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G20 피츠버그 정상회의는 우리에게나 세계적으로나 의미가 남다른 ‘사건’이었다. 내년 11월 우리가 아시아권 국가로는 처음 G20 정상회의 개최국가가 된 것, G20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협력의 최상위 포럼(Premier Forum)이 된 것은 모두 그 의미가 심대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고위 관계자가 “G7은 이미 과거의 협력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정도로 이미 전 세계 힘의 중심축은 G20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G20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던 프랑스와 일본도 대세에 순응하는 분위기다.
이번 피츠버그 정상회의는 논의 주제가 위기 대응에서 위기 이후로 옮아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위기 이후 새롭게 부각된 국제사회의 고민에 대해서도 ‘알맹이’ 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영국에선 은행의 기본자본 비율을 일부 상향하는 등 그간 G20 차원에서 논의됐던 금융 규제 내용이 현실 규정으로 적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기관 CEO들의 연봉 규제나 신용평가사 규제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G20 정상들의 공식 선언문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자칫 지루하고 정치적인 수사로 보이지만 이번 선언문은 향후 글로벌 경제 이슈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좋은 척도라는 점에서 한 번쯤 음미해볼 만하다.
![]()
이번 회의에서 부각된 가장 큰 화두는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의 새 틀 짜기, 바꿔 말해 세계적인 경세제민의 틀 바꾸기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이 문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반복되는 자산 거품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중국, 인도 등 아시아권 개발도상국 경제권의 역할론도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의 목소리와 위상이 한층 강해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개발경제권 국가와 선진국의 가교 역할에 공격적으로 나선 영향이 크다.
세계경제의 불균형 해소와 지속가능한 성장은 미국이 가장 역점을 둔 현안이다. ‘경세제민의 새 틀’ ‘위기 후 전략’으로 요약되는 이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 간의 불균형 해소를 의미한다.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이미 오래된 얘기지만 그 원인국가인 미국과 영국이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중국, 독일과 같은 경상수지 흑자국과 미국, 영국과 같은 만성 적자국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일단 회원국들이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협력체계(Framework)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상수지 적자국가는 민간 저축을 늘리고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며, 반대로 흑자국가는 국내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자는 게 큰 방향이다. 원론적으로 이견이 나오기 힘든 수준의 언급이다. G20는 정책공조의 실효성을 위해 IMF가 지속적으로 상호 평가와 정책 감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이다. 균형성장을 위해선 불균형 상태에서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한다. 서로 똑같이 부담을 나눌 수도 있지만 힘을 내세워 강대국이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금태환제 폐지나 플라자합의 당시처럼 또 하나의 미국을 위한 빚잔치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
일단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표면적으론 중국이 수출에 의존해 경제성장을 추진하기보다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의 고정환율제 유지에 강한 톤의 비판을 내놓는다.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사실상 균형 회복의 ‘부담’을 누가 질지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각국 정상들은 다만 실행 중인 위기극복용 경기부양 정책은 회복 신호가 확실해질 때까지 유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단기적으로 초미의 관심사인 출구전략에 대해선 ‘아직 시행은 시기상조이나 사전 준비를 해나간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정상들은 IMF와 금융안정위원회(FSB)의 지원을 받아 출구전략 원칙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부분은 내년 4월 캐나다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호주 중앙은행이 전격적으로 정책금리를 인상하면서 출구전략의 결행시기가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평가가 높아지고 있어 오는 11월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도 상당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위기 원인이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파생상품 운용과 도덕적 해이에 있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G20의 금융 규제 논의는 갈수록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1, 2년 안에 구속력이 실제 발효될 조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전에도 경제위기 이후 각종 금융 규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국가별로 현실적인 강제력을 확보하는 단계까지 논의가 진척된 적은 없었다. 국제기구 차원에선 “우리는 이런 조치에 반대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
G20는 은행자본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2010년까지 합의된 자본 규제 기준을 만들 예정이다. 여기에는 늦어도 2012년까지는 국가별로 이행을 강제한다는 행동계획까지 포함돼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다만 강화된 자본 규제는 경기회복이 확실한 단계부터 시행하자는 게 G20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G20는 특히 상여금 지급 규제를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FSB 보상체계 기준을 완전하게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당장 금융사 CEO들이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기던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의 제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FSB의 새 보상체계 규정은 보장된 상여금의 1년 이상 지급 금지, 변동보상의 이연지급과 환수근거 설정, 보상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건전성이 약한 금융기관은 보상을 순수익의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장외에서 거래되는 각종 금융 파생상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늦어도 2012년까지는 중앙청산소가 각국별로 설립될 예정이다.
그간 선진국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IMF, 세계은행(WB), 기타 다자간 국제협의체의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 논의에도 불이 붙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IMF의 쿼터조정 문제다. G20 정상 선언문은 IMF 쿼터를 2011년까지 대표권이 과소평가된 신흥개도국으로 5퍼센트 이상 이전할 것에 합의했다. 아울러 솔직, 공정, 독립적인 정책 감시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러나 IMF개혁에 대해서는 쿼터 재배분 과정에서 첨예한 의견대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의 쿼터확대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은 반면 선진국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각에선 신흥국으로의 쿼터 5퍼센트 이전이 이뤄지면 오히려 중국이나 인도가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은행의 경우 다자간 개발은행의 최빈국 지원 기능을 대폭 확충해나가도록 했다. 이를 위해 지역별 다자은행의 재원 확충도 추진된다. 우리나라는 최근 아프리카개발은행 자본금 확충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자은행은 앞으로 식량안보, 인적자원 개발, 민간주도 성장 지원, 녹색성장 지원 등 글로벌 경제의 중·장기 성장동력 제고와 빈국 지원에 역할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의 지분 역시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최소 3퍼센트의 투표권이 이전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이번 회의에서 눈길 가는 부분은 각종 경제 이슈에 가려 순위가 밀렸던 기후변화의 중요성이 강조된 점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지난 봄 런던 정상회의 때만 해도 29개 합의문 항목 중 28번째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 피츠버그 회의에선 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에너지 보조금 감축방안을 발표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G20 회원국이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총회의 성공을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론 여전히 유엔 차원의 기후변화 논의를 존중하지만 이면에는 사실상 표류하는 유엔 대신 G20가 기후변화 논의의 중심에 설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기후변화 논의 속도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인 동시에 G20가 각종 중·장기 성장동력 이슈에도 관심이 높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G20 정상들은 이 밖에도 2010년 초에 미국 주도로 노동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고용대책을 논의하고, 무역과 관련해서는 2010년까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타결을 추진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호주와 공동으로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3단계 프로세스를 공동 제안한 우리나라는 G20 차원의 ‘지속가능 협력체계’ 마련에 기여했다. 여기에 사실상 첫 정례 회의로 평가되는 내년 11월 회의를 유치해 앞으로 각종 국제 이슈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글·김태근(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