인 / 노수미 평화유지국 엔지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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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8,original,left[/SET_IMAGE]“유엔에서 근무하면 한국보다는 오히려 수단의 다르푸르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돼요. 한국인 관심은 아직도 한반도에 머물러 있어요. 국제적 이슈를 한국적으로 해석하고 결부시키기 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국제사회 공동의 숙제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2002년 국가별 경쟁 채용시험에 합격해 2004년 7월부터 유엔 평화유지국 물자지원 부서에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는 노수미(35·여)씨는 한국의 국제화 수준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병된 지역에 물자공급과 주거 및 업무시설, 유엔병원, 본부 건물 설계 등 평화유지군의 원활한 작전수행을 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1990년 초기에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무척 낮았던 데에 비해, 지금은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 수준으로 높아졌다”면서 “지난 10여년 동안 적극적인 외교활동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지난해말 반기문 사무총장의 선출도 유엔 외교발전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여진다”고 한국의 외교력을 높게 평가했다. 노씨는 특히 “유엔 내에서 한국의 국제화 수준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임한 나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며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해 다양한 측면에서 국제사회 참여와 기여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이툰 부대 기술교육대에서 근무하는 김기홍 상사는 딸 부자다.
큰 딸 미사(16·중3년) 양은 무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아빠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이 묻어날 듯한 편지를 보냈다.
“협박 비슷하게 매일 ‘이제는 아빠 팔다리 주물러주는 것도 마지막이야’라며 우리에게 안마를 해달라고 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화도 났지만, 지금은 그때 조금만 더 잘해드릴 걸 하고 후회가 된다”며 “6개월 뒤 귀국하시면 열심히 안마해드릴 작정”이라고 야무진 각오와 함께 아양을 떨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빠를 생각하는 짙은 그리움과 사랑을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눈으로 가늠할 수 있다.
동생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둘째 은사(14·중1)가 통 고치지 못했던 나쁜 식습관이 아빠에겐 두고두고 걱정거리였나 보다. 미사 양은 편지에서 “이젠 소리 내서 먹지 않는다”며 염려하시지 말라고 적어 맏딸다운 면모를 보였다.


정부개발원조(ODA)로 몽골, 이라크,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봉사를 펼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는 현지인들이 보낸 감사의 편지가 하루 수십 통씩 배달된다.
지난 2월 몽골에서 불의의 사고로 심하게 다친 손녀를 치료해준 우리나라 한의사에게 첸드 아요쉬 할머니가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정성스레 썼다. 오르길 요양소의 한몽한방병원에서 봉사활동 중인 정용수 한의사 애기다. 할머니는“아주 짧은 기간에 전문가답게 치료, 뜻밖의 사고로 얼굴에 그늘이 졌던 우리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특히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 점을 꼭 되새기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할머니는 또 KOICA 몽골사무소와 의료단 등 모든 분에게 감사하며 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그리고 한국과 몽골 두 나라 사람들이 끈끈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도 건넸다. 현재 봉사단 56명이 몽골 5개 지역에서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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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