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던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UNDP(유엔개발계획) 중심의 국제사회 원조를 받아 왔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50년간 지원받은 공적개발원조액은 1백27억 달러에 달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70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굵직한 국제 행사를 진행하고 꾸준히 공적 개발원조도 해 왔지만, 국제사회에서 ‘원조에 힘입어 성장했다’ 내지는 ‘원조를 받은 나라’의 이미지는 씻어 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09년 11월 25일, 전 세계 원조의 90퍼센트를 담당하며 국제 원조를 주도하는 OECD 산하 DAC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달라졌다.
50년간 1백27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던 가난한 나라에서 되레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 국가’가 된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G20 정상회의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성과를 이뤘다.
OECD DAC는 OECD 산하 26개 위원회 중 하나지만 OECD 국가라 하더라도 일정 조건을 갖추어야 가입이 가능하며 경제정책위원회, 무역위원회와 함께 OECD의 3대 위원회로 간주될 만큼 높은 위상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DAC 관찰자 자격을 취득해 주요 회의에 참석해 왔다. 2005년도 11월 국무회의에서는 국제개발협력 개선방안을 채택했다. 2010년 전후를 DAC 가입시점 기준으로 검토하되 원조 목표 달성 추이와 재정 여건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2007년 11월, DAC는 한국개발협력에 대한 특별검토 실시를 결정했고 2008년 3월 DAC 실사단은 한국의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관련 3개 부처 및 유관기관을 방문하고 검토를 실시했다.
이후 2008년 9월, DAC의 한국 대외원조 특별검토회의 서울 개최, 2009년 4월 우리 정부의 서면심사 자료 제출, 6월 DAC 방한 실사를 거쳤다. 그리고 11월 25일 최종적으로 한국의 DAC 가입심사 특별회의가 DAC에서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서 회원국 전원합의로 우리나라의 OECD DAC 가입이 확정됐다.
OECD DAC 가입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원조 공여국이 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해방 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1백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은 우리나라가 불과 50년 만에 그들과 파트너가 돼 개발도상국들을 함께 지원한다는 점은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G20 정상회의 개최도 DAC 회원국의 위상을 확인한 자리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3년 주기인 제4차 원조효과 고위급포럼(HLF-4)도 부산에서 열린다.
DAC 회원국이 됨에 따라 정부는 2010년 1월 25일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했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1990년대 이후 20년 넘게 원조 공여국으로 활동해 온 우리나라의 ODA를 좀 더 일관성 있고 투명하게 수행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국제개발협력에 관한 기본 정신과 목표, 원칙, 추진체계 등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와 함께 통합평가 실시를 통해 성과중심의 ODA 관리기반을 마련하고, 범정부적 ODA 추진에 있어 재외공관의 역할을 강화해 현장중심 ODA 틀을 갖추게 됐다.
범정부적 ODA 추진체계도 재정비했다. 그간 우리나라 개발협력정책의 문제로 지적돼 온 분절화 문제를 해결해 국무총리실에 ‘국제개발협력정책관’을 신설했다. 국무총리실은 ODA의 주요 정책을 결정해 각 부처의 의견을 모아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효과적 원조를 위해 외교부를 주관 기관으로 하는 무상원조협의체를 설립했다. 대표적으로 해외파견 봉사단의 경우 그동안 행안부, 방송통신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KOICA 등이 각각 지원하던 사업을 이를 통해 WFK(World Friends Korea)라는 단일 브랜드로 통합, 추진함으로써 체계적인 원조를 하게 됐다. WFK를 통해 2011년 2월 현재 총 1천8백여 명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및 중동 지역 등 46개국에 해외봉사단을 파견·지원하고 있다.
2010년 10월 국무총리실과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 등 17개 무상원조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함께 ODA 선진화 방안을 수립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김창섭 KOICA 정책기획팀장은 “ODA 선진화 방안은 우리나라 최초로 범정부적으로 합의한 ODA 정책문서라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ODA의 힘이 컸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2002년 2억7천8백80만 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2009년 약 8억2백3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ODA를 증대시켜 왔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이전 연도와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증가해, 2009년 기준 약 8억 달러를 기록했다.
GNI(국민총소득)대비 공적개발원조의 규모는 처음으로 0.1퍼센트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DAC 회원국 중에서 여전히 가장 낮은 규모다. 정부는 이에 대해 2012년까지 0.15퍼센트, 2015년까지 0.25퍼센트로 점진적으로 증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ODA 선진화를 위해 오는 2015년까지 비구속성 원조 비율을 유상 협력 분야에서는 50퍼센트, 무상협력 분야에서는 1백 퍼센트까지 확대한다. 해외긴급구호 규모도 DAC 회원국 평균 수준인 6퍼센트까지 높일 계획이다. 유상협력 분야의 경우 지역별로는 아시아 중점 지원 기조를 유지하되, 아프리카·중남미 등으로 지원지역을 다변화하기로 했다.
분야별로는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성장을 위한 녹색분야에 대한 지원을 30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한다. 산업기반 조성을 위한 경제 인프라 구축 등도 중점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가입심사 당시 권고사항에 속해 있던 ‘비구속성 원조’에 대한 비율을 2015년까지 50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하고, 원조의 질적 수준도 지속적으로 향상해 나갈 예정이다. 박대원 KOICA 이사장은 “ODA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KOICA도 원조현장 중심의 사업역량을 강화하고 기존에 진행됐던 지원사업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여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정부 ODA 확대 정책에 발맞춰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보다 효과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원조사업을 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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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