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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열린 건축으로 공유의 지평을 넓히다

서울 서초구 ‘서울 AI 허브’는 인공지능(AI) 혁신을 위한 개방형 연구·업무 공간이다. 다른 산업과의 협력과 공유, 시너지가 중요한 AI 산업의 특성을 살린 미래형 업무 시설의 원형을 제시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사진 건축사진가 배지훈

서울 AI 허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격한 도래는 도시와 건축에 요구되는 기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새로운 산업은 단순한 효율성을 넘어 산업 간 유기적 협력과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 이런 변화는 업무용 공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산업 생태계를 촉진하는 장치 역할까지 해야 한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서울 AI 허브’는 이 같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확장된 공유’라는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프로젝트다. 건축가 이승택·임미정(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이 설계한 이 건물은 최근 ‘2025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미래형 업무시설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했다”고 호평했다.

남쪽과 서쪽 입면은 변화하는 기둥의 방향과 돌출된 슬래브(건물의 바닥판)로 공유 공간의 자유로운 단면을 드러낸다. 사진 건축사진가 배지훈

AI 산업 생태계의 구심점
서울 AI 허브는 서울시가 서초구 양재동 일대를 AI 인재와 기업이 밀집한 특화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2017년부터 운영한 AI 분야 전문 지원 기관이다. AI 분야 인재를 육성하고 관련 기업들이 교류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AI 전문가 양성, AI 기반 기술 보유 스타트업 및 예비 창업자 육성, AI 전문가와 입주 기업의 협업을 위한 네트워킹 장 마련을 목표로 한다. 도시 내 흩어진 기술·인재·정보를 한곳에 모아 새로운 연결을 창출하는 ‘산업적 허브’인 셈이다.
건축적으로 이러한 AI 산업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핵심 앵커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이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개방감이 돋보이는 1층 로비와 라운지.

다층성 갖는 ‘서울성’을 담다
에스티피엠제이는 ‘도발적 현실주의(Provocative Realism)’라는 비전 아래 미국 뉴욕과 서울에 기반을 둔 아이디어 중심 설계사무소다. 일상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건축물의 유형적 평면 개발과 재료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재료 실험과 장소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온 두 건축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서울성’에 주목했다. 건물이 위치한 양재동 일대는 각종 대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가 밀집한 서울의 하이테크 기반 지역이다. 건축가들은 우면산과 양재천이라는 주변 자연 지형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건물을 염두에 뒀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AI 산업이 ‘불확실한 다층성’을 공유한다는 점도 포착해 ‘서울성’을 담아내는 구조를 구현했다.

4·5층 공유 공간. 두 개 층을 하나의 공유 공간으로 묶어 연구자들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돕는다. 사진 건축사진가 배지훈

미국 도시 공원 개념에서 찾은 ‘메가 공유 공간’
기존 업무시설이 지닌 한계를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설계가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코어 중심의 건물 배치에서는 공유 및 소셜 공간이 환경적으로 소외된 건물 중앙부에 작은 면적으로 배치된다. 건축가들은 AI 중심의 4차 산업형 업무 공간에서는 다양한 산업과의 협력과 공유를 통한 시너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선 공유 공간의 규모와 환경을 개선해 ‘만남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공유 공간에 대한 해답은 미국 도시 공원의 운영 방식에서 찾았다. 미국 조지아주의 도시 서배너는 ‘흡수형 포켓 파크’를 정책적으로 만들었다. 일정 거리마다 작은 공원을 여러 개 둬 가까운 거주민에게 일상적 휴식을 제공하는 형태다. 반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거대한 면적을 갖춘 ‘통합형 공원’이다. 도시 내 보행 흐름이 공원 안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돼 불필요한 동선이 줄었다. 공원은 대규모 공유·교류 공간으로 기능한다.
서울 AI 허브는 서배너와 뉴욕의 도시 공원에서 보이는 ‘확장된 공유’ 개념을 하나의 건물에서 평면·단면·외부 공간에 입체적으로 적용했다.

건물 한쪽에 ‘ㄱ’자 형태의 코어를 배치해 남·서측 전면을 거대한 개방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 건축사진가 배지훈

AI를 닮은 유연한 ‘중성 공간’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은 ‘ㄱ’자 형태의 코어를 중심으로 공간이 구성된다. 조망이 좋은 북측·동측에는 입주 기업을 위한 업무시설을 배치했다. 개별 기업들의 보안 영역이다.
채광이 좋은 남측·서측에는 용도를 특정하지 않은 커다란 공유 공간, 즉 ‘중성 공간(neutral space)’을 뒀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5년 전만 해도 AI는 대중에게 낯선 산업이었다. 건축계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산업과 기술의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중성 공간이 필요했다. 다양한 직군이 함께 일하고 교류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도 주목할 부분이다.
평면에서 각 공간 간의 연결성을 높이고 입면에서도 단일성을 강조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냈다. 공간의 위계는 ‘입주 기업 공간(보안)→공유 업무 공간(준보안)→공유 공간(개방)→외부 공간’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된다.
공유 개념은 수직적 단면 구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개 층을 하나의 공유 공간으로 묶어 층간 시선과 동선을 확장했다. 입주 기업 간의 활발한 교류와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다.
확장된 공유 공간은 전 층을 관통하는 보이드(void·층이 뚫린 개방 공간)와 연결돼 건물 환경을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보이드는 채광·온도·습도를 조절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쾌적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AI처럼 풍경을 흡수하는 건물
건축가는 이 건물의 입면(파사드)을 가장 아름다운 요소로 꼽는다. 구조를 기반으로 슬래브(건물의 바닥판), 기둥 등의 요소를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 입면이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햇빛이 비치면 풍부한 양감(量感)을 드러내며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이 강조된다”며 “주변과 잘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설명한다.
건축가는 입면을 통해 입주 기업과 오가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표정들이 공공에 전달되기를 바랐다. 정보를 담아내는 AI처럼 건물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시의 표정을 받아들이며 진화 중이다.
서울 AI 허브는 공공 건축이지만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은 아니다. 도시와 산업의 변화를 담아내는 맥락적 공공성에 가치를 둔 결과물이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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