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장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장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까지 약 127억 달러(14조 800억 원)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았다. 이를 통해 사회기반시설 구축, 기간산업 육성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하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개발도상국 성장의 모범 사례를 이뤘다.
12월 7일 만난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장은 “우리나라 ODA는 2000년대 들어 10년마다 한 번씩 큰 변혁을 거쳤다”고 말했다. 2000년 우리나라는 선진 공여국 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ODA 수원국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원조를 받던 수원국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해 공식적으로 원조를 주는 공여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최초의 국가가 됐다. 같은 해 국가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하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법제화했다.
김영수 본부장은 “우리나라 ODA는 30년 전부터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유상 원조와 외교부가 주관하는 무상 원조로 이원화된 체계로 추진됐고 이로 인한 비효율성 때문에 기본법이 제정된 뒤에도 국회와 감사원 등에서 유·무상 사업간 연계 부족, 종합전략 미흡, 사후관리 부실 등의 문제를 계속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10주년을 맞아 정부는 유·무상 ODA 통합추진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으로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전면 개정하고 2021년 2월 ODA 지휘본부(컨트롤타워)로 국무조정실에 국제개발협력본부를 설치했다. 5월 국제개발협력본부장으로 임명된 그는 “ODA를 받지 않게 된 지 10년 만에 ODA를 주는 나라 협의체에 들어간 우리나라가 다시 10년 뒤 국제개발협력본부를 만들면서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정치적 분쟁으로 상처 입은 팔레스타인 제닌시 청소년들을 위해 2018년 8월 건립한 문화·체육 공간 ‘제닌 청소년센터’│연합
가나·이집트서 K-ODA 성과 확인
정부는 2021년 1월 우리나라 ODA의 중장기 전략인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1~2025년)’을 마련하면서 ODA 재원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중점 협력대상 국가’ 27개국을 지정했다. 이들 나라에 전체 ODA 재원의 70% 이상을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김 본부장은 중점 협력국인 가나와 이집트를 10월 말 방문했다. 두 나라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서아프리카 요충지에 있는 가나는 국민의 교육열과 개발 의지가 높아 발전 가능성이 크고 이집트는 올해 중점 협력국으로 신규 지정된 나라”라고 설명했다.
가나에서는 센트럴 주에 있는 ‘쌀 가치사슬 체계 향상 사업지’를 방문했다. 우리나라는 가나의 농민들이 우수한 종자 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종자 보급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쌀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가나 정부도 벼 종자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마을 청년회장도 ‘종자 벼를 생산할 경우 일반 쌀농사보다 수입이 두 배 정도 높다’며 우리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집트 베니수에프 주에 있는 한·이집트 기술대학을 방문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583만 달러를 지원해 2년 전 설립한 이 학교는 인근 삼성전자 사업장과 인턴십 프로그램이 현지인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성공적 ODA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지의 고급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우수한 학생을 계속 채용하기로 기술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김 본부장은 “2년제 대학으로 만들었는데 명실상부한 기술대학으로 인기가 올라가니까 이집트 정부에서 최근 4년제로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우리가 2년을 추가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ODA 패키지 사업을 추진하는 게 한국형 ODA(K-ODA)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카이로 지하철 3호선 전동차 256량을 수주한 현대로템은 차량 완제품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 조립하면서 현지인을 교육·훈련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현지 인력을 양성해 이집트가 새로운 기술을 축적하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고 있어 큰 자부심을 느꼈다”며 “가나에서도 단순한 소비재 지원보다 식량 증산처럼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김 본부장과 만난 오포리-아타 가나 재무부 장관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한국은 국제사회의 롤모델”이라며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개발 협력이 더 확대한다면 가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27일 가나 센트럴 주 ‘쌀 가치사슬 체계 향상 사업지’에서 김영수 본부장(앞)이 벼 우수 종자에 대한 농민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국제개발협력본부
수원국 경험과 ICT 기술이 경쟁력
협력대상 개도국들은 정상회담, 국제회의 등 계기마다 인프라 투자, 리더십, 경제위기 극복 경험 등 우리나라의 전반적 발전 경험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K-ODA하면 현지인이나 국제기구 수장들이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게 ‘한국은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최초의 사례’라는 건데, 서구와는 달리 수원국의 입장을 속속들이 헤아릴 수 있고 단기간에 급성장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 K-ODA의 큰 자산이다. 이와 함께 ICT와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는 게 국제사회를 선도할 K-ODA의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OECD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K-ODA의 비교 우위로 우리나라의 발전경험과 ICT, 공공행정 등을 꼽고 있다. 최근에는 감염병 방역시스템, 보건의료인력 양성, 전자정부, 스마트 시티 등 우리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를 중심으로 구체적 지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경제·사회 발전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로 ODA 사업을 확대했으며 최근에는 ICT를 교육·보건 등 다른 분야와 연계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개도국 입장에서는 ODA 자체도 중요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외국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기업을 어떻게 연계시킬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개발협력본부는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글로벌 현안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분야별 ODA 종합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개도국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20년 7월 ‘코로나19 대응 ODA 추진전략’을 수립해 120여 개 국가에 방역물자를 지원하고 800여 건의 방역경험을 공유했다. 2021년 7월에는 ‘그린 뉴딜 ODA 추진전략’을 수립해 2025년까지 그린 ODA 비중을 OECD 평균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개도국의 녹색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세부 대책을 마련했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지털 격차로 인한 양극화 심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의 ICT 강점을 살린 ‘과학기술·ICT ODA 추진전략’을 2022년 1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글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10년만에 ODA 예산 세 배 늘어… 선진공여국 도약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개발원조위원회 전체 29개 회원국 가운데 중간인 16위 수준이지만 2010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9.7%로 2위였다. 개발원조위원회 전체 회원국의 연평균 ODA 증가율은 2.7% 수준이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장은 “국제사회가 이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선진국에 걸맞은 기여를 해라’, ‘ODA에서도 중견 공여국이 아니라 선진 공여국으로 도약하라’는 요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나라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단순히 동참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가치 실현과 위기 대응을 선도하는 책임 있는 리더로서 K-ODA의 참모습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우리나라의 전체 ODA 규모는 3조 7543억 원으로 42개 기관이 89개 국가와 60개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1699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양자 원조와 다자 원조는 각각 78%와 22%, 유상 원조와 무상 원조는 각각 43%와 57%를 차지한다. 지역별로는 아시아(38.4%), 아프리카(18.6%), 중남미(8.1%) 순이다. 분야별로는 교통(14.1%), 보건(14.0%), 인도적 지원(10.4%) 순이다.
12월 3일 국회에서 확정된 2022년 ODA 예산은 4조 원 가까이 된다.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2010년 예산이 1조 300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여 년 만에 예산 규모가 약 세 배 늘어난 셈이다.
정부는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전체 ODA 규모를 3조 2000억 원이었던 2019년 대비 2배 이상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협력과 연대를 통한 글로벌 가치 및 상생의 국익 실현’이라는 K-ODA의 비전도 제시했다.
김 본부장은 “ODA 재원은 국민 세금인 만큼 ODA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여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ODA를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일자리 창출 등 실질적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우리나라와 수원국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K-ODA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