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 정선옥 교사
바이오헬스 산업이 미래 경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27년 전 세계 바이오 시장 규모는 3조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건강한 삶의 유지를 넘어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는 국가 안보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5대 바이오헬스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것이 전문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바이오헬스 분야 일자리 수는 약 17만 5000개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부터 5년간 약 11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23년 4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산업 현장 기반 학교교육’이다. 당시 정부는 인천바이오과학고등학교,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 등 전국 3곳의 바이오헬스 특화 고등학교와 공공·민간 실습시설을 연계한 실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경북 영천의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개교한 이 공립고는 지금까지 267명의 졸업생 중 255명을 바이오의약품 관련 기업에 취업시켰다.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한미약품 등 유수의 바이오 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 취업해 성장의 꿈을 키우는 졸업생들도 있다. 이들이 “직무에 적합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 정미정 교장의 말이다.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 학교에서 역량 있는 바이오 인재를 다수 배출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이오 인재 양성에 전력을 다하는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정선옥 수석교사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2024 바이오산업의날’ 행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날 인력양성 공로로 장관상을 수상한 6인 중 고등학교 교사는 정 교사가 유일했다.
정 교사는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 개교 때부터 지금까지 교육과정도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바이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에게 바이오 인재 양성의 방향과 교육 현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바이오마이스터고’가 생소하다. 무엇을 배우는 곳인가?
마이스터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등학교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학생은 ‘영 마이스터’로서 곧바로 산업 현장에 진출하거나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간다.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에는 코스별 교육과정이 다른데 하나는 바이오의약품 제조 기술자를 양성하는 과정, 다른 하나는 바이오의약품 품질검사원을 양성하는 과정이다. 졸업 때까지 ‘바이오화학제품제조산업기사’라는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지난해 3학년 학생 52명 중 산업기사를 취득한 학생 비율이 94%였다.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1기부터 5기까지 총 255명이 취업했고 이 중 90%가 제약·바이오 기업에 진출했다. 나머지는 식품, 화장품 등 관련 업종에 취업했다. 직무도 다양해서 연구직으로 간 졸업생도 10%를 넘는다.
높은 취업률 덕에 지원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고?
2025학년도에는 정원 60명 모집에 118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2대 1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바이오 분야에 확고한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바이오 분야가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 학교가 개교 당시 가졌던 기대를 학생과 학부모들도 품고 있는 것 같다.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는 신녕농업고등학교로 1954년 개교했다. 그러다가 바이오 분야 마이스터고로 재개교한 것이다. 바이오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바이오 인재는 부족하다는 분석이 있어서다. 석·박사급 인재도 필요하지만 실제 제조 및 품질관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산업의 동력이 될 인재도 필요하다. ‘바이오’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관련 인식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호응이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먼저 바이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찾아왔다.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무엇보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이오 분야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고등학교 과정에서 바이오 전문 교육을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쌓아나가는 교육과정과 시스템이 앞으로 다른 학생과 학교의 본보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산업체 전문가, 대학 관계자들과 협의체를 만들어 교육 내용을 논의했다. 기자재 선정위원회를 통해 산업 현장 전문가의 조언도 반영했다.
학교 시설과 실습 환경은 어떤가?
산업 현장의 바이오의약품 공정을 그대로 본뜬 실습실을 1층부터 4층까지 공정별로 8개를 갖췄다. 예를 들어 1층은 미생물배양, 2층은 세포배양·분리정제, 3층은 기기분석, 4층은 제형제제 실습실로 구성돼 있다. 고성능 분석 장비(HPLC)도 구비돼 있고 의약품 제조·품질관리(GMP) 실무교육도 실시한다. 졸업만으로도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산학 협력도 활발하다던데?
고교학점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학교 밖 교육과정’이 대표적인 산학 협력의 예다.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등의 유관기관·대학·기업에서 이수한 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매년 20~30명의 학생이 5~10학점 정도를 이수한다.
이런 환경과 교육과정이 왜 필요한가?
많은 전문가가 ‘막상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중요한 것은 곧바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 ‘경북바이오마이스터고를 졸업했다’고 하면 ‘실무에 투입해도 된다’고 인식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산업체 현장에서 쓰이는 기자재, 제조공정 등에 대해 익히는 것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재 양성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째는 인성이다. 산업 역량을 이야기하면서 인성을 말하면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이란 직무를 수행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포함한다. 산업을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인재가 되려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인성이 가장 기본이 돼야 하는 이유다.
또 ‘졸업인증제’ 같은 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이 능력을 키우도록 유도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 자격증, 정보화 능력 등을 갖춰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격증을 2~3개 가진 학생도 많다.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프로그램도 있나?
방학 때는 싱가포르 어학연수나 독일 현지 사업체에서 현장 연수도 받는다. 학생들이 글로벌 바이오 산업의 흐름을 체험하고 바이오 분야에서의 동기와 사명감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 취업한 졸업생도 있다고 들었다.
다양한 도전을 하는 졸업생이 많다. 물론 글로벌 대기업에 취업해 우리 바이오 영토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젠가는 우리 졸업생 중에 바이오 관련 창업에 성공해 유명한 경영자가 되는 인물이 탄생할 수도 있다.
김효정 기자
바이오헬스 인재를 키워라!
2025년 2만 6900명 인재 양성 목표 78개 사업 추진
정부는 2023년 4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인재양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산업계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학교교육이 이뤄져왔고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산업 현장에 기반한 학교교육을 진행하고 현장 수요 맞춤형 인재를 키우는 등 과제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바이오헬스 초격차 확보를 위한 핵심 인재 1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3년 1만 8000명, 2024년 1만 9000명 등을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관련해 3월 25일 열린 제6차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에서는 해당 방안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회의에서는 2023년 한 해 동안 총 3만 4000명의 바이오헬스 인재가 양성돼 계획을 초과 달성했으며 2024년에도 4만 4800명이 배출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바이오헬스 교육기관 확대와 교육 수요 증가에 힘입어 목표를 웃도는 성과를 거둔 기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2025년에도 2만 6900명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총 78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는 학교 내 실습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실시해 바이오헬스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의사과학자 양성, 연구 지원 사업 등을 통해 핵심 연구인재 4700명 이상을 배출한다는 계획도 마련돼 있다.
아울러 인재 양성 규모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장 수요에 부합하는 기술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만큼 정부는 산업 수요에 맞는 신기술 교육도 지속적으로 발굴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