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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국내에서 유일하게 단풍나무 묘목을 해외로 수출하는 곳이 있다. 경북 문경의 벽산조경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 조윤희(45) 대표는 올 한 해 네덜란드에 단풍나무 묘목 40만 주, 1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70만 주를 주문받았지만 봄에 날씨가 안 좋아 주문량을 채우지 못했어요. 내년에도 수출물량 70만 주를 이미 주문받았지만 100만 주를 생산하는 것이 회사의 목표입니다.”
그가 수출하는 접목용 단풍나무 묘목은 네덜란드 경매시장의 최고 인기품목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독일·프랑스 등 유럽인들은 단풍나무의 여러가지 변이종을 접목해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수출하는 단풍나무 묘목은 뿌리가 제대로 발달해 성장이 빨라 접목용으로 최고 평가를 받고 있거든요.”
[B]독자 경쟁력 갖춘 품목 개발[/B]
네덜란드에서 접수(接樹) 450만 주를 들여와 국내 단풍나무에 접붙여 수출하기도 했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아 지금은 접붙이용 묘목 수출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이 밖에도 40여 만 평 규모의 회사 수목원에 성목 6만~7만 주를 재배해 판매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단풍나무 묘목을 수출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것도 화훼 종주국인 네덜란드에 말이다.
조대표가 관상수 재배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6년. 1984~85년 전국 농촌경제를 멍들게 했던 ‘소 파동’이 계기였다.
“군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큰 포부를 갖고 소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농산물 수입개방 바람이 불면서 230만 원 주고 산 소가 다 키워 놨더니 60만 원으로 폭락하더군요.”
농민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을 정도로 농촌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그는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가 현실화된다면 언젠가는 소뿐 아니라 뭐든 개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결론은 독자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심고원려 끝에 관상수 재배를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농산물은 다 수입한다고 해도 큰 나무는 수입하지 못하겠지….’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조대표는 곧 전국의 나무농장을 순회하면서 정보를 모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쫓아다니며 기를 쓰고 배웠다. 그러나 사업 초기에는 그 또한 관상수 재배부터 판로개척까지 쉬운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막히면 그는 또 뛰었다.
“마침 서울 근교 위성도시에 꽃집이 많이 들어설 때였는데, 제가 전국 꽃집들을 모두 훑고 다녔습니다. 수목원에서 재배하는 나무 카탈로그를 들고 다니며 언제든 나무가 필요할 때 연락해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곧 반응이 오더라고요. 얼마 안 가 나무가 없어 못 파는 상황이 왔습니다.”
관상수 재배로 차츰 재미를 보게 될 무렵인 1990년, 조대표는 우연히 일본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친척에게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을 듣게 된다. 일본산 단풍나무가 네덜란드에 많이 수출된다는 것이었다. 조대표는 곧바로 네덜란드의 단풍나무 수입업자를 수소문해 직접 만났다.
“당시 일본산 단풍나무 묘목이 한 주당7,800원에 수출되더군요. 그런데 저는 묘목당 200원에 팔겠다고 제안했어요. 파격적인 제안에 금방 물량을 주문할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 업자는 한국까지 찾아와 4만 주만 주문하고 가버리는 거예요.”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네덜란드에 한국단풍 우수성 알려[/B]
어찌 첫 술에 배 부르랴? 네덜란드 업자는 첫해 4만 주에서 출발해 신뢰성을 확인한 뒤로는 다음해 8만 주, 그 다음해에는 20만 주로 계속 물량을 늘렸다. 결국 4년이 흐른 뒤 네덜란드 업자는 일본과의 거래를 완전히 끊을 정도였다.
“네덜란드에 단풍나무 수출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처음 네덜란드를 방문하게 됐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화훼시장 규모와 다양한 품종에 놀랐습니다. 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 너무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니까요.”
하지만 조대표는 자신이 수출한 단풍 묘목이 ‘일본단풍(Japan Maple)’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즉시 네덜란드 파트너에게 항의했죠. 한국 단풍나무가 얼마나 우수한지 알리고 이름을 ‘한국단풍(Korea Maple)’으로 바꾼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어요.”
네덜란드 화훼시장을 견학한 뒤 그는 국내 화훼시장 발전을 위해서도 신품종 개발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직접 품종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국산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태백산 정상에서 며칠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품종개발이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더군요.”
묘목 수출이 유망사업이라는 것을 실증해 보인 그는 그러나 정부가 묘목 수출농가의 육성과 지원에 관심이 부족한 게 아쉽다.
“농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나무시장만 해도 틈새시장이 무궁무진하거든요. 하지만 단기간에 성공을 꿈꾸며 조급해 하면 나무사업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나무를 키우듯 사업에도 참을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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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