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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잘했다 대한민국 “조금만 더 힘내자”








 

“유동성 경색으로 은행과 기업이 외채상환 능력을 상실할 위험에 처했다.”(2008년 10월 10일 로이터)

“아이슬란드의 채무불이행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 중 아이슬란드와 유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이다.”(2008년 10월 10일 월스트리트저널)

기억하는가. 바로 1년 하고도 두 달 전 해외 언론들이 전한 한국의 모습이다. 마치 한국이 부도 직전 국가라도 된 듯 몰아붙이는 해외 언론 보도를 접하며, 한국인들은 속이 타 마른침을 꼴깍 삼켜야 했다. 고금리와 대량 해고로 고통스러웠던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는 점 때문에 해외 언론들은 ‘의혹의 불씨’를 더욱 강하게 지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 뒤, 한국인들은 전혀 다른 해외 언론 보도에 안도하면서도 조금은 부아가 치밀었다. 대체 반년 전 보도는 뭔가 싶어서. “전례 없는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한국경제가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2009년 4월 13일 로이터)

“세계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신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2009년 4월 14일 블룸버그)

해외 언론 보도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통해 바닥부터 정상까지 가장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한 나라를 꼽는다면 단연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2008년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5.1퍼센트로 급락하는 위기에 내몰렸다.

이에 맞선 정부의 전략은 ‘신속한 선제 대응’이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적에 맞서 ‘충격과 공포’ 작전을 펼친 것이다. 2009년이 시작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1월 2일)에서 “올해는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갈 것”임을 선포했다. 곧이어 그 후속대책으로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와 이 회의를 실무적으로 지원할 비상경제상황실을 출범시켰다. 신년 국정연설을 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1월 8일) 청와대 보안구역 지하 워룸(War Room·전략상황실)에서 제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정부가 체감하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위기’란 단어가 29번이나 언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위기 상황 악화와 더불어 나라 안에서는 경제난 극복을 위한 규제개혁 요구가 높아졌으며, 밖으로는 ‘국제공조’가 외교정책의 화두로 등장했다. 또 주요 국책사업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 점증이 우려되는 등 경제위기 이외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버티고 있었다.

‘위기 극복과 미래 도약’으로 요약되는 국정 기조를 바탕으로 정부는 지난 한 해 안팎의 어려움 속에서 아래로 서민과 취약계층을 살피고, 밖으로는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확대를 모색했으며, 위기와 개혁 이후의 선진 일류국가라는 미래를 지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는 한국에 대해 글로벌 경제위기 초기의 비관적 전망에서 벗어나 성장 전망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 OECD의 경우 2010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4퍼센트로 전망했다. 정부의 전망은 5퍼센트 내외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위기극복에서부터 서민 보듬기, 교육과 노사관계, 국가브랜드 향상까지 국정 각 분야에서 고르게 성과를 거둔 정부는 ‘위기’란 단어로 점철된 2009년을 마무리하며 ‘2009년 15대 정책뉴스’를 발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더불어 한국은 크게 두 가지로 ‘핫이슈’가 됐다. 초기에는 제2의 외환위기가 우려되는 국가로, 그리고 2009년에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국가로. 마치 재난영화에서 빙하기가 닥치듯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2008년 4분기 -5.1퍼센트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예산 조기 집행, 비상경제대책회의 등을 통해 신속 대응함으로써 지난해 3분기 3.2퍼센트로 회복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같은 기간 4.5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안정됐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는 2010년 정상회의 유치에 성공했다. 세계 경제협력에 관한 최상위 포럼(Premier Forum)인 G20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G20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85퍼센트를 차지하고 전 세계 교역의 80퍼센트가 G20 회원국 내부에서 이뤄지는 등 G20는 현재 명실상부한 세계 주요국 모임이다.
 

지난해의 피날레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상외교로 거의 ‘손에 넣은’ 프랑스를 물리치고 이룩한 4백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였다. 이는 한국 원자력 역사상 첫 수출이며,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 이후 처음 산전국(産電國)으로 자리매김하는 쾌거다.

UAE 원전 수주와 더불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 국제 경쟁입찰에서 최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성과도 거둬 최근 ‘청정에너지’로 재평가받는 원전 시장에서 막대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해 정부의 친서민정책은 경제위기에 처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데 역점을 뒀다. 서민가계 통신비 부담을 20퍼센트 덜어주었고, 대학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를 마련했다. 저신용 영세 사업자에 대해 저금리 소액대출을 해주는 미소(美少)금융,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 서민을 보듬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들이 펼쳐졌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원조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전환한 사례.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은 지 50년 만의 일로, 우리 국민이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한 ‘굿 뉴스’였다.
 

지난해 11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0퍼센트 감축한다는 야심 찬 정부 목표가 발표됐다.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1997년)에서 정한 온실가스 감축의무국가가 아니었는데도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발표했다.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온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기후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국제기구와 차기 총회 유치를 제안하는 등 환경보호 실천에 있어 ‘나 먼저(Me First)’ 정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자원 관리와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등 다목적 용도를 가진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이 지난해 6월 수립돼 각 강별 개발 청사진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문화재 조사, 재원조달 분산과 입찰, 보상 등이 마스터플랜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말까지 전체 92개 공사 중 42개(턴키 16, 일반 26) 공사가 착공됐다.




 

지난해 7월 방송과 신문, IPTV 등을 포괄하는 미디어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돼 1980년대 이후 존속돼온 낡은 규제가 해제됐다. 이에 따라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 각 부문 간 진입장벽을 낮춰 미디어산업 선진화가 가능해졌다. 또 IPTV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돼 학교와 병영 등을 대상으로 IPTV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공기업 통합으로 32개 공기업이 14개로 줄었다. 또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 결과 4개 기관장이 해임되고 17개 기관장이 경고를 받는 등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이뤄졌다. 농협의 지배구조를 개선해(6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12월) 등 공공 부문의 규제개혁 조치도 취해졌다.
 

정부의 지방 정책도 성공적인 뉴스 중 하나다. 지난해 말 발표된 창원·마산·진해시의 통합 결정은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계획(8월)을 바탕으로 한 결실이다. 부가가치세 5퍼센트를 지방으로 이양해 지방소비세를 신설하고, 향후 10년간 3조원에 달하는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등 지방재정 확충에도 비중을 뒀다.
 

복수노조 도입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 13년간의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며(12월) 쌍용차와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으로 무관용 원칙을 관철했다. 반면 실업급여 지급을 강화하고 취약계층의 고용·산재보험 가입률을 높이는 등 고용 친화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2007년 5월 협상이 시작된 이후 출범 2년여를 끌어온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해 7월 타결돼 가서명을 마쳤다(10월).

또 FTA와 동급인 한·인도 CEPA 타결(8월) 등의 해외시장 개척도 큰 성과였으며 한·페루, 한·콜롬비아 FTA협상을 시작하는 등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이 크게 확장됐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첫 신종플루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도 신종플루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선제 대응으로 신종플루 전염병 위기단계는 지난달 11일부터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낮아졌다. 정부가 계속 전염병 위기단계를 상향하며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개인위생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항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 확보에 나서는 등 ‘신종플루 대확산’을 막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펼친 결과였다.
 

가능성과 잠재력이 큰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방과후 학교 활성화, EBS 강의와 IPTV 활용 등 사교육비 절감대책을 추진했다. 또 기숙형고, 자율형고, 마이스터고 등 고교 다양화와 교원평가제로 교육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이수 과목을 축소하고 창의와 인성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등 공교육 내실화 노력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핵 포기와 개방, 경제 지원을 연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 ‘비핵, 개방, 3000’, 일명‘그랜드 바겐’ 구상을 일관되게 추진해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개성공단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베트남과 중국을 남북이 합동으로 시찰하고 신종플루 치료제를 긴급 지원하는 등 인도적 지원은 지속됐다.

2009년 15대 정책 뉴스 가운데 ‘넘버원’이 ‘경제위기 적극 대응’인 이유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불리는 상황에서도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경제적 결실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경제위기 상황에선 수출마저 여의치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는 2009년 12월 ‘금융위기 1년 평가와 위기 이후 과제’란 보고서에서 “이번 경제위기는 과거 외환위기와 달리 세계경제의 동반침체 현상을 수반함으로써 수출 증대를 통한 위기극복이 용이하지 않게 됐다” 며 “이 때문에 우리 경제가 받은 충격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비상경제정부’가 출범했고, 비상경제정부의 ‘전략상황실’ 격인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지난해 모두 40회가 개최됐다. 이는 대통령이 가장 많이 주재한 회의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열정과 의지를 바탕으로 비상경제대책회의는 경제위기 극복의 ‘허브’가 되어왔다.

올 상반기까지 운영이 연장돼 다시 한 번 대한민국호가 비상(飛上)할 도약대가 되어줄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거둬온 결실,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마음으로 돌아보자.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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