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요즘 아이 키우는 부모 사이에 ‘미운 일곱 살’은 옛말로 통한다. ‘미운 네 살’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고 말이나 행동, 모두 어른 축소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른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아이는 순수하다.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예로 들어보자. 외국인과 한국인, 선을 긋는 것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달라도 섞여 놀다 보면 금방 정이 들고 친해진다. 출신지나 언어, 생김새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급 회장과 부회장 등을 맡은 국제결혼 가정 자녀를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필리핀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홉 살배기 황보권(남양주시 창현초등학교 2년) 군은 학교에서 아이들 말로 ‘인기짱’이다. 처음에는 보권이의 짙은 피부색을 두고 놀리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오히려 성격이 밝고 활달한 보권이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구가 많다. 무엇보다 보권이는 영어를 잘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영어 조기교육이 보편화된 요즘, 보권이의 경우 어려서부터 엄마와 영어로 대화를 나눠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수준급 회화실력을 갖추게 됐다. 요즘 초등학생도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를 보권이는 자막 없이도 웬만큼 알아듣는다. 친구들 사이에서 보권이는 ‘영어 박사’로 통할 정도다.

다문화 가정 자녀 중 인기 스타는 보권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도희(중학생·15)도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역시 일본어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면 하나 둘 휴대용 일본 게임기를 들고 도희 자리에 모인다. 이 게임기는 요즘 청소년 셋 중 두 명이 갖고 있다시피 한 인기 제품이다.
아직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일본판 게임을 친구들이 어디선가 구해 오면 도희가 척척 설명해 준다. 일본 드라마, 만화책도 문제없다. 도희의 큰형 도형이(19)도 일본어를 잘하기는 마찬가지. 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도형이는 1년 후 일본 대학교에 진학할 생각이다.
요즘처럼 외국어 교육이 중시되는 시대에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스타다. 예전에야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을 ‘혼혈아’ 등으로 부르며 사회 소외계층으로 분류하곤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어학 연수나 유학 등을 통해 결혼한 국제 커플이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가정형편도 넉넉한 편이다. 그런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히 외국어 실력이 월등할뿐더러 또래 아이에 비해 해외여행 경험도 많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자녀 교육 문제 심각
물론 다문화 가정의 모든 청소년들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기도 하고, 적응을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심지어 아예 학교 다니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난해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7~18살 취학 연령대에 해당하는 아이 중 45% 가량이 외국인학교에 다니고, 일반학교 재학생은 9%에 불과했다. 나머지 46%는 아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자녀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취학 연령대 청소년들이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인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와 재혼해 2006년 12월 한국에 오게 된 자야(고등학생·17)는 입학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자야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가 서툴러 바로 입학을 할 수 없었다. 서울 정동한글문화학교에서 6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운 후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한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일사천리로 해결된 것 은 아니었다. 국적 문제 등 소소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자야가 꿈꿔왔던 한국 학교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자야는 몽골 국적의 어융벌드(16)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어융벌드는 미등록 상태라 한국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없다. 어융벌드는 홀어머니만 몽골에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전부 한국에 있다. 큰누나는 서울 모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작은누나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어융벌드는 관광비자인 C-3 비자로 한국에 체류하다 미등록 상태가 되었지만, 계속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2007년 9월쯤 한국의 중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비자가 없고 부모도 한국에 함께 있지 않아 입학할 수 없었다. 네 살 터울의 동생 어융바이라도 같은 이유로 아직까지 한국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어융바이라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다. 너무 어려 돈을 벌 수도 없어 매일 집에 있는 상황. 형인 어융벌드만이 현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데리고 온 자녀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도보다 ‘동반자’ 인식 변화 중요
다문화 가정 자녀 대부분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큰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10년 후쯤이면 우리 사회가 큰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이 다문화 가정 자녀가 학교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거창한 프로젝트 추진이나 거액의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인식의 변화”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문화 가정을 일반 가정과 다른 눈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은 말 그대로 여러 문화가 섞인 가정일 뿐이다.
사단법인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최정의팔 대표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일, 또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 모두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취재 중 만난 다문화 가정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부모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한기(8)의 예가 그렇다. 한기는 앞서의 도희처럼 엄마가 일본인, 아빠가 한국인이다. 처음 엄마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는 반 친구들이 한기 엄마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듣고 한기를 ‘일본 사람’이라고 놀렸다. 한기는 그럴 때마다 일본인인 엄마 때문이라며 엄마와 부딪쳤다. 때로는 어눌한 발음의 엄마를 바보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기 엄마는 학교 방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드나들며 한기네 반 엄마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한기에게 반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도록 해 일본어를 가르쳐주었다. 이는 동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요즘 한기네 집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북적이는 온 동네 사랑방이 됐다. 이제 한기는 사람 냄새 나는 집에서 하루가 다르게 밝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 외국인 자녀 특별학급
한국 문화 이해 아이들이 밝아졌어요
외국인 근로자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 중 하나가 경기도 안산이다. 때문에 경기도 교육청은 2006년 3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자녀를 위한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안산과 시흥의 초등학교 특별학급에서는 한국어를 포함한 각 교과목의 수준별 수업과 함께 한국 문화와 자국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별도의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안산 원일초등학교 특별학급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친구 간의 믿음과 우정을 바탕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가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내성적이거나 난폭한 성향을 보였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성격이 밝아지기도 했다. 이는 결국 다문화 가정 자녀교육 문제가 우리 가족이, 우리 아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임을 시사한다. 원일초등학교 아이들은 지구촌 문화수업 등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게 됐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까지 특별학급을 4개 학교, 4개 학급으로 늘릴 계획이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역시 상담센터나 한국어반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학부모 연수를 실시하는 등 학교에서의 교육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역 봉사단체도 한국어 교실을 마련해 말을 익힌 뒤 초등학교로 편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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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