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5분을 걸어 들어오면 24시간을 책임지겠다.”
2008년 초, 개교를 앞둔 구현고교(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명복 교장의 호언장담이었다. 구현고는 대로변에서 공장 건물들 사잇길로 5분쯤 걸어 들어와야 보인다. 설마 이런 데 학교가 있으랴 싶은 옛 공장 자리에 개교한 구현고에 자녀를 보내야 할지 반신반의하는 학부모들에게 초대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한 교장은 ‘24시간 케어 프로그램’을 약속했다.
결과는? 구현고는 약속을 지켰다. 구현고 학생들은 원하면 학교에서 24시간 지낼 수 있다. 구현고 안의 ‘작은 학교들’ 덕분이다. 먼저 아침 7시 반이면 ‘개미학교’가 문을 연다. 개미학교에서는 월요일엔 리더십 훈련, 화·목·토엔 영어와 수학, 수·금에는 독서를 한다.
7교시 정규수업이 끝나면 전교생이 ‘디딤돌 기초학교’에서 복습 위주로 수업을 받는다. 저녁식사 후 밤 8시까지는 학생이 참여 여부를 선택하는 ‘디딤돌 심화학교’ 시간이다.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반딧불학교’에서 밤 10시 30분까지 자율학습을 할 수 있다. 이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 멘티·멘터로 공부하는가 하면,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한다. 반딧불학교 참여율은 83퍼센트. 집이 멀거나 그 후에도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학생은 4층 전인교육관(70석)에서 공부하다 잠을 자도 된다. ![]()
이처럼 24시간 프로그램을 갖춘 구현고는 ‘사교육비 줄이기’의 살아 있는 모델이라고 한 교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전교생 8백37명 중 5백명이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 책상을 갖추는 등 고급 사설 독서실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사설 독서실비가 1인당 월 12만원이라고 치면 연간 1백44만원을 절약하는 셈이고, 5백명이면 무려 7억2천만원이 절약됩니다. 디딤돌학교에선 학원 강사 대신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 공부를 지도하니 한 달 수십만원의 학원비로 치면 전교생이 1년에 수십억원을 줄일 수 있다는 셈이 나와요. 서울 시내 3백8개 고교가 다 저희 구현고처럼 사교육비를 줄이면 천문학적인 경제효과가 있겠죠.”

구현고의 갖가지 ‘교육실험’은 파격적이다. 희망과목 집중이수제, 교과교실제, 1교사 1대학 진학 컨설팅, 전 교사 자기수업 촬영 등 공부와 진학 관련 프로그램은 물론 실력, 인성, 사회공헌력을 고루 갖춘 전인교육 프로그램도 시도하고 있다. 5무(無) 운동(흡연, 폭력, 수업시간 졸기, 휴대전화, 지각 없애기), 격주 홀몸노인을 위한 봉사활동, 연 1회 해외문화 봉사활동 등이 전인교육 프로그램들이다. 이에 흥미를 느낀 일본 도쿄시립대 연구자들이 매년 구현고를 방문해 추적조사를 하고 있을 정도.
최근 이 학교에 부임한 박보영(25) 수학교사는 “학생들이 밝고 인사성이 바른 데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훨씬 큰 데 놀랐다”고 말했다. 3학년 고정우 학생은 “전인교육을 실현하는 구현고는 학생을 다빈치형 인재, 즉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구현고는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구현고의 학업 성취도는 놀라울 정도. 자율형 공립고인 구현고는 구로구 거주자 60퍼센트, 다른 지역 거주자 40퍼센트 비율로 성적과 무관하게 학생을 뽑는다. 2008년 개교 당시 구현고 1학년의 학력 수준은 서울지역 고등학교 평균을 밑돌았지만, 그해 10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5개 과목 모두 서울시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구현고는 지난해 <국민일보>가 조사한 서울지역 선호고교 순위에서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학교들에 이어 상위 14위에 오르기도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 입학 경쟁률은 7.6대 1을 기록했다.
구현고는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다양화 및 자율화 정책을 잘 반영한 자율형 공립고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자율형’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율형 공립고나 자율형 사립고는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폭넓게 부여한 학교. 구현고처럼 다양한 교육실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에는 내년에 개교할 학교를 포함해 자율형 공립고 44개교, 자율형 사립고 43개교가 지정돼 있다. 특히 정부는 구현고처럼 주변 환경이나 교통 여건이 불리한 지역과 농산어촌 낙후지역, 신설학교 등을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해 학교당 연간 2억원을 지원하는 등 전국 단위의 공교육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에도 비싼 등록금에 따른 ‘귀족학교’ 논란을 막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정원의 20퍼센트 이상 선발해 학비를 지원한다.
기숙형고교는 농산어촌, 도농복합시 등의 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 학생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하는 학교다. 낙후지역의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8년 82개교, 2009년 68개교 등 전국에 총 1백50개 기숙형고교를 선정하고 기숙사 시설비, 학교 컨설팅 등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에 선정된 기숙형학교 중에서 본받을 만한 기숙형학교 6개교를 선정했다. 공립 기숙형고교로 나주고(전남 나주), 서천여고(충남 서천), 김제여고(전북 김제), 장호원고(경기 이천), 성환고(충남 천안), 사립 기숙형고교로는 충원고(충북 충주)가 뽑혔다. ![]()
이들 학교는 기숙형고교는 물론 일반학교에도 확산 가능한 자기주도학습 모델, 입학사정관제 대비 학교생활관리 모델, 기숙사 내 동아리 활동 모델을 독창적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보성고(전남 보성)는 2008년 기숙형고교로 선정된 후 2년 연속 기숙형고교 연구학교로 주목받고 있는 학교다. 전교생 3백33명 중 1백8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생들에게 입학사정관제 대비 성적 관리와 인성교육을 집중적으로 해주는 게 특징이다. 선후배와 교사·학생 간의 멘터링 제도, 주요 과목 팀장제 탐구반 외에 판소리, 문학기행 등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강화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보성고의 박혜경 국어교사는 “농어촌 학생들은 학교에서 먼 곳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시설이 좋은 기숙사에 들어가면 통학시간을 절약해 공부할 수 있어서 인기가 높다. 대기자가 줄을 서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제도기획과의 이태근 주무관은 “낙후지역에 기숙형고교가 생김으로써 시군구 지자체, 지역 장학회 등 지역사회가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지원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 하반기부터 기존 자율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고를 묶어 ‘자율고’로 통합 정비할 방침이다. 복잡한 기존 자율형 학교 체계를 ‘자율’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기 쉽게 바꾸는 것이다. 이들 자율고는 학교를 경쟁력 있게 경영하도록 교장공모제를 적극 시행한다. ![]()

올 하반기에는 특목고 분류도 단순해진다. 농, 공, 수산, 해양 등 4개 전문 계열을 포함해 과학, 외국어, 예술, 체육, 국제 계열 등 9개 계열이 과학고, 외고·국제고, 예술·체육고, 마이스터고 등 4개 계열로 통합되는 것.
전문계고 체계도 단순하게 개선된다. 지난 5월 12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는 ‘고등학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이 심도 깊게 논의됐다. 이날 회의에선 전체 전문계고를 ‘분야별로 특화된 직업교육기관’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즉, 현재 마이스터고(21개교), 특수목적고(선원, 자영농 등 특수 분야 인력 양성 40개교), 특성화고(디자인, 게임 등 교육과정 특화 1백68개교), 일반 전문계고(2백75개교), 종합고(일반교육과 직업교육 병행 1백87개교) 등 모두 6백91개 전문계고를 2015년까지 마이스터고(50개교), 특성화고(3백50개교), 일반계고(2백91개교)로 재편성한다.
이와 같은 직업교육기관 체제 개편을 위해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 운영 ▲선(先)취업 후(後)진학 체제 구축 ▲재정지원 및 평가관리제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글·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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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