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8월 28일 오후 경남 산청군 원지면 민들레공동체. 이 마을은 입구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풍겼다. 공동주택 지붕 위의 풍력 발전용 팬(Fan)과 자전거 페달을 이용한 발전기를 보면서 이곳이 여느 마을과는 크게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서 재생에너지 장치 개발은 물론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대안기술센터 이동근(40) 소장은 “자전거 발전과 태양열, 풍력 발전을 모두 합해 평소 활용할 수 있는 배터리의 전력이 약 24V(100A) 정도가 유지된다”면서 “이 정도 전력이면 공동주택에서 소비하는 전력으론 부족하지만 그래도 대체에너지로서 기능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자전거 발전기 옆으로 8각형 깔때기를 엎어놓은 듯한 ‘태양열 조리기’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1m 남짓한 삼각형의 이 조리기는 나무판 8조각을 붙여 틀을 만들고, 판 안쪽에는 쿠킹 호일을 씌운 상태였다.
이 소장은 “이곳의 태양열 조리기는 온도를 270℃까지 올릴 수 있다”면서 “쌀밥은 물론 계란프라이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이 소장은 영국에서 신재생에너지 관련 공부를 마치고 7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친 김에 이 소장은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들고 와 날계란을 하나 풀더니 유리온실에 집어넣는다.
조리기에 넣고 15분 지나자 계란 익어
그러나 날계란은 가스레인지 불 위에 있는 프라이팬처럼 금세 지글지글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15분 정도 지난 후 서서히 삶아지듯 익어갔다. 자연친화적인 삶은 장비나 기술의 교체뿐만 아니라, 이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변화, 즉 느긋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걸음을 옮겨 공동주택 안쪽에 자리한 대안기술센터 작업장으로 갔다. ‘뚝딱뚝딱’ 연장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작업장 바닥에는 뒷바퀴가 해체된 채 고정식 발판을 단 자전거 다섯 대가 발전 동력기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소나무를 깎아 만든 풍력 발전기 팬이 수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상품처럼 매끈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자체 기술’로 제작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기재들이란다. 이 마을은 요즘 부쩍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7월 KBS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을 비롯해 언론에 ‘친환경 공동체’ 또는 ‘재생에너지 마을’로 소개되고 나서부터다.
민들레공동체는 ‘초교파’ 크리스천들의 생활공동체로 1997년부터 산청에 둥지를 틀고 현재 다섯 가구(여덟 세대) 20여 명의 식구들이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유럽 등지에 흔한 이른바 ‘자연주의자’들처럼 유별나거나 요란하지 않다. 굳이 생활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소박한 농촌 생활’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들레공동체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대안학교를 근간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처 논 한가운데에 ‘민들레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짓고, 작년부터 중등 과정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토·볏짚으로 지은 민들레 학교
볏짚과 황토로 지은 작은 교실 3칸으로 구성된 민들레학교의 안뜰에도 자전거 발전기와 충전용 배터리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오후 반나절 동안 스스로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동안 민들레학교를 찾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마다 “제발 자전거 한 번만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통에 하도 돌려 대서 이제는 자전거 타는 게 흥미가 떨어졌단다.
“이제부턴 좀 돌릴 거예요. 왜냐하면 이번 주부터 벌칙으로 자전거를 타기로 했거든요. 욕을 하거나 싸우거나 하면 자전거 타야 해요.” 8명의 학생 중 취재진의 사진촬영 부탁을 들어준 찬영이(15)의 말이다. 이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동체 식구들이 저녁모임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어른·아이 십여 명이 모였고, 특별히 대안기술센터 작업장에 재생에너지 기술을 배우러 온 녹색연합 소속 대학생 박진주 군과 금산간디학교 김수형 양이 동석했다. 하루의 일과를 총평하는 자리, 하루 종일 작업장에서 발전기를 제작하느라 쇠를 깎고 납땜질을 하던 두 학생의 말이 이어졌다.
“힘든 노동이었지만, 대안기술센터에서 보낸 2주일 동안은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는데, 앞으로 환경공학자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진주)
“예전에 호주에 갔을 때 재활용품으로 악기를 만드는 곳을 방문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재활용품을 이용한 악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재활용품을 제작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대안기술센터에서 제작하는 재생에너지 장비가 대부분 석유화학 제품이잖아요. 그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많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수형)
다음날 아침, 풍력 발전기는 여전히 힘차게 돌고 있었다. 한껏 볕을 받은 태양열 조리기 온도계는 벌써 100℃ 눈금을 훌쩍 넘겨 어떤 요리라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조만간 대안학교로 보내질 자전거 발전기는 전날보다 좀 더 완성품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8월 말의 주말 오후가 나지막이 익어갈 무렵, 공동체의 어른과 아이 그리고 대안학교 중학교 1학년 8명의 학생들이 갑자기 밭으로 몰려들었다. 경운기로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는 일은 민들레학교 교장의 아들 김진하(고등학교 과정) 학생이 도맡았다.
선생님의 ‘엄한 명령’이나 ‘각별한 지도’ 없이도 아이들은 옆구리에 배추 모종을 한 판씩 추켜들고 붉은 밭고랑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푸르고 여린 배춧잎을 한 개씩 한 개씩 심어간다. 저 아이들에게 ‘소박한 농촌의 삶’은 그대로 교육이 되는 것 같다. 대안에너지에 대한 꿈도 저절로 영글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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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