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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주식회사 청와대 | 역대 대통령 첫 달 어떻게 보냈나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5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다. 이 대통령의 취임 이래 행보는 같은 기간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분주한 것이었다. 부지런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스타일인데다, 경제 살리기라는 당면 목표에 올인한 까닭이다. 특히 실사구시형의 업무 추진 방식은 관가를 비롯해 사회 전 분야에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이 기간 어떤 활동을 보였을까. 전직 대통령들도 저마다의 국정철학과 주어진 환경 등을 고려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취임 초기에 이목이 많이 쏠리는 데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취임 한 달이 그 어느 시기보다 비중이 컸기 때문이었다.  역대 이들은 전 세계적인 민주화의 물결에 맞춰 권위주의를 타파하는가 하면,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할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격적인 인물 기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 송경희 대변인 등의 내정 때부터 시작돼 조각까지 이어졌다. 40대의 남해 군수 출신인 김두관 씨를 행정자치부 장관에, 역시 40대의 여성변호사인 강금실 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가 하면,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씨를 문화부 장관에 기용했다. 또 삼성전자 CEO 출신인 진대제 씨를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에서는 연공서열과 기수 파괴가 이어졌다.  특히 검찰인사의 기수 파괴는 대통령과 평검사 간 사상 초유의 ‘TV 토론’을 낳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인사 TV토론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야, 대국민 행보를 거듭했다. 야당 인사들에 대한 ‘청와대 초청 정치’를 정착시켰고, TV를 통한 대국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사회적 논란거리가 됐던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법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를 직접 청와대로 초청해 의견을 나눈 데 이어 이라크전 개전 직후엔 국회 국방위원과 국회 의장단, 여야 지도부들과 함께 파병동의안 처리에 대한 협조를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각 분야 변화주문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변화를 주문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권위주의와 군사문화로부터 어느 정도 탈피해 있었던 만큼, 민주화보다는 변화 쪽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노·사·정 3자 합의라는 대타협을 이뤄냈다. 3자간 고통분담으로 윈-윈을 이끌어내면서 정권 초기에 사회불안 요소를 확실히 제거해 나가고자 했다.

아울러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극복을 위한 경제대책 추진에 전력을 쏟았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대국민화합 이미지와 국제적 명성을 최대한 활용해 외환위기 극복에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유시장경제·개방경제를 추구,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값싸게 만들어 수출하고, 가장 값싸면서 가장 좋은 외국 물건을 수입해서 사용한다’라는 무한경쟁, 무한개방 체제의 초석을 놨다.

문민정부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문민시대를 강조하듯 과거 군사문화와의 단절에 취임 초기 개혁의 초점을 맞추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 첫날 청와대 주변도로와 인왕산을 개방했고 며칠 후에는 청와대 소유 안가 12개 동을 개방 또는 철거했다. 또 국가정보기구 등을 재편하는 등 탈권위적인 행보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청와대 주변 개방
김영삼 전 대통령은 또 집무 스타일도 권위주의의 청산에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 점심은 칼국수와 설렁탕’이라는 말은 탈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는  또 대통령 의전과 경호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처 업무보고도 기존의 관행이나 스타일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일문일답식 토론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이 밖에도 청와대가 권부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한편 청와대 비서진이 단순한 참모진이라는 성격을 정립시키려고 애셨다. 과거 청와대 비서실이 정부 각 부처의 ‘옥상옥’으로 존재하며, 주요 업무를 ‘하달’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탈권위주의 주력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인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한 달간 탈권위주의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각하’란 호칭이 사라졌고, 국무위원 등에게 임명장을 줄 때 대통령은 한 손으로 주고, 받는 쪽은 두 손으로 받게 했던 관례를 깨고, 대통령도 두 손으로 주고, 두 손으로 받게 했다. 군 출신이었지만, 군사문화의 잔재를 없애려 했다.

그는 또 ‘보통사람’임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외출 시 일반차량을 통제하지 않고 교통신호조작만으로 대통령 차량행렬을 통과토록 했다. 원탁 각의를 주재하면서 권위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공립대학 총장의 임명 제도를 ‘공개추천’으로 바꾸는 등 학사행정에서 정부 간섭을 배제하고, 해외여행 자유화를 조기에 실시토록 해 자율화를 확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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