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12월 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0 한류 포럼’을 통해 K-POP(한국 대중음악)으로 재점화 된 한류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한 ‘신한류 진흥 및 확대를 위한 4개 역점 추진 과제’를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는 한류정보장터, 글로벌
한류지도, 한류스타의 거리, 중남미 및 유럽 지역과의 문화교류 등 한류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고 한류 붐의 세계적 확대를 꾀하는 전략이 담겨 있다.
문화부는 ‘2010 한류지수’와 ‘한류 핫이슈 10’도 발표했다. ‘2010 한류지수’는 2009년도를 1백점으로 했을 경우 1백1점으로 나타나 소폭 상승했다. ‘한류 핫이슈 10’은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의 3천명을 대상으로 ‘2010년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류 뉴스는 무엇인가?’라는 항목으로 조사했다. 1위는 ‘문화한류에서 경제한류로 진화: 한국 전자제품 인기’, 2위는 ‘한식 한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다’, 3위는 ‘일본 내 한국가요 열풍’이었다.
이날 포럼에서 고정민 창조산업연구소장은 “베트남, 태국의 경우 드라마, 음악, 게임 등 모든 분야를 대상으로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밝혔고, 경희대 김주연 교수는 “2010년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등 조사국가에 거주하는 현지인이 한식을 먹는
경우가 매우 많아지고, 동시에 한국산 전자제품의 선호도가 동반 상승했으며, 한국 화장품의 아시아 수출이 30~40퍼센트 늘어났다”고 했다. 2011년 새해 들어서 나온 한류에 대한 외국 언론 보도들도 흥미롭다.
미국의 CNN은 “한류로 통칭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를 휩쓸면서 한국이 ‘동방의 할리우드’로 올라섰다”고 했다. 프랑스는 국영방송 신년특집에 2시간 가까이 한류와 한국에 대한 찬사를 담았다. 이 방송은 “한류의 힘이 일본을 눌렀고 한류의 격류가 프랑스까지 휩쓸 기세”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한류는 중화권, 일본, 몽골, 동남아, 중동,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동유럽, 중남미 등 70여 국가에서 기세를 떨쳤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의 유입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양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한류’로 통칭되는 다양한 한국 문화가 한류의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 더욱 뿌리를 내리는가 하면, 선진국에는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한류 드라마와 가요가 퍼지면서 기반을 넓히고 있다.
최근의 한류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상승 작용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무역규모 7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새마을운동 개도국 수출, 일본의 한국 벤치마킹 등으로 표출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제품, 서비스, 관광, 한국어 학습, 문화산업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한류와 경제가 어우러져 상승작용을 하는 예는 많다.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퍼센트, 중앙아시아 가전제품의 80퍼센트를 한국이 석권한 것도 한류의 영향이 크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한 것도 한류 드라마가 UAE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일과 무관하지 않다. 이집트, 이란, 인도, 짐바브웨 등 우리와 피부색, 종교, 사상과 체제가 판이하게 다른 나라에서도 <대장금>에 심취하고 <올인>에 빠져들면서 드라마 속 한국 제품, 라이프스타일, 전통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신한류는 사실상 아이돌 가수를 중심으로 조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가 한류의 핵심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음악 중심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한류(韓流)’의 태동 시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 전파를 타면서 무려 1억5천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이후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 <의가형제>의 장동건, <모델>의 김남주 등이 한류 1세대로서 인기 열풍을 이끌었다. 이 시기 가요계에서는 남성 듀오 클론을 포함해 HOT, 젝스키스, 신화, SES 등이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강타했다.
한류 1세대가 중국을 기점으로 했다면, 한류 2세대는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액션 블록버스터 <쉬리>가 2000년 일본 극장가에서 인기를 끌더니 2003년 4월 KBS2 드라마 <겨울연가>가 NHK 위성 제2방송에 소개되면서 ‘욘사마’ 배용준 신드롬이 탄생했다.
이후 이병헌, 송승헌, 원빈, 권상우, 최지우, 이영애, 소지섭, 송혜교, 비 등이 한류 스타로서 떠올랐다. 가요에서는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등이 일본 엔카에서 일찍이 주목을 받았으나 탄탄한 실력과 체계적인 마케팅 등을 통해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보아(BoA)였다. 2001년 일본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 보아는 K-POP 열풍의 선두주자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빅뱅 등 아이돌 스타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0년 들어 한류는 세 번째 전환점을 맞이했다. 장근석, 김범, 이민호 등의 젊은 한류 스타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걸그룹 소녀시대, 카라, 포미닛, 브라운아이드걸스, 원더걸스 등이 3세대 한류 스타로서 신한류를 이끌고 있다. 2PM, 2AM, 대국남아, 비스트 등 남성 아이돌 그룹과 바비킴, 휘성, 케이윌 등이 속속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신한류의 또 다른 특징은 과거 40~50대 아줌마 부대에서 10~20대로 팬층이 젊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신한류의 태동은 이미 예견됐다. 여성그룹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고, <노바디>가 빌보드 차트 100위권에 들어가는 등 일정 성과를 낸 것에 연예계가 놀란적이 있다.
신한류의 전파에는 IT 기술의 덕이 크다. 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보면 유럽과 아프리카 소녀들이 ‘소녀시대’의 춤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다.
‘소녀시대’가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의 김영민 대표는 “한국 가수들이 미국에서 공연을 하고 유럽까지 알려진 데는 유튜브와 마이스페이스 등 인터넷의 영향력이 컸다”면서 “2008년부터 우리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각종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문화평론가 이문원씨는 “국내 아이돌을 비롯한 가수들이 미국과 유럽 시장의 세련된 전문 음악을 적극 수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실력이 상승했다”며 “커다란 트렌드에 휩쓸려 한곳으로만 모든 것이 쏠리는 현상만 지양한다면 신한류의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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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