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국제기구 이끄는 대한민국 녹색 리더십








 

1907년 6월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의 비넨호프 왕궁. 고풍스런 기사홀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47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세계평화와 군비축소 문제를 논하고 있던,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만국평화회의 뒤로 고종 황제 특사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종이 파견한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 특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을사보호조약의 불법성을 만방에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장조차 못했던 이준 열사는 원통함을 못 이겨 호텔에서 자결했다.

그로부터 약 1백년 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2010년 3월 17일자에 실린 ‘한국,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리더 역할 찾기(South Korea:Into position)’란 기사에서 이준 열사의 사건을 지금의 한국과 비교해 재조명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준 열사의 일은 당시 국제문제에서 한국의 무능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준 열사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한국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백 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달라진 지금의 한국 모습을 전했다.




 

이준 열사가 오늘날 한국을 지켜보면 풍성한 콧수염 끝을 올리며 빙긋 미소 지었으리라. 올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서울서 열릴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다양한 국제행사가 한국에서 개최된다. 한국은 기후변화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제무대에서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녹색 호랑이’로 불리고 있다.

최근 한국이 유치하고 창설하는 국제기구도 증가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진출한 국제기구란 1951년 6·25전쟁 전사자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기념공원(UNMCK)이 유일했다. 1997년 국제백신연구소(IVI)가 한국을 본부로 창설되기까지, 50년 가까이 한국에 들어오는 국제기구는 없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2000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국제기구 유치가 증가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무려 7개의 국제기구가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이 유치한 국제기구(비정부기구 6개 포함) 27개 중 4분의 1이 지난해 유치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들이 각종 국제기구에 진출해 ‘코리안’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국제기구 진출 한국인은 10년 전인 1999년 1백93명, 2006년 2백45명에서 2009년 3백26명으로 증가했다. 10년 동안 52명 증가하던 것이 세계화와 한국의 국가 위상 승격으로 최근 3년 새 단숨에 81명이 늘어난 것이다. ‘숫자로 보이는 국가 위상 상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제기구도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2007년 9월 한국어를 ‘국제 공개어’(전체 11개)로 채택해 한국어를 공식 언어로 처음 인정한 국제기구가 됐다. WIPO는 특허, 상표,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에 관한 조약을 제·개정하고 국제출원 및 등록 시스템을 운영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1967년에 설립됐으며, 현재 회원국은 1백84개국. 우리나라는 1979년 3월 가입했다. 한국어가 WIPO의 공식언어가 된 것은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다는 의미다.

국제기구는 크게 설립 주체와 근거, 재원 등에 따라 △국제기구와 △국제기구 산하기구, △국제기구 협력기관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가 유치한 첫 국제기구는 국제백신연구소(IVI)이며, 우리 주도로 설립을 추진 중인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가 출범하면 한국이 유치한 두 번째 국제기구가 된다.

국제기구 유치는 단순히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만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국제회의와 워크숍, 컨벤션 등의 개최로 호텔, 컨벤션센터, 통·번역 서비스, 관광, 요식업 등이 활기를 찾게 만드는 고도의 서비스 산업이기도 하다.






 

국제기구 유치 확대를 추진 중인 기획재정부가 상주 근무인원 2만명의 국제기구를 집중 조성했을 때 효과를 따져 보니 △소비지출 증가 약 6조원(국내 민간 소비지출의 1퍼센트, 서울 소비지출의 4퍼센트) △생산 유발 효과 약 10조원(국내총생산의 약 1퍼센트) △고용 유발 효과 주재원 1인당 1명 등 커다란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국제백신연구소(IVI) 변태경 공보관은 “IVI가 우리나라에 본부를 둠으로써 한국의 연구인력 양성, 고용 창출, 백신과학·산업의 성장과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지난 10년간 1억3천만 달러(약 1천5백억원)의 외화 유치 효과가 있었다”며 “특히 저개발국가의 빈곤과 질병 퇴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백신 관련 국제기구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 정책조정총괄과 송준상 과장은 “국제기구 유치는 그 자체가 국제적 영향력의 수단이자 국력의 상징”이라며 “특히 인권, 환경, 빈곤, 난민 등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교량 역할을 하도록 뒷받침하고 국제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전 세계의 국제기구가 2만3천 개(2006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유치한 국제기구 27개란 아직 미미한 수치. 국제기구가 가장 많은 미국에는 3천6백46개의 국제기구가 있다. 아시아 지역만 해도 일본이 2백70개, 태국이 1백33개다.

기획재정부는 그간 우리의 국제기구 유치를 위한 정책이 미흡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 지역 일부 국가들의 경우만 해도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 등은 국제기구 유치를 위한 ‘비교우위’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2007년 2월부터 EDB 내부조직으로 국제기구 유치사무소를 설치,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태국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직원들에게 각종 면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외국의 앞선 유치 사례들을 연구해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글로벌 경쟁우위를 갖기 위한 획기적인 수준의 인센티브 제공 △국제기구 근무자에 대한 고급 거주여건 제공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근무인력 양성과 채용시스템 운영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국제기구 유치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준 열사 관련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한국이 외교적으로 좀 더 자신감 있는 나라가 되려는 노력에서 성공할 경우 올해는 한국이 1세기 전 망령을 떨쳐버리는 해가 될 수 있다.”

그럴 것이다. 이제 한국은 1백 년 전 울분을 떨치고 드넓은 국제무대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갈 것이다.
 

글·박경아 기자






 


국제기구는 1831년 라인강 유역 국가들이 라인강을 자유롭게 항해하기 위해 창설한 라인항해중앙위원회(CCNR)에서 유래하지만, 1945년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국제연합(유엔)이 출범한 후 설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국제행정연합의 형태를 띠었으며 이후 경제 원조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기구들이 설립됐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식량위기, 생태계 보존 등 범세계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기구를 창설하기 위해 각국 간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가 구성단위이므로 ‘정부 간 기구(IGO·Inter-Government Organization)’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점에서 국제적 민간단체인 ‘비정부기구(NGO·Non-Government Organization)’와 다르다. 또한 조직의 요건으로 △다자 간 국제기구 설립 결의 △국제기구 설립 및 운영 예산에 대한 장기전략(회원국 분담금 등) 마련 △회원국 중심의 관리구조 등을 갖춰야 한다.
 


국제기구는 설립 주체와 근거, 재원 충당 방식 등에 따라 크게 국제기구, 국제기구 산하기구, 국제기구 협력기관으로 나뉜다. 국제기구는 국가들 간에 체결하는 협약으로 설립하며, 산하기구는 국제기구의 하부조직으로 총회, 이사회 등의 결의로 설립한다. 협력기관은 사무국과 협의 후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설립한다. 또 유엔과 관련된 정도에 따라 유엔 산하기구(제네바군축회의 등), 유엔 전문기구(세계보건기구 등), 유엔 독립기구(국제원자력기구 등), 정부 간 기구(경제협력개발기구 등)로 나뉘기도 한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국제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검토해야할 사안들이 있다. 유치 대상 기구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범정부적 협의와 합의가 선행돼야 하며, 관심국들의 적극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필수 요건. 장기적 재정부담 전략도 세워야 한다. 유치국이 소요 예산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므로 그 비용이 헌법 규정에 따른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될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정리·최은숙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