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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1101호

해외 사례 - 세계는 지금 디자인 경영시대







최근 선진국 도시들은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이 모델은 신축 위주의 대규모 재개발과는 달리 현지의 특성과 지역민의 정서를 존중하는 자족적, 순환식 개발이라는 점에서 ‘녹색 공공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그 특성으로는 △환경보전과 자원 절약의 녹색기술 활용 △산업화의 유물, 문화유산 등 옛것의 재생 △현지 주민을 위한 생활밀착형 개발 등을 꼽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을 보여주는 해외 사례는 꽤 많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798번지의 ‘다산즈(大山子) 798 예술구’는 1950년대에 건설된 군수공장 지대에서 중국 최대의 아트 마켓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쇠퇴, 폐허로 남아 있다가 2000년경부터 가난한 작가들이 모여 들면서 예술구로 바뀐 것이다. 이곳을 재개발해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시의 당초 계획은 아트 마켓이 활성화되고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레 무산됐다. 이렇게 재생과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은 중국은 전국 50여 개의 재생 단지에 예술문화 창작공간을 세웠거나 세우기로 했다.
 

상하이의 ‘모간산루’ 50번지는 쓸모가 없어진 방직공장 거리가 ‘M5 예술촌’으로 변신한 예다. 2000년부터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곳은 80여 개의 예술단체, 1백40여 개의 화랑, 18개의 디자인센터 등이 즐비해 상하이에서 지정한 11개 특색 문화거리 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유산을 현대 문화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영국 런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런던에서 2000년에 문을 열어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은 테이트 모던은 옛 화력발전소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갤러리로 바꾼 예로, 건물 자체가 유명 전시물에 못지않게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런던 템스 강변의 와핑 수력발전소(1890~1977)는 ‘와핑 프로젝트’를 통해 2000년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높은 천장과 낡은 창문, 거대한 보일러, 펌프, 도르래 등 수력발전소의 외형과 내부 시설을 거의 그대로 살려 테이트 모던보다 훨씬 손을 덜 댄 재생 사례로 꼽힌다.
 

옛 감성과 추억에 호소하는 ‘레트로 스타일(Retro Style·복고 스타일)’은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도 효과적인 공공디자인이다. 18 59년 일본 최초로 개항한 항구 도시 요코하마는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근대에 세워진 부둣가 창고 등의 역사 유물과 차이나타운의 이국적 풍광을 도시 재생의 중요 고리로 삼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는 1983년부터 2010년까지 장장 27년간 추진된 ‘미나토 미라이21’ 프로젝트에 힘입은 것으로, 프로젝트 이름에서 보듯 항구의 기능을 잃어가는 요코하마를 21세기 미래(미라이)의 항구 도시(미나토)로 재도약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요코하마 시민들도 부둣가 창고에 고급 레스토랑과 디자인용품점, 카페를 만들어 문화공간으로 가꾸는 데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 매달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등 연간 8천6백억 엔의 경제효과와 함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요코하마시의 평가다.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인 오타루시는 홋카이도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오타루시는 1983년에 ‘역사적 건축물 및 경관지구 보전 조례’를 지정해 1914년 이래로 화물을 실어나르던 작은 운하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고 오르골, 전통 과자, 유리 공예품 등을 파는 거리를 만들었다.
 

비슷한 예로 규슈 최북단의 항구도시 모지코는 르네상스풍의 목조 기차역, 복고풍의 파란 관광열차, 세관과 은행 등으로 쓰이던 근대 건축물 등을 재생해 낭만적인 도시를 개발했다. 모지코시는 이러한 사업에 힘입어 1994년 25만명 선이던 관광객 수가 10년 만인 2004년에는 열 배에 가까운 2백30만명 선으로 늘었다.
 

역사가 오랜 재래시장의 가치를 높이는 등의 생활밀착형 공공디자인 사례도 풍부하다. 런던의 버러 마켓은 장터가 생긴 역사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철길 주변의 유휴 부지를 웰빙·오가닉 푸드 중심의 재래시장으로 개선해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런던 동부의 스피탈필즈 마켓은 최근 민자 유치를 통해 옛 건물과 새 건물이 공존하는 재개발을 했는데, 17세기 중반에 생긴 시장을 없애지 않고 영세 상인들이 그대로 장사할 수 있도록 개선한 사례다.
 

또 런던 북동부의 마구간 동네였던 캠든 마켓에는 말 조형물이 세워지고 카페와 먹을거리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대중문화 공간으로 유명해졌다. 그런가 하면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의 집성촌인 브릭 레인은 런던시에서 문화예술특구로 지정해 다문화 거리로 육성하고 있다. 최근 는 “브릭 레인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다문화를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의 특수가 기대되는 곳”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자족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을 통해 거듭난 도심 공간은 구질구질한 중고품 진열장이 아니다. 오히려 재생을 통해 다시 태어난 공간은 현대인을 불러모으는 모던한 곳이 될 수 있다.
 

올 봄 미국 뉴욕 첼시 거리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흉물스러운 옛 철길에서 ‘하이라인’이라는 도시 공원으로 개장했는데, 그 모습은 최첨단 건축물을 뺨치는 조형미를 보여준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낡은 건축물들을 재생한 ‘신천지’라는 매력적인 공간이 있는데, 이를 두고 중국 언론은 차이니스 모던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평한다.
 

최근 우리나라 공공디자인에도 이 같은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근대문화 중심도시’를 추진하면서 조선은행, 적산가옥, 사찰 등 1백70여 채의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고 정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9월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화물 창고를 공연장과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바꿔 인천 구도심을 재생하고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는 이중효과를 보고 있다. 이처럼 ‘개발’보다는 ‘재생’에 초점을 둔 공공디자인이야말로 우리 삶과 도시 문화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
 

글·홍의택(경원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퍼블릭디자인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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