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46년 1월 15일 미군정은 한국에서 군정 법령 제28호를 발표함과 동시에 국방 경비대를 발족시킨다. 지금은 세계 최강의 국군으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군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해방으로 어수선한 몇 년간은 국방경비대의 골격이 유지됐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식 편제가 생기고 국군의 모태가 된다. 당시 미군정 하에 있던 국방경비대는 1948년 9월 1일부로 국군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같은 해 11월 30일 국군조직법이 국회에서 통과함에 따라 12월 15일 국방부에는 참모총장을, 그리고 육군본부에는 총참모장과 참모부장을 두게 된다. 초대 육군총참모장에는 이응준 준장, 참모부장에는 정일권 대령이 각각 임명됐다. 1948년 12월에는 병과제도(兵科制度)를 통해 보병·포병·기갑·통신·항공·병참·경리·감찰·군의·헌병 등을 두게 된다.
1949년 초까지 골격을 유지하던 지휘체계도 그 해 5월 국방부 참모총장제를 폐지하고 육·해군의 지휘를 국방부 장관이 관장토록 했다.
특히 육군은 편제상 종전의 여단을 사단으로 승격시키고 제7·8사단을 추가로 창설했다. 예비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호국군 및 각 지구 병사구사령부를 조직했다. 이에 따라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 직전까지 육군의 총병력은 8개 사단, 9만5000여명에 달하게 된다.
미국의 도움으로 창설됐던 군사영어학교의 후신인 국방경비사관학교는 한때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바뀌었다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로 개명된다. 이때 육사의 제1기생은 대부분 이미 다른 군사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 약 45일간의 단기 교육을 받고 1946년 6월 15일 초급간부로 임관되기에 이른다.
한국전쟁 기간 중 국군은 창군 요원의 29%를 포함해 25만7000여명의 희생을 통해 국가를 수호했다. 군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우리 군의 전투능력 향상을 위한 조치들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2훈련소와 광주 상무대에 전투병과학교가 설치되고,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로 바뀌었으며, 지휘참모학교가 대구에 개설한 때도 이 시기다. 한국전쟁 중 잘 훈련된 초급장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 장군의 제언과 도움으로 1951년 1월 20일 4년제 육군사관학교를 창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첨단 현대화 군 진용 갖춰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18개 사단, 휴전 후 2개 사단이 증강돼 총 20개 사단으로 현대화된 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비로소 한국군은 양과 질 양 측면에서 현대화된 강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군은 휴전과 더불어 흩어진 전열을 재정비하여 5개 군단에 20개 전투사단을 확보하는 한편 1군·2군 및 교육 총본부를 창설해 작전·군수·교육의 3개 기능으로 나누어 보다 효율적인 지휘체제를 확립했다. 이와 함께 군 현대화를 위한 신장비의 도입과 이에 따른 군구조의 정비, 부대의 통·폐합 및 재배치 등을 신중히 추진했다.
1959년 1월 1일 육군은 육군본부 직제를 참모부장 제도로 바꿔 참모업무를 사업별로 통합 지휘할 수 있게 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교육총본부에 예속되었던 각 병과학교 중 전투병과를 제외한 행정 및 기술병과학교, 여군훈련소 등을 육군본부 직할로 예속시켜 해당 병과장(兵科長)이 교육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로써 병과 실정에 부합된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1960년 5월에는 교육총본부를 해체하고 6월 1일 상무대에 2군 예속으로 전투병과 교육사령부를 창설하여 보병·포병·기갑·화학·항공학교를 동 사령부에 예속시켰다
ROTC 제도 신설 등 장교교육 중시
1960년대 초반 미 군사고문단은 완전히 한국군의 교육에서 손을 떼게 되는데 이 시기가 한국군에 있어 교육 훈련에 자족적인 체계를 확립하게 된 때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61년에는 ROTC 제도가 신설된다. 국내 38개 민간대학에 설치된 이 과정은 군 고급장교 양성의 새로운 축을 담당하게 된다. 한참 뒤 1971년에는 국방대학원에 국방관리 산업과정이 개설되는데, 이 또한 고급장교 육성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다.
1964년 한국군은 베트남전 파병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1964년 9월 11일,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시작으로 한 베트남 파병은 1973년 1월 23일 베트남 평화협정이 조인되고 그 해 3월 모든 병력이 철수할 때까지 약 32만 장병들의 참전이 이어졌으며, 아직까지도 한국 현대사에 숱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베트남 파병은 정치·외교·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손실이었다.

한국군은 70년대 초부터 어느 때보다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1973년 베트남에 파병된 군대의 철수와 함께 부대의 기계화·기동화 필요성에 부응해 1개 기계화 보병사단을 창설했다. 또한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제1차 율곡 계획’에 착수해 후방사단의 전력화, 전방사단의 4각 편제 개편, 개인화기의 전면교체, 예비사단 포병부대의 증·창설, 육군항공전력의 대폭증강 등 획기적인 전력증강으로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졌다.
아울러 방위산업 능력면에서 소화기는 물론 각종 공용화기와 대구경화포의 생산과 장갑차·전차 등을 자체 개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1978년도에는 중·장거리 유도탄과 다연장 로켓의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1973년 7월 제3군사령부를 창설했고, 1975년에는 현 전선 고수개념을 설정, 경인지역 방어사령부를 수도군단으로 개편하고, 4개 훈련단을 창설했다. 중·서부 주요 접근로에 40km에 달하는 전략적 방어 방벽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또한 월남 패망에 자극되어 1976년 부터 ‘팀스피리트’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해 매년 그 규모를 확대 실시했다. 1978년 11월에는 한·미 연합사령부를 발족시켜 한·미 관계를 안보협력의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시켰다.
1980년대 이후 한국군은 국방력 강화에 더욱 주력해 자주적 지상전투 태세를 확립했다. 1981년 5월에는 육군교육사령부를 창설해 한국적 교리 개발과 미래 지향적인 전투발전 업무를 전담케 하는 한편 지휘체계를 재정비한다. 또한 1989년도에는 육군본부를 지세적 요충지인 계룡대 지역으로 이동해 전략적 이점을 배가시켰다.
자주적 전투태세 확립
이러한 전력증강과 함께 방위산업 또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1982년 공군이 전투기 ‘제공호’를 선보인 이후 육군은 토우미사일이 장착된 500MD 헬기를 국산화했다. 1985년도에는 한국형 전차(K-1전차)를 개발·생산했고 중거리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 실전 배치하는 등 고도의 전자 무기체계까지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90년대에는 방위력 개선 목표달성 및 즉응전력을 강화했다. 주요 부대를 개편해 단위부대 전력을 향상시켰다. 합동참모부의 통합작전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자주국방태세를 완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베트남전 이후 한국군의 해외 파병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전제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1991년에는 걸프전에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구성된 33개국의 다국적군 일원으로 국군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뿐만 아니라 1993년 이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앙골라에는 공병부대를, 서부사하라에는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99년에는 동티모르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상록수부대가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국군의 날 강남대로서 가두행진
한편 국방부는 2008년을 ‘선진 강군’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 진행되는 국군의 날 행사는 이런 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국민과 함께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마련된다. 또한 선진 강군의 힘찬 기백을 과시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강군 국민과 함께 미래로 세계로’라는 기치처럼 정예화한 우리 군의 위용과 미래비전을 한눈에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방부는 건국 60년 기념행사와 연계해 지난 4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26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예화한 선진 강군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국군의 날 행사와 합동화력운용시범, 특별전시회, 스페이스챌린지 2008 등이 그것이다. 세계평화와 굳건한 국제동맹을 확인할 수 있는 국제관함식과 인천상륙에서 서울수복까지 한국참전용사 초청행사도 진행된다. 이에앞서 국민과 함께하는 강한 친구, 국군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지상군페스티벌, 기념 뮤지컬, 2008군대스리가가 펼쳐지고 있다.
국군의 날 행사는 식전행사, 본행사, 식후행사, 시가행진, 경축연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잠실종합운동장에서 5000여명의 병력이 참가하는 선진정예강군 출정식은 강군의 이미지를 국민 모두에게 선보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취임 연도에 맞춰 대규모 시가행진이 진행된다. 강남 삼성교~선릉역~역삼역 테헤란로 3km 일대에서 첨단장비 24종 88대가 행진에 참여한다. 특히 기계화부대의 시가행진에는 K1A1 전차와 K532 장갑차, K-9 자주포 등 우리 군의 첨단 무기 20여 종 80여 대가 선을 보인다. 아직 실전 배치되지 않은 한국형 차기 전차(K2)와 장갑차(K21) 등 최신 무기가 일반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계화부대 뒤로는 장병 300여명이 창군 당시부터 6·25전쟁, 베트남전, 해외파병에 이르기까지 19개 종류의 군복을 입고 삼성역∼선릉역의 2㎞ 구간을 뒤따라 행진하며 우리 군의 60년 역사를 보여준다. 또 14개 부대 1천800여 장병의 행진과 24대의 최신형 군용 지프차에 나눠 탄 군 원로 및 참전용사, 순직 유가족 등 72명의 카퍼레이드도 펼쳐진다.
예전처럼 성남 서울공항이나 충남 계룡대가 아닌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갖고 기계화 부대가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서 행진을 펼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건군제60년기념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서울 강남대로는 한국 경제발전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이런 곳에서 우리 군이 시가행진을 벌인다는 것은 선진 강군의 위용을 드러내고 무엇보다 국민에게 친근한 군이 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김봉기 대령(건군60년 국군의날 제병지휘부 작전처장)
“국민과 함께하는 시가행진 펼친다” [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건군 60년 기념사업의 캐치프레이즈인 ‘선진강군! 미래로, 세계로’는 어떤 의미인가. -국군의 날 제병지휘부의 주요 업무는 어떤 것들인가.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서 예전(55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국민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있나. -국군의날 행사를 준비하는 국군의날 제병지휘부 작전처장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건군 60년 기념사업의 캐치프레이즈인 ‘선진강군! 미래로, 세계로’는 어떤 의미인가. -국군의 날 제병지휘부의 주요 업무는 어떤 것들인가.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서 예전(55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국민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있나. -국군의날 행사를 준비하는 국군의날 제병지휘부 작전처장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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