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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자랑스런 대한민국 |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 이인호 공동위원장




오는 8월 15일 건국 60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다양한 건국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족한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이인호 공동위원장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위원장은 미국 하버드대 첫 한국 여성 박사, 첫 여성 대사 등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 여성 1호’라는 기록을 남긴 유명 역사학자이다. 그러나 평생을 ‘대한민국 여성 1호’라는 기록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여성 1호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살아왔다. 나라가 있기에 자신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건국 60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요즘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픈 말이 많다.


- 8월 15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신데 어떤 단체인가요.
“우리는 순수한 민간 차원의 단체예요. 지난해 초 정도 되면 올 60년 사업 기념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어야 하는데 당시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역사학자로서 답답한 마음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지난해 11월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우리 위원회의 근본 취지는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국민 전체에게 일깨워주는 데에 있습니다. 때문에 추진위원회가 직접 주관한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는 7월 23, 24일에 걸쳐 열린 국제회의였어요. 건국 60년의 의의를 되새겨보자는 뜻에서 준비한 행사인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SET_IMAGE]1,original,right[/SET_IMAGE] - 젊은 세대로 갈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역사는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지 못한 채 과거에서 그대로 재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 교육은 실패했어요.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대한민국 건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더 적은 게 우리 현대사 현실입니다. 건국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국민으로서 자아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 위원장께서는 건국 60년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건국 60년 동안 발전상을 논하기 전에 우선 잃었던 주권을 되찾고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했다는 의미가 큽니다. 헌법적 기틀을 갖춘 건국이 없었더라면 박정희 시대의 발전도, 민주화 투쟁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재 그 자체를 당연시하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60년 전을 되돌아보겠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미국이나 소련 등 서로 다른 힘의 틈 사이에서 국가체제를 방어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때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독립을 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게 아니겠어요.”

- 분단은 당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는 말씀이신지요.
“북한은 1945년 말부터 국가 설립 준비를 진행해 군대까지 이미 창설되어 있었어요. 분단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간의 세력 다툼 때문에 생긴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유엔이 남북한을 감시하고, 인구에 비례하는 선거를 통해 공화국을 설립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어요. 그런데 이를 소련이 거부했기 때문에 남한에서만 선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북한 정권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혔던 일부 386세대 역시 반공교육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세대지요.”

- 올해로 일흔 둘, 건국 60년을 쭉 지켜봐 오셨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역사적 순간이 있다면.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제게도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광복이 되던 해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썼습니다. 이름도 달랐지요. 그게 참 의아했습니다. 광복 당시  저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는데 모두들 꽹과리 치며 춤을 추었습니다.”





- 한국 여성 대사 1호로 핀란드, 러시아 등지에서 지내셨을 때도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을 핀란드를 보며 깨달았어요. 핀란드는 인구 500만의 작지만 강한 나라입니다. 100년 동안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형식상 받아들였고, 미·소 냉전 때에는 독자 노선을 지키면서 내적인 힘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세계 1등 복지국가로 꼽힙니다. 우리도 핀란드처럼 과거를 보듬고 실속 있게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핀란드의 경제성장은 놀라울 정도였죠. 현재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는 어떻게 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지금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경제도 어렵잖아요. 하지만 어느 나라이든지 자국의 이해 추구가 국제관계의 기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 다 같이 힘을 모아야죠. 70년대나 IMF 시절에 비하면 우리 국민들이 많이 안일해진 것 같아요.”

- 현 경제위기가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공직자들도 더 이상 공직은 일자리이지 먹을 자리가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시장경제의 원리를 십분 활용하지 않고는 국민의 힘을 최대한 가동할 수가 없어요.”

- 건국 60년을 맞아 제헌 국회, 국군 창설 등 우리나라를 지탱해 온 핵심적 시스템도 올해 환갑을 맞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건국 당시 헌법에 담긴 정신을 살펴보면 아주 이상적이었어요. 그럼에도 상황에 맞게 이미 여러 차례 수정을 해왔습니다. 사실 60돌을 맞은 사회의 여러 시스템을 수정하는 일보다 민주시민의식을 고양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요즘 젊은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리의식은 강하지만 의무는 잘 모르는 듯합니다. 탁월하게 잘할 사람을 선택하고, 선택한 사람이 잘하도록 도와야죠. 2002년 월드컵 당시 함성과 근래 촛불시위 때 든 촛불이 정말 우리나라를 위한 것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 그렇다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의 학자들로부터 이 같은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애국심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참 뼈아픈 비평입니다. 역사교육은 윗세대의 몫이에요. 지금부터라도 역사교육을 바로잡아 애국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건국기념관도 만들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주역이 될 젊은 세대가 건국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고 이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

- 앞으로 60년, 어떻게 보십니까.
“미래를 예측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선진국의 개념을 ‘사회의 하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약자, 빈곤층 등도 가진 역량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줘야 합니다. 이제 건전한 개인 민주주의를 토대로 사회주의를 펴나갈 때예요.
또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옛날 싸움이에요. 우리의 상대는 세계입니다. 우리 민족은 본래 부지런하고 똑똑합니다. 일하는 것만큼 보상받지 못해 잠재되어 있었을 뿐이죠. 이런 저력을 민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일깨웠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국민성을 살려서 세계의 두뇌로 뻗어갔으면 좋겠어요.”  


‘민주공화국 탄생’ 국제학술회의

건국의 의미, 학술적 성과 만개

대한민국의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 ‘민주공화국의 탄생’이 지난 7월 23~24일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강영훈·이인호·박효종)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국내외 유수 전문가들이 참석, 60년 전 건국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첫째 날에는 건국과 관련된 다양한 논문이 발표됐다. 김충남 미국 하와이대 동서센터 선임연구원은 ‘국가건설의 도전과 응전: 건국과 이승만’이라는 발표에서 “이승만 정부 아래에선 국회가 매우 강력했고 야당은 정부에 대한 막강한 도전 세력이었다”면서 “이승만이 권위주의에 빠지긴 했지만 민주주의 근본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이승만 정부와 다른 길을 택한 김구 선생에 대해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김구의 민족통일론과 두 가지 삶’이란 발표를 통해 도 교수는 “김구는 아시아에서 부상하는 민족 문제에는 민감했지만 세계 정세를 주도한 냉전체제 대립의 심각성을 경시했다”고 인정하면서 “이와 같은 한계까지도 보완하면서 김구의 평화통일론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성리학 전통에 비친 해방정국과 건국’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온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당시 농촌 유생들이 남겼던 일기를 분석했다. 또 박흥순 선문대 교수는 ‘건국과 유엔의 역할’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건국 기점을 1948년이 아니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 것이다. 이에 대해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한민국과 임시정부의 관계’에서 “임시정부가 발표한 헌법 및 건국강령 통치이념과 건국헌법의 통치이념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토론자로 나선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대한민국 국호가 나타나고 국민 주권이 시작된 것은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부터였다”며 반박했다.

이튿날인 24일에도 발표는 계속됐다. 서울대 박지향 교수는 ‘대한민국 국가 만들기와 그 의의: 인도와의 비교’란 주제로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이룬 한국과 인도는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면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단됐고, 무력 갈등을 겪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성장을 성취함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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