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서울 동숭동 이로재 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승효상 건축가│박유리 기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해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길 떠나는 이의 바른 태도라 여깁니다.모두들, 화요일 로마공항 3터미널 도착홀에서 뵙겠습니다.
2018년 6월 건축가 승효상(67)은 성경의 마태복음 10장을 마지막 서신에 남기고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으로 떠났다. 그가 만든 강좌 형식의 모임 ‘동숭학당’이 주최한 여름 기행이다. 6월 26일부터 11박 12일 동안 ‘공간’을 주제로 떠나는 기행의 제목은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 그 순례’. 회원들은 각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날 저녁 6시에 로마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순례를 마치고 최근 발간한 책이 <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이하 <묵상>)다.
승효상이 23년 전 발간한 <빈자의 미학>이 선언적 철학서라면, <묵상>은 빈자의 미학을 품은 수도원을 다녀온 뒤 남긴 기행문에 가깝다. 책을 펼침과 동시에 우리는 그와 함께 뜨거운 여름날 로마공항에 도착해 오래된 건축을 올려다보는 여행을 시작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온 착각에 빠질 만큼 현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여행의 현장감은 소리에서 비롯되지 않고 빛과 어둠, 숨결로 다가온다.
▶건축가 승효상이 최근 발간한 <묵상> 표지│돌베개
“설계 선 하나에 그곳 삶 달라져 망설여”
‘묵상’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그의 여행에서 침묵은 언어의 소거가 아닌, 참된 언어로 가는 길 위에 스며든 숨결이다. 6월 21일 서울 동숭동 이로재 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승효상은 침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이 언어는 아니거든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잡음어’라고 해요. 잡음어는 간직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언어라는 것은 인간의 집단 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죠.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는 ‘언어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표현해요. (언어를) 받으려고 한다면 침묵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침묵을 통해서 진정한 언어에 이르게 됩니다.” <묵상>의 1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듣는 것이 시작되며, 언어가 사라질 때에만 보는 것이 시작된다.’
책은 그가 일행과의 기행에 앞서 찾아간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출발한다. 서로마제국 패망 직후인 480년께 태어난 성 베네딕토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진 수비아코의 깊은 숲속에서 홀로 수도한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도 공동체를 세우고, 수사와 수도회를 위한 올바른 규칙을 만들었다. 73장으로 구성된 베네딕토 수도회 규칙서의 핵심 덕목은 경청, 정주(定住), 회심, 순종이다.
승효상은 “세상의 끝, 세상의 경계 밖으로 거주하기로 결단하고 세상의 풍경이 없는 곳까지 기어코 들어가 거주하는 이들의 장소”를 수도원이라고 말한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인 그는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로 불린다. 승효상은 자신과 수사들의 공통점을 절박함으로 꼽았다. 그가 건축에 대해 지니는 경건함이 자신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수사들은 스스로를 세상 밖으로 떠나보낼 만큼 절박한 사람들이잖아요. 저도 절박한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건축가는 남의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고, 공간에 따라 (타인들의) 삶이 달라지니 밤을 자주 새요. 혹시 나쁜 삶을 살게 되지 않을지, 선 하나 긋는 것을 놓고 과감히 결정을 못해서 그렇거든요.”
▶계곡 속 산벼랑에 절박하게 붙어 있는 이탈리아 수비아코의 베네딕토 수도원
껍데기뿐인 도시·가로에 전할 메시지
승효상은 2018년 기행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유럽의 수도원을 자주 방문해왔다.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 ‘우리의 도시와 가로(街路)는 얼마나 껍데기일 뿐인 그러한 벽체들로 뒤덮여 있는가.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형태, 시뻘겋고 시퍼런 색깔, 현란한 불빛, 각종 악취와 소음, 온갖 저열한 상업적 속성과 우스꽝스러운 졸부들의 가면으로 나타난 이 거리의 파편적 풍경을 향해 우리가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는 침묵이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음을 그들에게 전해야 함을 믿는다.’ 건축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고뇌와 사유가 담긴 책 <빈자의 미학>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가난할 줄 아는 자들의 공간,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한 수도원은 빈자의 미학을 품은 곳이다.
2018년 여름 기행이 마지막으로 접어들면서 승효상은 프랑스 알프스의 깊은 산속에 자리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도착한다. 1084년 설립된 이 수도원은 1000년 가까이 외부에 문을 열지 않았다. 1984년 독일의 영화감독 필립 그로닝이 수도원장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을 허락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은 때는 무려 16년이 지난 뒤였다. 아직 수도원을 찍을 의사가 있다면 와도 좋다는 답신이었다. 단, 혼자만 오라는 내용이었다. 2003년 3월 수도원에 도착한 감독은 6개월을 머물렀고 편집을 거쳐 2005년 <위대한 침묵>을 내놓았다. 러닝타임은 2시간 48분. 대사가 없는 가운데 간간이 들리는 성가가 소리의 전부다.
승효상은 책에서 그곳의 침묵을 이렇게 기록한다. “침묵은 말에 속하며 그 침묵을 통해 말은 건축으로 나아간다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피카르트는 급기야 건축에 대해서도 ‘건축은 말 속에서 함께 침묵되며 따라서 고독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수사들의 침묵은 바로 그들 영혼이 건네는 언어였고, 그들이 기거하는 공간의 형식은 그들 영혼의 존재 방식이었다.” 이 수도원의 승방에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와 소명은 이 안의 침묵과 고독 속에 머무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탈리아의 산 조반니 바티스타 성당.거친 재료와 형태지만 공간의 경건성은 이 모두를 압도한다.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 부른 수도원
승효상에게 물었다. 도시에서 침묵의 공간을 건축하는 것이 가능한가. “서로 이익을 찾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도시죠. 도시의 큰 특징이 익명성입니다. 성공적인 도시는 교환이 활발한, 번잡한 곳이에요. 시끄럽고 융성한 공간은 늘 깨어지기 쉬워요. 도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가장 경건한 공간이 같이 있어야지요. 옛날에는 다 있었어요. 종교시설과 무덤이 그것들이죠.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현재 종교시설이 상업시설보다 못난 꼴로 변한 지 오래돼 경건성을 찾기 어렵고 묘소는 부동산값 내려간다고 밖으로 쫓아내요. 우리나라 도시는 경건성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제 도시의 삶이 위험하죠. 가까운 일본만 해도 마을마다 신사가 있고 그 안에 무덤도 있거든요. 도시가 죽음을 데리고 살죠. 삶에 대한 존엄적 가치에 대해 늘 생각하게 돼요. 무덤의 기능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빌미로 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공간이에요. 공동묘원에 가도 우리나라는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니까 일상에서 사람들이 가지 않잖아요. 저는 무덤에 관한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공동 무덤을 최근 설계했어요. 분당의 시안추모공원인데 요즘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러 온대요. 그런 게 시내에 있어야 해요. 영성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도시에는 성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승효상은 1991년 프랑스 리옹 외곽에 자리한 라 투레트 수도원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그가 건축계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남긴 최고의 건축이라고 평하는 곳이다. ‘폭 12미터, 길이 42미터, 높이 12미터 공간은 무한이었다. 암흑. 그 속을 뚫고 비수처럼 들어온 빛은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조화를 부리며 암흑을 농락했다. 그때마다 벽은 거친 표정을 바꾸며 숨을 쉬었고 바닥은 때에 따라 내려앉는 빛을 산란시키며 모든 순간을 받았다. 견고했다.’(<묵상> 360쪽)
그는 침묵 속에서 무한의 공간을 느낀다. 제의실과 기도실의 아름다운 곡선 속에서, 수사의 장의자 끝에 앉아 가슴에서 차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수도원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어둠으로 변하며 시시각각 변화를 이룬다.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진 공간, 남은 빛이 공간을 훑고 남긴 흔적에 전율한다.
▶1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외부에 문을 열지 않았던 프랑스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전경│돌베개
“내 돈으로 지어도 소유는 시민과 사회”
<묵상>에 게재된 대다수의 사진은 그가 직접 찍은 작품이다. 흑백사진들 속에서 빛과 어둠은 우주처럼 공간을 무한히 움직인다. 수도원 사진에서 빛과 어둠이 경건성을 띠는 이유를 물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창을 많이 낼 수 없고, 벽에 많은 구멍을 뚫을 수 없어요. 작은 구멍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낼까 하다 보니, 빛이 더 예사롭지 않게 들어오는 것이죠. 빛이 화려한 색으로 들어오지 않지만 로마네스크의 빛은 고딕(건축)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성 있고 진실한 것 같아요.”
수도원은 건축가 승효상이 한국 사회에 건네는 ‘빈자의 미학’을 온전히 담은 곳이다. 이때 건축은 거주 공간으로서 쓸모를 넘어 존재 그 자체로, 평화의 존재로 이 사회를 받치고 서 있다. 건축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옛집은 불편하지만 방문을 열지 않아도 불빛이나 소리로 무얼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 집이죠. 버튼, 리모컨이 아니라 일어서서 문을 열어주는 불편함, 불편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저는 말해요. 이런 건축을 통한 화평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죠. 돈이 있어도 돈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 자기 삶을 절제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미학이 ‘빈자의 미학’이에요. 자기 땅에 지을 수 있는 만큼의 최대치를 건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비 피할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지요. 그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건물의 가치는 더 올라가요. 건축이 지니는 최고의 가치는 공공성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돈으로 짓는다고 해서 소유권이 내게 있는 게 아니라 사용권이 있을 뿐 소유는 시민과 사회에 있어야 해요.”
침묵에 휩싸인 수도원에서 기꺼이 고독을 받아들인 자들이 이루는 평화. 더 눈부실 것을 거부하며 필요한 만큼의 창을 내어 들어오는 빛과 어둠의 진실. 우리 도시의 성소는 어디일까. 23년 전 가난할 줄 아는 자들의 미학을 선언한 승효상은 영혼과 평화가 깃드는 건축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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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