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6월 23일 오후 대전 대덕특구단지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 실험실. 언뜻 보면 컨테이너 박스 같은 실험실 출입구 계단으로 들어서는 순간 “윽!” …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실험용 쥐들과 페럿(길이 40~50센티미터, 몸무게 1~1.5킬로그램의 애완용 족제빗과 포유류)의 배설물 냄새예요. 좀 익숙해지면 괜찮으실 겁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김정기 선임연구원은 웃으면서 기자를 실험실로 안내했다.
초등학생들이 궁금해할 법한 질문부터 던졌다.
“얘들, 값이 얼마씩 해요?”
그래도 친절한 답변이 돌아온다.
“쥐는 마리당 3만~5만원, 미국에서 수입하는 페럿은 마리당 1백만원쯤 하죠.”
“그렇게 비싼 페럿을 꼭 수입해야 하나. 교미를 시켜 공급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수컷을 거세시켜 보내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페럿은 호흡기관과 호흡 프로세스가 사람과 유사해 신뢰성 높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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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페럿에게 주입한 것은 인플루엔자 백신이었다. 김 연구원에게 백신의 정확한 이름을 써달라고 했더니 ‘A/PR/8/1934(H1N1)’이라는 ‘괴상한’ 글자와 숫자의 조합이 수첩에 적힌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인플루엔자A(H1N1) 예방 백신의 한 종류로 ‘PR’는 중남미 국가인 ‘푸에르토리코’를 의미한다. 여기에 이 연구원에서 자체 연구 중인 어주번트(Adjuvant)도 투입됐다. 어주번트는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물질. 백신만이 아닌 ‘백신+어주번트’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이다.
백신과 어주번트를 투입한 실험용 쥐와 페럿들은 3주 동안 경과를 지켜본 뒤 같은 양의 백신과 어주번트를 주입하고, 다시 2주 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5주가 지나면 백신으로 항원이 주입(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상태)된 쥐와 페럿의 신체 변화를 확인한다. 항체 생성 여부 및 항체 특이성과 체중 변화 등도 함께 점검한다. 또한 폐를 꺼내 바이러스가 얼마나 증식하는지도 분석한다.
인플루엔자 예방에 있어 백신에만 의존하지 않고 어주번트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행여 대유행이 확산돼 백신이 부족할 경우 한국인에게 맞는 어주번트를 인플루엔자 대응 보조제 혹은 대체제로 활용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다. 이는 사실상 국내에서 개발되는 국제적인 원천기술 아이디어다. 앞으로 임상에서 안전성이 입증되면 예방 백신 개발과 면역 산업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생명공학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이하 연구단)은 국가 신성장동력 등의 연구 강화를 위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 대학, 산업계를 결집시킨 12개 ‘드림팀’ 중 하나이다. 이 연구단에는 서울대, 연세대, 충남대, 국민대 등 7개 대학과 국제백신연구소, 그리고 녹십자 등 2개 기업이 참여했다. 연구단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방 백신 및 면역 증강 신기술 개발 등을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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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생한 직후 항바이러스제 공급량이 수요를 못 따라가 혼란을 빚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찾아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인플루엔자 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기술과 백신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연구단장인 부하령 교수는 2008년 말 우여곡절 끝에 힘겹게 ‘드림팀’을 꾸린 기억을 떠올리면 짧은 휴식시간도 아깝기만 하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연구기획안 평가를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인플루엔자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하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어요. 감염질환 연구라는 과제 자체가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하잖아요. 솔직히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의 ‘컨트롤 타워’인 한국생명공학원 연구진과 연세대 등 2개 대학, 2개 산업체가 소속된 그룹은 ‘유니버설(범용) 백신기술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 교수는 “유정란에서 만드는 기존 백신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범용 백신 기반 연구가 절실하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앞에서 살펴본 어주번트의 효능 연구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현재까지 실험한 결과 어주번트를 투입했을 때 효능이 크게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과정이 안전성 연구와 임상실험에서도 완벽하게 입증되면 백신 생산효율을 높여 국민 의료비 절감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현재는 청국장이 발효할 때 나오는 점액물질 성분인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이용한 어주번트의 효능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부 교수는 백신 및 면역보조제 개발을 위해 지난해 우리 국민에게 친숙한 청국장에서 얻을 수 있는 폴리감마글루탐산의 면역활성 증강 기능 및 항암효과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이 물질의 기질적 특징을 활용하고 있다.
산학연 연구단은 2단계 연구 과정이 끝나는 2014년까지 유행 바이러스 백신 후보 24주와 범용 백신기술 2건 등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연구단 중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근무하는 연구 인원은 부 교수를 포함해 10여 명. 이들 석·박사급 요원들이 주말에도 연구실을 지키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실을 떠나면서 부 교수에게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부 교수는 이런저런 설명 대신 “우리는 인플루엔자 기초연구분야 국가대표예요”라고 말했다. 어느 종목이든 국가대표 선수들은 사명감으로 체력과 환경의 한계를 이겨낸다. 책임감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바로 그런 심정으로 한 말일까.
글·유재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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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