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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000년 들어 한반도에 해빙의 기운이 움텄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햇볕정책’과 이를 계승·발전시킨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 덕분이다.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질적·양적으로 급속하게 진전시키는 분수령이 됐다.

통일연구원 손기웅 선임연구위원은 ‘6·15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제로 한 국제세미나에서 “남북한 주민들은 열린 창문을 통해 서로를 예전보다 더욱 선명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의 남북화해협력정책 추진 결과, 이념·정치·군사적으로는 대립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경제·사회·문화분야에서는 부분적으로 교류와 협력이 형성됐다. 개성공단, 금강산 사업 등과 같은 남북한 경협이 추진됐다. 예술단이나 체육·종교단체의 상호 왕래가 실현되는 등 사회·문화분야에서도 교류협력이 강화됐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핵실험 등 국제 갈등, 한반도 냉전구조의 잔존, 부시 미국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국내 이견, 남북화해협력정책과 성과에 관한 남남갈등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부침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을 지속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협력질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영일·권태욱 기자

 





 6·15 공동선언 7돌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이  6월 14일부터 4일 간 평양에서 개최됐다.
이번 축전에는 남측 대표단 284명과 해외 150여명, 북측 대표단 300명이 참가했다. 남측 대표단은 체육계, 7대 종단, 시민·환경·법조, 노동계 등 각계 대표로 구성됐다.
개막 행사는 첫날인 14일 오후 5시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대성산성 남문 앞 잔디광장에서 아늑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이날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연회에서 정세현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대표 의장은 “우리는 왕래·교류·협력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이 땅의 평화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며 “주변 국가들이 아니라 민족이 주축이 되는 평화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호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장은 환영사에서 “6·15가 열어준 ‘우리 민족끼리’의 길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이 길이 끊어지면 이 땅에는 또 다시 대결과 분열의 어둠이 깃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14일 오전 9시 30분께 인천공항을 출발한 남쪽 민간대표단은 아시아나 전세기를 통해 서해 직항로를 거쳐 10시 45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성명에서 “우리 겨레는 6·15 공동선언으로 냉전과 대결의 역사를 뒤로 하고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합의 역사를 열게 됐다”며 “이번 평양 민족통일대축전도 6·15 공동선언이 제시한 교류와 협력, 평화공존과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진을 이루어내는 역사적 회합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에서도 기념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7주년 기념식 및 문화제’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겨레의 단합을 대외에 과시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1000여 명의 학생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했으며, 더위를 식히러 나온 가족들도 행사에 적극 참여해 남북 화해·교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부산 서면 밀리오레 거리, 광주 운남동 근린공원 등 전국에서 기념식과 강연회, 사진전, 마라톤, 콘서트 등이 개최됐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휴전선을 넘어 자유롭게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까? 또 서울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국산 마늘을 북한 개성공단에서 깐마늘 형태로 가공해 되가져와 위기에 놓인 국내 마늘농가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주)산과들 농수산(이하 산과들)의 홍경표(42) 대표는 남북협력 10주년을 맞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2월 마늘 임가공 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북한 땅을 첫 밟은 홍 대표는 “중국 단둥에서 먼발치로만 바라보던 북한을 이렇게 매주 오갈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개성공단 사업은 민족적 대역사인 만큼 마늘 임가공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5000평 규모로 지난 2월 6일 개성공단에 문을 연 산과들 농수산·정성제약 개성공장은 산과들과 평양 정성제약연구소가 협력해 설립한 법인이다. 현재 북한 노동자 1700명이 하루 25톤의 국산 마늘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이공장은 남북을 통틀어 가장크고 경쟁력 있는 손마늘 공장인 셈이다

홍 대표는 “국내산 마늘의 우수성에다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고품질 깐마늘 생산·공급으로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유통구조만 확보되면 국내 마늘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요즘 홍 대표는 개성공단을 찾는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매주 한번씩 이곳으로 출근해 업무를 지휘하고 북한 노동자들을 격려했지만 5월부터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장을 넓히기 위한 협의가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황해북도 개성시 성남동에 가동 중인 5000평 규모의 공장으로는 포장, 건조, 선별 작업에 필요한 기계들을 설치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홍 대표는 “깐마늘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장 증설이 절실하다”며 “아직 전력이나 생활시설 등이 미흡하지만 좋은 사업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남북한 당국자가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산과들은 마늘껍질 탈피 가공에 필요한 제반시설을 제공하고 북측에서는 개성 근로자로 이뤄진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수익금은 정성제약연구소의 기초 의약품 생산을 위한 원료수입에 쓰인다.

산과들 농수산이 정성제약에 주는 임가공비는 1톤당 220달러. 이를 손으로 마늘을 까고 있는 북측 근로자 1인당 임금으로 계산하면 43달러에 달한다. 홍 대표는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이 본격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국내 마늘시장은 간편한 깐마늘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손으로 깐 마늘은 흠집이 없어 20일 동안 유통할 수 있지만 기계로 까면 흠집이 많아 사흘 만에 부패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마늘을 깔 사람도 없고 인건비도 비싸, 중국산 깐마늘이 시장을 거의 잠식하면서 마늘농가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
이런 위기의 타개책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북한에서 국산 마늘 껍질을 까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산과들이 나서 북한의 정성제약연구소와 손잡고 개성공단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이들이 까는 마늘은 대부분 국내 최대의 마늘 산지 중 하나인 제주도 대정지역과 무안, 해남, 창녕, 서산지역 등 주요생산단지에서 올라온 것들이다. 남쪽에서 차량을 통해 매일 마늘을 보내오면 즉시 5∼6시간 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북녘 노동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껍질을 벗긴 마늘은 다시 세척과 탈수, 포장공정을 거쳐 남쪽으로 운반된다.

전국 최대 마늘주산지인 제주 대정농협 강정준 조합장은 “이곳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한 마늘이 중국산 수입마늘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50만 마늘 농가에 새로운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올 하반기부터는 마늘껍질 탈피사업 외에 마늘을 이용한 건강보조식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고용 인력도 3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5월말까지 북에서 들여온 깐마늘은 3500톤이며, 수도권 재래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사회 :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를 회고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고유환 : 지난 1980년대 중반이후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1990대엔 세계질서가 재편되면서 남북관계도 냉전에서 벗어나 공존공생할 수 있는 국제여건이 조성됐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미간 갈등, 남·남간 갈등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남북관계는 크게 진전됐다고 할 수 있죠.
 
조한범 : 보이지 않는 혁명적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을 예로 들어보죠. 북한을 우리생활권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곳으로만 알았던 곳이 지금은 우리 옆 동네를 가는 것처럼 쉽게 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을 바꿔놓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죠.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후 주가나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재기도 없었고요. 이는 한국경제가 평화라는 튼튼한 생명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적 위기에도 남한경제는 흔들리지 않았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인도적 대북지원 등이 평화발판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진행과정에서 공과는 논할 수 있겠으나 크게 보면 남북관계 진전은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사회 :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고 : 남북의 국가 책임자가 남북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상대방 체제를 부정하고 군사적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수십 년에 걸친 냉전대립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성과를 얻었죠.

조 : 남북정상회담은 일종의 ‘충격요법’이었습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릅니다. 남북관계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추진과정에서 다소 무리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평가할 사항을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죠. 향후에도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국민동의가 필요하지만 통치자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와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일부에서 대북지원이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김근식 :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주의 차원에서 쌀과 비료를 지원해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퍼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쌀과 비료를 지원해 줌으로써 얻은 가장 큰 혜택은 남측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우리는 동포애 차원에서 대가 없이 북측에 지원해주었고 평화증진을 위한 비용으로 생각해 쌀과 비료 등을 보내주었습니다. 이 같은 결과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북 지원은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통해 지원되는데 이는 국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여야 합의를 통해 북에 지원하기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맞지 않죠.

조 : 퍼주기란 용어가 잘못됐습니다. 지극히 감정이 이입된 말이죠. 인도적으로 지원한 것을 액수에만 국한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죠. 대북 지원을 통해 본 효과는 천문학적 이윤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회담 이후 군사긴장이 완화되면서 평화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주가가 상승하고 집값도 올랐지 않았습니까. 만일 경제지원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군사적 긴장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 경제 불투명성을 근거로 한국의 주가를 실제 가치보다 낮게 여기는것)는 불 보듯 뻔하고 대외 국가신뢰도 추락과 우리 생활도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김 : 대북지원은 남한의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고 봅니다. 북한은 이제 남한의 경제지원 없이는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죠. 장관급회담, 이산가족 상봉, 철도연결 등 우리측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마냥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남북교류의 큰 효과라 할 수 있죠. 대북지원은 북한에 유리한 게 아니라 우리측에 유리한 것입니다. 남한의 의존도가 커갈수록 북한은 우리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회 :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고 : 북한이 핵 카드를 꺼낸 것은 북·미 적대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입니다. 클린턴 정부 때는 대화를 통해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으나 국제정세가 여유롭지 못했죠. 이후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이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강경책으로 선회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외부봉쇄 압력으로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게 됐고 결국 핵실험을 강행하게 된 거죠.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고 봐야죠. 하지만 지난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면서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왔습니다.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죠. 지난 2·13 합의는 북핵 해결의 엉킨 실타래를 푼 획기적인 계기였습니다. 지금은 북핵 해결의 클라이맥스에 왔다고 보여집니다.

사회 : 6자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요.

조 : 2·13 합의 때 우리 정부는 역할을 다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여건이 불리하죠. 6자 회담 틀 안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주변 국가들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사회 : 지난 5월 17일 56년 만에 남북철도가 연결돼 시험운행을 가졌습니다. 남북철도 연결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 : 5·17 남북 열차 시험운행은 분단된 공간의 단절을 잇는 순간이었습니다. 단절됐던 남북이 서로 이어진 것이죠. 일시적이긴 하나 통일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디딘 쾌거였다고 보여집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철도연결로 부산~신의주, 아시아 및 유럽을 잇는 열차사업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죠. 이를 통한 경제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대륙과 해양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 : 항구적 철도운행을 위해서는 양국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일부에서는 동해선 미연결 구간 공사의 경우 개발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먼 장래를 위해서는 서둘러 철로를 연결해야 합니다. 특히 남북열차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북지원 물품을 열차로 수송하거나 개성공단 직원들을 위한 출퇴근용, 금강산 관광용 등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 : 개성공단의 성과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 : 10년 동안 남북경협의 가시적인 성과는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사례죠.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의미는 군사적 긴장완화를 들 수 있습니다. 북측이 개성공단 조성과 관련해 개성지역에 주둔한 군부대를 외곽지역으로 배치했다는 것은 대남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또 개성공단은 우리만의 전용공단으로 우리측 기업에 큰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인건비 상승으로 재정 부담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개성공단은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돌파구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고급인력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과 해외이전에 따른 언어소통 불편도 줄어들어 경제적으로 이익이 엄청납니다.

고 : 개성공단은 북한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좁은 의미의 민족 경제공동체보다는 개성공단을 통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통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넓은 의미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 가보니까 땅값도 올랐고 지역경제도 활기를 띠고 있더군요. 과거 군사지역에 묶여 낙후됐던 이곳이 엄청나게 발전한 거죠.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그만큼 남북협력 효과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 : 개성공단은 통일의 학습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경영마인드를 비롯해 남측의 생활방식을 미리 습득하고 이해하게 돼 통일이 된다고 해도 혼란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개성공단 외에 제2, 3의 개성공단도 나올 것으로 보여집니다. 북한은 당초 체제유지를 위해 개성지역에 국한해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이익은 물론 체제를 흔들 만한 부작용이 없다고 판단하면 개성 외곽지역에도 공단 부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SET_IMAGE]6,original,left[/SET_IMAGE]사회 : 금강산 관광과 관련, 북한은 얼마 전 내금강까지 개방했습니다. 향후 금강산 관광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 : 금강산 관광은 햇볕정책의 옥동자라 할 만큼 남북관계의 신뢰를 형성했습니다. 사업추진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추진으로 전쟁억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내금강에 갔을 때 북한 안내원이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후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이 2명이었다고 전하더군요. 안내원을 비롯한 북한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매월 수백 명씩 금강산을 찾았는데 핵 실험 후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이에 따른 경제 손실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지금 북한은 남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개방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금강도 열렸고요.

사회 : 대북지원과 관련, 남남갈등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조 : 체제경쟁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이념대립은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입니다. 더욱이 민족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보수-진보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북지원이나 통일정책 등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통일국민협약’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향후 남북관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한 비용(북한개발지원)을 수반하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대표성이 있는 민간단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국민제안 등 일반시민의 직접참여가 가능한 열린 공간을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 :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조 : 2차 남북정상회담엔 찬성입니다. 지금 한다면 8월 15일 광복절 전에 이뤄져야 합니다.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기만 해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금강산 관광 → 육로관광·내금강 개방 등 활기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가 출발하면서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은 대내외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의 부진에서 벗어나 크게 성장했다. 금강산을 구경하는 남측 관광객은 1998년 1만543명에서, 2000년 21만2020명, 2005년 27만4942명을 기록했다.
2003년 동해선 임시도로를 개통하고 육로 관광을 시작하자 금강산 관광은 당일 관광이 가능할 정도로 편리해졌다.  
2006년의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사태로 인해 관광객이 크게 감소하기도 했으나 올 들어 2·13 합의, 제20차 장관급회담과 남북철도의 시범연결 등으로 이어지는 관계 개선으로 인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는 내금강도 개방돼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북교역 → 물자·인원 규모 크게 늘고 다양화
남북화해협력정책 이후 남북경협은 양적으로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개성공단 사업이나 금강산관광 사업, 철도·도로연결 사업 등으로 알차게 추진됐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경협 확대에 따라 남북교역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1997년 3억800만 달러에 불과하던 규모는 2006년 1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교역내용면에서는 일반교역, 위탁가공 및 경제협력을 포함한 상업 거래의 비중이 증가하는 등 내실화도 이뤄졌다. 특히 2005년부터 개성공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상업 거래가 큰 폭으로 증가, 연간 교역액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와 함께 대북지원, 경수로 사업, 금강산관련 물자의 반출 같은 비거래성 교역도 증가세로 나타났다. 2006년에는 상업 거래가 68.8%를 차지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남북한 왕래 인원도 급증했다. 금강산 관광객 139만 명을 제외하더라도 지난해 10만 명을 넘어섰다.


● 개성공단 → 북한의 변화 촉진에 기여
참여정부 들어 본격 추진되고 있는 개성공단사업은 남북간 처음으로 추진되는 진정한 의미의 호혜적인 경협사업이다.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토지, 노동력을 결합하는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는 상생의 협력사업인 것이다.
특히 개성공단은 높은 임금과 공장부지 비용 등 고비용 문제에 직면한 국내 중소기업과 해외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에 활로를 제공하고 있다. 2007년 1월 말 현재 21개 공장이 가동 중이며 북한 근로자 1만1342명이 일하고 있다.
개성공단사업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촉진하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남북회담 → 7년 간 모두 161차례 각종 회담 열어
남북한은 2000년 6·15 선언 이후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인도 분야에서 당국간 다양한 회담을 가졌다. ‘2007 통일백서’에 따르면 남북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정치 28건, 군사 34건, 경제 66건, 남북적십자회담 등 사회·문화·인도 분야 33건 등 모두 161건의 남북회담을 열었다.  올해 들어서도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2.27~3.2), 제5차 남북장성급회담(5.8~11)과 함께 남북철도·도로연결,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 분야 등의 실무접촉이 활발히 이뤄졌다. 남북회담은 참여정부 들어 주요 현안문제를 실질적으로 협의·해결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남북 선박 물동량 → 북한 화물선 부산 첫 입항 
남북 선박 물동량도 크게 늘었다. 남북해운합의서 발효(2005.8.1) 등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고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2005년부터 선박의 왕래가 급증했다. 특히 2005년부터 북한산 모래 반입 증가 등으로 선박왕래와 해운물동량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모래반입량은 1437만 톤으로 수도권 모래수요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해운합의서 발효로 북한 민간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가능해졌다.  2005년 8월 15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북한선박은 우리 해역을 173차례(제주해협 통과는 164회)나 통과했다. 지난 5월엔 북한 화물선 강성호가 나진~선봉간 정기항로 운항을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부산항에 공식 입항했다.


이산가족문제 → 14차례 1만6347명 서로만나
6·15 공동선언 이후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우선 이산가족 교류·상봉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이후 15차 상봉까지 14차례에 걸쳐 대면 상봉이 이뤄졌다. 모두 1만6347명이 가족·친척을 만난 것이다.
금강산관광지역에 이산가족면회소가 2005년 8월 31일 착공됐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발사 이후 일시 중단됐으나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공사를 재개키로 합의했다.
특히 참여정부 4년 간 상봉인원은 1만 명을 돌파했다. 화상상봉 도입 등 상봉방식을 다양화한 덕이다.


대북지원 → 북한의 식량난 완화에 크게 기여
지난 1995년 시작된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완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2000년 이후 쌀과 비료의 본격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등 크게 발전했다. 참여정부는 남북협력기금 예산의 확충 등 남북관계 발전의 재정적 토대를 마련했다. 정부출연금 규모도 문민정부 4700억 원, 국민의 정부 1조900억 원, 참여정부 2조1214억 원으로 점차 확대됐다. 초기에는 사업비 중 인도적 지원 분야에 대한 예산의 집행실적 비중이 높았으나, 최근 경제·사회문화협력 사업비 예산의 집행실적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추세다.


철도·도로 연결 → 끊어진 혈맥 잇는 남북공동체 근간
남북철도·도로연결사업은 6·15 공동선언 이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과 함께 추진돼 온 대표적인 3대 남북경협사업 가운데 하나다.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이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성공을 보장하고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근간이 되는 의미를 가진다.  
통일연구원 손기웅 선임연구위원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남북 철도·도로의 연결”이라고 평가했다. 남북한은 2000년 7월 31일 제 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구간의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다. 2002년 4월엔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도 합의, 그해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의 철도·도로 공사가 동시에 착공됐다.
동해선 도로는 2003년 가을부터 금강산 육로관광에 활용되고 있으며, 경의선 도로는 2004년 초부터 개성공단 개발과 출퇴근에 이용되고 있다.
진통을 겪었던 철도연결은 지난 5월 17일 역사적인 시범 운행을 거행했다. 앞서 제5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열차시험운행을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가 합의됐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 → 6자 회담 틀 속 2·13 합의 이끌어 내
‘제네바 합의’(1994)의 틀 내에서 산통을 거듭하던 북한의 핵문제는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덧붙여지면서 재연됐다. 정부는 2003년 8월부터 6자 회담 틀 속에서 해결을 모색했다.
2005년 9월 10일 제4차 6자 회담에서 북핵 폐기에 대한 최초의 합의인 ‘9·19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임을 공약했다. 반면 한·미·중·러·일은 경제협력, 에너지 지원, 관계 정상화 등 상응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했다.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에 대한 동결 조치를 발표해 6자 회담은 공전되기 시작했고 북한은 미사일 발사, 핵실험 강행 등으로 맞서, 위기 국면을 맞았다.
2·13 합의는 북핵 사태의 해결의 가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됐다. 2·13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행동조치를 담은 문서다.

 





북한 함경북도에서 마라톤 선수로 활약했던 김현아(여·34·서울 노원구) 씨는 요즘 학습지 교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생으로 신분이 바뀐다.
지난 2005년 8월 입국해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하나원(남한사회 적응 훈련기관)을 수료한 뒤 12월 초부터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임신한 몸으로 홀로 내려와  가족이라곤 갓 돌을 지난 딸이 전부다.

“처음 이곳에 와서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이 심했어요. 첫 대면에서부터 생김새와 말투가 다르면 쳐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아직도 북한 말투가 남아 있는 김씨는 이 같은 시각 때문에 정착하는 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더러는 ‘우리도 살기 힘든데 왜 자꾸 내려오느냐. 너희들 때문에 남편이 전쟁에서 죽었다.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느냐’고까지 한다는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며 “이런 말을 들으려고 목숨까지 걸며 탈출한 것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자신들끼리 모여서 살거나 신분을 숨기고 조선족 행세를 하는 사람도 많다”며 “이러한 점이 한국사회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이탈주민과 지역주민의 갈등 원인에 대해 “한국사회에 아직도 반공의식이 뿌리 깊게 내려진 것 같다”며 “이미 시대는 변했고 국가적으로 생긴 문제를 두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나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북한이탈주민들이 지역주민들과 융화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해주어야 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탈주민 1만 명 넘어… 성공적인 정착 도와야  
북한을 떠나 한국 국민이 된 북한이탈주민은 지난 2월 1만 명을 넘어섰다. 한때 ‘월남귀순자’로 불렸던 북한이탈주민은 1999년 100명이었지만 2002년 1000명을 돌파했고 지난해 2019명이 입국해 남한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이제 북한이탈주민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소수자 집단이 됐으며, 이들에 대한 지원도 인도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학술정보센터 소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은 편견의 시선 때문에 일터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며 “지금까지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물질적으로 지원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1만 명 시대에는 그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의지와 남한 주민들의 인식변화 등을 손꼽는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의지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함은 물론 북한, 중국의 가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게 하며 나아가 남북한 주민 통합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조 소장은 “북한이탈주민은 정착금을 받아 살아가려는 의존심을 버리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연령대를 고려한 맞춤형 취업지원으로 정착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북한이탈주민이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서울 노원구 공릉종합사회복지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 김선화 부장은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한사회에서 겉돌고 있고 한국인의 시선도 날로 싸늘해져 가고 있다”며 “남한 주민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은 결코 제도적 하드웨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남북한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가 있을 때 북한이탈주민들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고 남북한 사람들의 하나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이 삶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맞춤형 취업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한국산업은행 경제연구소 김영희 연구위원은 “북한이탈주민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취업문제라며 북한이탈주민들의 취업유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박윤숙 서울여대 초빙교수 역시 “정부 정책이 종전의 북한이탈주민 보호 중심에서 생산적 복지를 지향하는 자립·자활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연령별로 취업지원계획을 세워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화 부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여부는 우리 사회의 통일역량을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1만 명 시대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10만 명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이 최근 중소기업들의 활력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개성공단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4월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수출 비중이 약 24%를 기록, 개성산(産)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수출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기간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의 총액은 4805만8000달러. 이 가운데 23.7%인 1137만7000달러가 수출됐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실시된 개성공단 1단계 잔여 공장용지(53만 평) 분양에 344개 기업이 신청해 평균 2.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3개 업체 이상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신청 가능한 협동화단지 9개 필지도 12개 컨소시엄이 신청해 1.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가 5.6 대 1로 가장 높았다.

“이 같은 높은 경쟁률은 최근 개성공업지구지원법 제정과 남북철도 시범운행 등 사업 환경과 남북간 분위기 개선 영향이 큽니다.” 개성공단 건설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임병옥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건설지원팀장은 이같이 설명했다.

정부는 오는 8월 시행 예정인 ‘개성공단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직접 대출과 조세감면, 4대 보험 적용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임 팀장은 “이제 개성공단도 국내 산업단지와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입주업체의 선정은 분양심사위원회 심사를 통해 6월 19일 확정 공고할 예정이다. 입주예정기업들은 이 달 말까지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9월부터 공장건설에 들어간다. 임 팀장은 “이르면 오는 연말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임 팀장은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들이 생산 활동을 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지원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우선 올 상반기까지 도로, 전기, 수도, 통신, 환경시설 등 기반시설을 완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올 연말까지 개성공단 1단계 사업(100만 평)을 마무리 할 계획”이라며 1단계 입주 상황에 따라 앞으로 2·3단계 분양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중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1만3000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1단계 입주가 완료되면 7만~1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문제되는 것은 현지 노동자 숙소다. “공단 규모가 커지면 개성 인근의 주민만으로는 노동력을 충원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평양 등 북한 전역에서 노동인력이 모여들 것인데, 이에 대비한 노동자 숙소도 올해 안에 건설할 예정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역외가공지역(OPZ) 논란과 관련, 그는 “개성공단을 전제로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단정했다. OPZ 지정에 합의한 것은 미국·이스라엘 FTA의 특화산업단지(QIZ)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개성공단이 OPZ로 지정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논리다.

OPZ의 주요 의제는 노동·환경 기준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국내에 준하는 수준을 개성공단에 적용하고 있다. 임 팀장은 “환경도 사전예방 차원에서 친환경 공단을 조성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초기단계에서 보존하지 않으면 결국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이 오염되면 비무장 지대를 거쳐 임진강도 오염됩니다. 임진강이 오염되면 우리의 식수원인 한강도 오염되지요.”

“물류상황은 문제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임 팀장은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앞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육로 수송만으로 충분하나, 조만간 운송물량이 급속히 늘어날 것에 대비해 해상, 철로 등을 통한 수송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 개성공단이 활기를 띠자 그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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