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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옛날 한국에 ‘봉이 김선달’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들어보신 분 계신가요? 외국인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이름일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이 봉이라는 사람 말인데요,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습니다. 조선시대, 그러니까 한국의 근세를 이야기합니다만, 그 시대에 물을 팔아먹었다니까요.

하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닌 강물을 팔 수 있었을 리가요. 그래도 저는 이 사람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사방에 널린 게 물이던 그 시대에 벌써 물의 상품성을 제대로 이해한 거 아닙니까.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실 저희 회사 이름을 지을 때 ‘봉이’를 넣고 싶었는데 아내도 친구들도 다들 말리더라고요. 당신 사기꾼 되고 싶으냐고. 결국 저희 딸 제안으로 ‘물나라’가 됐습니다만 아직도 저는 봉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현재 저희 회사의 먹는 물 수출액이 1년에 5천만 달러쯤 됩니다. 매출액의 50퍼센트를 수출로 거두고 있죠. 그런데 이게 국내 물 산업 규모 전체로 보면 절대 큰돈이 아닙니다. 먹는 물 시장만 해도 한 해 1억 달러를 훌쩍 넘어요. 한때는 환경오염이 심각한 데다, 에비앙 같은 해외 대형 기업이 들어와 우리나라 물이 국내에서도 1위를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뒤집어진 게 2020년 정돈데 딱 그때 저희 회사가 시장에 들어갔어요. 물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다 보니 그만 물 판매량 1위에 국내 매출 40퍼센트 이상을 점유해버렸지 뭡니까. 저희 회사의 물 산지는 강원도와 제주도입니다. 이 동네가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거든요. 여기 물 공장을 세웠더니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대통령께서도 상을 주시더라고요.

이런, 제 자랑이 너무 심했네요. 물이 맛있는 비결 좀 알려달라고요? 아이고, 그걸 가르쳐드리면 어떡합니까. 기업 비밀인데요. 그래도 이렇게 모이셨는데 살짝 귀띔해드리자면 주변 환경을 청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깨끗한 물이 최고죠.

깨끗한 물. 그게 없어서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수가 세계적으로 거의 40억명에 달합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마실 물이 부족해 죽어간다는 소리죠. 특히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물 부족 현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일찌감치 아프리카로 진출한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일단 마셔야 살 거 아닙니까. 20년 전부터 나라에서 물 산업 육성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삼고 관리를 잘해온 덕이 컸죠. 일단은 치수, 물을 다스리는 게 우선이니까요.
 

어디 보자, 한국 물 산업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한 게 벌써 40~50여 년 전의 일이네요. 제가 아직 코흘리개 어린이였던 시절입니다. TV CF로도 곧잘 나왔었죠. 수로를 뚫고 물을 퍼올리는 사막의 모습, 환히 웃는 아이들. 그 물줄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기업 이름이 화면에 흘렀습니다.

공기업도 적극적으로 움직였죠. 2010년, 그러니까 20년 전에 벌써 세계 수십 개국에서 1백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완료한 상태였으니까요. 7백억원 이상을 들여 필리핀 등 3개 나라에 용수로와 상수도를 내는 대형 공사가 끝난 지도 벌써 15년이 훌쩍 흘렀네요.

당시 정부에서 앞을 잘 내다봤다 싶어요. 생각해보세요. 물만큼 인류의 삶과 밀접한 자원도 없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오래 버팁니다만 물을 못 마시면 바로 죽어요. 게다가 물은 굉장히 한정된 자원이라는 게 문제예요.

달에서 희귀금속을 캐고, 태양 빛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물은 지구 아니면 구할 수가 없거든요. 괜히 ‘블루골드(Blue Gold)’라고 불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식수가 원유보다 비싸니까요. 당연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가 물 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현재 물 산업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야 다 현장 전문가시니까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시겠죠. 네, 9천억 달러 규모입니다. 봉이가 들으면 너무 일찍 태어났다며 땅을 치고 울 일이에요.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슬슬 마무리해볼까요. 어제 현장 방문에서 한강을 보신 분들이 다들 강줄기를 잘 다스려놨다고 입을 모으시더군요. 그래요. 일단은 치수, 있는 물을 다스려야 합니다. 시장 변화를 읽는 눈과 전문적으로 물을 다룰 수 있는 손도 필요하죠. 무엇보다 중요한 게 ‘물은 한정되고 소중한 자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물 맛있고 풍부하다고 펑펑 퍼올려 쓰다가는 언젠가는 고갈됩니다. 운이 좋아서 물 하나로 국내 1백대 기업에 들지 않나,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히질 않나, 이렇게 세계 여러 전문가들 앞에서 어쭙잖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기회까지 얻었습니다만, 아직 저도 제가 많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의 소중함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거죠.

“한반도만 지구 수맥 한가운데 들어앉아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가 물 부족에 시달리는데 여기만 이리 풍족할 리가 없다.”

예전에 수출 건으로 독일 바이어 분을 만나 뵈었을 때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어이쿠, 이런 여기 앉아 계시는군요. 기억나십니까?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네, 맞습니다.

콩 한 알을 먹느냐 심느냐의 차이라고 했었죠. 먹어버리면 딱 한 개분의 영양분만 남지만 심으면 수 백, 수천 개의 콩이 또 주렁주렁 열리죠.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오는 양은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지만요, 이걸 어떻게 관리하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수 한 컵이 거대한 강줄기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자신들의 물 나무를 어떻게 키우실 겁니까? 감히 여쭈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김은영(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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