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사불이(家社不二). ‘가정과 회사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으로, 지난해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동부제철의 노사문화를 대변하는 말이다. 동부제철은 그동안 몇 차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마다 사내에는 ‘회사가 있어야 가정도 존립할 수 있다’는 동부제철인들 특유의 정서가 형성됐고, 이를 토대로 노사가 합심해 회사를 지켜내고 성장시킬 수 있었다.
1980년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던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에 휘말린 데 이어 1993년에는 엄청난 파업사태를 겪으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동부제철의 위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7년 아산만 공장을 착공한 직후 터진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공장 설립이 중단된 것. 그러나 직원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사가 하나로 뭉쳐 외환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상여금을 반납해 회사 살리기에 동참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 결과 1999년에 마침내 아산만 공장이 완공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2008년 동부제철은 40년 숙원사업이던 전기로 제철사업을 위해 1조원의 신규 투자를 감행한 후 또다시 궁지에 몰린다. 당시 막 불어닥친 미국발(發) 금융위기 탓이었다. 그 충격과 피해로 회사는 공장 가동조차 어려울 만큼 최대의 위기에 몰렸으나 이때도 가사불이 정신으로 뭉친 노사의 단합된 힘이 빛을 발했다.
직원들은 이번에도 자발적으로 나서 임금의 30퍼센트를 회사에 반납했다. 그것도 나중에 회사가 잘되면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반납이었다. 이를 위해 근로자들은 자녀의 학원 수강을 중단하거나 적금을 해약하기도 했다. 노측의 이러한 자기희생에 회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는 ‘1백 퍼센트 고용 유지’로 화답했다. 아울러 직원들의 기본급을 유지하고 사내 대출상환을 보류했으며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창출을 꾀하기도 했다.
노사 상생을 위한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7월 동부제철은 세계에서 가장 최단 기간에 쇳물을 뽑아내는 제철공장을 완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광희 사장은 “가사불이 정신은 우리 회사의 노사화합 문화를 형성하고 지켜내는 하나의 DNA로 작용하고 있다”며 “고비 때마다 회사를 위해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내하는 동부제철인들이 눈물겨울 만큼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사측의 직원 사랑도 근로자의 애사심 못지않다. 입사하면 독신자 숙소와 무료 식사 제공은 기본. 결혼하면 사원 아파트를 주고, 자녀수에 상관없이 대학교까지 학자금도 대준다. 또 정년 후 재고용 프로그램을 운영해 은퇴 후에도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회사가 발 벗고 나선다. 다른 회사보다 가족 근무자가 많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박희준 노조 지부장은 “회사를 가정처럼 생각하니 근로자 자녀들의 입사 지원이 많고, 회사에서도 가족 근무를 독려해 여러 가지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회사는 화합의 노사문화를 넘어서 한 사람이 입사하면 은퇴 이후까지 책임지는 기업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경기도 안산에 본사를 둔 신창전기는 2008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 메이커’를 비전으로 삼았다. 올해는 세계시장 점유율 5위에서 3위권 내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달성하고자 고부가가치의 신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확보로 매출을 늘려나가고 있다.
이처럼 희망찬 미래를 키워나가는 오늘날의 신창전기를 일궈낸 원동력은 제2차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라는 고난 속에서 싹튼 노사 간 화합과 단결이다. 신창전기는 노조가 생긴 지 2년 만인 1989년부터 해마다 쟁의신고와 태업이 다반사로 벌어졌으나, 1995년 임금동결과 무분규 타결을 계기로 다시 예전의 노사화합 분위기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로 9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을 때도 노사는 임금과 복지부분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고통을 분담하기로 합의하고 상여금, 학자금 등을 반납해 위기를 이겨내고 회사를 살려냈다. 이후 신창전기의 매출액도 꾸준히 증가해 2004년부터는 2천억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2008년 12월부터 미국발 금융위기로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져 지난해 1월에는 매출이 50퍼센트 줄고, 8백10명의 직원이 휴업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규모 감원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노사는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살려 다시 일정 부분 고통을 분담해 위기를 극복하기로 합의했다. 임금의 일정 비율을 자진 반납하고 각종 복리후생비를 양보하는 조건으로 단 한 명의 근로자도 해고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 그 결과 회사는 연간 1백억원을 절감해 생산성 향상과 품질혁신 등에 투입했다.
신창전기는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상생의 길을 갈 때 성장발전이 가능하다고 믿고 ‘3분의 1 원칙’을 추구한다. 이 원칙은 이익을 3등분해 회사와 직원, 주주에게 각각 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전 직원은 자신의 직무에 맞는 자기개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노사화합과 학습문화를 다져나가고 있다.
신창전기 박종남 이사는 “지난해 노사합의는 일주일 만에 단 3차례의 노사협의회를 거쳐 이뤄졌다”며 “노조위원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고용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실시해온 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강조했다. 이상휘 노조위원장은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노사화합을 통해 지금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조합원들을 설득해 ‘고용안전 최우선, 일정 부분 고통분담’이라는 양보교섭을 이뤄냈다”며 “앞으로도 책임감을 갖고 노사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9월 노동부로부터 노사한누리상 단체부문상을 받은 동국제강은 1994년 ‘항구적 무파업 선언’ 이후 16년 동안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조가 먼저 임금동결을 선언하자 회사는 고용보장을 결의함과 동시에 경영진과 사무직의 연봉을 10퍼센트 반납하고,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추진해 고통분담에 적극 동참했다.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3천억원의 적자를 낸 동국제강은 이러한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 극적인 흑자 전환을 실현했다. 이와 함께 근무 체제를 3조3교대에서 4조3교대로 개편해 근로조건 개선은 물론 36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도 거뒀다. 특히 지난해에는 올해 채용 예정자를 포함해 2008년의 2배에 달하는 1백50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박상규 노조위원장은 “매월 한 번씩 각 부서별로 진행하는 회합이 노사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안정된 노사화합 관계를 유지하려면 평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 욕구를 충족시켜줄 방법을 찾아내 합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8백7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여행업체 모두투어네트워크는 지난해 6월 상생의 노사문화를 꽃피운 공로로 노사한누리상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노사협력을 통해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극복한 이 회사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으로 매출이 급감했을 때도 노사가 합의해 순환 무급 휴직을 실시함으로써 어려움을 이겨냈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라 여행시장의 경기가 악화되자 대표이사 이하 임원들은 그해 8월부터 급여의 50퍼센트를 삭감하고, 과장급 이상은 9월부터 12월까지 임금의 30~50퍼센트를 줄여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다.
또한 여행경기 침체에 따른 경영 악화를 극복하고자 2008년 11월과 지난해 3월, 고용유지를 전제로 한 2차례의 양보교섭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임금 삭감, 순환 무급 휴직 등을 실시했다. 이러한 고통분담으로 회사는 월 38억원의 절감 효과를 거두고, 지난해 1분기에 비로소 흑자를 달성했다. 여기서 발생한 1억8천만원의 수익은 모든 임직원에게 특별성과금으로 균등하게 지급됐다.
홍기정 사장은 “기업은 노와 사가 같은 꿈을 꾸며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 성장 발전할 수 있다”며 “우리 회사는 고통을 함께 나눈 것처럼 성과도 함께 나눔으로써 노사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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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신뢰와 참여를 바탕으로 노사화합을 일궈낸 현대중공업과 금호피앤비화학,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으로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을 다져온 포스코, 노사 합의로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도출한 YK스틸, 성숙한 노사협력 시스템으로 기업경쟁력을 극대화한 삼정피앤에이 등이 상생의 노사문화를 이끌어가는 모범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뢰와 화합을 중시하는 새로운 노사문화는 껄끄럽던 사내 소통의 길도 터줬다.
삼성전자는 사내 매체에 정보를 우선 공급하는 방식으로, LG전자는 최고경영자(CEO)와 사원들 간의 장시간 토론으로, KT는 직원 집에 사내 방송을 연결해 사내 소통에 힘쓰고 있다. 또 SK텔레콤은 직원들과의 원활한 의견 교환을 위해 인트라넷에 소통게시판을 마련했다.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최근 1980년 이후 태어난 사원과 대리급 직원들을 따로 만나 3시간 동안 토론을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준수 LG전자 노조위원장은 “사내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딱딱하고 수직적이던 조직 분위기가 개방적, 수평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예지은 수석연구원은 “사내 소통 강화는 신세대와 여성 등 기업 내 다양해진 인력 구성원들의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글·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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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