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ll)가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누리호 엔진 개발 참여한 김진혁 선임연구원
“와,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저 엄청난 불꽃 화염을 보십시오. 1단 엔진이 불을 내뿜고 있습니다. 굉장한 진동과 굉음이 여기 스튜디오 안에도 느껴집니다. 당장 바깥으로 뛰쳐나가 두 눈으로 보고 싶네요.”
10월 21일 오후 5시 정각,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수직 방향으로 이륙한 후 1, 2, 3단을 차례로 벗어 던지며 정남쪽 방향으로 포물선 궤적을 따라 700㎞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김진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엔진개발부 선임연구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김 선임연구원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3㎞ 떨어진 곳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누리호 발사 현장 생중계에 출연해 감격스러운 순간을 전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자체적으로 긴급 편성한 누리호 발사 유튜브·인터넷 생중계(‘K-로켓 누리호, 대한민국 우주시대를 열다’) 진행자로 나서 이차연 과기정통부 융합기술과 사무관과 함께 누리호 발사를 중계방송했다. 또한 누리호 발사체에 포함된 여러 우주 기술적 측면과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쉽고 간명하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을 담당하는 항우연은 1989년에 설립된 과기정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누리호 발사체 엔진 개발에 지난 6년간 직접 참여한 우주기술 전문 연구자다.
“2012년 연구원에 입사한 뒤로 6년간 직접 연구개발에 참여한 누리호가 발사되는 현장에 있으니 몹시 긴장되고 떨리네요.”
오후 5시 정각 발사를 5분가량 앞두고 김 선임연구원은 그렇게 감회를 털어놨다. 이날 발사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1.5톤급 위성을 지구에서 600~800㎞ 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만든 3단 액체연료 발사체다. 총 길이는 47.2m로 15층 아파트와 비슷하며 최대 직경은 3.5m다. 총 중량은 200톤에 달한다. 누리호는 2010년 3월 개발을 시작해 11년 반 만에 완성됐다. 이번 1차 발사는 진짜 위성이 아닌 1.5톤의 더미 위성(위성 모사체)을 싣고 우주로 갔다. 2022년 5월에 2차 발사에 다시 나설 예정으로 이때는 0.2톤 규모의 실제 초소형 위성을 탑재한다.
김 선임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누리호는 2010년부터 개발 사업에 착수해 지금까지 총 2조 원가량 투입됐다. 그는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돼 나처럼 연구개발에 참여한 연구자 모두 발사를 앞두고 마음의 부담도 있었다”며 “발사 카운트다운을 포함해 발사부터 비행 완료, 혹은 발사 중단까지 모든 과정은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누리호 추진체 액체연료 무게가 총 180톤인데 탱크에 담겨 있어요. 그런데 이 탱크 두께가 겨우 2~3mm에 불과해요. 그렇게 얇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 여러 연구 개발자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상상해보면 대단합니다.” 김 선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연료탱크는 넓은 알루미늄을 곧게 펴서 외벽을 수백 번 용접해 만드는데 1개 제작에 10개월가량 걸린다고 한다. 발사체의 전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얇게 제작해야 하는 고도의 정밀 작업 중 하나다. 이 액체연료는 영하 183℃에서 산소와 만나 기화한다. 액체연료가 고체연료에 비해 발사체 효율이나 추력이 더 좋다고 한다.
▶10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 현장에서 김진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유튜브로 발사를 생중계하고 있다.|중계화면 갈무리
가장 큰 난관인 페어링 분리 우리 기술로 성공
발사되는 장면을 보면 거대한 불꽃 화염과 함께 발사 로켓 주변을 하얀 뭉게구름 같은 것이 온통 뒤덮고 있다.
“연료는 부피를 줄여 효율적으로 탑재하기 위해 액체화하는 겁니다. 저렇게 거대하게 형성되는 뭉게구름 같은 건 일종의 수증기입니다. 영하 183℃ 극저온에서 액체산소가 대기 중으로 기화하고 있는 것이죠.” 김 선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엔진의 화염온도는 약 3300℃에 이릅니다. 저 뜨거운 연기가 엔진 구조물에 직접 닿으면 발사체가 손상될 수도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1초당 1.8톤의 물, 즉 냉각수를 뿌리고 있어요. 이 물과 화염이 만나면 곧바로 물이 증발해 일종의 하얀 수증기 뭉게구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발사체 주변에 서 있는 주황색·흰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굴뚝 모양의 3개 기둥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김 선임연구원은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하는 낙뢰 방지 타워다. 발사체에는 수많은 전자장비가 탑재돼 있는데 번개와 낙뢰에 노출되면 손상될 수 있어서 저 기둥 몇 개를 주변에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1단이 연소를 마치고 분리된 후 2단이 점화돼 비행 중에 페어링 분리가 이뤄졌다. 페어링 분리는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으로 꼽혔다.
“각각 1, 2, 3단 분리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면서 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그동안 항우연이 주로 역량을 투입·개발해온 분야입니다. 특히 페어링 분리는 기술적으로 검증이 더욱 필요해 저를 포함한 연구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 막 분리됐다니 다행입니다.” 김 선임연구원이 말했다.
그렇다면 고도 700㎞까지 올라가는 누리호 발사체 비행궤적, 현재 위치와 상태는 지상에서 어떻게 파악하는 걸까?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하고 정보를 수신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겁니다. 하나는 추적 레이더로 비행 이후에 여기 나로우주센터와 제주도 그리고 태평양의 한 섬(필리핀 동남쪽 팔라우섬)에 구축한 레이더에서 고도 3000m까지 추적이 가능합니다. 또 하나는 누리호 발사체에 온도 등을 재는 센서가 부착돼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간접적으로 지금 위치와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10월 21일 오후 전남 고흥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시민들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며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37만 개 부품 한 치 오차 없이 정상 작동
지구상과 우주에서 누리호 비행체가 각종 물체와 충돌할 위험도 미리 계산하고 점검했다.
“발사 일주일 전부터 우주공간에서 물체와 누리호가 충돌할 모든 가능성을 면밀하게 사전점검해 날짜를 잡았고 1~3단 분리로 각각 해상에 떨어지는 로켓이 추락할 낙하 예상 지점을 계산해 국제기구에 통보하고 주변 선박이나 항공기 운항을 중지시켜 사고를 예방하고 있습니다.” 김 선임연구원이 설명했다.
이번에 누리호에 탑재한 더미 위성은 테스트를 위한 일종의 가짜 위성이다. 위성으로서 기능은 없지만 실제 위성과 동일한 크기와 무게로 제작해 누리호 발사체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누리호는 ‘우주까지 새 세상을 개척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독자 기술로 우주까지 날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제 우주 강국으로 가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누리호 발사체는 엔진뿐만 아니라 무려 37만 개에 이르는 각종 구성 부품이 극한 환경에서도 단 한 치의 오차 없이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김 선임연구원이 말했다.
누리호 발사체 제작에 참여한 국내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중공업 등을 포함해 300여 개에 이른다. 이번에 투입된 예산 1조 9527억 원 가운데 1조 5000억 원이 산업체에 집행됐다.
전 세계에서 독자 기술로 만든 우주 발사체를 보유해 위성 자력 발사 능력을 갖춘 나라는 10개국이고 그중에 1톤급 이상의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총 6개국(러시아·미국·프랑스·일본·중국·인도)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일곱 번째 나라가 된 것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발사체를 독자 개발하는 시도를 하는 나라 자체는 몇 개 안 된다. 특히 처음 개발하고 1차 발사했을 때 성공 확률은 일반적으로 30% 정도에 불과하다”며 “물론 최종 성공은 더미 위성이 잘 분리된 뒤에 우리가 목표로 정한 고도와 속도로 그리고 지구와 사이에서 적절한 경사각 궤도로 돌고 있는지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최종적으로 누리호에 실린 더미 위성은 목표 고도와 궤도에 진입·안착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 선임연구원은 “누리호가 불꽃 점화돼 발사될 때 현장에서 약 3㎞ 떨어진 생방송 스튜디오에서도 진동이 전달돼 전율을 느꼈다”며 “우리가 본, 우주로 치솟아 올라가는 누리호의 기다란 보라색 화염 꼬리는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두고두고 인생에 남을 명장면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